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서 한마디. 제가 보수적인 경향이 있다 보니 제 블로그에 들러주시는 분 중에서 저를 한나라당 지지자로 오인하시는 사례가 종종있습니다. 제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저는 (특히 외교안보정책에 있어) 보수적인 민주당 지지자입니다. 김대중 정부 후반기와 노무현 정부 전기간의 외교안보정책에 대해서 극도로 부정적이긴 합니다만 한나라당 지지자는 아닙니다. 강인덕 같은 보수적인 인사를 통일부 수장에 임명하는 등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대북정책을 시사했던 김대중 정부 초기에는 꽤 기대감이 크기도 했지요.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원래는 작년 연말에 쓰려고 했는데 제가 기억력이 좋지 않다 보니 좀 많이 밀리게 됐군요.
언제부터인가는 모르겠지만 정치적인 갈등이 심화되면서 개별 정당은 물론 정당 지지자들 간에도 대립각이 극단적으로 날카로워진다는 느낌입니다. 상대 정당, 정파의 정책은 무조건 틀린 것이고 내가 지지하는 정당,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의 주장만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라는 주장이 횡행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 입니다. 저와 같은 당을 지지하시는 분들은 불쾌하시겠지만 김대중의 대북정책이 무조건 옳은 것이며 그것을 계승해 발전시킨 노무현도 당연히 옳은 것이라는 주장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됩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대북정책이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북한의 1차 핵실험으로 명백해 졌으며 민주당-열린우리당이 집권한 10년 동안 북한은 남한의 유화적인 정책에 상응하는 대응을 사실상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제한적인 이산가족 방문이나 제한적인 정치사회단체들의 활동같은 통일쇼를 예로 들진 맙시다) 한계점이 명백히 드러난 상황에서도 한나라당의 공세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느라 정책에 대한 반성을 거의 하지 못한 점은 부메랑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북한의 핵실험 이후에는 보수층의 파상적인 공세에 무기력하게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화정책 만으로는 북한에 대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이 드러난 이후에도 개혁진영은 김대중과 노무현의 대북정책을 옹호하는데 주력했지만 이것은 한나라당에 비해 훨씬 적은 개혁진영의 고정지지층을 결속시키는 역할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습니다.
물론 저도 대북유화정책이 조건만 갖춰진다면 충분한 효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 통일을 고려하고 있다면 북한과의 교류 필요성을 절대 부정하지는 못 할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이 핵실험을 공개적으로 실시하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실험을 하는 마당에 그것은 미국과 일본을 겨냥한 것이다,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 하는 식으로 어설픈 물타기를 한다면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참으로 낯뜨거운 것은 노무현 정부당시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했을 때는 미국의 압박정책이 문제라고 합리화하기 바쁘던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들어와 북한이 2차 핵실험을 하자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하는데 여념이 없었다는 것 입니다. 비슷한 사례는 셀수 없이 많습니다. 2002년 북한과의 교전으로 한국 해군이 많은 사상자를 냈을 때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옹호하느라 바쁘던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에서 금강산 관광객이 한명 살해당했을 때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하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지요. 북한이 유화정책을 해도 도발하고 강경정책, 또는 무시하는 정책을 해도 도발한다면 도데체 유화정책이 무슨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비극적인 것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파의 대북정책을 맹목적으로 옹호하기 위해서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 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반성적인 자기성찰이란 불가능해 지고 융통성마저 잃게 됩니다.
만약 북한이 개혁진영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준다면 대북유화정책을 굳건히 견지해 나간 것이 결과적으로 큰 이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 외교안보정책에 있어 개혁진영이 주도권을 쥐는 상황도 충분히 가능할 것 입니다. 하지만 반대되는 경우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럴 경우 정치적으로 체력이 약한 개혁진영이 입게될 타격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1989~1990년 동독이 붕괴될 당시 서독의 사민당(SPD)는 동독과의 점진적 통일을 주장했지만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치닫자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반면 기민-기사당 측은 동독의 혼란이 가속화 되자 동방정책의 틀을 깨고 적극적인 흡수통일로 노선을 전환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사민당은 동방정책의 연장선 상에서 온건한 정책을 고수한 까닭에 동독의 붕괴를 일관적으로 추진한 기민-기사당이 외교안보적인 승리를 거머쥐는 사태에 무기력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래는 불확실 한 것 입니다. 민주당 측이 원하는 것 처럼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가 연착륙 할 가능성도 있지만 그와는 반대로 북한이 체제유지를 고수하다가 갑자기 붕괴하는 급변사태를 맞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개혁진영이 북한에 대한 유화정책을 고수한 것이 치명적인 부메랑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지지기반이 한나라당에 비해 취약한 민주당과 그 밖의 진보정당들이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와 흡수통일이라는 상황이 닥칠 경우 한나라당에게 수동적으로 말려들어가고 결과적으로 외교안보분야에서 장기적으로 주도권을 상실하게 되는 것 입니다.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보수정당에게 수동적으로 말려들어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유를 마련했으면 하는게 저의 작은 기대입니다.
2010년 2월 8일 월요일
2009년 10월 25일 일요일
양치기 늑대?
대한민국 정치 소식은 블랙유머의 산실이라죠.
"與, 재보선 패배시 서민경제정책 추동력 상실"
저는 이 기사를 읽은 뒤 늑대가 양들에게 "늑대가 온다!!!"고 외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별로 믿음이 안가죠.
"與, 재보선 패배시 서민경제정책 추동력 상실"
저는 이 기사를 읽은 뒤 늑대가 양들에게 "늑대가 온다!!!"고 외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별로 믿음이 안가죠.
2009년 1월 18일 일요일
각하의 정치력, 가카의 정치력
이명박의 낮은 정치력은 박근혜를 적절히 제어하지 못하고 갈등만 키우는 점에서 아주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청와대측에서 한나라당 중진들을 오찬회동에 초대하면서 관례를 무시한 행동을 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요.
한나라 중진들, 靑 '의전소홀' 떨떠름
Sonnet님이 얼마 전에 지적했 듯 박근혜와 같은 강력한 정적을 제어하는데 효율적인 방법 중 하나는 큼지막한 감투를 하나 던져주는 것 입니다. 많은 권력자들이 이런 방법을 사용해서 막강한 정적들을 쳤지요. 이 방법은 인류의 역사를 통해 그 효과가 충분히 검증되었다는 점에서 아마도 이명박에게 가장 쓸만한 카드였을 것 입니다. 만약 집권 초에 이 카드를 썼다면 아마도 지금쯤 개각을 핑계로 박근혜를 칠 수 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래 이 방법을 가장 효과적으로 써먹은 사람은 이승만일 것입니다. 이승만은 첫 내각을 구성하면서 처음에 국무총리로 지명한 이윤영이 의회에서 거부당하자 이범석을 국무총리로 지명해 통과시킵니다. 게다가 이범석은 국방부장관을 겸임하여 그야말로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됩니다. 미국 측에서는 군 장교단이 이범석의 권력을 두려워해서 이범석의 지시가 없이는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는다고 불평할 정도였지요.
하지만 이승만은 이범석을 국무총리에 앉힌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범석의 중요한 권력 기반인 조선민족청년단(朝鮮民族靑年團)을 해체시켜 대한청년단(大韓靑年團)에 흡수시켜 버립니다. 이 과정에서 이범석이 저항을 하긴 했지만 이승만은 그것을 간단히 제압해 버리지요. 이승만은 족청을 해체한 뒤 얼마 있지 않아 이범석을 국방부장관에서 해임시켜 버립니다. 족청이라는 강력한 방패가 없어지자 이범석의 정치적 위상은 취약해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승만은 1950년 4월에 이범석을 국무총리직에 해임 함으로서 이범석에게 결정타를 먹이지요. 이승만은 자유당을 창당할 때 다시 한번 이범석을 끌어들인 뒤 또 한번 등에 비수를 꽂으면서 자신의 정치적 수완을 과시합니다. 1952년 대선에서 이범석은 결정적인 타격을 받아 더 이상 정치적으로 재기할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물론 가카의 정치적 수완이 바닥이라는 점은 그의 정적들에게 크나큰 축복입니다. 우리 같은 일반 시민에게도 좋은 일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한나라 중진들, 靑 '의전소홀' 떨떠름
Sonnet님이 얼마 전에 지적했 듯 박근혜와 같은 강력한 정적을 제어하는데 효율적인 방법 중 하나는 큼지막한 감투를 하나 던져주는 것 입니다. 많은 권력자들이 이런 방법을 사용해서 막강한 정적들을 쳤지요. 이 방법은 인류의 역사를 통해 그 효과가 충분히 검증되었다는 점에서 아마도 이명박에게 가장 쓸만한 카드였을 것 입니다. 만약 집권 초에 이 카드를 썼다면 아마도 지금쯤 개각을 핑계로 박근혜를 칠 수 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래 이 방법을 가장 효과적으로 써먹은 사람은 이승만일 것입니다. 이승만은 첫 내각을 구성하면서 처음에 국무총리로 지명한 이윤영이 의회에서 거부당하자 이범석을 국무총리로 지명해 통과시킵니다. 게다가 이범석은 국방부장관을 겸임하여 그야말로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됩니다. 미국 측에서는 군 장교단이 이범석의 권력을 두려워해서 이범석의 지시가 없이는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는다고 불평할 정도였지요.
하지만 이승만은 이범석을 국무총리에 앉힌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범석의 중요한 권력 기반인 조선민족청년단(朝鮮民族靑年團)을 해체시켜 대한청년단(大韓靑年團)에 흡수시켜 버립니다. 이 과정에서 이범석이 저항을 하긴 했지만 이승만은 그것을 간단히 제압해 버리지요. 이승만은 족청을 해체한 뒤 얼마 있지 않아 이범석을 국방부장관에서 해임시켜 버립니다. 족청이라는 강력한 방패가 없어지자 이범석의 정치적 위상은 취약해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승만은 1950년 4월에 이범석을 국무총리직에 해임 함으로서 이범석에게 결정타를 먹이지요. 이승만은 자유당을 창당할 때 다시 한번 이범석을 끌어들인 뒤 또 한번 등에 비수를 꽂으면서 자신의 정치적 수완을 과시합니다. 1952년 대선에서 이범석은 결정적인 타격을 받아 더 이상 정치적으로 재기할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물론 가카의 정치적 수완이 바닥이라는 점은 그의 정적들에게 크나큰 축복입니다. 우리 같은 일반 시민에게도 좋은 일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2008년 4월 23일 수요일
국개론과 그리스 찬미주의자들
채승병님과 Sonnet님이 ‘국개론’에 대한 글을 써 주셔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두 분의 글을 읽으니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후광효과(halo effect)와 국개론의 망상 – 채승병
깨진 유리창 - Sonnet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후 한나라당을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에게 국개론은 상당히 널리 퍼진 것 같습니다. 표준적인 국개론은 ‘한나라당을 찍은 국민들은 다 개XX다’이고 좀 더 과격하게 발전된 국개론은 아예 제 2의 외환위기를 맞아 이명박을 찍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지요. 아마도 제 2의 외환위기 사태가 벌어지면 국개론을 외치는 자들만 탈수 있는 방주라도 있는 모양입니다? 물론 저도 정치적으로는 한나라당을 반대하는 입장이라 답답하긴 마찬가지이고 한나라당을 찍은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경멸하는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주변에도 국개론자들이 일부 있는데 이들은 늘 진보와 민주주의를 이야기 하면서 다수의 힘을 찬미하곤 했지요. 이들이 자신감에 차 있을 때 하던 이야기는 낯간지러우니 생략하도록 하고... 어쨌든 2002년에는 세상을 바꿀 것 처럼 들떠 있던 사람들이 지금은 지독한 염세론자들이 되어 한때 그토록 찬양하던 다수를 향해 저주를 퍼붓고 있으니 이걸 뭐라 말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국개론자들은 대부분 정치적 의식이 뚜렷한 편이고 자신의 지식이나 판단력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수가 가방끈도 긴 편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자신과 정치적으로 반대되는 사람들에 대해 기괴하기 짝이 없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 가끔씩은 아찔하기 짝이 없더군요. 이런 사람들은 대중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것을 답답해 하다가 결국에는 ‘국개론자’로 발전하게 되더군요.
이런 ‘국개론자’들을 보면 과거 역사 속의 어떤 집단을 떠올리게 됩니다.
대충 글자 몇 개만 바꾸면 국개론자와 그들이 혐오하는 일반 국민들의 이야기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어쨌든 저는 사회가 조금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기를 바란다면 ‘국개론’ 따위의 염세적인 생각을 떨쳐버렸으면 합니다. 변화는 점진적인 것이고 어느날 갑자기 정치인 하나 잘 뽑았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대통령이 마음에 안드는 것은 저도 마찬가지 입니다만 어차피 5년 뒤면 말 안해도 물러납니다. 우리가 5년만 살고 세상 등질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입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자리를 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고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현실 정치를 보면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 일 것 입니다. 하지만 정말 변화를 갈망한다면 겨우 몇 번의 선거 결과에 실망해서는 안 될 것 입니다. 그보다는 꾸준한 정치 참여를 통해 작은 변화라도 계속해서 이뤄 나가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후광효과(halo effect)와 국개론의 망상 – 채승병
깨진 유리창 - Sonnet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후 한나라당을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에게 국개론은 상당히 널리 퍼진 것 같습니다. 표준적인 국개론은 ‘한나라당을 찍은 국민들은 다 개XX다’이고 좀 더 과격하게 발전된 국개론은 아예 제 2의 외환위기를 맞아 이명박을 찍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지요. 아마도 제 2의 외환위기 사태가 벌어지면 국개론을 외치는 자들만 탈수 있는 방주라도 있는 모양입니다? 물론 저도 정치적으로는 한나라당을 반대하는 입장이라 답답하긴 마찬가지이고 한나라당을 찍은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경멸하는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주변에도 국개론자들이 일부 있는데 이들은 늘 진보와 민주주의를 이야기 하면서 다수의 힘을 찬미하곤 했지요. 이들이 자신감에 차 있을 때 하던 이야기는 낯간지러우니 생략하도록 하고... 어쨌든 2002년에는 세상을 바꿀 것 처럼 들떠 있던 사람들이 지금은 지독한 염세론자들이 되어 한때 그토록 찬양하던 다수를 향해 저주를 퍼붓고 있으니 이걸 뭐라 말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국개론자들은 대부분 정치적 의식이 뚜렷한 편이고 자신의 지식이나 판단력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수가 가방끈도 긴 편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자신과 정치적으로 반대되는 사람들에 대해 기괴하기 짝이 없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 가끔씩은 아찔하기 짝이 없더군요. 이런 사람들은 대중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것을 답답해 하다가 결국에는 ‘국개론자’로 발전하게 되더군요.
이런 ‘국개론자’들을 보면 과거 역사 속의 어떤 집단을 떠올리게 됩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그리스 찬미주의자(philhellene)는 터키의 지배에 맞서 싸우던 그리스의 클레프트(Klepht)를 지지했다. 대부분 나폴레옹 전쟁의 장교 출신이었던 이들은 1821년의 그리스 독립전쟁이 발발했을 때 밀집 대형으로 훈련을 하려고 애썼지만, 그들의 노력 또한 비웃음과 조롱만 불러일으켰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경멸에서가 아니라,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중략)
그리스 찬미주의자들은 그리스인들이 대오를 지어 터키 인들을 공격하지 않는다면 결코 전투에서 이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리스 인들은 만약 그들이 유럽식으로 대오를 지은 채 터키 인들의 소총 앞에 맨 가슴을 내어 놓는다면, 순식간에 전멸을 당하고 결국 전쟁에도 패배할 것이라고 반대했다.
가장 유명한 그리스 찬미주의자인 바이런은 ‘그리스 인을 위해서 부끄러움을/그리스를 위해서 눈물을’이라고 노래하며 다른 자유수호자들과 더불어 그리스의 편에서 서서 또 하나의 새로운 테르모필라이 전쟁을 희망했다. 그러나 바이런 역시 합리적인 전술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무지는 결코 극복될 수 없음을 발견하고 다른 모든 유럽의 이상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환멸과 절망을 느껴야 했다.(중략)
그러나 그리스인들과 함께 전투를 치렀던 그리스 찬미주의자들은 고대 그리스인과 근대 그리스인이 같다는 믿음을 재빨리 내던져버렸을 뿐만 아니라, 살아서 유럽으로 되돌아온 자들은, 그리스 찬미주의의 역사가 윌리엄 세인트 클레어가 쓴 대로 “거의 예외 없이 그리스인들을 구역질을 내며 증오했고, 기만 당했던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스스로 저주했다.” 근대 그리스 인들의 용기를 찬미한 셸리의 순진한 시들은 특히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스 찬미주의자들은 고대 그리스의 중무장 보병들이 페르시아인들과 맞붙었던 전쟁에서 그랬던 것 처럼, 근대 그리스인들이 밀집 대형으로 “도보로 죽음과 맞서는 전장”에서 불굴의 용기를 보여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것은 이런 저런 경로를 돌아서 서유럽의 전쟁에서도 그들만의 특징적인 전쟁 방식이 되었다. 그리스 찬미주의자들은 최소한 근대 그리스인들이 밀집 대형 전술을 기꺼이 다시 배우려는 태도만이라도 보여주기를 원했다. 그것만이 터키로부터 그들의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결코 그럴 의지조차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자, 그리스 찬미주의자들은 고대 그리스인들과 근대 그리스인들 사이의 혈통상의 단절만이 이러한 영웅적 문명의 몰락을 설명해 줄 수 있을 뿐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존 키건, 유병진 옮김, 『세계전쟁사(A History of Warfare)』, (까치, 1996), 28~30쪽
대충 글자 몇 개만 바꾸면 국개론자와 그들이 혐오하는 일반 국민들의 이야기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어쨌든 저는 사회가 조금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기를 바란다면 ‘국개론’ 따위의 염세적인 생각을 떨쳐버렸으면 합니다. 변화는 점진적인 것이고 어느날 갑자기 정치인 하나 잘 뽑았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대통령이 마음에 안드는 것은 저도 마찬가지 입니다만 어차피 5년 뒤면 말 안해도 물러납니다. 우리가 5년만 살고 세상 등질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입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자리를 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고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현실 정치를 보면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 일 것 입니다. 하지만 정말 변화를 갈망한다면 겨우 몇 번의 선거 결과에 실망해서는 안 될 것 입니다. 그보다는 꾸준한 정치 참여를 통해 작은 변화라도 계속해서 이뤄 나가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07년 12월 18일 화요일
[妄想大百科事典] 파란잠바단
2007년 11월 22일 목요일
쥐 한마리
제가 사는 조그만 동네에서 꽤 재미있는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얼마전 까지 통합신당에 있던 시의원 한명이 한나라당으로 옮겨 갔더군요. 지난 경선에서 정동영을 지지하며 열심히 돌아다니던 양반이라 최소한 대선이 끝날때 까지는 붙어 있을 줄 알았더니만 눈 깜짝할 사이에 배를 갈아 탔습니다.
에. 뭐 배가 가라앉을 때 쥐들이 먼저 튄다는 말도 있고 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좀 요상한 배를 탔다는 느낌입니다. 그 양반은 전형적인 정치자영업자라 다음번 시장선거에 나온다는 이야기도 도는데 만약 그 양반이 한나라당 간판을 달고 시장 선거에 나온다면 꽤 흥미롭겠군요.
에. 뭐 배가 가라앉을 때 쥐들이 먼저 튄다는 말도 있고 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좀 요상한 배를 탔다는 느낌입니다. 그 양반은 전형적인 정치자영업자라 다음번 시장선거에 나온다는 이야기도 도는데 만약 그 양반이 한나라당 간판을 달고 시장 선거에 나온다면 꽤 흥미롭겠군요.
2007년 3월 20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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