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22일 목요일

Robert Forczyk, Tank Warfare on the Eastern Front 1941-1942: Schwerpunkt (Pen and Sword, 2014)


개인적으로 Robert Forczyk의 Tank Warfare on the Eastern Front 1941-1942: Schwerpunkt는 최근 10년간 간행된 동부전선의 기갑전을 다룬 저작 중에서 한손에 꼽을 정도로 잘 씌여진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2차세계대전사 중에서도 독일 기갑부대의 작전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분야지만 2000년대에 들어오기 전 까지는 과도하게 독일 편향적인 서술이 이루어져 온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이 의도한 것이건 아니건 간에 독일군의 시각에 편중되어 씌여진 연구들은 그 한계가 명확했습니다. 이 책의 서술은 미국 국립문서보관청에 소장된 독일군 노획문서를 1차 사료로 하고, 주로 2차사료가 중심인 러시아-소련 문헌으로 보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자는 독소전 초반의 기갑 작전에 대해 균형잡힌 서술을 하고자 하지만 1차 사료가 독일쪽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 주로 독일측을 비판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의외의 장점을 보여주는데 독소전 초반의 요란한 승리에 가려진 독일군 기갑부대의 한계점을 생생히 보여준다는 것 입니다.

Robert Forczyk이 이 책에서 다루는 시기는 독소전쟁 개전 부터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끝날때 까지입니다. 저자는 전략적인 측면, 작전적인 측면, 전술적인 측면을 균형있게 다루고자 합니다. 그래서 책의 서두에서 독일과 소련 양측의 기갑전 교리, 기갑부대의 편성, 교육 및 훈련 수준, 전차와 지원 장비를 비롯한 무기 체계를 비교평가하고 각각의 장단점에 대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서술한 것 처럼 1차사료가 독일쪽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 독일군의 한계에 대한 비판이 부각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저자는 주요 국면에서 독일군부의 전략적인 시야가 협소한 점을 통렬하게 비판하는데 이 점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본론인 기갑작전에 대한 서술에 대해 이야기 해 보죠. 개전 초기에는 소련군이 일방적으로 밀리면서 막대한 인력 및 장비 손실을 입었기 때문에 이 시기 독일군의 문제점에 대해 주목하는 연구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야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자는 이 시기 독일군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한계점에 대해 냉철한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개전 초기 북부전선에서 만슈타인이 보여준 기갑군단 지휘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무모한 진격으로 군단의 측익과 후방을 위험에 빠트리는 경향이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물론 독일군에 대한 비판에 머무르지 않고 소련의 선전으로 과장된 콜로바노프의 활약을 지적하는 등 균형 잡힌 서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르바로사 작전 시기의 작전에 대한 서술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독일군 기갑부대의 소모에 대한 부분입니다. 저자는 독일군이 기갑부대의 장기적인 작전을 뒷받침 할 수 있는 보급 및 인력 보충 체계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것이 소모전에서 어떻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과론적인 비판이라 하더라도 타이푼 작전을 전후한 시점에서 소모가 심한 기갑사단 일부를 독일 본토로 소환해 재정비를 했어야 한다는 지적은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소련군 기갑부대가 개전 초기의 패전의 경험을 통해 서서히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저자는 소련의 전시선전으로 개전 초기 몇몇 소련군 기갑부대의 활약상이 과장된 측면은 인정하면서도 소련군 지휘관들이 경험을 축적하면서 조금씩 독일군에 맞설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갔음을 강조합니다.

1942년 전역에 대한 서술도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먼저 1941~42년 겨울 전역이 마무리 된 뒤 독일과 소련측이 다가올 여름의 작전을 위해 기갑부대를 재정비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독일군과 소련군의 편제 개편, 장비의 개선, 인력 충원에 대해 서술하면서 이것이 42년 전역에 끼치는 영향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1942년 전역에 대한 서술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그동안 잘 다루어 지지 않았던 1942년 하계 전역 당시 북부집단군과 중부집단군 지구에서 전개된 기갑전에 대해서도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는 점 입니다. 그러나 역시 중요한 것은 독일군이 주공을 가한 남부전선의 이야기 겠지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관한 서술에서는 기갑부대를 시가전에서 소모시킨 파울루스의 미숙한 기갑부대 운용에 대한 비판, 독일 제6군이 소련군에게 포위된 뒤 전개된 독일군의 구출작전에 대한 비판 등이 주목할 만 합니다. 이중에서도 제6기갑사단장 라우스 같은 인물들이 전후 회고에서 구출작전의 경과에 대해 낙관적으로 서술한 점을 비판하는 부분이 훌륭하다고 생각됩니다.

비록 저자의 1차사료 활용이 독일측에 집중되고 있다는 한계점이 있으나 균형잡힌 서술을 하고자 하는 의도는 달성했다고 봅니다. 독일군의 작전-전술 단위의 탁월한 역량은 인정하면서도 전략적 시각의 결여, 특히 전쟁이 소모전의 단계에 접어들었음에도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결전을 위해 전력을 낭비한 점을 비판하는 것은 수긍할 만 합니다. 독일측 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덕분에 독일군 지휘관들의 회고록에 실린 내용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소련-러시아 쪽의 1차사료 인용이 부족한 점은 아쉽습니다.

2015년 10월 19일 월요일

헤르베르트 베르너, 『강철의 관』 (일조각, 2015)


 얼마전 일조각에서 헤르베르트 베르너가 쓴 『강철의 관』을 한권 보내주어 즐겁게 읽었습니다. 잘 알려진 회고록이긴 합니다만 아직 읽어보지 못하던 차에 훌륭한 한국어판을 읽게되어 즐거웠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헤르베르트 베르너는 독일 잠수함대의 일원으로 1941년 대서양 전투에 참가하여 1945년 종전 까지 살아남은 드문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이런 특이한 경험은 이 회고록의 가치를 높여줍니다. 이 책의 이야기 구조는 기본적으로 출격-귀환-출격으로 반복되는 단순한 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출격을 반복할 때 마다 절망적으로 변해가는 전황과 이것을 극복하면서 살아남는 과정은 굉장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량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쉬지 않고 읽어나갈 수 있었는데 특히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프랑스의 기지를 탈출하여 노르웨이로 향하는 여정에 대한 서술이 압권입니다. 그리고 아래로 부터 바라본 대서양 전투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대서양 전투를 작전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서적에서는 한척의 잠수함이 출격하고 침몰하는 것을 단지 무미건조한 숫자로 보여주지만 이 책에서는 잠수함에 탄 수십명의 목숨이 오가는 긴박한 상황을 보여줍니다. 전투 뿐만 아니라 작전을 마치고 귀환한 다음 프랑스와 독일에서 보내는 시간에 대한 서술도 흥미롭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의 눈을 통해 보여지는 전시 독일사회의 모습은 꽤 흥미롭습니다. 1944년 초 까지는 전황이 악화됨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던 안정이 1944년 여름 이후 잇따른 파국과 함께 무너지는 모습에 대한 묘사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열차를 타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만난 육군 장교들과의 대화나 포로로 잡힌 미국 조종사와의 대화 같이 인상적인 에피소드도 많습니다. 하지만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은 전쟁을 치르면서 가족을 비롯한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가는 이야기 입니다. 저자는 독일 잠수함 승무원들이 겪은 전쟁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그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해전의 최일선이라 할 수 있는 한 척의 전투함이 주된 배경이 되기 때문에 기술적인 문제에 대한 서술이 많습니다. 번역과 감수가 충실히 이루어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원서를 읽지 못했기 때문에 번역에 대해서 뭐라고 할 입장은 아닙니다만 몇몇 문장을 봤을때 번역자가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위해 노력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번역자와 감수자 분께 감사를 드리고 싶네요. 부담 없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15년 10월 1일 목요일

몇가지 공지사항


1. 작년 하반기 이후 블로그를 운영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비공개로 돌려뒀는데 가끔 찾아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해서 다시 공개로 돌렸습니다. 다만 요즘 일정 때문에 새로 글을 올리는 것은 당분간 어려울 듯 싶습니다. 올해 10월은 넘어가야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싶은데 지금 상황을 봐서는 이것도 불확실하네요.

2. 얼마 전에 군사서적을 번역하는 분을 몇 분 모시고 군사용어 번역 문제에 대해 토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날 결론은 기본적으로 한국군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용례를 따르되 해당되는 사항이 없을 경우는 번역가들간에 토의를 거쳐서 공통안을 만드는 쪽으로 났습니다. 앞으로 이 블로그에서 사용하는 군사용어는 대한민국 국군 합참에서 발행한 용어집에 기반할 것 입니다.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긴 한데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표준안의 필요성이 더 크다고 생각됩니다.

3. 댓글은 구글로 로그인 하는 분들만 달 수 있도록 했습니다.

4. 앞으로는 어지간히 정신이 없더라도 블로그를 비공개로 돌리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2015년 2월 18일 수요일

미 제4기갑사단이 아라쿠르 전투에서 거둔 전과에 대한 잡설



며칠전 페이스 북에서 제2차 세계대전 기 미육군 전차부대의 전투 보고서와 여기에 기반한 전후 작전연구의 신뢰성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원 자료가 되는 전투 보고서와 전차 승무원들의 인터뷰가 제대로 교차검증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에 기반한 작전 연구도 좀 회의적인 시각으로 봐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했지요. 전투 보고서 등을 보면 약간 의구심이 드는 내용도 많은데 이것들을 일일이 교차검증 하는 것이 매우 어려우니 이것을 사용하더라도 신뢰성에 대해서는 한발짝 물러서서 회의적인 관점을 가지는게 어떻겠냐는 것 입니다. 페이스북에서는 통계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으니 블로그에서 간략하게 나마 다뤄보는게 좋을 듯 합니다.


이때 이야기를 꺼낸 미 제4기갑사단의 로렌 전역 전투 결과에 대해 이야기를 조금 해 보지요. 여기 나온 통계들은 모두 1954년 6월에 나온 “Ballistic Research Laboratories Memorandum Report 798”에 기반한 것 입니다. 이 연구는 총 98건의 교전 사례를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1~54까지는 제3기갑사단의 교전 사례이고 55~98은 미 제4기갑사단의 교전 사례입니다. 이 중에서 55~67번 교전 사례는 아라쿠르(Arracourt) 전투에서 있었던 교전으로 여기에 판터와의 교전 데이터가 가장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M4셔먼 및 TD가 판터와 교전한 사례들을 꼽아 보았습니다.


표1. 로렌 전역에서 미 제4기갑사단 소속 셔먼과 판터의 교전 결과(거리 단위 야드)
교전 사례
격파 거리
판터 격파
셔먼 손실
57a
75
2
0
57b
600
1
0
57c
900
5
0
57d
1300
3
0
57e
500
3
0
57f
2000
1
0
64a
900
2
0
64b
600
1
0
66
800
0
2
67a
600
2
0
67b
900
2
0
67c
1500
0
1
67d
1500
0
1
67e
1500
2
0
67f
1300
2
0
[표 출처: “Ballistic Research Laboratories Memorandum Report 798”(1954. 6), Appendix; Data on World War II tank Engagements: Involving the U.S. Third and Fourth Armored Divisions, (Merriam press, 2012), pp.33~37.]


이 도표를 거리 별로 정리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옵니다.


표2. 로렌 전역에서 미 제4기갑사단 소속 셔먼과 판터의 교전 결과(격파 거리에 따른 구분)
격파 거리
판터 격파
셔먼 손실
1~500
5
0
500~1000
13
2
1000~1500
2
2
1500야드 이상
1
0
[표 출처: “Ballistic Research Laboratories Memorandum Report 798”(1954. 6), Appendix; Data on World War II tank Engagements: Involving the U.S. Third and Fourth Armored Divisions, (Merriam press, 2012), pp.33~37.]


이 데이터를 보면 전반적으로 셔먼이 압승을 거두고 있는데 그나마 판터는 교전 거리가 멀어야 약간의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다음은 로렌 전역에서 미 제4기갑사단에 배속된 TD(대부분 M18 헬캣)가 판터를 상대로 거둔 전과를 정리한 것 입니다. 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TD의 교전 결과는 더욱 놀랍습니다.


표3. 로렌 전역에서 미 제4기갑사단 소속 TD와 판터의 교전 결과(거리 단위 야드)
교전 사례
격파 거리
판터 격파
TD 손실
55a
100
2
1
55b
1900
3
0
55c
600
0
2
55d
600
2
0
56a
1000
4
0
56b
800
1
0
56c
1100
1
0
56d
1200
2
0
58a
400
2
0
58b
300
1
0
58c
1600
1
0
58d
1800
1
0
58e
3000
1
0
[표 출처: “Ballistic Research Laboratories Memorandum Report 798”(1954. 6), Appendix; Data on World War II tank Engagements: Involving the U.S. Third and Fourth Armored Divisions, (Merriam press, 2012), pp.43~44.]


이 표를 다시 거리 별로 분류한 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표4. 로렌 전역에서 미 제4기갑사단 소속 TD와 판터의 교전 결과(격파 거리에 따른 구분)
격파 거리
판터 격파
TD 손실
1~500
5
1
500~1000
7
2
1000~1500
3
0
1500야드 이상
6
0
[표 출처: “Ballistic Research Laboratories Memorandum Report 798”(1954. 6), Appendix; Data on World War II tank Engagements: Involving the U.S. Third and Fourth Armored Divisions, (Merriam press, 2012), pp.43~44.]


전반적으로 꽤 놀라운 내용이 많은데 TD가 3,000야드에서 판터를 격파했다거나 75mm포 탑재형으로 추정되는 셔먼이 2,000야드에서 판터를 격파했다는 보고는 일단 의구심이 듭니다. TD의 경우는 시계가 훨씬 좋고 셔먼의 경우 전차병 숙련도가 높아 1,500야드에서도 명중탄을 날리는 기록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만 미군의 광학장비는 독일군의 광학장비 보다 성능이 나쁘고 주포의 위력도 부족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회의적인 생각이 들게 됩니다. 게다가 경험이 풍부한 미군 전차병 조차도 장비 식별에 상당한 애를 먹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사실 셔먼이나 TD가 1,500야드 이상에서 판터를 격파했다는 주장은 다소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이 연구에 사용된 자료는 승무원들의 인터뷰와 작전 보고에만 한정되어 있어 독일측 기록과의 교차 검증은 전혀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1,000야드 이내에서 달성한 격파 기록은 신뢰성이 높다고 보고 1,000야드 이상, 특히 1,500야드 이상의 거리에서 달성한 격파 기록은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로렌 전역에 투입된 미군의 셔먼은 대부분 75mm 탑재 셔먼이어서 관통력을 고려하면 1,000야드 이상에서는 판터를 상대로 유효한 타격을 주기가 어렵고 전차용 광학장비는 미국측이 인정하듯 독일군의 광학장비 보다 성능이 나빠서 원거리에서의 표적 확인에 문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독일군의 기록과 교차 검증이 전혀 안된 미국측의 일방적인 기록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2015년 1월 13일 화요일

좋은 사냥감



(독일 장성들의) 사상률이 높았던 원인은 부분적으로 전장에서 용기를 보여줄 것을 강조하는 경향도 한몫했지만 한편으로는 독일 국방군이 지휘관의 신변 경호 문제를 제대로 신경쓰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많은 장군들은 방어용 장갑이 없는 일반 차량에 지휘관임을 나타내는 깃발을 달고 이동하곤 했다. 이것은 사실상 적의 항공기들에게 공격해 달라고 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Alaric Searle, Wehrmacht Generals, West German Society, and the Debate on Rearmament, 1949~1959, (Praeger, 2003), p.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