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February 29, 2008

취향테스트

라피에사쥬님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아주 재미있어 보여서 한 번 해 봤습니다. 제 결과는 대충 아래와 같습니다. 그런데 이거 제법 그럴싸 하군요. 꽤 많은 부분에서 맞는다는 느낌입니다.

간결하고 냉정한 인공지능 로봇 취향


메마르고 독창적인. 당신은 전통적인 엔지니어의 취향입니다.


당신은 인과관계가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취향입니다. "그래서? 그게 왜 그렇게 됐는데?"라는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죠. 마치 if-then 구문이 골수 깊이 박힌 엔지니어와 같다고나 할까요. 질서정연하지 않은, 장황한 감정에 의존하는 순정 만화 영화 소설은 당신이 좀처럼 가까이 하기가 힘들 겁니다.



"공각 기동대"의 주인공 쿠사나기 소령.
임무 달성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 군인.
쿠사나기 소령의 철두철미함과 냉혹한 결단력은 당신 취향의 이상형입니다.

당신은 너무 흔하고 뻔한 것에 쉽게 싫증내는 비주류 지향입니다. 매일 똑같은 광경이 펼쳐지는 멜로 드라마, 매일 똑같이 성형한 연예인들이 나오는 TV 광고, 매일 똑같은 멜로디와 창법의 발라드 노래, 당신에겐 모두 짜증나는 것들입니다. 도대체 이런 똑같은 것들을 지겨워 하지도 않고 즐겨 보는 사람들은 제정신일까 궁금합니다.

현실 세계에선 '까다로운' 비주류일지 모르지만, 인터넷 시대에 당신 같은 부류는 주류가 될 수 있습니다. 지루하고 개념없는 대중에 반항적인, 현실에 불만 가득한 사람끼리 모여 영향력을 발휘하고, 무개념 인간들을 조롱할 수 있을테니까요.


좋아하는 것
간결하고 논리적이고 특이한 것이 좋습니다. 딱 부러지게 예를 들자면 SF 소설이죠. 물론 SF 소설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SF 소설의 상당수는 장황하게 길기만 하니까요. 취향이 상당히 특이하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지만, 의외로 대중적인 영화 소설 음악에 끌리기도 합니다.

사실 이렇게 보면, 특별히 당신의 취향에 시금석 같은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은 뭔가 새롭고 독창적일 것, 그러나 당신이 아는 상식과 논리에 벗어나지 않을 것. 이 정도 조건이면 당신이 좋아하는 것에 근접할 수 있을 겁니다. 가령, 다음과 같은 광고 정도면 괜찮을까요?




저주하는 것
비논리, 비이성, 군중심리, 이유도 묻지 않는 따라쟁이들, 오빠부대. 당신이 저주하는 것들입니다. 물론 당신 취향만 특별히 저주하는 것은 아닐테지만 말이죠.


사실 당신은 특별히 어떤 취향을 혐오하거나 멸시하지 않는 편입니다. 저주도 관심이 있어야 하는데, 당신은 남들이 뭘 좋아하는지에 크게 관심이 없거든요. 남들이 뭘 하던 당신은 기본적으로 무관심한 편입니다. 문제는 남들이 관심없는 취향을 당신에게 들이밀 때죠. 상호존중의 원칙만 지켜진다면 당신은 그저 평안히 세상을 즐길 수 있습니다.

Tuesday, February 26, 2008

시인 패튼

They will disband their armies,
When this great strife is won,
And trust again to pacifists,
To guard for them their home.

They will return to futileness,
As quickly as before,
Though Trust and History vainly shout,
There is No End to War


패튼(George S. Patton, Jr.)이 1917년 경에 지었다는 시

무인이 갖춰야 할 품성에는 시니컬한 태도도 있는 듯 싶습니다.

나쁜 일과 더 나쁜 일, 그리고 그나마 다행인 일

먼저,

나쁜 일은

새 대통령이 너무 못생겼다는 것이고

다음으로

더 나쁜 일은

그 얼굴을 5년이나 봐야 한다는 것 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앞으로 이보다 더 못생긴 대통령은 없을테니

다들 긍정적으로 지내보는건 어떻겠습니까?

Sunday, February 24, 2008

인지부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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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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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February 23, 2008

대운하 음모론

어쩌다가 후배에게서 대운하에 대한 음모론을 하나 듣게 됐습니다.

후배 : 이명박도 진짜 운하를 팔 생각은 없는게 아닐까요?

어린양 : 응?

후배 : 기본적인 아이큐만 있다면 대운하가 얼마나 병신같은 짓인지는 이명박이 더 잘 알거 아니에요.

어린양 : 그렇지

후배 : 그러니까 토지 보상만 해 준 다음에 여론이나 기타 문제를 핑계로 운하 공사는 중지하는 거죠. 토지 보상으로 자기네 패거리 배만 불리면 되지 않겠어요?

어린양 : 오오. 그럴싸 한데.

생각해 보니 나름대로 재미있더군요.

바르샤바 조약군의 기갑전력에 대한 80년대의 서방측 시각 - 찰머스와 잘로가의 International Security 논쟁

얼마 전 친구와 채팅을 하다가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친구 : 거 참. 소련이 망하고 어지간한 자료들은 널리 공개됐는데 어째 한국에는 러시아 무기에 환상을 가진 사람이 늘어났을꼬?

어린양 : 그건 무슨 소리냐?

친구 : 뭐, 걸프전에서 이라크군의 T-72가 M1A1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이유가 이라크에 수출된건 소련제 ‘내수정품’ 보다 성능이 더 떨어지는 물건이기 때문이라는 애들이 있더라고. 뭐 소련제 ‘내수정품’은 무안단물이라도 바르는 모양이지?
뭐 소련의 기갑웨이브는 나토를 한큐에 발라버리느니 나토는 공군 없으면 쓸려버린다느니 80년대 내내 나토가 소련군의 기갑에 벌벌 떨었다는 등 유치한 헛소리가 21세기에도 통용 된다는게 정말 놀랍지 않냐?

어린양 : 그것 참;;;;;;

저는 무기체계, 특히 2차대전 이후의 무기체계에 대해서는 완전 깡통이지만 저런 소문이 돌아 다닌다는게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80년대라면 나토측에 레오파르트 2도 있고 M1A1도 있는데 왜 나토군의 기갑전력이 바르샤바 조약군에게 일방적으로 밀렸다는 망상이 냉전이 끝난지 20년이 다 돼 가는 이 시점의 한국에는 퍼져있을까???
소련의 철통 같은 보안 유지 덕분에 냉전기간 동안 소련제 무기에 대한 과대평가는 흔한 일이었고 또 이런 과대평가에는 예산도 더 타먹자는 군대의 엄살도 제법 작용했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려져 있는 것 입니다. 소련제 전차들이 아주 못 써먹을 쓰레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레오파르트 2나 M1A1 같은 서방의 제 3세대 전차와 비교한다면 성능적으로 열세인 것은 확실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냉전시기 바르샤바 동맹군의 기갑전력에 대해서는 폴 케네디가 아주 간단히 핵심을 잘 짚은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중부 전선에서는 나토군이 대규모의 소련군 기갑 및 자동차 소총사단들에 비해 크게 열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 경우에도 바르샤바 동맹군의 우세는 안심할 정도가 못된다. 그것은 혼잡한 북부 독일의 지형에서는 신속하고 공격적인 기동작전을 수행하기가 어렵고 또한 소련의 주력 전차 5만 2000대 중 다수는 도로소통이나 방해하기에 알맞은 낡은 T-54형 전차들이기 때문이다. 나토가 군수품, 연료, 대체용 무기 등의 충분한 예비 비축량만 보유한다면 소련군의 재래식 공격을 격퇴하는데 1950년대 보다도 훨씬 더 유리한 입장에 설 것이 확실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일주, 전남석, 황건 공역, 폴 케네디, 강대국의 흥망, 한국경제신문사, 1988, 588쪽.

어쨌든 1980년대 후반 까지는 소련의 신형전차들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이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21세기 한국의 일부 밀리매냐(????) 들의 망상처럼 서방측이 바르샤바 동맹군의 기갑전력에 덜덜덜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찰머스(Malcolm Chalmers), 운터제어(Lutz Unterseher)와 잘로가(Steven J. Zaloga) 간에 있었던 논쟁이 좋은 예가 될 것 입니다.
찰머스와 운터제어는 1988년 International Security 13권 1호에 Is There a Tank Gap?: Comparing NATO and Warsaw Pact Tank Fleets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9년에는 잘로가가 역시 같은 잡지 13권 4호에 The Tank Gap Data Flap라는 제목으로 반대되는 논지의 글을 투고 했습니다. 이 토론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찰머스와 운터제어의 주요 논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전차 전력의 숫적인 격차는 크지 않다.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기구는 서방보다 2.6배 더 많은 전차를 보유하고 있지만 주력인 소련군은 그 기갑전력의 상당수를 극동지역에 돌리고 있다. 서부전역에 국한할 경우 바르샤바 동맹군의 기갑전력은 불과 1.6배의 우세를 보일 뿐이며 특히 주 전장인 중부 전선에서는 겨우 1.4배에 불과하다. 중부전선의 나토군은 12,800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는 반면 바르샤바 조약군은 18,100대 정도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나토가 보유한 전차들은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그것에 비해 기술적으로 월등히 우수하다.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전차들은 서방 전차의 탄도계산 컴퓨터, 열영상장치, 그리고 명중률 높은 전차포와 같은 것을 갖추지 못 하고 있다.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보유한 전차 중 상당수를 이루는 T-55, T-62는 M-48, M-60 계열이나 레오파르트 1 수준의 전차를 상대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신형 전차인 T-64, T-72, T-80은 125mm 포를 탑재하고 있지만 그 명중률이 극도로 낮다. 또한 소련제 전차의 기계적 신뢰성은 매우 낮다. 소련의 신형 전차들은 방어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반응장갑을 장착하고 있지만 이것은 서방의 120mm포에 대해서는 무용지물이며 또 소련 전차의 중량을 증가시켜 기동성에 제약을 가한다.
셋째, 나토의 전차전력은 전체적인 규모에서는 바르샤바 동맹군 보다 적지만 신형 전차의 비중을 놓고 보면 바르샤바 동맹군의 우위는 줄어든다. 나토는 1981년부터 1987년 사이에 7,200대의 제 3세대 전차를 도입했는데 이것은 1981년 나토가 보유한 전체 전차전력의 27%에 해당된다. 같은 기간 소련은 16,700대의 신형 전차를 도입했는데 이 경우 양 측의 숫적 격차는 더욱 줄어든다.
넷째,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동원능력은 나토에 비해 제한적이다. 카테고리 1으로 분류되는 바르샤바 조약군의 사단 중 소련군 사단과 동독군 6개 사단을 제외한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군 사단은 최소 동원 개시 10일 이전에는 전선에 투입하기 어렵다. 카테고리 2 사단은 동원 개시 후 30일은 지나야 투입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의 정보에 따르면 바르샤바 조약군의 동원 능력은 매우 형편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이 개시될 경우 전쟁 첫날에는 양측의 전차 전력의 비율이 1 대 1.42 지만 동원 개시 40일이 지나면 그 비율은 1 대 1.24까지 떨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다섯째, 나토군은 신형 전차의 성능면에서 바르샤바 조약군을 압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제 2세대 전차의 경우도 지속적인 성능 개선을 통해 전투력을 향상시켰다. 반면 바르샤바 조약군의 T-55나 T-62는 이렇다 할 성능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소련은 경제적 능력의 제약 때문에 T-72와 T-80의 추가 생산에 주력하고 있을 뿐 구식 전차의 성능 개선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잘로가가 투고한 반박문은 1989년 봄에 나온 13권 4호에 실렸습니다.

잘로가는 먼저 나토의 신형 전차들이 원거리 교전과 야간 전투에서 소련의 신형전차에 대해월등히 우수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나머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습니다.
첫째, 찰머스와 운터제어는 바르사뱌 조약군의 전차 전력에 대해서 IISS (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의 추정치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특히 신형전차의 생산량은 찰머스와 운터제어가 추측한 것 보다 더 많다. 1981년부터 1987년 사이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국의 신형 전차(T-72 이상) 생산량은 2만대 이상이다. 또 미국이 같은 기간 동안 대량의 M1과 M1A1을 생산했지만 그 반대로 유럽에 배치된 M60A3들이 퇴역하기 때문에 중부유럽에 배치된 나토군의 기갑전력은 증가했다고 볼 수 없다.
둘째, 찰머스와 운터제어는 분석의 대상을 전차에 한정하고 있다. 바르샤바 조약군이 보유한 대량의 보병전투차를 분석의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치명적 오류이다.
셋째, 바르샤바 조약군, 특히 소련군은 중부전선에 신형전차를 배치하고 구형 전차는 대부분 퇴역시켰다. 극히 일부의 소련군 부대만이 T-62를 장비하고 있다. 후방에 돌려진 대량의 구형 전차는 나토군이 신형전차를 대규모로 소모한 뒤에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찰머스와 운터제어는 체코의 T-55 개량이나 소련의 T-62 개량 등 바르샤바 조약군의 구형 전차 성능개선에 대해 무시하고 있다.
넷째, 찰머스와 운터제어는 바르샤바 조약군의 기술수준에 대해 지나치게 저평가 하고 있다. 비록 소련제 전차들은 나토군의 전차들에 비해 야간 장비가 뒤쳐져 있긴 하지만 30% 이상의 전차는 수동형 영상증폭장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신형 T-72와 T-80의 방어력에 대해서도 저평가 하고 있다. 또 나토군 전차들이 가지고 있는 우수한 원거리 전투 능력은 중부 전선의 지형에서는 그 우위를 잃는다. 서독과 동독 국경 지대의 55% 이상의 지역은 실제 교전거리가 500m 수준이다. 1500m 이상의 교전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지역은 17%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찰머스와 운터제어는 역시 같은호에 반박문을 투고했습니다. 이들은 잘로가의 지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했습니다.

첫째, 우리의 추정치가 부정확하다는 잘로가의 지적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우리는 추정치이기 때문에 충분히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전제하고 논지를 전개했다. 하지만 잘로가 또한 IISS의 추정치가 부정확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지 않다.
둘째, 잘로가는 보병전투차와 자주포 등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런 식으로 따지면 나토가 보유한 공격헬리콥터와 대전차 미사일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셋째, 잘로가가 지적한 바르샤바 조약군의 구형 전차 성능 개량에 대해서는 우리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다. 동독의 예를 보더라도 소련의 동맹국들은 구형장비의 도태와 성능개선이 극히 저조함을 알 수 있다. 잘로가는 체코슬로바키아군의 T-55 개량사업이나 소련군의 T-62 개량사업의 예를 들고 있는데 이런 구형전차들이 성능개선을 통해 화력개선 같은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넷째, 잘로가는 주 전장이 될 중부유럽, 특히 독일에서는 원거리 교전이 가능한 지형이 매우 적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소련제 전차의 낮은 기계적 신뢰성과 제한된 기동성은 지형의 활용도를 극히 제약할 것이다.
다섯째, 잘로가는 우리의 글이 소련전차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저평가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에 비춰보면 소련전차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지나친 과대평가가 문제가 됐던 경우가 더 많았다. 처음 T-80에 대한 정보가 입수됐을 때 미국 국방부는 T-80이 기존의 전차에 비해 화력과 생존성이 강화됐을 것으로 추측했고 그 당시 나온 T-80의 상상도는 마치 서방의 제 3세대 전차와 비슷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실제 T-80은 T-72의 강화형에 불과한 수준이다.

양 측의 견해는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양측 모두 서방의 제 3세대 전차가 T-72와 T-80에 비해 압도적인 기술적 우위를 갖추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잘로가는 바르사뱌 조약군의 기갑전력이 숫적 우위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협적이라고 전제하고 있을 뿐이지요. 소련제 ‘내수정품’에 대해 벌벌벌 떨거나 하지는 않더군요.;;;;;;

Friday, February 22, 2008

윈스턴 처칠의 덜 알려진 저작 - The Unknown War

서산돼지님이 쓰신 윈스턴 처칠의 문장력에 대한 글을 읽고 생각이 나서 적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윈스턴 처칠이 '훌륭한 정치가'였는가에 대해서 회의적입니다만 처칠이 ‘좋은 글쟁이’ 였다는 것에는 동의하고 있습니다. 일단 그는 정치인 치고는 상당히 많은 저작을 남겼으며 또 그 저작들 중에는 읽을만한 책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처칠의 저작 중에는 그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저작도 있습니다. 바로 이 글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The Unknown War'입니다.

The Unknown War는 처칠의 1차대전 회고록 이라고 할 수 있는 The World Crisis의 외전(?)격인 저작으로 1931년에 출간됐습니다.(제가 읽은 것은 1932년에 나온 미국판 입니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1차대전 당시 동부전선에 대해 개괄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처칠은 책의 서두에서 To our faithful allies and comrades in the Russian Imperial Army라고 써서 막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서방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동부전선의 실상을 조명하려는 뜻을 보이고 있습니다. 뭐, 유감스럽게도 The Eastern Front 1914~1917의 저자인 Norman Stone이 1970년대에 지적한 대로 처칠의 저서에도 불구하고 1차대전 당시의 동부전선은 무관심의 대상입니다. 이런 무관심은 여전한지 2006년에 Schöningh 출판사에서 나온 1차대전 당시 동부전선에 대한 책의 제목은 Die vergessene Front(잊혀진 전선)였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Norman Stone은 처칠의 저작에 대해서 호평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에서 선구적인 저작이기도 하겠지만 처칠의 문장은 영어권에서는 좋게 평가 받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좀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책의 대부분이 1914~1915년의 기간에 할애되어 있다는 점 입니다. 이 책의 본문은 381쪽인데 이 중 357쪽까지가 브루실로프 공세 이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즉 1916년부터 1918년까지는 30쪽도 채 안되는 것 입니다. 도데체 왜 이런 난감한 구성이 되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1914~1915년 전역에 대한 묘사는 Stone의 평가대로 꽤 훌륭한 것 같습니다. 독일군이 바르샤바를 함락시킬 때 까지는 상당히 재미있더군요. 물론 그 후 브루실로프 공세 이후로는 휙휙 날아갑니다만.

이 책은 1950년대에 한국의 대학들에 원조된 미국방부의 수많은 기증 도서 중 한 권 이다 보니 아직 학생이신 분들은 재학 중인 학교의 도서관을 잘 찾아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Norman Stone의 동부전선에 대한 저작도 꽤 호평을 받은 물건입니다. Niall Ferguson이 ‘Without question one of the classics of post-war historical scholarship’이라고 평했더군요. 이 책은 가격도 싸고 구하기도 쉬우니 1차대전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꼭 읽어 보셨으면 합니다.

Thursday, February 21, 2008

sonnet님의 이공계위기론에 대한 글을 읽고

sonnet님의 이공계위기론에 대한 글을 읽으니 이번 명박 정부에서 어떤 부처의 장관 내정자로 임명된 K교수님이 생각납니다. 이 양반은 이 어린양이 나름대로 암흑시대를 겪을 무렵 업무 때문에 뵌 것인데 지금 생각하면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분은 근본적으로 이공계 전공자들은 열정이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 능력을 사회 전체에서 활용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야 한다고 강조하시더군요. 예를 들어 중국과 같이 테크노크라트 관료가 되어 공직에 폭넓게 진출하는 것 등이었습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학부 단계에서 전공과 관련된 교육 외에도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쪽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재미있었던 점은 이 분이 말씀하시는 중간 중간 이공계가 법대나 상경계에 비해 사회적으로 낮은 처우를 받는 것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출하더라는 것입니다. 즉 이공계는 사회의 발전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학문인데 법대나 상경계는 그렇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지위나 처우가 더 높다는 것 이었습니다.(물론 이 중에는 공직 쪽으로의 진출도 포함되었고요.) 그 이후에도 관련 분야의 교수님을 몇 분 더 뵐 수 있었는데 이런 불만은 이공계에 계시는 꽤 많은 분들이 느끼시는 것 같더군요.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K교수님은 평소에 생각하시던 대로 공직에 진출하는게 확실 합니다. 이공계인의 폭넓은 사회진출(특히 공직)을 말씀하시던 분이니 만큼 공직자로서 어떤 길을 걷게 될 지 궁금합니다.(한겨레에서는 이 양반의 역량에 대해 좀 회의적으로 보더군요)

Wednesday, February 20, 2008

친위대 사관학교 중국음식점이 되다 - 다하우 수용소와 바드 퇼츠 친위대 사관학교

여행 둘째 날은 다하우(Dachau), 그리고 바드 퇼츠(Bad Tölz)를 가기로 정했습니다. 그 때문에 원래 갈 계획이었던 잉골슈타트(Ingolstadt)의 바이에른 육군 박물관(Bayerisches Armeemuseum)은 다음 기회로 미뤘습니다. 그래도 좀 아쉬워서 잉골슈타트를 잠깐 가 봤습니다.

잉골슈타트 역 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야간이라 바이에른 육군 박물관은 못 찾았습니다. 비도 조금 내리고 있어서 길 찾기가 어렵더군요.

잉골슈타트 역은 매우 작지만 따뜻한데다 구내서점도 괜찮았습니다. 이곳 구내서점은 무려 오전 5시 30분에 여는데다 쓸만한 책이 더러 있더군요.

잉골슈타트 역의 대합실에는 도시의 발전 과정을 축약해서 보여주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사진이 흔들린게 유감입니다. 빨리 좋은 카메라를 하나 장만해야 겠습니다.


잉골슈타트 역에서 책을 한 권 산 뒤 커피 한잔을 마시고 다하우 수용소로 향했습니다. 뮌헨 근처에서 가장 유명한 나치 시대의 유적이니 만큼 구경을 하고 가야 겠더군요.


정문 안 쪽에는 다하우 수용소를 해방시킨 미육군 제 20기갑사단의 공적을 기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다하우 수용소는 유명한 사적지인지라 단체 관람객이 매우 많았습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한가한 분위기더군요.




다하우 수용소에서 희생된 유명인사 중 한 명인 Vojtech Preissig의 데드 마스크 입니다.


전쟁 당시 다하우 수용소의 축소모형입니다.


이 곳은 다하우 수용소의 화장터 입니다. 괴이하게도 수용소의 다른 건물들에 비해 훨씬 평온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하우 수용소 관람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은 걸어서 갔습니다. 다하우 기차역까지 대략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중간에 제 3제국 시절 친위대가 연병장으로 쓰던 곳의 터가 있더군요.


그리고 조금 더 가니 케네디 광장이라는 곳도 있더군요.


그리고 다하우 역에 도착했습니다. 걸어다니면서 게으름을 피운 탓에 뮌헨으로 가는 기차를 놓쳤습니다.;;;;;


바드 퇼츠로 가려면 뮌헨으로 돌아가서 다시 기차를 한 번 더 갈아타야 합니다. 사진 오른쪽 끝에 있는 기차가 바드 퇼츠로 가는 녀석입니다.


바드 퇼츠 역입니다. 다른건 다 좋은데 유별나게 플랫폼이 지저분한 역이었습니다. 쓰레기가 정말 많이 떨어져 있더군요.;;;;


바드 퇼츠의 시내는 꽤 예쁘장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정말 장난감 집 같더군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바드 퇼츠에 온 목적은 예쁜 집들을 구경하는게 아니고 친위대 사관학교(SS-Junkerschule)를 답사하러 온 것 이었습니다.;;;;; 이런 정신상태하고는.

그런데 관광상품 파는 곳에 가서 물어보니 그런 곳이 있다는게 금시초문이라는 것 이었습니다. 뭐, 젊은 아가씨들이니 그런 우중충한 역사에 대해 모르는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관광상품 파는 곳 옆에 있는 바드 퇼츠 박물관으로 갔습니다.


박물관 매표소의 직원에게 물어보니 친절하게도 공짜 지도와 함께 위치를 잘 알려 줬습니다. 그런데 박물관에 들어오니 박물관 구경도 하고 싶어지더군요. 바드 퇼츠 박물관은 전형적인 민속박물관이었습니다. 생활사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군요. 그런데 이 박물관의 마루 바닥은 너무 삐걱 거려서 걸어다니기가 두려울 정도였습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친 뒤 바로 친위대 사관학교 터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뭐가 씌였는지 지도를 잘못 보고 얼마 안되는 거리를 한참 돌아갔습니다.

친위대 사관학교는 바드 퇼츠 주민들을 위한 스포츠 센터와 상가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스포츠 센터에는 태권도장도 있더군요.



우수 인종 중의 엘리트들을 교육시키던 장소에서 열등인종의 무술을 가르치고 있다니 이거야 말로 나치들대한 최고의 조롱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태권도장 간판을 바라보며 한참 즐거웠습니다.

친위대 사관학교의 정문입니다. 처음 만들어 질 당시에는 아치가 있는 구조였다는데 전쟁이 끝난 뒤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건물 내로 들어가 보니 태권도장은 약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병장 터에는 아예 중국음식점이 들어섰더군요. 지옥에 있을(?) 히믈러가 약이 오를것 같습니다.

Monday, February 18, 2008

독빠의 전통은 유구하다

독일은 그때만 하여도 훌륭하드군요. 입으로 핥은것 같아요. 산이니 사람이나 집이나 길이나 모다 기름칠한 것 같이 반지르하고 윤택(潤澤)이 나요. 그러나 노서아에 들어서니 천양지판(天壤之判)이드군요. 빈민이 많고 길이 좁고 똑 원시시대 같습니다.

윤치호, 니콜라이 2세 즉위식에 참석할 무렵의 러시아를 회상하며. 조광 1937년 5월호 38쪽

독빠의 전통은 참으로 유구합니다.;;;;;

Sunday, February 17, 2008

남대문 화재 사건에 대한 잡담

어제 모처에서 문화재 담당 공무원으로 있는 후배를 만났습니다. 식사를 하다 보니 자연히 장안의 화제인 남대문 방화사건으로 이야기가 흘러갔습니다. 아무래도 식사하러 모인 사람들의 성향상 시니컬한 방향으로 대화가 흐르더군요. 대략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어린양 : 남대문이 불에 타고 나니 전 국민이 문화재 애호가가 됐구만.

후배A : 낄낄. 아마 풍납토성 발굴 조사 때문에 아파트 공사가 늦어진다고 발광하던 새끼들도 숭례문 전소에 가슴 아파 할걸요.

어린양 : 어떤 교수 찾아가서 항의했다는 그 재개발업자들 말이냐. 아마 그럴것 같은데. 낄낄

후배A : 아니, 왜 한 예전에 경당지구에 불법으로 난입해서 굴삭기로 박살냈었잖아요.

어린양 : 아. 맞아 그랬었지.(잠시 마음속으로 반성)

후배B : 푸. 동래성 해자 소식은 들었냐? 거긴 지하철 뚫잖아.

어린양 : 하여간. 이벤트만 터지면 집단 발광하는 건 도데체 뭐람. 이럴 때 발광하지 말고 평소에 경복궁에 쓰레기나 함부로 버리지 말라지.

후배B : 아직 대한민국은 후진국이라.

어린양 : 생각하는 수준이 여전히 꿀꿀이죽 시절이라니깐.

이제 남대문 관련 소식들도 점차 잠잠해지는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한 두어달 지나면 새까맣게 잊혀지고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속에서 문화재 파괴를 계속하겠지요.

Saturday, February 16, 2008

세 달 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봤습니다.

세 달 만에 극장에 갔습니다.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보통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극장에 가는 편이니 한참 만에 간 셈 입니다.

오늘은 두 편의 영화를 봤습니다.

한 편은 시사회 부터 호평이 줄을 이었던 '추격자'고 다른 한 편은 뭔가 요상한 제목으로 개봉한 '명장'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추격자는 평론가들의 호평이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수작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장편 데뷔작이라고 하니 감독이라는 양반은 내공이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비슷하게 정신세계가 기묘한 살인자의 이야기를 다룬 '세븐데이즈'는 도입부가 지나치게 요란해서 다소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추격자'는 약간의 추격 장면을 제외하면 매우 느리게 진행되는 점이 신선했습니다.(물론 느리다고 해서 지루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미 스포일러가 충분히 돌고 있으니 흥미를 잃은 분들도 더러 계실 듯 한데 이야기는 평범(?) 하지만 그걸 끌고 나가는 방식이 대단히 훌륭합니다. 단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진행이 정신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 예상이 말 그대로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진행 방식과 함께 인물 묘사와 배우들의 연기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주연인 김윤석은 이런 이야기에 제법 어울리는 인간쓰레기 부류를 연기하고 있는데 이 인물은 사건이 진행되면서 인간성이 개선됩니다. 이런 종류의 인간은 잘못 묘사하면 굉장히 유치해져서 영화를 말아먹을 공산이 큰데 다행히도 그런 참사를 피했을 뿐 아니라 상당히 설득력 있게 묘사됐습니다. 연쇄살인범의 묘사도 좋았지만 주연배우 만큼 인상 깊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 만큼 잔인하지는 않았습니다. 충분히 사지절단 피칠갑 영화가 될 수 있었지만 그랬다면 역효과가 났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결말이 매우 우울한데 허접한 해피엔딩 보다는 바람직 했다고 생각됩니다.

다음으로 '명장'은 제목이 다소 요상해 지긴 했습니다만 좋은 영화였습니다. '영웅' 이래로 허우대만 그럴싸한 중국제 '대작' 영화들이 계속해서 신경질을 나게 했었는데 명장은 다행히도 물량을 잘 활용한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세 명의 등장인물들이 의형제의 의리에 목숨을 거는 바른생활 마초들이라 정은 가지 않더군요. 이연걸은 '영웅'에서 대의를 위한답시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더니 '명장'에서는 대의를 위해 수많은 사람을 도륙하고 의형제까지 죽입니다. 중국인들이 대작영화에서 '대의'를 뺀다면 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Friday, February 15, 2008

여자를 군대에 집어넣을 경우의 심각한 문제점(농담)

그냥 농담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남성에 대한 의무병역제가 지속되는한 온라인상의 혈투는 끝이 날 것 같지가 않습니다. 블로그질을 하다 보면 이 떡밥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낚고 있더군요.

뭐, 사실 대한민국 육군이 터무니 없이 저렴한 비용으로 사람을 부려먹고 있으니 병역 피해자(?)인 남성들이 정신나간 페미니스트들에 대해 분개하는 것은 정상적인 반응입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여자를 군대에 보내는 것은 사회적인 관점에서 봤을때 별로 추천할 만한 일은 아닙니다.

순전히 농담따먹기 입니다만 한 사회에 남성 100명 여성 100명이 있을 경우 전쟁으로 남성 90명이 죽더라도 여성의 인구가 격감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전쟁의 피해에서 벗어나는데 비교적 짧은 기간이 필요할 겁니다.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라면?

여성 90명이 죽어버린다면 남성 100명이 멀쩡하더라도 그 사회는 끝장입니다.;;;;;;;;

고로 여성을 군대에 집어넣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Thursday, February 14, 2008

뮌헨

뮌헨에 도착한 첫날 밤은 유일하게 미리 예약해 둔 방에서 잤습니다. 물론 이 이후의 여행은 마음 내키는 대로 일정을 바꾸다 보니 예약이란 걸 할 필요가 없었지요. 예약한 호텔은 Hotel Dolomit라는 호텔로 역에서 가깝고 가격도 그럭 저럭 나쁘지 않은 편 인 것 같아서 예약했습니다. 물론 한인 민박이 호텔보다는 압도적으로 싼게 사실인데 어차피 당분간 돌아다니게 되면 호텔에서 잘 일도 별로 없을 것 같아 일반 호텔로 정했습니다.

첫 날 묵은 방은 대략 이렇게 생겼습니다.

그리고 방 안에 뭔가 하나 있더군요. 성냥인가? 싶었는데...

열어 보니 바느질 도구입니다. 아이구 이런 알뜰한 독일인들을 보았나...

다음날 아침 시내로 나가는 길에 잠깐 뮌헨역을 지나갔습니다. 참 밋밋하게 생긴게 멋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역 입니다.


시 중심가의 관광지는 낮에 보기로 하고 일단은 펠드헤른할레(Feldherrnhalle)로 직행했습니다.

가는 길에 뮌헨 오페라하우스가 있더군요.


드디어 펠드헤른할레에 도착했습니다.


펠드헤른할레는 바이에른의 국왕이었던 거대 건축물狂 루드비히 제 1세(Ludwig I. 1786-1868)가 뮌헨을 공사판으로 만들던 무렵 건설한 건축물로 바이에른 육군이 배출한 걸출한 용장들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곳은 청년 히틀러가 1차대전 선전포고 소식을 들으며 환호하던 바로 그 곳 입니다.

참 유명한 사진이지요. 펠드헤른할레 앞에서 환호하는 청년 히틀러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히틀러가 뮌헨 폭동을 일으켰을 때 경찰의 저지를 받고 풍비박산난 곳이기도 합니다. 총통에게는 꽤 의미있는 장소이지요.

펠드헤른할레에 있는 틸리 원수의 동상입니다.


펠드헤른할레를 지나 역시 루드비히 1세가 만든 개선문으로 향했습니다. 개선문으로 가는 길에 친숙한 이름의 표지판이 하나 있더군요.


드디어 바이에른 육군의 개선문 입니다.



개선문을 구경한 뒤에는 쓸만한 서점을 찾아 다녔습니다. 걸어다닌 거리에 비하면 성과는 아주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중간 중간 이런 재미있는게 나타나서 심심하지는 않았습니다.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었던 물건... 재미있게 생기긴 했습니다.

결국 서점 수색도 허탕을 친데다 약간의 빗발도 날려서 시내 구경을 위해 부리나케 시청광장으로 향했습니다.

구시가지의 축소모형이 광장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꽤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은 뮌헨의 명소 Frauenkirche로 들어갔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야 교회에 가면 지겹게 보는 물건이지만 멋은 있더군요. 교회는 참 볼만했는데 사진을 거의다 말아먹어서 올릴 만한게 별로 없습니다;;;;

이건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루드비히의 관이라는군요.


교회 구경을 마치고 마리엔플라츠로 나왔습니다.

역시 마리엔플라츠에서는 마리아의 동상(Mariensaule)이 가장 먼저 눈에 띕니다. 동상의 네 귀퉁이에 조각된 아기천사들의 동상도 인상적이더군요.

정말 역동적(!!!) 입니다.

에. 그리고 역시 관광명소인 뮌헨의 시청건물...


멋지긴 한데 뭔가 번잡해 보이는 건물입니다.




마리엔플라츠를 구경한 뒤 일반적인 관광객의 패턴에 따라 시장으로 가서 소세지를 사먹었습니다. 먹고나니 뭔가 허무한 느낌이 밀려오더군요. 시차적응이 안된 탓인가...


잠시 시내를 더 돌아다닌 뒤 뮌헨역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이날 뮌헨의 박물관 같은 곳은 귀국하는 길에 구경하기로 정했습니다. 물론 여행 후반기에 오스트리아에서 죽치느라 결국은 못 갔습니다만.

Wednesday, February 13, 2008

출발

오늘부터 여러가지 일을 한번에 해 보려다 죽도 밥도 안된 재미없는 여행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출발

이번에는 왕복 모두 인천(부산)과 뮌헨을 왕복하는 루프트한자를 이용했습니다. 제 블로그에 구글광고를 달아놓았는데 거기에 계속해서 루프트한자의 겨울철 특가 광고가 뜨더군요. 제 블로그의 광고에 제가 낚인 겁니다.;;;;;;

모든 여행의 출발이 그렇듯 비행기가 이륙하니 기분이 아주 상쾌했습니다. 원래는 비행기에서 책을 읽기 위해서 읽을 책도 한 권 챙겨 갔는데 창 밖의 경치도 좋다보니 그럴 마음이 싹~ 달아나더군요. 에 그리고 기내식도 꼬박 꼬박 챙겨 먹어야 하고...

먼저 식사에 앞서 맥주 한병을 마셨습니다.


다음으로 점심이 나왔는데 하나는 비빔밥 하나는 생선이더군요. 비행기에 타서도 비빔밥을 먹을 의사는 없어서 생선을 골랐습니다. 의외로 먹을만 하더군요.


밥도 먹었으니 책을 읽자... 가 아니라 다시 창밖 구경을...


그리고 다시 간식이 나옵니다. 라면이군요.


간식을 먹었으니 책을 읽자... 가 또 아니라 또 다시 창밖 구경을. 슬슬 어둠이 깔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식사가 나왔습니다. 돈가스로군요. 이히~


배부르게 먹고 나니 독일 영공에 접어들었습니다. 아이 좋아라~

Sunday, February 10, 2008

동맹군에 대한 에이브럼스 대장의 평가

이제 연휴도 다 끝났으니 내일 부터는 정상적인 일정이 시작되겠군요. 이곳에 들러주시는 모든 분들이 지난 5일간 별 탈 없이 잘 들 쉬셨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베트남전과 관련된 글을 하나 올립니다.

앞으로 한참 동안 여행기로 때우자니 그래도 이곳을 방문해 주시는 분들에 대해 무성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떡밥 중 하나인 외국인이 본 ‘국군’에 대한 글을 하나 (날림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냥 외국인이 아닌 상국의 대장군 에이브럼스 공의 평가인데 상당히 후한 편이더군요.

에이브럼스 : 호주군과 뉴질랜드군은 정말 최고입니다.(The Australians and the New Zealanders are really first-class people.) 우리는 미군 부대를 호주군의 지휘하에 넣기도 합니다. 호주군이 어디에 배치되어 있건 어떤 일을 하건 큰 걱정 할 필요 없이 그냥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군은 전투에 있어서 뛰어난 프로들입니다.(The Koreans, of course, are very professional in the fighting that they do) 그렇지만 그들은 계획을 세우는데 지나치게 몰두하는 성향이 있어 작전을 한 번 하려면 몇 달은 계획을 세우는데 허비합니다. 한국군은 모든 작전을 이곳 사이공의 사령부에서 세부적인 사안까지 승인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은 요구되는 것이 많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굉장히 낭비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군은 운용하는데 있어서 융통성이 크게 떨어집니다. 하지만 이런 점이 한국군의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않습니다. 한국군이 작전 수립을 완료하고 작전 준비까지 마친 다음에는 모든 것이 멋지게 진행됩니다. 한국군은 최고의 전사들입니다.(They’re excellent fighters.) 한국군 부대는 최상의 상태입니다. 일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군은 매우 잘 지휘 받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군의 중대 단위 장교들과 부사관은 매우 뛰어납니다. 육사출신들이 중대 단위 부대를 지휘하는데 배치되고 있습니다. 한국군은 동기 부여가 잘 되어 있으며 다른 모든 점도 뛰어납니다. 하지만 어떤 지역에 병력이 필요할 때 – 대사님 께서도 아시겠지만 상황은 유동적입니다 – 한국군을 제때 활용하기란 불가능합니다.

다음으로, 태국군은 베트남에 투입되었을 때 한동안은 이들이 문제가 있으며 전투에 부적합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태국군은 매우 훌륭한 전투부대 입니다. 즉, 제 말은 방어전투에 있어서 매우 훌륭하다는 것 입니다. 태국군은 방어전투에서 매우 훌륭한 성과를 보여줬습니다. 태국군의 전투 능력에 대해서 저는 매우 뛰어나다고 평가합니다. 특히 태국군의 포병은 일반적인 화력지원에 있어 다른 나라의 포병들 만큼이나 훌륭합니다. 수 주전에 저는 근처에 있는 태국군의 화력지원거점(fire support base)을 방문했었는데 저는 그곳에서 그 기지는 여태까지 제가 방문한 남베트남에 있는 화력지원거점 중 가장 우수한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가들리(George M. Godley : 주 라오스 미국대사) : 그곳이 우리 미군의 화력지원거점 보다도 나았다는 말씀입니까?

에이브럼스 : 예, 그렇습니다. 그 곳의 수준은 매우 높았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 사격 연습을 참관했는데 정말 엄청났습니다(god)! 만약 태국군이 제가 방문하기 이틀 전에 사격 연습을 했다면 저는 태국군에 대한 편견 때문에 그들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을 것 입니다. 하지만 제가 참관하지 않았더라 하더라도 태국군의 사격 시범은 정말 엄청났을 것 입니다. 태국군의 포격은 매우 정확하고 신속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여러 시설들 – 위생시설, 야전병원, 기타 다른 시설과 방화설비 등은 부족한 점을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성(聖) 바바라의 이름에 걸고 대사님께 말씀드리는데 태국군은 흔히 알려진 것 이상으로 포병 교리에 통달해 있습니다.

1969년 8월 5일, 에이브럼스 대장이 주 라오스 미국 대사 가들리(George M. Godley : 1969~1973)에게 한 브리핑의 녹취록 중에서

Lewis Sorley(transcribed), Vietnam Chronicles : The Abrams Tapes, Texas Tech University Press, 2004, pp.241-242

Saturday, February 9, 2008

2008년 유럽여행 경과 보고

이번 유럽여행은 19일 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관광 + 답사 + 지름 이라는 3대 과제를 모두 수행해 보자는 과한 욕심을 부린 탓에 좀 어정쩡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여행 방식은 대략적인 계획만 세우고 그때 그때의 상황에 맞춰 여행 일정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편이어서 약간의 돌발 변수도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답사와 서적구매에만 초점을 맞추고 여행을 했다면 훨씬 알찬 여행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제가 구상한 원래의 일정과 실제 여행의 경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Thursday, February 7, 2008

이번 여행에서 구입한 서적들

이번 여행에서 구한 책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익히 잘 아시는 유명한 저작도 있고 약간 오래된 흥미로운 책도 조금 있습니다. 책 소개는 구매한 지역별로 소개 드리겠습니다. 구매한 서점들은 각 서점의 명함이 다른 짐 속에 들어 있어서 아직 꺼내지 못 한 관계로 생략하겠습니다.

뮌헨

뮌헨은 처음 도착한 곳 이지만 책을 사러 돌아다닌 시간에 비해서 성과가 매우 형편없었습니다. 그 덕에 뮌헨 관광도 좀 시시하게 끝난 편 입니다. 뮌헨에서 건진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Erwin Pitsch, Italiens griff über die Alpen Die Fliegerangriffe auf Wien und Tirol im 1. Weltkrieg, Karolinger, 1995
: 이 책은 1차대전 당시 이탈리아군의 오스트리아에 본토 공격과 이에 맞선 오스트리아군의 방공전을 분석한 책 입니다. 이 주제만 다룬 단행본으로는 제가 처음 본 것 입니다.

Arthur Rosenberg, Geschichte der Weimarer Republik, Europäische Verlagsanstalt, 1961
: 바이마르 공화국에 대한 통사로 같은 종류의 서적 중 꽤 고참(?)에 속하는 놈 입니다. 위의 책과 같은 헌책방에서 팔고 있었는데 값이 1유로라 상식도 넓힐 겸 샀습니다.


Kurt Finker, Der 20. Juli 1944 : Militärputsch oder Revolution?, Dietz Verlag, 1994
: 이건 뮌헨 시청건물 근처의 헌책방에서 샀습니다.

잉골슈타트

잉골슈타트는 시간이 부족해서 잠시 바이에른 육군 박물관 위치나 파악할 겸 새벽에 다녀왔는데 잉골슈타트역 구내서점이 놀랍게도 새벽 5시에 문을 열었습니다! 역 구내서점의 현대사 코너에 군사서적이 몇 권 있었는데 그 중 특가에 파는 놈을 한 권 질렀습니다.


Andre Uzulis, Die Bundeswehr : Eine politische Geschichte von 1955 bis heute, Mittler&Sohn, 2005
: 바로 이놈입니다. 저는 2차대전 이후의 군사안보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무지한 편이라 기초 지식을 습득할 겸 샀습니다. 게다가 특가 판매이기도 하고...

뉘른베르크

뉘른베르크는 관광지인 구 시가지를 중심으로 돌아다니느라 도시의 규모에 비해 건진 게 매우 형편없습니다.


Wolfram Wette(Hrsg), Schule der Gewalt : Militarismus in Deutschland 1871 bis 1945, Aufbau Taschenbuch Verlag, 2005
: 구시가 안에 있는 어떤 서점에서 샀습니다. 일반 서점인데 군사사 코너가 책장 두 칸 이더군요. 책이 많다 보니 뭘 사야 할지 혼란스러워 달랑 이것만 샀습니다. 책은 많은데 여행 초반이라 마구 질러대기도 뭐하고 하니 난감하더군요.

베를린

베를린은 주말에 도착했기 때문에 벼룩 시장 좌판 말고는 책 살 곳이 없었습니다. 베를린에서 건진 책은 아래와 같습니다.


Rudolf Lehmann, Die Leibstandarte Band II, Nation Europa, 1995
: 너무나 유명한 책이지요. 저는 돈이 궁해서 이걸 낱권으로 샀는데 그 덕에 빠진 부분이 있었습니다.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 옆에 있는 좌판 중에는 군사서적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양반이 있는데 이날 그 양반 한테서 2권을 사서 보충했습니다. 표지가 없긴 하지만 책 자체는 거의 새책 수준이더군요. 역시나 책이 널려 있는데 여행 초반이라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물론 여행이 끝난 다음 이날의 소심함에 대해 통렬히 반성했지요.


Wilhelm Adam, Der schwere Entschluß, Verlag der Nation, 1965
: 역시 유명한 책 입니다. 원래 2003년에 구입했던 녀석인데 2년 전에 방을 옮기다 이놈만잃어 버렸습니다. 아주 웃기게도 2003년과 2008년 모두 베를린의 똑같은 좌판에서 구입한 놈 입니다. 참 재미있지요. 이 책은 독일 제6군 작전처에서 제 1 작전장교로 있던 아담 대령의 회고록 입니다. 동독에서 나왔는지라 시각이 조금 묘하긴 합니다만 너무 많이 찍어냈는지라 매물이 풍부합니다. 1유로에 샀습니다.

함부르크

함부르크에는 제가 아는 군사 서적 전문점이 두 곳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책이 많아도 문제더군요. 산더미 같은 책 속에서 뭘 사야 할지 고민하다가 겨우 세 권 건졌습니다.


Klaus Michaelis, 1938 : Krieg gegen die Tschechoslowakei - Der Fall Grün, Michaelis Verlag, 2004
: 주로 무장친위대 서적(자료집에 가까운)을 찍어내는 Michaelis 출판사에서 다소 색다른 책을 찍은 일이 있습니다. 바로 1938년~1939년의 체코 사태를 군사적인 관점에서 조명한 책인데 독일군의 녹색 계획과 이에 대응하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군사적 대응책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앞으로 써먹을 곳이 많을 것 같습니다.


Bernd Hartmann, Geschichte des Panzerregiment 5 1935-1943 und der Panzerabteilung 5 1943-1945, Bernd Hartmann, 2003
: 이 책은 좀 난감합니다. 5년전에 못 사서 이번엔 사야지 하고 벼르던 놈인데 이놈을 사고 난 뒤에 증보개정판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아이고.


Friedrich Stahl(Hrsg), Heereseinteilung 1939, Podzun, 1954
: 상당히 괜찮은 자료집 입니다. 1939년 전쟁 발발 직전 독일 육군 각 부대의 주둔지와 지휘관 내역이 대대급 부대까지 기재된 자료집 입니다. 앞으로 활용도가 매우 높을 것 같습니다.



킬에는 군항 구경을 하러 간 것인데 돌아오는 길에 꽤 쓸만한 헌책방 두 곳을 발견했습니다.


Jagd in Flanderns Himmel, Knorr Hirth, 1935
: 나치 독일 당시 발행된 놈으로 1차대전 당시 JG 1의 부대사 입니다. 상태는 좋은데 오래되서 그런지 제본이 약간 불안합니다.


Leonid Reschin, Feldmarschall Friedrich Paulus im Kreuzverhör 1943-1953, Bechtermünz Verlag, 1996
: 만슈타인의 능수 능란한 책임전가와 6군의 지휘관이었던 이유로 필요 이상의 욕을 얻어 먹는 파울루스의 항복 이후 행적에 대해 다룬 책 입니다. 매우 상태가 좋은 책인데 4유로에 팔더군요.

Peter Reichel, Der schöne Schein des Dritten Reiches : Faszination und Gewalt des Faschismus, Fischer, 1994
: 나치독일의 문화 정책에 대해 다룬 책 입니다. 제가 군사 안보문제에만 관심이 있다 보니 전반적인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깡통인데 책도 산 김에 잘 공부해 볼까 합니다.

Eugen Kogon, Der SS Staat : Das System der deutschen Konzentrationslager, Wilhelm Heyne Verlag, 1974, 1998
: 이젠 나치 독일의 수용소 문제에 대해 거의 고전이 된 저작입니다. 책의 이름만 듣다가 이번에야 비로소 구입했습니다.

브레멘

브레멘 역의 구내서점 역시 군사서적을 많이 팔고 있더군요.


Karl-Heinz Golla, Der Fall Griechenlands 1941, E. S. Mittler & Sohn, 2007
: 예전에 채승병님이 소개해 주신 독일 공수부대 통사의 저자 중 한 명인 Golla가 쓴 그리스 전역에 대한 작전사 입니다.

코블렌츠

코블렌츠에는 제가 여태까지 독일에 본 것 중 가장 막강한 군사서적 전문점이 있었습니다. 여기서도 역시 소심하게 달랑 두 권만 샀습니다. 역시 수많은 책을 대하니 뭘 살지 혼란스럽더군요. 지금 그날의 결정을 뼈저리게 후회하는 중 입니다.


Johann Ritter von Heilmann, Das Kriegwesen der Kaiserlichen und Schweden zur Zeit des dreißigjährigen Krieges, Verlag Heere der Vorgangheit, 1850, 1977
: 이건 진짜 고전이지요. 그동안 다른 서적들의 참고문헌 목록에서만 보다가 이번에 1977년 발행한 판본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글자체가 고딕체이긴 하지만 그럭 저럭 읽을만은 합니다.


Werner Kortenhaus, 21. Panzerdivision 1943-1945, Schneider Armor Research, 2007
: 독일군의 기갑부대사를 열심히 찍어내는 Schneider Armor Research에서 작년 12월에 나온 따끈 따끈한 신작입니다.



빈에서 건진 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빈에는 3일간 체류했는데 비참하게도 좋은 헌책방들을 일요일에 발견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Roland Kaltenegger, Schicksalsweg und Kampf der Bergschuh Division Die Kriegschronik der 7. Gebirgsdivision vormals 99.leichte Infanteriedivision, Leopold Stocker Verlag, 1985
: 산악전에 대한 책을 열심히 찍어내는 Leopold Stocker 출판사에서 80년대에 야심차게 쏟아낸 2차대전 중 독일군 산악부대사 시리즈 중 한 놈 입니다. 저는 이 시리즈 중에서 1, 4 산악사단사 등 두 권을 가지고 있는데 이번에 한 놈 더 늘었습니다.

Horst Adalbert Koch, Die Geschichte der Deutschen Flakartillerie 1935 1945, Podzun
: 이건 같은 출판사가 1954년에 출간한 FLAK의 축약본 입니다. 자료집으로 꽤 쓸만할 듯 싶습니다.


Thomas Chorherr(Hrsg) : 1938 – Anatomie eines Jahres, Ueberreuter, 1987
: 이놈은 토요일에 벼룩시장에서 구했습니다. 오스트리아 병합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Heiy Schön, Ostsee 45 Menschen, Schiffe, Schicksale, Motorbuch Verlag, 1998
: 역시 같은 좌판에서 샀습니다.


Militärwissenschaftlichen Istitute Wien, Die Streitkräfte der Republik Österreich 1918 1968, Militärwissenschaftlichen Istitute Wien, 1968
: 이건 오스트리아 육군박물관이 창군 50주년 기념으로 주최한 전시회와 함께 나온 책 입니다. 독일과의 합병 직전의 오스트리아 육군에 대한 내용이 쓸만한데 좋은 참고가 될 듯 합니다.

원래 이번 여행에는 책을 담을 가방을 따로 가져가려 했는데 정신 없는 와중에 출발하다 보니 그 가방을 집에 두고 갔습니다. 여행 내내 책을 짊어지고 다니는 것이 골치아픈 문제였는데 그 가방만 있었어도 열 권 정도 더 사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군요.
그리고 독일을 여행 초반 일정으로 잡아 놓은 것은 치명적 실수였습니다. 여행 후반기에 돈이 부족하지나 않을까 걱정하다 보니 지르는데 신중해 지더군요. 다음에 유럽을 돌아다닐 일이 생기면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제일 뒤로 미룰 생각입니다.

Tuesday, February 5, 2008

귀국했습니다.

오늘 유럽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출발하는 당일 까지도 일을 하느라 여행 준비를 제대로 못 했지만 꽤 재미있는 여행이었습니다. 준비를 조금 더 충실히 하고 나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충분히 즐거웠습니다.

이제 귀국했으니 당분간 여행이야기로 때워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