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0일 화요일

The Cambridge companion to the Nazi-Soviet War

작년(2025년) 11월에 케임브리지대학 출판부에서 독소전쟁 개설서인 The Cambridge companion to the Nazi-Soviet War를 간행했습니다. 전반적으로 균형이 잘 잡힌 우수한 개설서라고 생각됩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독소전쟁의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업을 했다는 점 입니다. 독소전쟁 개설서 중 손에 꼽히는 걸작인 데이비드 글랜츠의 When Titans Clashed 같은 경우 군사작전을 설명하는데 치중되어 있습니다. The Cambridge companion to the Nazi-Soviet War는 전쟁의 정치외교적 배경, 양측의 군사력에 대한 분석, 군사작전의 전개 과정, 전쟁 범죄, 전쟁 중 독일과 소련 사회, 전쟁 중의 외교, 전쟁이 남긴 유산 등 분야별로 균형잡힌 서술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한명의 연구자가 이런 책을 썼다면 이런 균형을 갖추지는 못했을 겁니다.


제1부는 전쟁의 정치외교적 배경을 다루고 있습니다. 1장 German-Soviet Relations and Military Collaboration in the Inter-war Period는 노트르담 대학 사학과 교수 이안 존슨(Ian Ona Johnnson)이 썼습니다. 1장은 바이마르 공화국 초기 독일과 소련의 군사협력 과정, 군사협력이 독일 재무장에 끼친 영향, 히틀러 집권 이후 독소관계의 악화, 독소불가침 조약 체결 과정과 독일의 폴란드 침공, 독소전쟁 직전까지 독일-소련 협력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전쟁에 이르는 과정을 독일을 중심으로 해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서구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설명을 정리했기 때문에 특별히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은 없습니다.(러시아에서는 다르게 볼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2장 Political Thinking and Strategic Planning for Hitler's Lebensraum in the East는 독일 국방군의 대빨치산 작전과 전쟁범죄를 주로 연구한 벤 셰퍼드(Ben H. Shepherd)가 썼습니다. 이 부분은 독일이 소련 침공을 단행한 정치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2장에서는 불가침조약에도 불구하고 독일과 소련의 상호 불신이 전쟁으로 치닫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탈린이 독일의 침략에 대비한 '완충지대'를 확보하기 위해 발트 3국과 루마니아를 침공하자 이를 위협으로 받아들인 히틀러가 소련 침공을 결심하는 과정이 그렇습니다. 다음으로는 히틀러와 독일 군부가 전쟁을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 독일의 정보 실패, 침공 계획의 수립, 소련 침공을 위한 군사 동맹 등을 이야기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이 전쟁의 양상을 극단적으로 치닫게 한 독일의 인종주의 이데올로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3장 Stalin's Political Delusions and Military Preparations for War with Nazi Germany는 일본의 소련사 연구자 구로미야 히로아키(黒宮広昭)가 썼습니다. 3장은 스탈린의 정치사상과 세계관, 군수뇌부와의 관계, 전쟁 발발 직전 정세 판단을 잘못한 스탈린의 과오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스탈린의 사상이 실제 정책 결정에 작용한 과정을 잘 설명했습니다.


제2부는 전쟁 직전 독일군과 소련군의 상황을 다루고 있습니다. 4장 The Ostheer: Leadership, Command, Motivation, and Experience는 The Virtuous Wehrmacht: Crafting the Myth of the German Soldier on the Eastern Front, 1941-1944의 저자인 데이비드 해리스빌(David Harrisville)과 제프 러서포드(Jeff Rutherford) 두 사람이 집필했습니다. 이 장에서는 전쟁 직전 독일군의 규모, 훈련 수준 등의 전반적인 상황, 그리고 전쟁 초기 독일군이 소모전에 말려들면서 서서히 붕괴되는 양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소련군에 관해서는 5장과 6장 2개 절을 할애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5장 The Red Army: Leadership and Command는 캘거리 대학교의 알렉산더 힐(Alexander Hill)이 썼습니다. 전쟁 직전 소련군의 전반적인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6장 The Red Army: Motivation and Experience는 러시아~소련 군사사 전문가인 로저 리즈(Roger R. Reese)가 썼습니다. 소련군에 2개 장을 할애한 점이 흥미롭습니다. 6장은 1941년 전쟁 발발 직전 부터 1945년 승리에 이르기 까지 소련군이 조직적으로 강화되는 과정을 추적합니다. 리즈는 전쟁 말기까지 소련군의 효율성이 꾸준히 향상됐지만 훈련과 사기 면에서 다소 미흡한 점이 잔존했다고 평가합니다.


제3부는 군사작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입니다. 책의 분량상 모든 군사작전을 상세하게 다루기 보다 핵심적인 군사작전을 중심으로 전쟁의 큰 줄기를 설명하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제3부는 기존의 다른 개설서들이 많이 다루었던 군사작전의 경과를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눈에 띄는 내용은 없습니다. 7장 Operation Barbarossa, 1941은 이 책의 주편집자이자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대작을 쓴 데이비드 스태헐(David Stahel)이 썼습니다. 

8장 Stalingrad and the East Front 1942는 독일군의 시가전 수행을 다룬 Die Wehrmacht im Stadtkampf 1939~1942의 저자인 아드리안 베트슈타인(Adrian E. Wettstein)이 썼습니다. 1942년 전역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스탈린그라드 전투 뿐만 아니라 르제프 전투도 다루고 있습니다.

9장 The Battle of Kursk, 1943은 독일연방군 군사사-사회과학 연구소의 로만 퇴펠(Roman Töppel)이 썼습니다. 9장에서는 독일군의 쿠르스크 공세와 소련군의 8월 공세를 포함한 넓은 범위의 쿠르스크 전투를 다루고 있습니다.

10장 The Siege of Leningrad, 1941-1944는 독소전 통사인 Thunder in the East의 저자인 에반 모즐리(Evan Mawdsley)가 썼습니다. 1941년 부터 1944년에 이르는 레닌그라드 포위전을 다루다 보니 제3부에서 가장 서술의 밀도가 떨어집니다.

11장 Operation Bagration, 1944는 데이비드 스톤(David R. Stone)이 썼습니다. 바그라티온 작전에서 독일군이 쉽게 붕괴된 원인을 설명하는데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사실 공세 초반에 독일 중부집단군의 주력이 포위 섬멸 당해 버렸으니 군사작전을 길게 설명하기도 애매한 면이 있습니다.

12장 The Soviet Conquest and Occupation of Germany, 1945는 워털루 대학의 알렉산더 스타티예브(Alexander Statiev)가 썼습니다. 소련이 최후의 승리를 거두는 1945년의 군사작전 뿐만 아니라 전쟁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여전히 논란이 많은 독소전쟁 당시 인명피해 문제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4부는 독소전쟁 중의 전쟁범죄를 다루고 있습니다. 참 읽기 힘든 부분이기도 합니다. 13장 Mass Murder in the German-Occupied East, 1941-1944는 포츠담 대학교의 알렉스 케이(Alex J. Kay)가 썼습니다. 소련 침공 직후 부터 시작된 독일군의 민간인·포로 학살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하고 있습니다. 희생자의 유형, 전쟁의 추이에 따른 학살 양상의 변화 등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14장 Soviet Crimes at Times of War, 1941-1945는 멜버른 대학교 사학과의 마크 에델(Mark Edele)이 썼습니다. 개인적으로 14장과 20장은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입니다. 14장의 결론 부분에서 에델은 소련의 전쟁 범죄 문제를 다루는 어려움에 대해서 토로하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전쟁 범죄 문제는 정치 성향에 따라 극단적인 시각들이 부딛혀온 주제이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뒤 이런 경향이 더 심해졌기 때문입니다.


제5부는 전쟁 중 독일과 소련 사회를 다루고 있습니다.  16장 The German Home Front는 랭카스터 대학 사학과의 바스티안 윌렘스(Bastiaan Willems)가 썼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가장 평이한 부분이었습니다.

17장 The Soviet War Effort는 카네기-멜런 대학교의 웬디 골드만(Wendy Z. Goldman)이 썼습니다. 소련의 전시 동원 양상과 전쟁 중 소련 시민들의 생활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6부는 전쟁 중의 동맹외교를 다루고 있습니다. 17장  Germany and the Axis in the East는 멜버른 대학교 사학과의 올렉 베이다(Oleg Beyda), 제2차 세계대전시 루마니아군을 연구한 그랜트 하워드(Grant T. Harward), 이탈리아 군사사 전공자인 캐나다 국방사관학교의 리처드 캐리어(Richad Carrier), 헬싱키 대학교 사학과 교수 헨릭 메이난더(Henrik Meinander) 등 네명의 연구자가 함께 썼습니다. 독일과 여러 동맹국의 복잡한 관계를 다루어야 하는 만큼 여러 연구자의 협업이 중요했을 겁니다. 헝가리, 루마니아, 핀란드, 이탈리아 등의 동맹국이 소련과의 전쟁에 참전한 동기와 전반적인 군사작전의 전개, 그리고 전쟁에서 이탈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독일보다 약한 하위 동맹국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여주는 장입니다.

18장 The Big Three and the Eastern Front는 한국에도 번역된 스탈린의 서재(Stalin's Library: A Dictator and His Books)의 저자이고 저명한 소련사 연구자인 조프리 로버츠(Geoffrey Roberts)가 썼습니다. 소련과 미국, 영국이라는 세 강대국의 전시 외교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도토리 같은 국가들이 아둥바둥하는 17장과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제7부는 독소전쟁의 역사적 유산과 이것이 현재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19장  Germany's Selective Memory of Eastern Front는 독일연방군 군사사-사회과학 연구소의 외르크 에흐턴캄프(Jörg Echternkamp)가 썼습니다. 19장은 전후 서독에서 동부전선의 전쟁 경험을 미화하는 과거사 왜곡이 이루어지다가 1970년대 후반 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점진적으로 과거사에 대한 직시와 반성의 움직임이 일어나는 과정, 그리고 동독의 과거사 인식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20장  The Politics of War Memory in the USSR and Post-Soviet Russia는 텍사스 A&M의 조나단 브런스테드(Jonathan Brunstedt)가 썼습니다. 브런스테드는 전후 소련에서 전쟁을 국가적 신화로 만들어가는 과정, 소련 붕괴 후 러시아에서 제기된 소련시기 역사관에 대한 비판, 그리고 푸틴 집권 이후 다시 대조국전쟁을 신화화하는 양상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결론에서는 2014년 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침략이 대조국전쟁의 신화를 다시 현실 정치에 끌어들이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독소전쟁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데 유용한 훌륭한 개설서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데이비드 글랜츠의 When Titans Clashed 처럼 군사작전에 집중한 저작을 더 좋아합니다만.


2025년 10월 31일 금요일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에서 독소전쟁 개론서를 내는군요

 The Cambridge Companion to the Nazi-Soviet War | Cambridge University Press & Assessment


 뉴스레터들을 확인하다가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에서 독소전쟁 개설서, The Cambridge Companion to the Nazi-Soviet War를 낸다는 광고를 봤습니다. 공동집필자들이 화려합니다. 현재 독소전쟁 연구를 주도하는 이름있는 학자들이 모두 모였군요. 주 편집자는 바르바로사 작전 시리즈로 유명한 데이비드 스태헐(David Stahel)이고 독일의 대빨치산전을 연구한 벤 셰퍼드(Ben Shepherd), 러시아-소련군 연구의 권위자 로저 리스(Roger Rees), 쿠르스크 전투 연구로 유명한 독일의 로만 퇴펠(Roman Töppel) 등 쟁쟁한 필진들이 가득합니다. 최신 연구 경향이 반영된 독소전쟁 개설서가 나온다고 하니 매우 기대됩니다. 꼭 사봐야 겠습니다.


2025년 10월 29일 수요일

독실한 신앙

이청천(지청천) 일기를 읽다 보니 1951년 9월 28일 동래에서 열린 전몰용사위령제에서 있었던 일화가 실려있습니다. 이청천은 이승만이 위령제에서 보인 태도를 비난하고 있는데, 이승만이 당대 기준으로도 좀 안하무인에 기본적인 예의가 없었다는 증언은 꽤 많습니다.


9월 28일 금요일 날씨 맑음

제1회 육해공군 합동위령제

오전 8시 30분 아내 황애숙과 차를 타고 동래 보병학교 위령제가 열리는 곳에 도착하니 육해공군 방위대 악대와 각계 내빈이 장내에 가득하였다. 위령제를 주관하는 사람은 국방장관 이기붕이다. 오전 9시 45분에 식을 거행, 국회의장, 대법원의 제문 낭독, 유엔 대표와 외국 사절 대표의 축문 낭독이 있었다.

아내는 군인유가족회장으로서 분향하고 부인회 대표 박순천 여사의 축문은 시간 관계로 생략해 달라는, 식을 밭은 사람들의 요청으로 예정대로 시행치 못하였다.

대통령은 식이 열린 후 약 한 시간여 만에 도착하여 예정되어 있던 축문 낭독도 하지 않고 제단에 올라서서 위패 앞에 허리를 굽히지도 않고, 입을 열어 말하기를 제전이라 하지 말고 기념식이나 기념일이라 함이 좋겠다고 하였다.

무초 대사나 유엔 대표들도 예수교 신자이지만은 다른 지방에 가서는 그 지방 풍속을 따라 영령 앞에 고개를 숙이고 제문을 읽었는데 한 나라의 원수로서 6.25이래 전사한 24,330명 장교의 영전에 참배도 안 하고 축문도 안 읽고 한 시간이나 늦게 도착함은 책임감과 공경의 예가 심히 부족하고 실수로다. 아. 답답할 뿐!!!


 (사)백산 지청천 장군 기념사업회 편,『격동 속의 백산(白山) 일기』, 선인, 2025, 150쪽.

2025년 8월 23일 토요일

우크라이나 전선의 양군 전력비 변화에 대한 폴란드의 연구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 38-2에 실린 Malina Kaszuba와 Leszek Pawlikowicz의 공동연구인 The Evolution of the Ratio of Forces in the Russian-Ukrainian War During the First Twelve Months of Operations (February 2022–February 2023)를 읽었습니다. Malina Kaszuba는 폴란드의 Siedlce 대학 교수이고 Leszek Pawlikowicz는 폴란드 Rzeszów 대학의 부교수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해 폴란드 연구자들이 흥미로운 연구를 많이 내놓았는데 이것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이 연구는 개전 직전인 2022년 2월 부터 2023년 1월 까지 침공군인 러시아군과 방어군인 우크라이나군의 전력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직 전쟁이 진행중이기 때문에 공개된 자료에 기반해 수행한 연구입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흥미로운 결론을 보여줍니다.


개전 직전인 2022년 2월 18일 기준으로 러시아는 현역 900,000명, 준군사조직 554,000명, 예비전력 약 2,000,000명을 가지고 있었다고 추정됩니다. 우크라이나는 현역 210,600명, 준군사조직 102,000명, 예비전력 900,000명이 있었다고 추정됩니다. 러시아는 현역 병력에서 4.27:1, 준군사조직에서 5.43:1, 예비전력에서 2.22:1로 우위를 보이고 있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나마 예비전력에서는 우크라이나의 사정이 나은 편이고 덕분에 개전초 동원령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전선에 배치한 병력을 보면 러시아가 열세였다고 평가합니다. 러시아가 전선에 배치한 정규군은 149,000명이었던 반면 우크라이군은 216,600명으로 우크라이나가 1:1.45로 우위를 보였다고 추정합니다. 준군사조직의 병력도 러시아군이 69,000명 남짓한 수준으로 추산되는데 비해 우크라이나는 216,600명을 배치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개전 직전 전선에 배치된 총 병력은 러시아가 219,000명인데 비해 우크라이나는 329,600명으로 1:1.51의 우위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양측의 장비를 비교해 보면 개전 직전 러시아는 총 13,617대의 전차(전투부대 3,417), 보병전투차 15,070대(전투부대 6,570), 보병수송장갑차 15,922대(전투부대 9,922), 150mm 이상 구경 화포 7,999문(전투부대 2,154), 공격헬리콥터 최소 407대, 수송헬리콥터 645대, 전투기 및 전폭기 723대, 폭격기 111대, 공격기 199대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전차 우크라이나가 최소 2,119대(전투부대 최소 987), 보병전투차 최소 1,305대(전투부대 1,305), 보병수송장갑차 최소 831대(전투부대 831대), 150mm 이상 구경 화포 최소 838문(전투부대 838), 공격헬리콥터 35대, 수송헬리콥터 70대, 전투기 및 전폭기 70대, 폭격기 14대, 공격기 31대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즉 전차는 6.43:1(전투부대만 비교시 3.46:1), 보병전투차는 11.55:1(전투부대만 비교시 5.03:1), 보병수송장갑차는 19.16:1(전투부대만 비교시 11.94:1), 150mm 이상 구경 화포는 9.55:1(전투부대만 비교시 2.57:1), 공격헬리콥터는 11.63:1, 수송헬리콥터는 9.21:1, 전투기 및 전폭기는 10.33:1, 폭격기는 7.93:1, 공격기는 6.42:1로 러시아가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었다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2022년 2월 18일 기준으로 실제 전선에 배치된 장비만 비교하면 양측의 격차는 크게 줄어듭니다. 전차는 러시아군이 약 1,200대를 배치한데 비해 우크라이나는 최소 987대를 배치하고 있었습니다. 보병전투차 및 보병수송장갑차는 러시아가 2,900대, 우크라이나가 2,136대, 야포 및 다연장로켓포는 러시아가 1,600대, 우크라이나가 최소 985를 배치하고 있었습니다. 헬리콥터는 러시아군이 240대, 우크라이나군이 105대, 전술항공기는 러시아군이 330대, 우크라이나군이 124대를 배치하고 있었습니다. 즉 전차는 1.22:1, 보병전투차 및 보병수송장갑차는 1.35:1, 화포는 1.60:1, 헬리콥터는 2.29:1, 고정익항공기는 2.66:1로 러시아가 우세했습니다. 러시아는 총 전력에서 압도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전선에 상대적으로 적은 병력을 배치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전체적으로 매우 불리했으나 실제 전선에서는 병력면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장비는 부족했으나 압도적인 열세는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러시아가 부족한 전력으로 침공을 감행한 결과 우크라이나는 수도 키이우를 지켜내고 2022년 여름과 가을에는 제한적인 반격을 감행해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우크라이나는 동원령을 선포해 병력을 크게 증강시켰고 미국과 유럽에서 군사지원을 받아 어느 정도 장비를 보충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러시아는 여전히 제한적인 병력 동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필자들은 그 결과 2023년 초가 되면 전선의 지상군 전력비가 우크라이나에 유리하게 기울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2023년 1월 초 기준으로 비교하면 러시아는 정규군 1,190,000명, 바그너그룹 등 용병을 포함한 준군사조직 559,000명, 예비전력 1,500,000명을 보유했다고 추정합니다. 우크라이나는 정규군 683,000명, 준군사조직 150,000명, 예비전력 400,000명으로 추정합니다. 총병력을 비교하면 우크라이나는 정규군에서 1.74:1로 열세, 준군사조직에서 3.73:1로 열세, 예비전력에서 3.75:1로 열세였습니다.
그러나 전선에 배치된 전력에서는 우크라이나가 우위를 보였다고 평가합니다. 즉 러시아는 2023년 1월 기준으로 우크라이나 전선에 정규군 326,000명을 배치한 반면 우크라이나군은 683,000명으로 우크라이나가 1:2.10의 우위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다만 바그너그룹과 같은 러시아의 준군사조직에 대한 자료가 없어서 준군사조직에 대해서는 평가를 내리지 못합니다. 이 당시 러시아가 바그너그룹에 크게 의존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2023년 초가 되면 장비의 격차도 조금 줄어들었습니다. 양측이 보유한 장비를 비교하면 러시아는 전차 총 7,070대(전투부대 2,070), 보병전투차는 총 9,160대(전투부대 5,160), 보병수송장갑차 총 14,950대(전투부대 8,950), 150mm 이상 야포 총 6,554문(전투부대 1,954), 공격헬리콥터 최소 369대, 수송헬리콥터 625대, 전투기 및 전폭기 719대, 폭격기 100대, 공격기 185대를 보유했다고 추정됩니다. 
같은 시기 우크라이나는 전차를 최소 953대(전투부대 953), 보병전투차를 최소 770대(전투부대 770), 보병수송장갑차 최소 1,325대(전투부대 1,325), 150mm 이상의 야포 최소 774문(전투부대 774), 공격헬리콥터 35대, 수송헬리콥터 55대, 전투기 및 전폭기 50대, 폭격기 5대, 공격기 20대를 보유한 것으로 추산합니다. 
전차는 7.42:1(전투부대만 비교시 2.17:1), 보병전투차는 11.87:1(전투부대만 비교시 6.70:1), 보병수송장갑차는 11.28:1(전투부대만 비교시 6.75:1), 150mm 이상 야포는 8.47:1(전투부대만 비교시 2.52:1), 공격헬리콥터는 10.54:1, 수송헬리콥터는 11.36:1, 전투기 및 전폭기는 14.38:1, 폭격기는 20:1, 공격기는 9.25:1로 러시아가 여전히 큰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2023년 1월 초가 되면 우크라이나 전선에 배치된 지상장비의 규모에서 우크라이나가 다소 우위가 되었다고 추정합니다. 2023년 1월 초 기준으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전선에 전차 419대, 보병전투차 및 보병수송장갑차 2,928대, 헬리콥터 572대, 전술항공기 485대를 배치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같은 시기 우크라이나군은 전선에 전차 802대, 보병전투차 및 보병수송장갑차 3,498대, 헬리콥터 107대, 전술항공기 85대를 배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차는 1:1.91로, 보병전투차 및 보병수송장갑차는 1:1.17로 우크라이나가 우위를 보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반면 헬리콥터와 고정익 전술항공기는 여전히 러시아가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봤을때 2023년 초가 되면 우크라이나가 압도적인 우위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번 공세를 감행해 볼 만한 환경은 조성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23년 하계 공세가 실패하면서 우크라이나는 기회를 잃었고 그후 장기전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러시아는 전쟁 초 부터 큰 피해를 입으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압도적인 우위를 잃었지만 그래도 국가의 체급으로 버티면서 지금까지 전략적인 우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양측의 자료가 완전히 공개되어 정확한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2025년 8월 4일 월요일

폴란드 동방연구소(Ośrodek Studiów Wschodnich)의 우크라이나 전쟁 요약 보고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을 넘기고 소모전 양상이 계속되다 보니 전쟁 초기 처럼 관심을 기울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비슷비슷한 소식이 계속되다 보니 정신적으로 피로감을 느끼는 것도 있습니다. 러시아 공군기지 공습 처럼 충격적인 사건이 터지면 관심이 살아나긴 합니다만. 하여튼 전쟁 초기 처럼 관련 보고서들을 찾아보는 일은 많이 줄었습니다. 요즘은 폴란드 동방연구소(Ośrodek Studiów Wschodnich)에서 1주일 단위로 정리해서 공개하는 보고서를 꾸준히 보는 정도입니다. 폴란드 동방연구소의 주간 보고서는 공개된 자료를 요약해서 정리하는 정도이지만 핵심적인 이슈들을 잘 모아놓고 있어서 전쟁의 흐름을 대략 파악하는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주간보고서외에도 중요한 이슈별로 내놓는 요약보고서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의 이웃나라이고 전쟁 초기부터 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오고 있다 보니 미국, 영국에서 내놓는 보고서들과는 어딘가 결이 다른 느낌을 받곤 합니다.

2025년 7월 8일 화요일

밀리터리 서적을 드립니다

 얼마전 제 친구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많은 책을 남겼기 때문에 유가족의 요청을 받아서 제가 그 중 일부를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사진에 나온 책들을 무료로 나눠드립니다. 제 블로그를 들러주시는 분들이라면 군사사에 관심이 많으실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배송료는 착불입니다. 필요하신 책이 있으시면 제 이메일 panzerbear@gmail.com으로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주 주말까지 신청을 받고 다음주 부터 발송해 드리겠습니다.













2025년 7월 7일 월요일

제2차 세계대전시 미육군 보병병과 인력 수급과 사회적 불평등에 관한 연구

 독립 연구자인 존 리드(John S. Reed)가 2024년에 발표한 논문 The Infantry's "Problem of Quality": Classification and Assignment to MOS 745, Rifleman, 1942-1945를 읽었습니다. 이 논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육군의 병과별 인력수급 구조 때문에 보병 병과에는 사회적으로 교육과 소득 수준이 낮은 인력이 많이 배치되었고 이때문에 보병의 전투력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지적되었고, 전쟁 직후 전훈 분석 과정에서도 제기되었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주장은 아닙니다. 그 유명한 마르틴 판 크레벨트(Martin van Creveld)의 연구 Fighting Power에서도 이 문제를 제기했지요. 하지만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 나온 제2차 세계대전의 미군을 다루는 유명 저작들이 이 당시 미군을 이상적인 시민군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이런 저작들은 대중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죠. 이 연구의 저자 존 리드는 리 케넷(Lee Kennett), 존 맥마너스(John C. McManus), 피터 킨즈배터(Peter S. Kindsvatter), 릭 애킨슨(Rick Atkinson) 같은 작가들에 비판적입니다.

 필자는 미국이 전쟁에 참전한 직후 부터 1944년 초 까지는 미육군 지상군(Army Ground Force), 그 중에서도 보병에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인력이 배치되어 전투효율성을 떨어트리는 요인이 되었지만 1944년 이후 점진적으로 우수한 인력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문제가 개선되었다고 봅니다. 전쟁 초기~중기에 이렇게 인적자원이 불균등하게 배분된 원인은 미육군의 항공군(Army Air Force)과 근무지원군(Army Service Force)에 우수한 인적자원이 우선적으로 배치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연합군이 유럽 본토 침공을 준비하면서 제공권 장악을 위해 항공군을 크게 강화했고 1944년 초 까지는 질이 높은 인적자원이 항공군에 배치되었습니다. 항공군은 기술집약적인 특성상 질이 낮은 인력을 쓰기가 곤란하죠. 마찬가지로 전투지원 병과로 구성된 육군 근무지원군도 질이 높은 인적자원을 필요로 했습니다. 행정과 보급 같은 임무를 수행하려면 일정한 교육수준이 필요하지요. 그리고 근무지원군 병과는 특성상 민간 사회의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병과가 많습니다. 미육군공병단은 1,000명당 725명 꼴로 민간 사회의 직업에 대응하는 보직에 배치되었고 미육군수송단은 1,000명당 788명, 미육군통신당은 1,000명당 579명이었습니다. 반면 보병 병과는 순수하게 전투를 수행했기 때문에 민간 사회의 직업에 대응하는 보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니 기술을 가지고 있는 우수한 인적자원은 항공군과 근무지원군에 먼저 가고 남은 인력이 지상군, 그 중에서도 보병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이건 통계로 입증이 됩니다. 전쟁 기간 중 미육군이 병과분류를 위해 시행한 육군일반분류평가(AGCT, Army General Classification Test)는 5개 등급으로 나누었습니다. 1943년에 미육군 항공군에 보충된 병력의 41.7%는 AGCT 1등급과 2등급이었습니다. 반면 보병 병과는 1등급과 2등급의 비중이 30.2%였습니다. 반면 미육군 항공군에는 4등급과 5등급이 27%였으나 보병 병과는 37.2%였습니다.

 이때문에 1943년 부터 1944년 초 까지 미군 보병의 전투효율성은 낮은 편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육군 지상군 사령관 맥네어(Lesley J. McNair) 장군은 AGCT 점수가 높은 인력을 지상군에 보충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1944년 초 까지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미육군은 보병 보충병의 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병보충훈련소(IRTC, Infantry Replacement Training Centers)의 훈련 과정을 강화했습니다. 하지만 1944년 여름 부터 유럽과 태평양 전선의 반격이 본격화되면서 사상자가 급격히 증가했고 이중 대다수가 육군 보병이었습니다. 1944년 말이 되면 방공포병과 대전차포병 등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병과를 보병으로 전환하는 것도 한계에 달합니다. 필자는 그결과 1945년 초 부터는 AGCT 점수가 높은 인력도 보병에 배치되는 비율이 높아지게 됐다고 주장합니다. 즉, 미육군의 사회적 불평등이 이상한 방식(?)으로 해소됐다는 결론입니다.

 비교적 재미있긴 하지만 많은 내용이 기존의 연구에서 다루었던 이야기 입니다. 하지만 '시민군'의 신화를 팔아먹는 대중서에 대한 비판으로서 나쁘지 않습니다.

2025년 6월 25일 수요일

일본계 미국인 병사의 한국전쟁 참전기 - Up and Down, In and Around North and South Korea

일본계 미국인으로 한국전쟁 당시 미 제24보병사단에 소속되어 포로 심문 임무를 수행했던 케네스 타시로(Kenneth Aijiro Tashiro)의 일기를 정리한 Up and Down, In and Around North and South Korea를 읽었습니다. 일본계 미국인의 기록이고 또 정보계열에서 복무했다고 하니 흥미가 당겨서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기대했던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1950년 7월 부터 10월 말 까지의 기록을 보면 단순히 그날 잡힌 포로의 숫자, 심문한 포로의 숫자만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을 뿐 입니다. 북한군 포로에 대한 내용 보다는 오히려 그날 먹은 음식에 대한 내용이 조금 더 상세한 듯 합니다. 1950년 7월 26일 일기에는 타시로가 처음 한국산 맥주를 마시고 악평한 내용이 실려있는데 맥주가 북한군 포로 보다 더 깊은 인상을 준 듯 합니다. 물론 이렇게 일상적인 내용만 자세한 아닙니다. 미 제24사단이 참패한 대전전투 시기의 일기는 매우 자세하게 적혀있습니다. 말단 병사였던 타시로도 패전의 충격을 강하게 받았는지 상세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대전에서 간신히 탈출해 숨을 돌리게 된 과수원에 사과와 복숭아가 가득했다는 내용에서는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느껴집니다. 

전쟁 초기에 일어났던 비극적인 일화도 눈에 띕니다. 7월 31일 일기에서는 한국 경찰이 북한 말씨를 쓰는 사람을 간첩으로 의심해 총으로 쏜 뒤 칼로 찌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 참상을 보다 못한 미군 병사가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이 사람을 사살했다고 합니다. 

타시로의 일기에서 가장 많은 내용은 역시 전쟁 중의 일상, 특히 먹는 문제에 관한 겁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때는 A레이션과 C레이션만 보급받았다고 무미건조하게 적고 있지만 왠지 짜증이 느껴집니다. 반면 취사차량이 추진되어 제대로 된 따듯한 식사를 먹게 되었다는 내용에서는 즐거움이 느껴집니다. 일본계 미국인이어서 그런지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쌀밥을 먹으려 하는 걸 보면 조금 짠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1950년 9월 18일 일기를 보면 미 제8군사령관 워커 중장이 제24사단을 방문하자 뭔가 일어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식사로 쌀밥과 데리야끼를 먹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중요한 작전이 있을것 같으니 일부러 쌀밥을 챙겨먹었다는 느낌을 받지요. 9월 28일 일기에는 북진하던 중 북한군에게서 쌀을 노획해서 밥을 지어먹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전투식량만 계속 먹었으니 굉장히 밥이 먹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중공군이 참전한 이후에는 일기의 분위기도 바뀝니다. 일기를 읽으면서 포로 심문을 담당한 병사가 포로 심문에 관해 자세한 기록을 남기지 않아서 조금 김이 샜는데 중공군 참전 이후에는 조금 바뀝니다. 1950년 11월 5일 일기에는 투항한 중공군 포로가 진술한 비교적 정확한 전투서열 정보와 병력 규모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951년 1월 1일 일기에도 중공군의 전투서열과 목표 같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공군 참전이 준 충격이 타시로 같은 사병에게도 큰 영향을 준거라고 볼 수 있겠죠. 유엔군이 반격을 시작한 이후에는 중공군 포로에 대한 내용도 북한군과 비슷하게 몇명이 잡혀왔고 몇명을 심문했다 정도로 간략해 집니다. 이건 충격에서 벗어났다는걸 보여주는 듯 하더군요. 

전투 병과가 아니라 통역이라는 특수한 보직을 담당하고 있으며 일본계라는 문화적 배경 때문에 굉장히 흥미로운 자료입니다. 처음에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나쁘지는 않네요.

2025년 3월 9일 일요일

밀리터리 밸런스 2025년도 판에서 추정한 러시아군 기갑차량 현황

밀리터리 밸런스에서 추정한 러시아군 전차 보유량(2014~2022)

밀리터리 밸런스 2023년도 판에서 추정한 러시아군 기갑차량 현황

밀리터리 밸런스 2024년도 판에서 추정한 러시아군 기갑차량 현황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좋지 않은 소식만 들려오는군요. 밀리터리 밸런스 2025년도판의 러시아 부분을 읽었는데 러시아군의 전차 보유량이 2024년에 비해 증가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군이 최소한 숫적인 측면에서는 전쟁 발발 당시의 수준을 회복한 셈입니다. 서방에서 보수적으로 추정한게 이 정도이고 러시아군의 실제 보유량은 알 수 없으니 찝찝합니다. 우크라이나 쪽에는 좋지 않은 징후네요.

 

먼저 러시아군의 전차 보유량 추정치입니다.

 

밀리터리 밸런스의 러시아군 전차 추정치

 

차종

2022

2023

2024

2025

2024

대비

육군

T-55A

0

0

30

70

+40

T-62

0

150

200

600

+400

T-64A/BV

0

0

100

50

-50

T-72A/AV

0

0

300

700

+400

T-72B/BA

650

400

T-72B3

850

500

650

470

-180

T-72B3M

530

250

T-80BV/U

310

100

150

200

+50

T-80BVM

170

100

100

270

+170

T-90A

350

200

100

미상

미상

T-90M

67

100

120

370

+250

합계

2,927

1,800

1,750

2,730+α

+980+α

해군보병대

t-55A

0

0

0

30

+30

T-72B

50

170

100

30

-70

T-72B3

150

T-72B3M

30

T-80BV

50

50

100

30

-70

T-80BVM

50

합계

330

220

200

90

-110

공수군

T-72B3

150

50

50

50

0

T-72B3M

10

T-90M

0

0

0

30

+30

합계

160

50

50

80

+30

치장물자

T-55A

0

0

0

2,900

-1,100

T-62

0

5,000

4,000

T-72, T-72A/B

7,000

T-80B/BV/U

3,000

T-90

200

합계

10,200

5,000

4,000

2,900

-1,100

전차 총계

13,617

7,070

6,000

5,800+α

-200+α

 

 전체적으로 보면 전차의 총 숫자는 완만하게 감소했지만 육군의 양적인 회복세가 눈에 띄게 두드러집니다. 전쟁 발발 당시 2,927대였던 것이 전쟁 초기의 참패로 격감했으나 2025년 추정치에서는 2,730대로 거의 전쟁 직전 수준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질적인 면에서는 T-55T-62의 비중이 높아졌지만 최신형 전차인 T-90M250대 이상 증가했습니다. 서방에서 추정한 것이 이 정도라면 러시아군이 작전적으로 의미 있는 수준의 기갑예비대를 확보했을 거라고 보는게 좋을 듯 합니다. T-55나 T-62 같은 구식 차량을 포함해도 치장물자의 숫자가 1,100대나 감소한 점도 주목할 만 합니다. 러시아가 지금과 같은 소모전을 다시 하는건 당분간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밀리터리 밸런스의 러시아군 보병전투차 추정치

 

차종

2022

2023

2024

2025

2024

대비

육군

BMP-1

450

500

800

750

-50

BMP-1AM

20

BMP-2

2,900

2,350

2,100

550

-1,550

BMP-2M

70

BMP-3/3M

640

400

350

650

+300

BTR-80A

100

100

100

100

0

BTR-82A/AM

1,000

800

700

1,230

+530

합계

5,180

4,150

4,050

3,280

-770

해군보병대

BMP-2

400

300

300

100

-200

BMP-3

80

70

70

0

-70

BMP-3F

40

40

40

40

0

BTR-82A

740

600

600

200

-400

합계

1,260

1,010

1,010

340

-670

공수군

BTR-82AM

130

120

120

120

0

BMD-2

1,000

600

500

650

+150

BMD-4M

351

250

200

200

0

합계

1,481

970

820

970

+150

치장물자

BMP-1

7,000

4,000

2,800

3,000

+200

BMP-2

1,500

BMD-1

0

0

0

150

+150

합계

8,500

4,000

2,800

3,150

+350

보병전투차 총계

16,421

10,130

8,680

7,740

-940

 

 보병전투차량의 감소 추세는 전반적으로 2024년에 비해서 완만해 진 편입니다.하지만 육군이 일선에서 운용하는 보병전투차량은 770대나 줄어들었습니다. 2024년 러시아군의 작전에서 보병전투차량의 소모가 매우 컸고 보충도 어려웠음을 보여줍니다. 치장물자의 숫자는 350대 증가한 걸로 평가를 조정했습니다.

 

밀리터리 밸런스의 러시아군 보병수송장갑차 추정치

 

차종

2022

2023

2024

2025

2024

대비

육군

BMO-T

미상

미상

미상

미상

미상

MT-LB

3,500

3,000

2,500

2,900

+400

MT-LB VM1K

50

50

BTR-60

800

800

800

600

-200

BTR-70

200

200

200

BTR-80

1,500

1,300

1,200

950

-250

타이푼-K 4x4

미상

미상

미상

미상

미상

타이푼-K 6x6

미상

미상

미상

미상

미상

합계

6,050+α

5,350+α

4,700+α

4,450+α

-250+α

해군보병대

MT-LB

300

250

250

250

0

BTR-80

100

50

50

100

+50

합계

400

300

300

350

+500

공수군

BTR-D

700

700

550

150

-400

BTR-MDM

122

100

90

150

+60

타이푼-VDV

미상

미상

미상

미상

미상

합계

822+α

700+α

640+α

300+α

-340+α

치장물자

MT-LB

2,000

2,000

1,000

1,200

+200

BTR-60/70

4,000

4,000

1,300

1,500

+200

BTR-80

0

0

0

합계

6,000

6,000

2,300

2,700

+400

장갑차 총계

13,272+α

12,350+α

7,940+α

7,800+α

-140+α

 

 보병수송장갑차량은 전체적으로 큰 변화가 없습니다.

 

 2024년 초 까지만 해도 러시아군의 기갑전력은 전쟁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거라는 관측이 많았는데 2025년 초 시점에서 최소한 전차 만큼은 숫자상으로 전쟁 직전 수준에 근접했습니다. 물론 T-55, T-62 같은 구식차량의 비중이 높아지긴 했습니다. 그래도 숫적인 규모는 매우 위협적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증가한 원인은 전차의 신규 생산 및 치장물자 재생의 증가, 과거에 비해 소극적인 전차 투입 등 여러가지 가 있을 겁니다. 2024년에는 러시아군이 과거와 달리 전차를 대규모로 투입해 큰 피해를 입은 사례를 찾아보기가 어려워졌지요. 러시아가 2025년 여름 공세를 재개할 텐데 다가올 공세의 양상이 어떠할 지 우려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