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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27일 수요일

Robert Forczyk, Tank Warfare on the Eastern Front 1943-1945: Red Steamroller (Pen and Sword, 2016)

매우 흥미롭게 읽었던 책의 후속작이 나온다면 항상 기대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전작이 좋았다고 후속작도 좋으란 법은 없지요. Robert Forczyk의 Tank Warfare on the Eastern Front 1943-1945: Red Steamroller (Pen and Sword, 2016)는 딱 그런 경우입니다. 전작인 Tank Warfare on the Eastern Front 1941-1942: Schwerpunkt (Pen and Sword, 2014)가 매우 재미있어서 기대를 했으나 아마존 서평 부터 심상치 않더니 정말 실망스럽군요.

이 책의 단점은 이렇습니다.

1. 서술의 불균형.
- 제목은 Tank Warfare on the Eastern Front 1943~1945라고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1943년'에 대부분의 서술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제가 읽은 E-Book 기준으로 1943년도의 작전을 다루는 부분은 14쪽 부터 199쪽까지 인데, 1944년 1월 부터 8월까지의 작전을 서술하는데는 216~252쪽, 1944년 9월 부터 1945년 5월까지의 작전은 252~255쪽만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전쟁 말기의 작전을 불과 4쪽만 가지고 대충 서술하고 넘어가는데서는 거의 황당함을 느낄 지경입니다. 물론 저자가 1943년 이후의 작전은 중요성이 덜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으나 그럴 거라면 애시당초 책을 1943년의 기갑작전에 집중해서 썼어야 한다고 봅니다.

2. 매우 제한적인 1차사료 활용
- 이 책의 주석만으로 판단하면 1차사료 활용이 전작에 비해 격감했습니다. 대부분의 주석이 2차사료를 출처로 하고 있습니다. 전작의 경우도 1차사료 활용이 미국에 소장중인 독일 노획문서에 한정된다는 한계가 있긴 했습니다만 이 책은 독일 노획문서 조차도 그리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 않아 보입니다.
 사료 활용면에서 이렇다 할 장점이 없으니 책의 내용도 매우 평이하고 결론도 평이합니다. '독일이 연료 소모가 큰 중전차 생산에 집중한 것은 패착이다' '무장친위대와 공군이 많은 자원을 소모해 육군 기갑전력의 증강을 방해했다' '히틀러가 조장한 비효율적 관료제가 독일 군수산업에 악영향을 끼쳤다'와 같은 주장은 합리적이지만 기존의 연구자들도 충분히 지적해 온 문제입니다. 기존의 주장만을 답습하는데 그친다면 이 책의 의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 지 회의적이군요.


 다만 1943년과 1944년 초의 기갑작전이 잘 정리된 점은 충분한 장점입니다. 저는 뭔가 좀 새로운 내용이 없을까 기대해서 실망했지만, 개설서라는 측면에서는 무난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전작에 비해서는 확실히 실망스럽습니다.


2007년 9월 4일 화요일

슈페어가 1945년 3월 18일 히틀러에게 보낸 비망록

알베르트 슈페어, 베를린 W 8, 1945년 3월 18일

경제의 붕괴가 기정 사실화 된데다 국토가 적에게 함락되는 속도도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라인강과 오데르강 선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처가 필요합니다.
라인강과 오데르강 양 쪽이 돌파된 상황에서 방어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중무장한 적군이 두 강을 도하하기 시작한다면 강력한 기동력을 바탕으로 기동전을 수행할 것이기 때문에 장비와 연료가 부족한 아군은 속수무책이 될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8주간의 전투에는 동원 가능한 전 병력을 투입해야 할 것이며 여기에는 어떤 예외도 없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동부전선과 서부전선의 각 집단군 사령관들은 자신들의 관할 구역에 있는 모든 병력 자원을 투입하는데 전권을 가져야 할 것 입니다.
만약 병력 동원이 제때 이뤄지지 못하고 많은 수의 아군 병력이 여전히 편성 지역에서 훈련중인 상태에서 적군이 두 강을 도하해 공세로 나올 경우에는 1940년에 프랑스군이 아군에게 당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재앙이 벌어질 것 입니다.
또한 현재의 전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동원 가능한 각 지역의 국민돌격대도 모두 투입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제국의 모든 병력을 라인강과 오데르강 선을 사수하는데 투입해야 합니다.

각 집단군 사령관들은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자신의 관할구역에 있는 모든 군 병력에 대해서 절대적인 통제권을 가져야 하며 이렇게 해서 자신들의 의도대로 작전을 펼쳐야 합니다.
전선에 배치된 대공포 부대들은 반드시 단일한 지휘관의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휘 범위가 너무 넓어져 신속한 판단이 필요할 경우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노르웨이 북부와 중부, 이탈리아 북부의 산업기반은 현 상황에서는 교통망의 문제로 전혀 활용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의 경제적 중요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 이 지역에 있는 부대들을 차출해 독일로 이동시켜야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조치를 취한 후에야 라인강과 오데르강의 상황을 어느정도 안정시킬 수 있을 것 입니다.
한 걸음의 후퇴만으로도 패배는 가속화 될 것 입니다. 몇주만이라도 현재의 전선을 사수하는데 총력을 다 한다면 적은 우리의 단호한 의지를 알게 될 것이고 이렇게 해서 우리는 조금 더 유리한 조건에서 전쟁을 종결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슈페어

Heinrich Schwendemann, ‘Drastic Measures to Defend the Reich at the Oder and the Rhine…’ A Forgotten Memorandum of Albert Speer of 18 March 1945, Journal of Contemporary History, Vol 38, 2003, pp.605~606

슈페어가 1945년 3월 18일에 히틀러에게 보낸 이 글은 상당히 흥미로운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슈페어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전쟁말기에 히틀러의 초토화 명령에 반대했다는 점을 강조해 전쟁의 책임을 회피하려 했습니다. 슈페어는 광기에 휩싸인 히틀러가 패배에 직면해 독일 전체를 초토화시키려 했지만 자신은 전후 독일의 재건을 위해 히틀러에게 반대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종류의 문건들을 놓고 보면 1945년의 어느 시점까지는 슈페어 자신도 연합국과 유리한 조건에서 휴전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을 조금이라고 가지고 있었다는 것 으로 보입니다. 즉 이 글에서 나타나듯 슈페어 자신도 총통 만큼이나 유리한 조건에서의 종전 가능성을 믿고 필사적으로 저항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연합군이 라인강을 도하해 파죽지세로 밀고들어올 무렵에는 슈페어의 생각도 상당히 바뀐것 같긴 합니다만.

각 지역의 군지휘관들에게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한다던가 아직 훈련도 마치지 못 한 병력이나 국민돌격대까지도 모두 전선에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목에서는 완전한 패배라는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한 슈페어의 정신적 공황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