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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28일 일요일

크리스토퍼 로렌스의 쿠르스크 돌출부 남부지역 항공전 연구

얼마전 듀푸이 연구소 소장 크리스토퍼 로렌스가 쿠르스크 전투 항공전을 다루는 단행본을 준비 중 이라고 포스팅을 했습니다. 로렌스는 이미 쿠르스크 전투 지상전을 다룬 연구서에서 항공작전에 대해 한 장을 할애해 서술했으니 향후 출간될 항공전에 대한 연구도 기본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을 겁니다. 2019년에 나온 축약본 The Battle of Prokhorovka: The Tank Battle at Kursk, the Largest Clash of Armor in History, 243-290쪽의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 보죠.

크리스토퍼 로렌스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소련 공군은 양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쿠르스크 돌출부 남부 항공전에서 압도적인 열세였다."


1. 쿠르스크 돌출부 남부에 전개한 독소 양군의 공군력

남부집단군의 공세를 지원한 공군부대는 그 유명한 리히토펜이 지휘하는 제8항공군단이었습니다. 제8항공군단은 공세 직전 1,093~1,112대의 항공기를 보유했습니다. 로렌스는 전투서열 상 1,093대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를 기준으로 할 경우 전투기 145대, 지상공격기 407대, 폭격기 309대, 정찰기 69대, 야간공격기 60대, 수송기 13대, 헝가리 공군기 90대 입니다. 

이에 맞서는 소련 공군은 제2항공군이 전투기 572대, 지상공격기 306대, 폭격기 117대, 야간폭격기 57대, 정찰기 21대를 보유했고, 제17항공군이 전투기 198대, 지상공격기 360대, 폭격기 76대, 야간폭격기 75대, 정찰기 41대를 보유했습니다. 총 1,823대로 독일공군 보다 다소 우세한 전력을 보유했습니다. 특히 전투기 전력은 770대로 독일공군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독일공군의 지상공격기 중 85대의 Fw190이 공중전이 가능한 기종이긴 하지만 이걸 합해도 소련공군 전투기 전력의 압도적 우위입니다.


2. 양측의 항공기 손실

그러나 소련공군은 양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쿠르스크 돌출부 남부 상공에서 열세를 보였습니다. 독일공군은 1943년 7월 4일 부터 18일까지 111대의 항공기를 잃은 반면 소련 공군은 같은 기간 동안 658대의 손실을 입었습니다. 소티 대비 항공기 손실율로 따지면 독일 공군은 소티대비 0.72%의 손실율을 보인 반면 소련 공군은 소티 대비 5.3%의 손실을 보이고 있습니다.

로렌스는 소련공군의 높은 손실에 대해 이렇게 평가합니다. 칭찬인지 조롱인지 모르겠군요.

"소련 공군의 높은 손실을 보면 이들의 용맹함을 의심하지 못할 것이다."(p.281)

소련 공군은 자신들이 교환비 면에서 유리했다고 평가를 내렸습니다. 즉 658대의 항공기를 손실하는 동안 독일 공군기 928대를 격추했다고 판단한 겁니다. 소련 공군은 1943년 7월 5일 부터 7월 18일까지 341대의 Me109를 격추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투입된 Me109는 198대였고 총손실은 37대였으니 소련 공군의 격추 산정이 극도로 신뢰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Christopher A. Lawrence, The Battle of Prokhorovka (Stackpole Books, 2019), 285.


반면 독일 공군은 비교적 정확하게 전과를 산정했습니다. 독일 공군은 소련 공군기 658대를 격추했다고 평가했는데 소련공군의 실제 손실이 658대였으니 굉장히 정확한 추산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독일 공군의 평가가 가장 부정확 했던 것은 1943년 7월 5일 입니다. 이날 독일 공군은 소련 공군기 260대를 격추했다고 평가했는데 실제 소련군의 손실은 187대였습니다. 이날은 대규모 공중전이 전개되었기 때문에 혼란한 상황 속에서 집계가 부정확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7월 6일 부터는 매우 정확하게 추산을 하고 있으며 때로는 실제 격추한 소련 공군기 보다 더 적은 숫자를 격추했다고 엄격하게 산정하는 양상이 보입니다.

Christopher A. Lawrence, The Battle of Prokhorovka (Stackpole Books, 2019), 285.


이런 부정확함은 정예 조종사들의 격추기록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납니다. 예를들어 1943년 7월 5일 제8근위전투기사단과 제205전투기사단의 에이스 조종사 7명은 총 25대의 독일 공군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이날 독일공군 총손실 19기 보다 훨씬 많습니다. 로렌스는 소련 에이스들의 격추기록 중 55%는 사실이 아니거나 기종 오류의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합니다. 반면 독일 공군 에이스들의 격추 기록은 신뢰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에리히 하르트만은 쿠르스크 전투 당시 25대를 격추했다고 주장하는데 이 중 22대가 확인됩니다.


3. 총 소티 및 폭탄 투하량

총소티 및 폭탄 투하량으로 비교해도 소련 공군의 열세가 두드러집니다. 독일 공군은 1943년 7월 4일 부터 18일까지 총 15,338 소티를 기록한 반면 숫적으로 우세한 소련공군은 12,426소티로 열세를 보였습니다. 특히 근접항공지원 소티의 격차가 큰데, 독일공군의 지상공격기 부대와 폭격기 부대는 같은 기간 총 11,641소티를 출격한 반면 소련공군의 지상공격기부대와 폭격기 부대는 4,295소티를 출격하는데 그쳤습니다. 독일공군의 지상공격기 및 폭격기는 716대, 소련군의 지상공격기 및 폭격기는 859대로 격차가 크지 않았지만, 그래도 숫적 우위에 있는 소련공군의 소티가 독일군의 40% 수준인 것은 놀랍습니다. 작전 초반 독일공군 전투기부대가 제공권을 장악했기 때문에 소련 지상공격기 및 폭격기부대가 제대로 작전을 전개할 수 없었을 것 입니다. 전투 손실도 컸으니 더더욱 그러했겠지요.
이것은 지상작전 지원에 소모한 폭탄의 양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독일측의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약 10,000톤에서 12,000톤의 폭탄을 투하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소련 제2항공군과 제17항공군은 1,748톤의 폭탄을 투하했습니다. 소련공군이 공중전은 물론 지상지원 임무에 있어서도 효율성이 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2013년 6월 16일 일요일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 박물관 - 4 : Steven F. Udvar-Hazy Center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 박물관 - 1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 박물관 - 2
Me 262에 대한 미군 시험조종사들의 평가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 박물관 - 3 : Steven F. Udvar-Hazy Center


스미소니언 항공우주 박물관 분관 두 번째 사진 입니다. 이번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 사용된 기체의 사진을 올리려 합니다.



1. B-29 Enola Gay

아마 여기서 가장 유명한 전시물이라면 바로 Enola Gay라는 별명을 가진 이 B-29가 아닐까 합니다. 역사상 최초로 핵무기를 사용한 그 기체지요. 제 개인적인 취향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B-29라는 비행기는 악명높은 학살자 답지 않게 아름다운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반짝이는 거대한 동체를 보면 먼저 감탄사가 나옵니다.(이러면 안되는데 말이죠.)











2. Ar 234

저는 이 박물관의 또 하나의 명물로 세계 최초의 제트폭격기 Ar 234를 꼽겠습니다. 칙칙한 독일 공군 위장색으로 덮여 있긴 합니다만 아주 멋지게 잘 빠진 항공기죠. 그런데 옆에 전시된 Do 335가 한 덩치 하다 보니 왜소해 보입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작은 기체라서 조금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3. F4U Corsair

재미있게도 2차대전 후반기 미해군의 주력전투기인 F4U Corsair와 F6F Hellcat은 천장에 매달아 전시를 해 놓았습니다.







4. F6F Hellcat






5. Do 335

독일 공군의 중(重) 전투기 Do 335입니다. 전투기 치고는 꽤 커서 놀랐습니다. 바로 옆에 전시된 Ar 234가 종이비행기 처럼 보일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대형 기체인데도 불구하고 그 형상때문인지 둔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6. Fa 330A

Ar 234와 Do 335 사이에는 Fa 330A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기종은 2차대전 중 U보트에서 정찰용으로 사용한 오토자이로입니다. 커다란 두 대의 비행기 사이에 전시되어 있으니 마치 잠자리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단촐한 물건이라 사진을 한장만 찍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약간 아쉽군요.




7. Fw 190F

이 박물관에는 지상공격기형인 Fw 190F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8. He 219

독일 공군의 야간전투기였던 He 219는 동체와 미익만 남아있습니다. 예산이 마련되면 복원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동체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모습이 사냥해서 깃털을 뽑아놓은 오리 같습니다...




9. Me 163

독일공군이 실전에 투입한 괴작 로켓 전투기입니다. 개성만점이긴 하지만 정말 못생겼네요.






10. Ju 52

독일공군의 주력 수송기였던 Ju 52입니다. 이 박물관에는 루프트한자에서 여객기로 사용한 형식으로 복원해 놓았습니다.





2008년 8월 5일 화요일

미육군항공대의 공세에 대한 독일공군의 대응 : 1945년 2월 부터 5월 까지

보덴플라테Bodenplatte 작전으로 독일공군의 전투기 부대는 사실상 붕괴되고 맙니다. 그러나 사정이 어찌되었건 근성(???)의 독일공군은 끝까지 싸움을 계속합니다. 이 글에서는 보덴플라테 작전 이후 대충 정비를 마친 독일공군 주간전투기 부대가 항복까지 서부전선에서 미육군항공대의 주간 전략폭격에 맞선 마지막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1945년 2월 1일, 독일본토방공을 담당한 제국항공군Luftflotte Reich의 주간전투기 부대는 제1전투기사단1. Jagddivision 예하에 다음과 같이 편성되어 있었습니다.


부대명
기 종
Stab./JG 7
Me 262
I./JG 7
Me 262
III./JG 7
Me 262
JGr 10
Fw 190
II./ZG 76
Me 410
Stab./JG 300
Fw 190
I./JG 300
Bf 109
II.(Sturm)/JG 300
Fw 190
III./JG 300
Bf 109
IV./JG 300
Bf 109
IV./JG 54
Fw 190
Stab./JG 301
Fw 190
I./JG 301
Fw 190
II./JG 301
Fw 190
III./JG 301
Ta 152
II./JG 3
Bf 109
Stab./JG 400
Me 163
I./JG 400
Me 163
II./JG 400
Me 163


편제를 보면 아시겠지만 상당수의 주간전투기 부대들이 보덴플라테 작전 수행을 위해서 제2전투기군단II . Jagdkorps으 로 이동한 뒤 심각한 장비와 인력의 손실을 입어 2월 초의 시점에서는 재편성 중이었기 때문에 제1전투기사단에는 저 정도의 전력밖에 없었습니다. 독일의 야심찬 아르덴느 공세는 주저앉았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보덴플라테 작전도 심각한 손실을 내고 종결되었는데 승리의(!) 미국은 빌빌거리는 독일공군이 숨돌릴 새도 없이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소련군의 동계 대공세로 그나마 가용 가능한 전투기 부대들이 동부전선(이라고 해 봐야 독일 동부)로 몰려가는 통에 미군 전략폭격기 부대를 저지할 전력은 태부족이었습니다. 게다가 방공의 중핵인 대공포 부대도 동부전선의 붕괴를 막기 위해 지상전에 돌려지는 상황이었습니다. 1945년 1월 말 독일공군은 지상부대 지원을 위해 110개 중대공포 포대와 58개 중형/경대공포 포대를 동부전선으로 이동시켰습니다.

그나마 긍정적인 진전이 있었다면 JG 7과 KG(J) 54 두 비행단이 Me 262를 편제에 가깝게 보충 받았다는 정도였지만 전체적으로 우울한 상황을 놓고 보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에 불과한 개선이었습니다. 2월 9일 미 제8공군은 1,296대의 중폭격기를 출격시켜 합성석유공장과 주요 철도시설을 타격했는데 독일공군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 67대의 프로펠러전투기와 숫자 미상의 Me 262를 발진시켰습니다. 70대도 안되는 프로펠러전투기들은 미군 호위전투기의 벽을 뚫지 못했고 Me 262의 전과도 매우 신통 찮았습니다. 독일측은 제트기들이 8대의 B-17과 1대의 P-51을 격추했다고 주장했는데 그 반대로 미군의 호위 전투기에 의해서 6대의 262를 잃었습니다. 이 손실은 모두 폭격기 부대를 개편한 KG(J) 54에서 나왔는데 이 비행단의 조종사들은 전투기 전술에는 전혀 익숙하지 못해 이런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 있었던 드레스덴 주간 공습에서도 독일공군은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 했습니다. 2월 14일 제 8공군은 1, 2, 3 항공사단 소속의 중폭격기 1,377대를 출격시켜 드레스덴과 켐니츠Chemnitz를 공격했습니다. 독일공군은 이에 대항해 JG 300과 301소속의 프로펠러전투기 146대와 수 미상의 Me 262를 출격시켰지만 B-17 한대를 격추하는데 그쳤고 손실은 20대의 프로펠러전투기와 1대의 Me 262였습니다. 2월 9일의 경우도 그랬지만 보덴플라테 작전의 여파에서 회복되지 못한 독일공군의 주간전투기 부대는 두터운 호위전투기의 벽을 뚫을 수 없었습니다.

2월 22일, 미 육군항공대는 클라리온CLARION 작전을 발동, 23일까지 독일 본토의 철도시설에 대한 집중공격을 감행합니다. 이 공격은 미 육군항공대가 1944년 10월 이래로 야심차게 준비한 작전으로 일거에 독일의 교통체계를 붕괴시켜 독일의 전쟁수행능력에 타격을 입히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이날 독일공군은 이륙해봐야 일방적으로 학살당할것이 뻔한 프로펠러 전투기들은 아예 출격시키지 않고 JG 7의 Me 262 32대를 출격시켰습니다. 32대의 제트기는 2대의 B-17과 4대의 P-51을 격추시켰지만 피해도 커서 32대 중 6대가 격추됐습니다. 독일공군의 무력함에도 불구하고 독일철도청Reichsbahn은 폭격당한 철도망을 기적적으로 복구시키는데 성공합니다. 물론 전쟁의 결과에는 하등 영향을 끼치지 못 했지만 말입니다. 25일의 공격에는 독일공군이 가용한 전투기부대를 모두 동원했지만 역시 성과는 신통치 못했습니다. 미 육군항공대는 2월 19일부터 3월 4일까지 매일 1,000대 이상의 중폭격기를 출격시켰고 독일공군의 저항은 매우 미약했습니다. 3월 2일에는 합성석유 공장에 대한 폭격을 저지하기 위해서 I./KG(J)의 Me 262 14대와 JG 301, JG 302의 Fw 190, Bf 109, Ta 152 198대가 출격했는데 전과는 폭격기 3대와 전투기 5대 격추에 불과했고 오히려 Me 262 2대와 프로펠러 전투기 43대를 잃는 끔찍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결국 2월~3월의 절망적인 전투 이후 미군의 호위전투기들을 상대할 수 없는 프로펠러 전투기 부대의 출격은 극도로 제한되었고 유일하게 이를 돌파할 수 있는 ME 262를 장비한 부대와 대공포대만이 꾸준히 미군을 상대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독일공군의 전력 증강은 공군중장이 지휘하는 특이한 제트기 부대 하나가 새로 창설된 것 과 R4M 공대공 로켓탄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 정도였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독일 공군의 제트기 운용 전술은 3월에 접어들면서 상당히 개선되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3월 18일, 미 제8공군은 약 1,300대의 중폭격기를 출격시켜 베를린에 대한 대규모 폭격을 감행했습니다. 이날 전투에서 바이센베르거Weisenberger 소령이 지휘한 JG 7의 ME 262들은 R4M 공대공로켓을 대량으로 사용해 미군측에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날 출격한 제트기들은 1대만 격추되었고 그 대신 6대의 B-17을 격추시켰으며 이 외에도 수십대의 폭격기에 치명적인 파손을 입혔습니다. 이날 전투는 미군측의 주목을 끌었고 3월 21일 둘리틀은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독일 공군의 제트기 부대가 위협적인 신전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 군은 다음날부터 21일 까지 제트기 비행장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는데 이 전투로 2~3월간 꾸준히 싸워온 JG 300과 301은 더 이상 대규모 작전이 불가능할 정도의 타격을 입었습니다. 특히 JG 301은 이 전투의 결과 2개 비행대대를 해체하게 됩니다. 또 3월 22일과 23일에 걸친 비행장 공습작전으로 재편성 중이던 III./JG 54도 사실상 괴멸되어 더 이상 전투에 나서지 못하게 됩니다. 24일에는 JG 300의 돌격비행대대인 II.(Sturm)/JG 300과 III./KG(J) 54가 미군의 비행장 공습으로 괴멸됩니다. 특히 후자는 단 한차례의 공습으로 50대의 ME 262를 잃었습니다. 이날 하루 동안 서부전선의 독일 전투기 부대는 막대한 수의 항공기 뿐만 아니라 31명의 조종사가 전사 또는 실종되는 타격을 받았습니다. 물론 미군도 비행장 공격에서 전투기부대를 중심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붕괴직전의 독일공군과 비교한다면 미약한 손실이었습니다. 3월 25일부터 29일까지 독일의 기상상태가 악화되어 미 육군항공대의 주간출격은 제한되었지만 이미 붕괴된 독일공군에게는 숨돌릴 시간도 되지 못 했습니다. 미군은 30일과 31일 다시 주간폭격을 재개했고 31일에는 영국공군 폭격기사령부의 중폭격기 469대가 가세했습니다. 이날은 JG 7이 최대의 전과를 올린 날이었는데 Me 262들은 호위전투기 없이 비행하던 캐나다 공군의 폭격기들을 요격해 한대의 손실도 없이 11대를 격추시켰습니다.

4월로 접어들면서 독일공군의 상황은 전형적인 붕괴직전의 혼란 상태였습니다. 4월 9일 제국항공군 소속 전투기 부대는 다음과 같이 편성되어 있었습니다.


부대
기종
보유/가동
부대
기종
보유/가동
I./JG 2
Fw 190
5 / 3
III./JG 26
Fw 190
35 / 15
II./JG 2
Fw 190
8 / 4
I./JG 27
Bf 109
29 / 13
III./JG 2
Fw 190
12 / 9
II./JG 27
Bf 109
48 / 27
Stab./JG 4
Fw 190
6 / 4
III./JG 27
Bf 109
19 / 15
II./JG 4
Fw 190
50 / 34
I./KG(J) 54
Me 262
37 / 21
III./JG 4
Bf 109
61 / 56
Stab./JG 301
Ta 152
3 / 2
Stab./JG 7
Me 262
5 / 4
I./JG 301
Fw 190
35 / 24
I./JG 7
Me 262
41 / 26
II./JG 301
Fw 190
32 / 15
II./JG 7
Me 262
30 / 23
II./JG 400
Me 163
38 / 22
Stab./JG 26
Fw 190
4 / 3
JGr.10
Fw 190
15 / 9
I./JG 26
Fw 190
44 / 16
JV 44
Me 262
30 / 15
II./JG 26
Fw 190
57 / 29
[표 출처 : Alfred Price, The Last Year of the Luftwaffe : May 1944 to May 1945, (Greenhill Books, 2001), pp.152~153]

4월의 전투에서 독일 공군의 전투기 부대는 거의 조직적인 저항을 보이지 못 했습니다. 오직 제트기를 장비한 부대만이 최후까지 조직적인 저항을 했을 뿐 이것 조차도 미육군항공대의 호위 전투기 부대에 압도되는 형편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4월 10일 미 제8공군이 1,315대의 중폭격기를 출격시켰을 때 독일측은 63대의 ME 262를 출격시켜 10대의 폭격기를 격추시켰지만 905대에 달하는 호위 전투기들은 착륙을 시도하는 제트기들을 공격해 27대를 격추시켰습니다. 4월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독일 공군은 남은 전력을 남부독일과 체코로 이동시켜 저항을 계속했지만 이미 이 시점에서는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이 무렵 JG 1이 He 162로 장비를 교체하는 등 필사적인 노력이 있었지만 전황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었습니다.
4월 19일의 전투는 ME 262 부대가 미 제8공군의 중폭격기를 마지막으로 격추한 전투가 되었습니다. 이날 제490폭격비행단은 6대의 B-17을 잃었는데 이들은 독일 공군의 제트기에 의해 마지막으로 격추된 미군의 중폭격기였습니다. 4월 25일 미 제8공군은 589대의 B-17과 B-24를 출격시켰는데 독일공군 전투기 부대의 저항은 없었으며 6대의 폭격기가 대공포에 격추되었습니다. 이것은 제8공군의 마지막 전략폭격 임무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독일공군의 저항은 끝났습니다. 1945년 2월부터 5월까지 서부전선의 주간공중전은 미군이 독일 공군을 일방적으로 두들기는 양상으로 전개되었지만 미군의 손실도 결코 적다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 기간 중 미 제8공군을 중심으로 북서유럽에서 작전한 미 육군항공대의 항공기 손실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중폭격기 손실
손실원인
2월
3월
4월
5월
항공기
14
63
72
1
대공포
157
164
77
4
기 타
25
39
41
2
총 계
196
266
190
7


2. 중형폭격기/경폭격기 손실
손실원인
2월
3월
4월
5월
항공기
4
5
11
0
대공포
68
52
18
0
기 타
13
32
17
0
총 계
85
89
46
0


3. 전투기 손실
손실원인
2월
3월
4월
5월
항공기
38
76
36
5
대공포
208
244
207
16
기 타
53
99
100
15
총 계
299
419
343
36


4. 손실 총계
손실원인
2월
3월
4월
5월
항공기
56
144
119
6
대공포
433
460
302
20
기 타
91
170
158
17
총 계
580
774
579
43
[표 출처 : Richard G. Davis, Carl A. Spaatz and the Air War in Europe, (Center for Air Force History, 1993), Appendix 23]

여기에 지중해전역으로 구분되는 15공군등의 손실을 더하면 상당한 규모가 됩니다. 1945년 2월 시점에서 독일의 방공망은 붕괴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군측에 상당한 손실을 입혔던 것 입니다.



참고서적
Donald Caldwell and Richard Muller, The Luftwaffe over Germany : Defense of the Reich, (Greenhill Books, 2007)
Richard G. Davis, Carl A. Spaatz and the Air War in Europe, (Center for Air Force History, 1993)
Roger Freeman, The Mighty Eight : A History of the Units, Men and Machines of the US 8th Air Force, (Cassell, 2000)
Werner Girbig, Start im Morgengrauen : Eine Chronik vom Untergang der deutschen Jagdwaffe im Westen 1944/1945, (Motorbuch Verlag, 1975)
Alfred Price, The Last Year of the Luftwaffe : May 1944 to May 1945, (Greenhill Books, 2000)
Edward B. Westermann, FLAK : German Anti-Aircraft Defenses, 1914~1945, (University Press of Kansas,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