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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2일 목요일

1/48스케일 IS-2라니!!!

타미야의 1/48 신제품 하나가 발표되었군요.


「1/48 ソビエト重戦車 JS-2 1944年型 ChKZ」テストショット工作教室を開催! 


무려 IS-2입니다. 솔직히 점보셔먼 같은 걸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것도 꽤 괜찮은 선택 같습니다.

이왕이면 ISU-152나 ISU-122 같은 것도 내줬으면 싶습니다.

물론 제가 가장 바라는 것은 야라레메카 M4 시리즈이지만.

어쨌든 타미야가 잊지 않고 1/48을 챙겨주니 너무 좋네요. 하하하.

2011년 11월 4일 금요일

중소분쟁 당시 소련군의 T-62 회수/파괴작전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 20-1에 실린  D.S. Riabushkin와 V.D. Pavliuk의 글 “Soviet Artillery in the Battles for Damanskii Island”를 읽다 보니 127쪽에서 130쪽 까지 중소분쟁 당시 중국측이 소련군의 T-62를 노획한 경위가 짤막하게 실려있었습니다. 회수작전 자체가 상당히 재미있게 전개되었는지라 간단히 소개를 해 볼까 합니다.

1969년 3월 15일, 이만 국경수비대의 지휘관 레오노프(Д. В. Леонов) 대령은 다만스키 섬의 중국군 방어진지 후방으로 침투하기 위해서 제135 차량화소총병 사단 전차대대에서 1개 전차소대를 차출합니다. 이 대대는 T-62를 장비하고 있었습니다. 레오노프 대령은 4대의 T-62 중 545호차를 타고 선두에서 서서 전진했습니다. 그런데 중국군도 아무 생각없이 후방을 비워놓은 것은 아니었고 레오노프 대령은 선두에서 전진하다가 중국군이 얼어붙은 우수리강의 빙판에 구축한 지뢰밭에 걸려서 전차를 잃게 됩니다. 그리고 탈출과정에서 레오노프 대령과 545호차의 장전수가 전사합니다. 지휘관인 레오노프 대령이 전사하자 나머지 세대의 T-62는 퇴각했습니다.

문제는 T-62가 신형전차로 중국군의 손에 넘어가서는 안되는 존재였다는 점 입니다. 소련군은 즉시 지뢰밭에 격파되어 방치된 545호차를 회수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합니다. 중국군이 545호차를 견인해가려는 것은 뻔한 것 이었기 때문에 작전은 최대한 빨리 진행되어야 했습니다. 원래 작전은 3월 16일에 실시되어야 했으나 놀랍게도 이날 지방선거가 열려서 투표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작전이 연기되었습니다!

소련군의 회수작전은 선거 다음날인 3월 17일 개시되었습니다. 중국군은 소련군의 기동을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군의 작전 개시와 함께 포격을 시작했습니다. 소련군은 이에 대해 제13독립 로켓포대대의 BM-21 로켓포와 제378포병연대의 M-30 122mm포 24문과 D-1 152mm포 12문을 동원해 반격했습니다. 이중 제3대대 7, 8포대의 152mm 포는 중국군이 투입한 4대의 ISU-122를 제압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소련군의 포격은 효과적이어서 중국군의 ISU-122 한대가 완파되었고 다른 한대도 손상을 입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나머지 두대의 ISU-122는 근처의 숲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정작 견인작전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545호차에 견인 케이블을 연결하려는 과정에서 한명이 전사하고 한명이 부상당한 것 입니다.

견인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소련군은 그냥 T-62를 폭파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첫 번째 폭파시도는 폭약이 너무 적어서 실패했고 두 번째 폭파시도는 폭약은 충분했으나 전차의 내부에 폭약을 설치하지 않고 전차의 바닥에 놓고 터뜨려서 실패했다고 합니다. 폭약으로 격파하는 것이 두 번 다 실패하자 이번에는 소련이 보유한 괴물 박격포, 240mm구경의 M-240 2문이 급거 투입되었습니다. 그러나 240mm 박격포도 별 효과가 없어서 좀 더 정확한 152mm 포를 투입하기로 합니다. 여기에는 제378포병연대 8포대 소속의 152mm포 2문이 투입되었습니다. 소련군은 처음에는 고폭탄으로 사격했으나 얼음을 깨뜨려 T-62를 가라앉히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게 됩니다. 이를 위해 3월 말 378포병연대 2대대의 122mm포 12문이 동원되어 얼음을 깨뜨려 버립니다. 545호차가 강바닥이 주저앉자 소련측은 작전이 성공이라고 판단하고 4월에 포병부대들을 철수시켜 버립니다. 다만 중국군이 어떻게든 회수하려는 시도를 할 것에 대비해 T-62가 가라앉은 지점을 감시할 수 있는 위치에 기관총을 배치합니다.

그리고 중국군은 위력적인 소련군의 포병이 철수하자 T-62 회수작전을 재개합니다. 이번에는 가라앉은 전차를 회수하기 위해 해군 소속의 잠수부들을 차출해서 회수팀에 포함시켰습니다. 중국군은 4월 20일 경부터 먼저 잠수부들을 동원해 545호차의 포탑을 먼저 회수했습니다. 강 건너의 소련군은 기관총으로 중국군을 계속해서 공격했지만 중국군은 10일 내내 근성을 발휘해 매일 밤 기관총 사격을 무릅쓰고 잠수부들을 물속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5월 1일~2일 야간에 걸처 강바닥에 가라앉은 545호차의 차체에 케이블을 연결하는데 성공해 전차를 회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중국인들은 근성을 발휘해 꽤 근사한 전리품을 손에 넣었고 우리는 오늘날 이것을 베이징에 가서 구경할 수 있습니다. 저도 2008년에 545호차를 보고 중국인들의 근성에 경의를 표한바 있지요.

2011년 5월 7일 토요일

판처파우스트의 괴력;;;;

심란해서 책 몇권을 끄적이던 중 이사예프(Алексей Исаев)의 Берлин 45-го에서 재미있는 표를 몇 개 보게 되었습니다. 1945년 4~5월 소련군의 기갑장비 손실과 그 원인을 정리한 표 였는데 꽤 흥미로운 통계라 한번 올려봅니다. 완전손실이 따로 구분된 표만 올렸습니다.


1. 제3근위전차군(1945. 4. 15~5. 2, 완전손실/파손)
포격
항공기
판처파우스트
지뢰
기타
T-34
97/198
0/1
65/105
49
IS-2
2/6
2
ISU-122
6/19
1/3
0/1
8
SU-100
4/11
5
SU-85
4/11
1/6
0/1
9
SU-76
2/12
6/11
0/2
6
SU-57
3/6
3/4
[표: Алексей Исаев, Берлин 45-го(Эксмо, 2007), с.681]


2. 제4근위전차군(1945. 4. 23~5. 2, 완전손실/파손)
포격
항공기
판처파우스트
지뢰
기타
T-34
20/50
14/16
1
6
IS-2
1/8
3
ISU-122
1/3
1
SU-100
3/11
2
SU-85
0/1
SU-76
0/7
2/1
1
SU-57
2/11
3/1
[표: Алексей Исаев, Берлин 45-го(Эксмо, 2007), сс.681~682]


3. 제11전차군단(1945. 4. 16~5. 2, 완전손실/파손)
포격
항공기
판처파우스트
지뢰
기타
T-34
42/121
0/1
23/13
1/3
IS-2
4/14
1/0
SU-85/100
2/16
2/2
SU-76
2/6
[표: Алексей Исаев, Берлин 45-го(Эксмо, 2007), с.678]


제가 위에서 인용한 세 개의 표는 베를린 전투에서 소련군이 상실한 기갑장비 중 일부 만을 보여줍니다. 다른 소련군 기갑부대들의 손실/완전손실과 구체적인 손실원인에 대한 통계도 있으면 좋겠지만 일단은 이 세 개의 표 만으로도 재미있는 사실 몇 가지가 보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은 판쩌파우스트의 성과입니다. 피해 원인으로는 포격(전차포/대전차포) 다음으로 많은 것이 판처파우스트인데 완전손실이 차지하는 비율을 놓고 보면 판쩌파우스트가 정말 엄청난 물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포격에 비해서 완전손실의 비중이 높게 나타나는데 제11전차군단의 T-34의 경우 판처파우스트로 인한 완전손실이 파손의 두 배 가까이 될 정도입니다. 물론 이 표는 베를린 작전에 참가한 소련 기갑전력의 일부이기 때문에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판처파우스트가 꽤 치명적인 무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단 맞으면 확실히 골로갈 확률이 높으니 말입니다.

소련 전차병들이 판처파우스트를 두려워 할 만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