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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30일 수요일

일본의 군사혁명

어쩌다 서점에 간 김에 책을 조금 샀는데 그 중의 한 권이 『일본의 군사혁명』 입니다. 올해 2월에 발행되었으니 제법 신간에 속하는 군요.

꽤 흥미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주저하지 않고 샀는데 사실 제가 일본사, 특히 20세기 이전의 일본사나 그 연구경향에 대해서는 완전히 깡통인지라 이 책에 대해서 뭐라고 평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저자인 구보타 마사시(久保田正志)는 일단 책에 소개된 약력에서 도쿄대에서 법학을 연구했고 현재 일본에서 성새사적(城塞史跡) 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인물이라고 되어 있고 또 저자 후기에는 1984년 이래 군사사 연구를 계속해 오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일본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 연구자인지 궁금합니다.

책 자체는 아주 재미있게 읽힙니다. 아직 앞부분과 결론 부분만 살펴 본 정도이지만 일본사에 문외한인 입장에서 꽤 흥미로운 서술이 많군요. 일단 저자가 '군사혁명(Military Revolution)'이라는 개념으로 일본의 전쟁양상 변화를 설명하려 하고 있어서 같은시기 유럽과 비교해서 서술하고 있는데 덕분에 이해가 잘 가는 편입니다. 앞부분을 조금 읽다가 꽤 재미가 있어서 결론을 먼저 읽어보게 됐는데 저자는 이시기 일본의 전쟁양상이 가진 특징을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1. 일본 또한 동시기 유럽과 마찬가지로 14세기 이후 창을 사용하는 보병중심의 전술로 움직였다. 그러나 유럽과 달리 모든 창병이 밀집대형을 취하지는 않았는데 주된 이유는 일본의 기병은 유럽의 기병보다 덜 위력적이기 때문이었다.

2. 기병의 위협이 적었기 때문에 총포가 도입된 뒤에도 유럽과는 다른 발전양상을 보였다. 즉 유럽과 달리 탄막사격 대신 저격을 중심으로 하는 발전이 이루어졌다. 또한 유럽에서는 총병의 등장과 상비군의 발생이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데 일본은 그렇지 않다.

3. 일본 말의 열등한 체격은 대포를 사람이 견인하는 소형포 위주로 발전하게 했으며 이때문에 축성 양식도 총포사용을 중심으로 발달했으며 이 때문에 유럽 처럼 성곽의 높이가 낮아지지 않았다.

4. 총포의 도입은 유럽과 마찬가지로 사상률을 높였다. 그러나 일본의 독특한 군사문화가 유럽과 다른 방향으로 나가게 했다. 일본의 군사문화는 수급 획득을 중시했다. 총포의 도입으로 인한 사상률 증가는 수급 획득의 기회를 늘렸으며 군사문화의 특성으로 적의 지휘관, 사령부에 대한 공격 지향이 강했다. 이것은 전역을 조기에 종결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유럽과 달리 전쟁이 장기전으로 가지 않게 되는데 영향을 끼쳤다.

5. 유럽은 군사혁명의 과정으로 들어가면서 병농일치를 통한 병력 확대가 이루어졌는데 일본에서는 전란이 조기에 종결되면서 잉여 병력이 늘어나면서 병농분리와 상비군화가 진행되었다.

6. 죠프리 파커 등은 일본에서는 군사혁명이 '중단' 되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데 이것은 일본사의 특성을 무시한 것이다. 유럽의 군사혁명은 전쟁의 장기화의 결과였으나 일본은 통일을 이루면서 유럽과 같은 군사혁명의 과정을 밟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즉 군사혁명이 중단된 것이 아니라 필요한 범위 내에서 군사혁명을 완료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유럽군사사와의 비교분석이 꽤 흥미롭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나중에 渤海之狼님 같이 일본전통군사사를 공부하시는 분들을 뵐 때 한번 고견을 들어봤으면 합니다.

일단 국내에도 일본 전통군사사에 대한 책이 나왔다는 사실이 꽤 반갑습니다.

2007년 1월 15일 월요일

묵공 - 밋밋한 부대찌개 같은 영화

지난 주말에는 ‘묵공’을 봤습니다.

‘완벽한 공성전’ 어쩌고 하는 광고 문구 보다는 안성기 아저씨가 나오고 또 원작 만화 자체도 꽤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개봉 전부터 굉장히 호기심을 끌던 영화였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니 아쉬운 부분이 많이 남습니다. 물론 열심히 만들었고 볼거리도 그럭 저럭 많긴 합니다만… 전체적인 느낌은 마치 밋밋한 부대찌개 같았습니다. 먹을건 많이 들어가 있는데 맛은 밋밋한. 그냥 그럭 저럭 볼만한 영화더군요.

가장 큰 문제는 감독이나 편집자의 역량 문제인 것 같습니다.
영화 내내 긴장감이라곤 끌어내지 못하니 재미가 없을 수 밖에요. 조나라의 10만 대군이 조그만 성 하나를 공격하러 온다는데 그다지 긴박한 느낌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이건 거의 감독의 자질 문제가 아닌 듯 싶더군요. 비슷한 예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반지의 제왕 두번째 편의 헬름 협곡 전투는 압도적인 적에게 포위당한 긴박감을 잘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묵공에서는 함락당하면 주민들이 모두 몰살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긴박감을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냥 적이 오니 싸우고 그래서 이겼다는 것 말고는 모르겠더군요.
그리고 영화 중간에 혁리가 조나라 진영을 염탐하러 갔다가 추격 당하는 부분에서도 갑자기 어두운 밤에서 환한 대낮으로 건너 뛰는 등 편집자의 재능을 의심케 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등장 인물들은 많고 조연들도 저마다 한마디씩 해대는데 이걸 제대로 이어 붙이지 못하니 영화는 산만하고 엉덩이는 아파왔습니다.

두번째 문제는 주인공의 압도적인 지략입니다. 그의 라이벌(?)이 되야 할 조나라의 ‘명장’이라는 항엄중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기 때문에 굉장히 맥빠지는 대결이 이어집니다. 첫번째 공격은 나름대로 재미있었으나 그 뒤로는 밋밋한 전개가 계속되더군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도 혁리는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을 어처구니 없이 뒤집어 버립니다. 도데체 언제 지하에 갱도를 다 파 놓았다는 것인지.
적을 가지고 놀 정도로 압도적인 능력을 가진 주인공은 잘 묘사하기가 힘듭니다. 잘못하면 너무 일방적인 이야기가 이어지기 때문에 재미가 없지요. 묵공은 바로 이런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더군요. 주인공이 너무 뛰어나 적장 항엄중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에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에서는 위기의 완급조절이 필요한데 그런게 전혀 없이 일사 천리로 이야기가 진행되니 뭐…

여기에 더해 시나리오를 쓴 사람의 자질도 약간 의심스럽더군요. 주연 배우들 외에도 조연들도 비중이 제법 큰데 비중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이 때문에 이야기가 산만하고 엉덩이가 쑤시는데 일조를 했습니다.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조연들이 튀어나와 극의 흐름을 끊더군요. 조연들에 대한 불필요한 묘사 보다도 혁리와 항엄중의 대결에 집중했다면 훨씬 볼만한 영화가 됐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야기 진행의 밋밋함을 제외하면 그럭 저럭 영화였습니다. 초반의 전투장면은 인민해방군을 엑스트라로 동원해서 규모가 크고 제법 전쟁하는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줍니다. 쓸데 없이 날아다니는 액션이 없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전체적으로 매우 밋밋한 영화였습니다. 또 보고 싶진 않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