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3일 토요일

킹덤

역시나 국내의 평론가들은 “미국 만세다” 아니면 “아랍인들을 무능하게 묘사했다”는 등 부정적인 평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그런 비난이 일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좀 과하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이 영화의 도입 부분은 꽤 재미있게 잘 만들어 졌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건국에서 911테러까지의 역사적 사건 전개를 압축적으로 정리하고 지나가는데 마치 잘 만든 브리핑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특히 세계 1위의 산유국과 세계 1위의 석유 소비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관계를 그래픽으로 묘사한 것은 아주 재미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이렇게 영화의 배경 설정을 설명하고 넘어가는 것은 괜찮은 방식 같습니다.

국내 평론가들이 지적했듯 후반부에 FBI의 수사요원들이 일당백의 총잡이로 돌변하는게 약간 깨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총격전 장면이 잘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정도는 충분히 애교로 봐 줄 수 있습니다. 도로에서 테러리스트들에게 기습을 받은 뒤 그대로 그들의 근거지까지 추격해 벌이는 마지막 결전은 매우 박진감 넘치고 신납니다. 그리고 상영시간이 두 시간도 안되니 만큼 피곤하더라도(???) 주인공들이 수사도 하고 총도 쏘는 쪽이 역할을 나눠 더 많은 등장인물을 출연시키는 것 보다 나은 것 같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평론가들이 동의했듯 영화 후반부의 총격전 장면은 압권입니다. 여주인공인 제니퍼 가너는 남자들이 돌격소총이나 카빈 종류를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MP5를 사용하는데 이건 여성임을 고려한게 아닌가 합니다. 제작자가 총기 매니아인 마이클 만이니 충분히 그럴 듯 싶더군요. 영화 막판에 주인공들이 엄청난 전투력을 발휘해 테러범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재미는 있더군요.

사우디인에 대한 묘사가 부정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 하기가 조금 그렇습니다. 이 영화에서 사우디인들은 미국인들이 없으면 기초적인 수사도 못하고 피의자에 대한 고문이나 하는 등 한심하게 그려지고 있긴 한데 만약 사우디인들이 미국인들 없이도 수사를 잘 하는 것으로 묘사되면 주인공들이 개입할 여지도 없어지니 영화 자체를 만들 수 없지 않겠습니까?

영화는 매우 비관적인 전망을 담으며 끝납니다. 결국 석유로 인한 미국과 사우디의 괴이한 관계는 계속해서 엉망으로 전개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암시하며 끝나는데 유치한 해피엔딩으로 때우지 않았다는 점에서 후하게 평가할 수 있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