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9일 월요일

미육군 제7군에 대한 1950년대의 전시 증원계획

넵. 땜빵 포스팅입니다.

1950년대 미육군의 전시동원계획 중 독일 방어를 담당한 제7군에 대한 증원계획을 표로 만들어 봤습니다.


1953년 12월계획
1954년 12월계획
D-Day
350RCT(오스트리아)
351RCT(오스트리아)
350RCT(오스트리아)
D+30
44보병사단(미국)
1기갑사단(미국)
82공정사단(미국)
2보병사단(미국)
1기갑사단(미국)
82공정사단(미국)
D+31
보병사단×3(미국)
보병사단×(극동)
공정사단×1(미국)
보병연대전투단×1(카리브해)
공정연대전투단×1(미국)
기갑기병연대×2(미국)
D+60
3기갑기병연대(미국)
D+91
보병사단×3(미국)
보병사단×1(태평양)
기갑사단×1(미국)
공정사단×1(미국)
기갑집단×1(미국)
기갑기병연대×1(미국)
D+120
D+150
D+180

1955년 12월계획
1956년 12월계획
D-Day
D+30
1보병사단(미국)
3보병사단(미국)
1기갑사단(미국)
1보병사단(미국)
4보병사단(미국)
1기갑사단(미국)
D+31
D+60
2기갑기병연대(미국)
25보병사단(태평양)
기갑기병연대×2(미국)
D+91
기갑집단×1(미국)
기갑기병연대×1(미국)
D+120
82공수사단(미국)
82공수사단(미국)
4기갑사단(미국)
D+150
4기갑사단(미국)
25보병사단(태평양)
3보병사단(미국)
D+180
보병사단×5(미국)
기갑사단×1(미국)
주방위군 보병사단×4(미국)
주방위군 기갑사단×1(미국)

1957년 12월계획
1959년 1월계획
D-Day
D+30
1보병사단(미국)
4보병사단(미국)
101공정사단(미국)
4보병사단(미국)
82공정사단(미국)
101공정사단(미국)
3기갑기병연대(미국)
D+31
D+60
2기갑기병연대(미국)
D+90
82공정사단(미국)
D+120
2기갑사단(미국)
1보병사단(미국)
D+150
3보병사단(미국)
2보병사단(미국)
2기갑사단(미국)
주방위군 보병사단×2(미국)
D+180
주방위군 보병사단×5(미국)
주방위군 기갑사단×1(미국)
주방위군 보병사단×3(미국)
주방위군 기갑사단×1(미국)

이 표는 Ingo Trauschweizer, The Cold War U.S. Army : Building Deterrence for Limited War(Lawrence, University Press of Kansas, 2008), pp.245~248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 입니다.

표 에서 재미있는 점은 미군의 증원 속도가 갈수록 늦어진 다는 것 입니다. 1953년 계획만 하더라도 D+30~31일에 대부분의 증원병력이 도착하도록 되어 있는데 1954년 부터는 D+30일에 3개 사단이 증원된 뒤 한참 뒤에 증원병력이 도착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물론 독일을 미 제7군 혼자서 방어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기에 다른 NATO군이 존재하고 있었고 독일의 재무장으로 독일군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늘어날 예정이긴 했으니 말입니다.

2010년 3월 25일 목요일

국방비를 후려치려는 독일 정부

독일의 군비 감축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 마다 만약 소련이 망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 위기가 왔다면 국방비 대신 뭘 줄였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깁니다. 독일 정부가 예산 문제로 무기 획득 사업에서 우선 순위를 조정하려는 모양입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유로파이터, 차기 중거리대공요격시스템(MEADS, Medium Extended Air Defense System), T-125 프리깃, 공격헬리콥터 등 주요 무기체계의 도입 비용을 평가한 뒤 구매 우선순위와 규모를 조정할 계획인 모양입니다. 국방부에서 필요로 하는 예산과 실제 가용한 예산이 대략 2십억에서 3십억유로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하니 별수 없는 것 같습니다. 기사를 보니 A400M의 도입규모도 축소되는 등 규모가 큰 프로젝트들이 된서리를 맞는 분위기군요.

뭐, 경제위기이니 만만한 곳에서 허리띠를 졸라야겠지요.

2010년 3월 24일 수요일

궁금한 점

그냥 개인적인 잡상입니다.

간혹 독일책이 영어로 번역되는 걸 보면 원판에 비해 면수가 확 줄어드는 경우를 종종 보게됩니다. 예전에 몇몇 출판사들이 괴악한 번역을 내놓은 걸 경험한 일도 있고 해서 이런 경우에는 축약번역은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듭니다. 예전에 Tiger der Division Das Reich의 영어판을 보니 독일어판에 비해 면수가 거의 200쪽 가까이 줄어든걸 보고 의아했던 적이 있습니다. 돈이 없어 영어판을 사 볼 형편이 안되니 도데체 영어판은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지 호기심만 쌓이더군요. 물론 판형이 더 커져서 면수가 줄어들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차피 수입이 갑자기 확 늘어나거나 로또를 붙을 것도 아니니 이럴 땐 그저 망각의 늪으로 사라지길 기다리는게 최선인 것 같습니다.

2010년 3월 23일 화요일

발상의 전환? : 모스크바 전투당시 소련군의 영국제 전차 운용

미국과 영국의 렌드-리스(Lend-Lease)가 소련의 승리에 어떤 공헌을 했는지는 매우 흥미로운 문제입니다. 렌드-리스로 원조된 물품 중에서 전차와 항공기 같은 전투장비는 상대적으로 기여도가 적다는 것이 일반적인데 전쟁 중 소련이 생산한 전차의 대수와 렌드-리스로 제공된 전차의 대수를 비교해 본다면 그런 결론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울 것 입니다. 소련이 생산한 기갑차량을 모두 합치면 11만대에 달하는데 영국이 원조한 전차는 4,542대에 불과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모든게 그렇게 당연하다면 세상은 정말 심심하겠지요.

캘거리 대학 교수인 알렉산더 힐(Alexander Hill)은 관점을 살짝 바꿔 볼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즉 전쟁 전 기간 동안 원조된 전차의 대수만 볼 것이 아니라 어떤 시점에 어느 정도의 전차가 원조되었는지 살펴보자는 것 입니다. 그리고 기준을 그렇게 바꿔본다면 의외의 결론도 나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힐은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 19호 2권(2006)에 British “Lend-Lease” Tanks and the Battle for Moscow, November-December 1941—A Research Note라는 제목의 짤막한 논문을 기고 했고 이어서 22호 4권(2009)에 이것을 수정 보완한 British Lend-Lease Tanks and the Battle of Moscow, November-December 1941 — Revisited라는 논문을 기고합니다. 힐이 이 두 논문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모스크바 전투 당시 영국이 원조한 영국제 전차는 소련군 기갑전력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으며 이를 통해 승리에 큰 기여를 했다는 것 입니다.

다들 잘 아시다 시피 소련은 바르바로사 작전 초기에 말 그대로 재앙과 같은 패배를 겪었습니다. 파죽지세로 진격하는 독일군을 피해 주요 공업지대에서는 생산설비의 소개를 시작했고 이것은 일시적으로 군수품 생산에 차질을 가져오게 됩니다. 영국은 새로운 동맹을 위해 아르항겔스크를 통해 각종 군사장비를 원조했고 여기에는 전차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750대의 전차를 보내기로 약속했고 이 중 466대가 12월까지 소련에 인도되었다고 합니다. 1941년에 원조된 영국제 전차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 것은 발렌타인으로 총 259대가 보내졌고 마틸다(A12)는 187대, 그리고 나머지는 테트라크(Tetrarch, A17) 경전차 였습니다. 이중 소련군 부대에서 인수한 것은 발렌타인이 216대, 마틸다가 145대 였습니다. 영국제 전차가 처음 소련군에 인도된 것은 10월 28일로 이날 20대 가량의 발렌타인이 카잔 전차학교에 도착해 승무원 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독일군이 모스크바를 목표로 한 대규모 공세를 시작하면서 영국제 전차를 인도받은 부대들은 황급히 전선으로 투입됩니다.

독일군이 모스크바의 목전으로 쇄도하고 있던 11월 20일에 영국제 전차를 장비한 소련군 부대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부대
마틸다
발렌타인
146전차여단 137전차대대
21
146전차여단 139전차대대
21
131독립전차대대
21
132독립전차대대
2
19
136독립전차대대
3
9
138독립전차대대
15
6

이 중 132독립전차대대를 제외한 모든 부대가 모스크바 방어전에 투입되었습니다. 총 96대가 투입된 셈인데 이것을 당시 소련군이 모스크바 축선에 투입하고 있던 기갑전력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힐은 러시아측의 자료를 인용해 11월 말에 모스크바 방면에 배치된 소련군의 기갑전력은 영국제 전차를 포함하여 670대, 그리고 이중 실질적인 전투력을 가진 중형 이상의 전차는 205대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모스크바 방면 소련군의 중형전차가 205대로 집계되었던 것이 정확하게 11월 20일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추산은 어렵지만 모스크바 방어전의 결정적이었던 시점에서 영국제 전차는 결정적이진 않더라도 꽤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 셈입니다.

물론 영국제 전차들은 신통치 않은 성능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발렌타인이나 마틸다는 최고 35~40cm의 눈이 덮인 야지에서 기동할 수 있었는데 이건 고작 T-60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T-34는 70cm 정도의 눈이 덮힌 야지에서도 거뜬히 움직였으니 비교하기가 좀 그렇죠. 게다가 2파운드 포는 전차포로서 범용성이 떨어지는 고약한 물건이었고;;;; 하지만 당시 소련측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못 됐습니다. 독일군이 모스크바의 문전에 다다른 시점에서 소련은 투입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전선으로 투입하고 있었고 실전에서는 거의 쓸모없는 T-30이나 T-40 같은 경전차도 12월까지 생산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영국제 전차들이 T-34나 KV 계열에는 못 미치지만 최소한 소련이 생산하고 있던 경전차들 보다는 좀 더 유용한 물건이었을 겁니다. 소련측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영국제 전차를 받은 부대는 15일 정도의 훈련을 마치고 곧바로 전선으로 직행했다고 합니다. 성능 고약한 영국 전차에 훈련 부족한 전차병들이 탔으니 뒷 이야기는 대략 상상이 가능할 것 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모스크바 전투 당시 소련의 전차 운용 방식은 영국제 전차들의 운용방식과도 어느정도 맞아 떨어졌다는 것 입니다. 소련군 기갑부대는 독소전 초기에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이때문에 대규모 전차군단은 대부분 전멸하거나 해체되게 됩니다. 그리고 모스크바 전투 당시에는 전차여단이나 독립전차대대 단위로 분산 운용되면서 보병부대의 지원을 주임무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틸다와 발렌타인은 바로 '보병전차'가 아니겠습니까;;;;

다시 힐의 결론을 이야기 하자면 영국이 제공한 전차들은 모스크바 전투에서 중요한 '머릿수'를 채우는데 일정한 기여를 했습니다. 비록 동부전선에서 운용하기에는 성능도 부족하고 기계적 신뢰도가 낮은데다 승무원들의 훈련 수준도 낮았지만 있어줘야 할 시점과 장소에 존재했다는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