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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5일 월요일

육탄 10용사와 정신전투법

슈타인호프님이 '육탄 10용사'에 대한 글을 한 편 쓰셔서 엮인 글을 하나 써 볼까 합니다.

선전 도구로서 육탄 10용사가 어떻게 사용되었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당시 육탄 10용사는 정부의 매우 좋은 선전대상이었습니다. '북괴'에 비해 물질적으로 열세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초인적인 정신력과 자기희생으로 '승리'를 이끌어 낸 원동력이었으니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국방부가 발간하던 『國防』1949년 6월호에는 육탄 10용사를 찬양하는 특집 기사가 여러 편 실렸는데 그 중 재미있는 글 하나를 조금 인용해 보겠습니다.

오호라 장재(壯哉)여! 오호라 비재(悲哉)여 육탄십용사!

그대들은 세계전사에 볼수없는 쾌거를 감행하였나니 이는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전투력의 극치를 세계에 선양하였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이다.

과학의 극도발달에 의하여 원자력 내지 우주선(宇宙線) 이용이 가능하다고 하는 금일에 있어서 그러한 신비력을 발양한 것은 다만 한국용사의 아름다운 희생에서만 수긍되는 것이니 이것은 세계만방의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전투정신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역사적 기념비가 않일 수 없다.

과학의 힘을 믿고 싸우는 민족! 무기의 위력 만을 의지하고 싸우는 군대! 그것은 언제나 정신앞에 굴복하고 말 것이니 과학 보다도 무기 보다도 더 위대한 것은 군인의 정신 그것임을 새삼스럽게 강조하고 시픈 소이(所以)다.

대동아전쟁, 이른바 동양평화를 위하고 싸왔다는 제2차세계대전에 있어서도 원자탄의 히로시마 폭격이 제아모리 인간살생을 혹독히 하였다 하드라도 좀더 강렬한 전투력과 필사의 정신력이 대비하고 있었다면 원자력쯤은 문제밖에 있었을른지도 모른다. 과학을 무시하는 전쟁, 무기를 소홀히 하는 전법은 20세기 현금(現今)에 있어서 용인될 수 없는 지론일른지 모르지만 원자력이나 무기 역시 인간의 정신활동의 범위권에서만 가능할 수 있는 것임으로 나는 정신 제일주의를 고집하고 싶은 것이다.

세계전사를 들추어볼때 저 불란서의 쨘다-크의 기책도 오로지 정신에서 출발하여 정신에 끝이였고 나폴레온의 알프스 정복도 과학력이나 무기력(武器力)이 아니였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제2차세계대전에 있어서 일본이 패망하였다는 것은 물론 무기력, 과학력의 소치라고 하겠지만 그보다도 앞서는 것은 전국민의 정신쇠퇴에 기인함이 더욱 컷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전쟁은 군인만이 담당하는 것은 아니다. 전민족이 일심동체가 되어 전쟁에 임함으로써 언제나 필승을 기할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고금을 통해서 어느나라의 역사를 들추어 보드라도 잘 알수있는 것이니 용사를 길러낸 총후의 지성이 없다면 제아모리 출중한 군인이라고 하드라도 목숨을 나라에 받칠 동기를 맨들수 없는 것이라고 본다. 지금은 패망한 영웅이 되어 있는 독일의 히틀러나 이태리의 뭇소리니를 보드라도 그들은 어디까지나 과학력과 무력을 위주로한 정치운동이 아니라 정신력에 입각한 민족혼의 규합이였고 정신전투의 신봉자이였다는 것을 우리는 긍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정신전투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공산주의자들이 부르짖는 유물론적 이념이 아니라 자유를 사랑하고 평화를 찬미하는 우리 민주주의 신봉자들의 절대이념인 유심론(唯心論)적 세계관인 것이다.

李鍾泰, 「꽃으로 떠러진 十柱花郞」, 『國防』(1949. 6), 6~7쪽

당시 한국군의 궁색한 상황과 안보적 불안을 고려하면 이렇게 정신력을 극도로 강조하는 것도 이해를 못할 것은 없겠습니다만 정신력으로 원자력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이야긴 좀 심하죠... 그나저나 민주주의 국가의 군인이 히틀러와 무솔리니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으니 이것도 참;;;;;

2010년 4월 1일 목요일

울화통이 터진다.

천안함 침몰과 관련된 소식은 어지간 하면 신경을 끄고 싶은 심정입니다. 새로운 소식이 들릴 때 마다 억장이 무너지니 말입니다. 그래서 블로그에서도 천안함 이야기는 하고 싶지가 않았는데 구글리더를 확인하던중 정말 울화통이 터지는 기사를 하나 읽게 됐습니다.




기사 전체가 울화통 터지는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미 부실한 장비와 현장의 가혹한 환경 때문에 사망자가 한명 발생한 마당에 계속해서 초인적인 의지만 발휘해야 하다니 도데체 이게 대한민국 군대인지 황군인지 알 수 가 없군요. 이 빌어먹을 황군의 전통은 정말 끈질기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저도 사람인 만큼 이런 엿같은 상황에서 진짜로 초인적인 의지를 발휘하는 UDT 분들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이번 사태가 정리될 때 까지 작업에 투입된 모든 분들이 무사하시기만을 빕니다.

하지만 이런 열악한 상황을 미담으로 선전하는 국방부의 태도는 정말 울화통이 치밉니다. 제발 사람 좀 소중하게 생각합시다. 특히나 UDT 대원이라면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우수한 인재들이 아닙니까.

2010년 2월 5일 금요일

황군의 정신력은 세계 최강?!?!

쇼와(昭和) 15년(1940년), 지나 전선에서 혁혁한 공훈을 세우고 귀국한 김석원 중좌는 어떤 잡지에 이런 글을 기고하셨더랍니다.

나는 전지에 나갓슬때 황군의 아름다운 행동이며 부상병이 엉금엉금 기여가면서 돌격해 나가든그 눈물나는 정경을 생각하면 전쟁이란 반드시 무긔로만 익이는 것이 아니라 용사들의 아름답고, 놉고, 굿센 정신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와 갓흔 정신이 투철한 우리 황군이 세계에서 제일 강한것은 당연한 리치입니다. 명치 37, 8년 일로전쟁때 탄환대신으로 2만명의 황군이 적의 진지에 뛰여드러가 성공한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 황군이 얼마나 굿센 정신을 가젓는지 아실 것 입니다.

김석원, 「軍人의 立場에서 銃後에 附託함」,『家庭之友』(1940. 1) 28호, 4~5쪽

이 시절의 정신력 드립에 대해서는 예전에도 한번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군인 뿐 아니라 식민지 지식인들도 황군의 정신력을 찬양하던 시절이죠.

김중좌께서는 정말 황군의 정신력에 감화받으셔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해방되고 1사단장을 하실 때도 육탄 10용사 같은 황군의 전통을 잇는 공격을 좋아하셨다고 하죠. 김석원 외에도 채병덕 같은 양반들도 정신력 드립을 쳐대고 있었던 걸 보면 정말 이것이야 말로 최악의 식민지 잔재인듯;;;;


잡담 하나. 위에서 인용한 글은 요즘 국립중앙도서관에 전자문서로 열람 가능하게 되어 있더군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아주 깨끗하게 스캔을 잘 해 놓아서 제가 예전에 복사했던 상태 나쁜 것은 못 보겠더군요. 전자문서들이 잘 되어 있다보니 옛날에 구닥다리 복사기로 복사한 것들 중 통째로 복사해서 제본 뜬 것이 아니면 모두 이면지로 재활용 하고 있지요.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 이상 국립중앙도서관이 문 닫지는 않을 테니.

잡담 둘. 위의 인용문에서 *표 표시한 것은 아무래도 203고지 전투를 이야기 하는 것 같지요?

2008년 10월 21일 화요일

전쟁은 물량으로 해야지!

지난 3월에 올렸던 "전쟁은 물량만으로 하는게 아니다?!"에서는 일본의 식민지배로 인한 악영향에 대하여 다뤄 보았습니다.

아무리 발악한들 황군의 백발백중의 포 1문으로 귀축영미의 백발일중의 포 100문을 어찌 당하겠습니까.

오호라. 그러나 역시 일제의 악영향을 받지 않은 독립투사들의 생각은 달랐으니...

안만 질이 善良 하드라도 量이 워낙 不足하면 難을 能히 克服 못하는 것입니다. ‘탕쿠’ 한 臺는 잘해야 ‘탕쿠’ 三臺, 四臺를 克服 할 수 있지 열臺, 수무臺는 克服하지 못하는 것이요 優秀한 砲 한 門은 二門, 三門은 制壓할 수 있어도 砲 十門, 二十門은 制壓하지 못 할 것입니다. 이것이 量이 必要하다는 것입니다.

李範奭 長官 退任辭, 『國防』, 大韓民國 國防部, (1949. 4), 3쪽

역시 양이 중요한 것 입니다.


鐵驥 將軍 萬歲!

2008년 3월 25일 화요일

전쟁은 물량만으로 하는게 아니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을 넘긴 1942년 12월 12일, 전황이 일본에게 불리하게 꼬여가던 이 시점에 식민지 조선의 경성에서는 皇國臣民 함상훈(咸尙勳), 홍익범(洪翼範), 류광렬(柳光烈), 이정섭(李晶燮) 등이 모여 제국의 앞날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이 중에서 류광렬과 이정섭이라는 양반들의 대화가 참 감명 깊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거든요.(몇몇 표현은 현대어에 맞게 고쳤습니다.)

류광렬 : 지금 미국의 생산력 확장이라는 것은 금년 1월 6일 대통령이 의회에 보낸 교서에 의하면 천문학적 숫자를 열거하고 있는데 설사 그 숫자에 가깝게 생산이 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생산된 군수품의 전부가 태평양전에 쓰이는게 아니고 세계 각국에 수송되어 영국, 소련, 또는 중경으로 가는 것이 있으니까 실제로 태평양에 오는 것은 그 중의 몇 분의 일 밖에 아니 될 겝니다.

그렇지만 어떻든 그들의 유일의 위안은 생산력에 있다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대동아전(大東亞戰) 전에 처칠이 일본은 강철의 생산이 빈약한데 어떻게 이기겠느냐고 한 것을 보아도 그런 것을 알 수 있지만 전쟁은 무기다소(武器多小)에 좌우되는 것 만은 아닙니다. 군사전문가가 아닌 ‘시로도(素人)’가 돼서 잘 알지 못합니다만 정부나 군 당국자의 말을 들어보아도 그렇고 전번에 한 스즈끼(鈴木)총재의 말에도 전쟁은 天地人을 갖추어야 하나 결국은 사람에 있다 했고 해군 당국자도 적의 생산력을 과대평가해서는 안되나 과소평가해서도 아니 된다는 말을 했고 도고(東鄕)원수도 백발일중(百發一中)의 포 백문을 가지는 것 보다 백발백중(百發百中)의 포 일문을 가지는 것이 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적이 백발일중의 포 백문을 만드는 동안에 여기서는 백발백중의 포 일문만 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느 수준을 확보해 가야만 하겠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국도 무제한으로 군수품을 확대한다는 것이 아니라 1944년도까지 보아 확장계획이 완성되면 반격해보겠다는 것이지 언제까지나 군기확장만은 못할 겝니다. 한도가 있을 게니까요. 군기확장과 같은 비밀에 속하는 것을 신문에 공개하는 것을 보면 여기에도 다분히 선전의 의미가 있습니다. 결국은 군확(軍擴)이란 것도 그것이 무한량이 아닌 한 년한(年限)이 있을 때 까지 튼튼히 대비만하고 있으면 조금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이 적의 심중과 계획을 잘 토도(討度)하여 여기에 대비할만한 생산력 확충에 주력하여 만전을 기할 것 뿐입니다.

투혼에 불타는 황군의 百發百中의 포 일문

VS

정신박약 양키들의 百發一中의 포들


이정섭 : 적국측의 곤란은 물질보다 인적자원에 있겠는데 제아무리 저희들 말대로 1944년까지 400만 兵을 확충한다 치더라도 남는 것은 병의 기술문제이지요. 가령 비행기를 완전히 조종하려면은 적어도 2년 동안 맹훈련을 받지않고는 쓸만한 것이 못되고 함선도 240만톤이나 만들어 내겠다 장담하지만 완전한 선상생활을 하려면 적어도 20년은 지나야 한답디다. 사관학교를 나와 20년 지나서 함장격이 될 수 있으니 전쟁 나기 전에 얼마나한 인원을 길러뒀는지는 모르지만 도저히 많은 기술자가 없을 줄 알어요. 설혹 기술이 있다쳐도 가장 요긴한 투혼이 아군에게 따르지 못하고 정(신)력이 박약해놔서 아까 류광렬씨 말씀같이 기계력이 충실해 진다 쳐도 일본 반공은 못할 것입니다.

조광 1943년 1월호, '世界政局의 前望', 31-32쪽

과연 이 양반들이 진심으로 이런 말을 한 건지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황국신민으로서 습득한 정신력(?) 중시의 전통은 한국전쟁을 거쳐 오늘날에도 조금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