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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4일 목요일

NARA 소장 독일노획문서에 대한 잡상 - 2. 독일기갑총감부문서 T78 R617

NARA 소장 독일노획문서에 대한 잡상 - 1. 독일기갑총감부문서 T78 R616


NARA에서 소장하고 있는
독일기갑총감부문서, R617은 총 세개의 폴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폴더는 1944년 11월 부터 12월까지 육군과 공군소속 기갑사단의 월간현황보고서를 정리한 문서입니다. 두 번째 폴더는 1943년 부터 1944년 까지 수집한 외국의 기갑장비에 대한 정보를 수록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폴더는 1945년 육군소속 기동부대에 대한 여러가지 보고서를 수록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폴더는 지난번에 소개한 R616과 동일한 구성입니다. 다루고 있는 시기만 다를 뿐 구성은 동일하니 별도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특기할 만한 점이라면 각 기갑사단의 판터대대가 육본에서 배속해 준 다른 사단소속의 판터대대일 경우 별도로 정리가 되어 있어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두 번째 폴더는 외국의 기갑장비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소련, 미국, 영국의 기갑장비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는데 가장 풍부한 것은 노획해서 사용하던 이탈리아군의 기갑장비에 대한 정보입니다. 많은 사진과 함께 장비별로 분석해 평가한 보고서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소련군 기갑장비에 대한 내용은 거의 대부분 사진이지만 IS-2 전차와 T-34/85의 경우는 분석한 보고서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노획한 T-34/76을 시험하는 장면을 촬영한 사진이 몇 장 있습니다. 미국, 영국군의 장비는 사진만 들어있어서 그다지 활용도가 높지 않습니다.

세 번째 폴더는 1945년도의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이 폴더는 전쟁말기, 글자그대로 종전 직전인 1945년 4월 경의 몇몇 기갑부대의 편성과 현황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부대 편성과 이동 명령, 보급관계 문서에다 몇몇 보병사단에 대한 정보가 뒤섞여 있어 약간 두서가 없다는 느낌이 드는데 흥미로운 정보가 많습니다. 먼저 사단급 부대의 편제, 보충, 장비현황에 대한 자료 들입니다. 대략 다음과 같은 부대의 자료가 들어있습니다.

-제233예비기갑사단
-크람프니츠 기갑교육단Panzer-ausbildungsverband Krampnitz
-발트해 기갑교육단Panzer-ausbildungsverband Ostsee
-로도스 기갑척탄병여단
-총통척탄병사단
-총통경호사단
-제25기갑사단 전투단
-제10기갑척탄병사단
-제17기갑사단 전투단
-제21기갑사단
-제14기갑사단
-제25기갑척탄병사단
-펠트헤른할레 대전차여단Panzerjagd-brigade Feldherrnhalle
-1945년형 기갑사단  편제와 이에 맞춰 편성하도록 한 기갑사단(뮌헤베르크, 되베르리츠, 위터보크, 홀슈타인.) 이 중에서는 홀슈타인 기갑사단에 대한 정보가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특히 재미있는 자료로는 1945년 2월 10일에 작성된 제14기갑사단의 편제표가 있는데 1개 전차대대와 지원전력을 중점집단Schwerpunktgruppe으로 편성하고 차량화된 부대는 각각의 기갑척탄병연대의 단대호에 따라 2개 기갑여단으로 재편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1945년형 기갑사단 편제와도 유사해 보이는 면이 있어 재미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폴더에서 가장 눈에들어오는 자료는 1945년 3월과 4월의 각 집단군 예하 사단들의 편성을 도표로 정리한 것 입니다. 3월에는 G집단군과 E집단군, 4월에는 H집단군, G집단군, C집단군의 자료가 있습니다. 이 표에서는 각 사단별 대대급 전투력과 중화기 보유량을 정리해 놓았는데 C집단군의 경우에는 독일군에 소속된 이탈리아군 사단에 대한 정보도 들어있어 더욱 유용합니다. 또 C집단군 문서에는 예하사단들의 대전차대대 편성과 장비현황을 정리한 통계가 들어있습니다. 이밖에 각 야전군의 현황에 대한 한두장 정도의 짤막한 보고서가 중간 중간 어수선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약간 관련없다고 생각되는 자료도 들어있습니다. 이 폴더의 제일 앞부분에는 국방군총사령부의 B지휘참모부Führungsstab B의 구성와 국방군총사령부 경비대대Wachbattalion OKW의 편성명령에 대한 문서가 있습니다. 국방군총사령부 경비대대의 경우 차량화 보병대대인 만큼 기갑총감부도 관련이 있으니 이 폴더에 포함되었겠지요. 

그리고 기갑총감부 문서에 보병사단에 관한 정보가 많아서 좀 의외인데 1945년 4월 7일자로 된 제1604척탄병연대에 대한 평가를 담은 보고서가 그 중 하나입니다. 이 척탄병연대는 소련군 포로로 구성한 부대입니다. 그리고 보병사단 소속의 충원연대Auffrischungs-regiment에 대한 정보도 제법 됩니다.

아직 제대로 정리는 하지 못하고 한번 쭉 훑어 보기만 하는 중인데 중간 중간 섞여 있는 자잘한 보고서 중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습니다.

2013년 1월 4일 금요일

바그라티온 작전 직전 독일 제4군의 보병용 대전차화기 보유현황

독일 제4군의 문서를 읽다가 재미있는 통계를 발견했습니다. 바그라티온 작전 직전인 1944년 6월 10일에 집계한 독일 제4군 예하 사단의 장비 보유량에 대한 통계입니다. 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은 각 사단의 보병용 대전차화기 보유량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사단이 인가량을 훨씬 초과한 보병용 대전차화기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 입니다. 이 시기 독일군의 보병사단들을 살펴보면 사단 직할 대전차대대에 1개의 돌격포대가 배치되는 등 대전차전력이 크게 향상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보병용 대전차화기의 대량 배치도 그 일환이라고 하겠습니다.

※당시 중부집단군 소속 사단들의 중화기 현황은 이 글을 참고하십시오.

재미있는 통계입니다. 한번 보시죠.

표. 독일 제4군의 보병용 대전차화기 보유량(1944. 6. 10)

사단
판처슈렉
판처파우스트
대전차소총
인가량
30
1,000
-
18기갑척탄병사단
71
1,500
-
267보병사단
88
1,430
-
57보병사단
72
983
-
기갑척탄병사단FHH
88
1,550
-
12보병사단
80
1,179
5
31보병사단
119
1,147
-
337보병사단
86
1,182
4
110보병사단
66
1,236
-
260보병사단
141
1,366
6
25기갑척탄병사단
55
1,313
-
78돌격사단
58
1,248
3
[표출처 : “Armeeoberkomando 4, O.Qu./WuG(T), Az 72g, Nr.3794/44geh, Waffenlage”(1944.6.11), RG242 T312 R239]

2012년 7월 15일 일요일

푸펜도르프(Puffendorf) 전투에 대한 개괄

지난번에 쓴 “Rurfront 1944/45 - Hans Kramp”에 서 푸펜도르프 전투 이야기를 꺼낸 김에 이 전투에 대해 간략하게 썰을 풀어보겠습니다. 독일 자료를 보강해서 독일쪽의 시각도 반영한 글을 쓰고 싶은게 욕심이지만 필요한 자료를 언제 구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 일단은 미국의 시각에서 간략하게 소개를 해 보지요. 차후에 만족할 만한 독일측 자료를 구할 수 있으면 새로 한편 더 쓰도록 하겠습니다.

푸펜도르프Puffendorf 전투는 1944년 11월 17일 미군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선 독일 제47기갑군단 소속의 제9기갑사단과 제506중전차대대가 미군 제2기갑사단과 격돌한 기갑전이었습니다. 특히 이 전투는 미 제2기갑사단이 처음으로 독일군의 쾨니히스 티거를 전장에서 맞딱드리고 충격을 받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푸펜도르프 전투는 미군의 11월 공세의 일부였으므로 전반적인 상황을 먼저 설명하고 푸펜도르프 전투이야기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 공세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은 미육군 공간사 The Siegfried Line Campaign에 잘 되어 있으므로 배경 설명은 이 저작을 기준으로 하겠습니다.

작전명 퀸Queen으로 명명된 11월 공세에서 미 제2기갑사단은 제9군 예하 제19군단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미 제9군의 목표는 윌리히Jülich를 포함하여 뢰어Roer강에 도하점을 확보하는 것 이었습니다. 미 제9군은 윌리히 방면으로의 공세에 제19군단과 제13군단을 투입했는데 맥레인Raymond S. McLain중장이 지휘하는 제19군단은 제2기갑사단, 제29보병사단, 제30보병사단으로 편성되었으며 질렘Alvan Cullom Gillem, Jr.소장이 지휘하는 제13군단은 제84보병사단과 제102보병사단, 제113기병단으로 편성되었으며 제9군의 예비대로 제7기갑사단이 있었습니다. 이중 제19군단은 제9군의 주공으로서 윌리히를 점령하고 뢰어강을 도하하는 확보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제13군단은 제19군단의 좌익에서 공세를 시작해 리니히Linnich를 점령하고 뢰어강을 도하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미 제9군은 윌리히와 리니히를 확보하고 뢰어강을 도하하면 뒤셀도르프 방면으로 공세를 계속할 예정이었습니다.1) 이 지역의 지형은 라인강 유역의 전형적인 평야로 많은 도시와 마을이 산재해 있는게 특징입니다.(독일 서부의 라인강 유역을 가 보신 분들이라면 바로 머리에 떠오르실 겁니다.)

이 공세의 문제라면 공세 초기에 좁은 지구에 병력이 집중적으로 투입되어 공간 확보가 용이하지 않다는 것 이었는데 이때문에 주공인 제19군단이 진격하면서 제13군단이 전개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또한 가을비와 10월 말 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으로 인해 평야지대가 진창으로 돌변했습니다. 아직 10월이어서 지면이 얼어붙을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것은 심각한 문제였습니다.2)  때문에 전차를 포함한 기동장비의 정비에 많은 노력이 기울여 졌습니다. 특히 공세를 앞두고 전차의 궤도에 장착하는 “덕 빌Duck Bills”을 집중적으로 장착해서 제2기갑사단과 각 보병사단에 배속된 독립전차대대들은 공세 직전까지 셔먼의 4분의 3에 덕빌을 장착했다고 합니다.3)

미 제9군의 정면에는 독일 제15군 소속의 제12SS군단(제176보병사단, 제183국민척탄병사단)과 제81군단(제246국민척탄병사단, 제3기갑척탄병사단)이 배치되어 있었고 예비대로는 뤼트비츠Heinrich Diepold Georg Freiherr von Lüttwitz 기갑대장이 지휘하는 제47기갑군단(제9기갑사단, 제15기갑척탄병사단)이 있었습니다. 독일군은 미군의 의도를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윌리히 방면으로 진출하는 주공을 상대하기 위해 예비대인 제47기갑군단을 투입할 계획이었습니다.

퀸 작전은 악천후로 인해 연기된 끝에 1944년 11월 16일 개시되었습니다. 기상 문제로 인해 항공지원이 약간 축소된 규모로 실행됐고 이어서 공격준비포격이 실행되었습니다. 포격이 끝나자 주공인 미 제19군단의 제29보병사단과 제2기갑사단이 진격을 시작했습니다. 공격정면이 매우 좁았기 때문에 제2기갑사단은 B전투단CCB, Combat Command B만을 투입했습니다. B전투단은 공격 첫날 독일 제183국민척탄병사단 제330척탄병연대의 방어를 격파하고 푸펜도르프와 플로버리히Floverich를 점령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푸펜도르프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제2기갑사단 B전투단이 입은 손실은 4대의 전차가 진창에 기동불능이 되고 6대의 전차가 지뢰로 파손된 것 이었습니다. B전투단은 푸펜도르프와 플로버리히를 점령한 뒤 푸펜도르프 북쪽의 압바일러Apweiler 방 향으로 공격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매복한 독일군의 대전차포에 전차 7대(3대 완파, 4대 기동불능)와 다수의 보병을 상실했습니다.4) 첫날의 공격은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미 제2기갑사단은 독일 제183국민척탄병사단 제330척탄병연대에 괴멸적인 타격을 가했습니다. 미국측 기록에 따르면 B전투단이 독일 제330척탄병연대로 부터 잡은 포로만 570명에 달했습니다. 미 제2기갑사단은 첫날 공격에서 전사 21명, 실종 18명을 포함해 196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전차 35대를 잃었습니다.5)
반면 미 제2기갑사단의 우익, 즉 남쪽에서 공격을 개시한 제29보병사단은 상당한 손실을 입으면서 진격도 부진했습니다. 평야지대였기 때문에 보병들은 포격에 노출될 경우 공격을 제대로 할 수 가 없었으며 배속된 제747독립전차대대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보병을 지원하는 전차들은 보병 때문에 신속하게 돌진하지 못했고 전차에 포격이 집중하면서 전차의 엄호를 바라던 보병의 피해만 속출한 것 입니다. 제29보병사단이 공격에 투입한 제115보병연대와 제175보병연대는 1km도 전진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제115보병연대 C중대는 심각한 타격을 입어서 공격 첫날 중대원이 20명으로 줄어들었을 정도였습니다.6)

이렇게 미 제19군단의 공세 첫번째 날이 지나갔습니다. 독일군은 이 공격에 매우 신속히 반응했는데 11월 16일 오후 예비대인 제47기갑군단에 출동명령이 내려진 것 이었습니다. 특히 가장 강력한 부대인 엘버스펠트Harald Freiherr von Elverfeldt 소장이 지휘하는 제9기갑사단에게는 미 제2기갑사단의 돌파를 저지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미 제2기갑사단은 독일군이 기동예비를 투입한 사실을 아직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11월 17일 다음 목표인 게레온스바일러Gereonsweiler를 공격하기로 했고 양측의 기갑부대는 이렇게 격돌하게 됩니다.

1944년 11월 17일, 독일 제9기갑사단은 푸펜도르프와 이멘스도르프Imensdorf 방면으로 반격을 개시했습니다. 푸펜도르프 방면은 제11기갑척탄병연대가, 이멘스도르프 방면으로는 제10기갑척탄병연대가 공격을 담당했으며 여기에 제33전차연대와 제506중전차대대가 배속되었습니다.
이멘스도르프 방면으로 공격한 제10기갑척탄병연대는 이곳을 방어하던 미 제406보병연대와 제771대전차대대에 의해 비교적 간단히 격퇴되었습니다.7) 그러나 푸펜도르프 방면의 전투는 좀 격렬하게 전개됐습니다.
독일군 제33전차연대와 제11기갑척탄병연대의 푸펜도르프 공격은 이곳에서 공격을 위해 전개중이던 미 제2기갑사단 B전투단 제1임무부대에게는 기습이었습니다. 독일군이 먼저 미군을 향해 포격을 시작했고 이어 미군도 대응포격을 시작했기 때문에 양측의 보병들은 기동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8) 결국 전투는 글자 그대로 순수한 기갑전투로 진행되었습니다. 미군 전차들은 공격을 위해 전개하던 중에 기습을 받은데다 진창으로 인해 기동력이 저하되어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미국측의 표현에 따르면 독일 전차(판터)의 폭 넓은 궤도는 “얕은 자국만을 남기는데 미군의 전차 궤도는 참호를 만들지경”이었던 것 입니다. 게다가 독일군 전차의 강력한 방어력은 미군을 경악시켰습니다. 특히 제2기갑사단은 처음으로 쾨니히스티거와 교전을 했기 때문에 그 충격은 엄청났습니다. 한 전차장은 자신의 전차가 쾨니히스티거에 14발을 명중시켰음에도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한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B전투단은 18대의 셔먼과 7대의 스튜어트 경전차가 완파되었고 16대의 셔먼과 12대의 스튜어트 경전차가 격파되었습니다. 여기에 A전투단이 4대의 셔먼을 잃었습니다.9)  B전투단은 11대의 독일 전차를 격파했다고 추산했는데 미 제2기갑사단이 공세기간 중 격파한 판터가 5대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과장된 보고라고 생각이 됩니다. Tiger in Combat에 따르면 쾨니히스티거는 이날 전투에서 네대가 격파되었는데 3대는 제67포병연대의 야포 사격으로 파괴된 것 입니다.

푸펜도르프 전투는 미 제2기갑사단의 전차병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1945년 3월 20일 미 제2기갑사단장이 아이젠하워에게 제출한 “독일군과 미군의 기갑장비 비교평가에 관한 제2기갑사단의 장교 및 사병들의 의견(Personal Convictions of Individual Officers and Enlisted Men of 2nd Amrored Division as to Comparison of German and Aerican Armor and Equipment)”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실린 많은 증언들이 푸펜도르프 전투의 경험을 이야기 하고 있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10) 그리고 이 전투의 충격이 엄청났기 때문인지 미국 공간사에서도 이 전투를 다루는 저작이 두권이나 있을 정도입니다.



1) Charles B. MacDonald, The Siegfried Line Campaign, (USGPO, 1993), pp.516~517.
2) Donald E. Houston, Hell on Wheels : The 2nd Armored Divison, (Presidio, 1977), p.302.
3) Charles B. MacDonald, ibid., p.518.
4) Donald E. Houston, ibid., pp.307~309; Charles B. MacDonald, ibid., pp.526~527.
5) Charles B. MacDonald, ibid., p.530.
6) Harry Yeide, Steel Victory : The Heroic Story of America’s Independent Tank Battalions at War in Europe, (Presidio, 2003), p.161; Charles B. MacDonald, ibid., p.528.
7) Charles B. MacDonald, ibid., p.531.
8) Hans Kramp, Rurfront 1944/45 : Zweite Schlacht am Hubertuskreuz zwischen Wurm, Rur und inde, (Verlag Fred Gatzen Geilenkirchen, 1981), p.247; Charles B. MacDonald, ibid., pp.531~532.
9) Lida Mayo, The Ordnance Department : On Beachhead and Battlefront, (USGPO, 1991), pp.325~326; Donald E. Houston, ibid., pp.310~313.
10) Thomas L. Jentz의 Germany’s Panther Tank : The Quest for Combat Supremacy, pp.154~156에는 이 보고서에서 인용한 증언들이 많이 실려있습니다.

2012년 6월 7일 목요일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 독일중부집단군 소속 사단급 부대들의 기갑 및 대전차전력

지난번에 썼던 글, 후퇴전에서 기갑부대의 전차 손실에 대한 잡상 - 바그라티온 작전의 독일 제4, 5기갑사단의 경우에서 말씀드린 대로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 독일군의 기동부대 운용에 대한 글을 조금씩 쓰는 중 입니다. 쓰다보니 자료가 없어서 막히는 부분이 많아서 진도가 더딥니다. 그런데 자료를 다 모을때 까지 기다리다간 언제 다 쓸지 모르겠군요. 부족한 것 투성이이니 말입니다.

이 글에서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대략 정리가 된 사단급 부대들의 통계만 올려봅니다.  중전차대대와 돌격포여단, 독립 대전차대대Panzerjäger-Abteilung의 통계는 아직 집계가 완료되지 않아서 일단 제외했습니다. 아마 돌격포여단과 독립 대전차대대의 전력에 대한 집계가 끝나면 원래 계획했던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 독일군의 기동부대 운용에 대한 글을 본격적으로 쓸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바그라티온 작전당시 독일군의 사단급 부대들의 전력을 집계하는 것은 독립부대들에 비하면 월등히 수월한 일입니다. 그래서 일단은 현재 정리된 사단급 부대의 전력을 올려보려 합니다. 원래는 기갑차량만 집계를 하려 했는데 마더와 같은 자주대전차포를 집계에 넣자니 견인 대전차포들을 넣지 않는게 애매해서 모두 집계를 하기로 했습니다.

참고한 자료들이 집계한 날자가 일치하지 않아서 애매하기는 하지만 1944년 6월 20일에서 22일 사이에 독일 중부집단군 소속 사단들의 기갑 및 대전차 전력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사실상 바그라티온 작전에 크게 참여하지 않은 독일 제2군은 제외했습니다. 아래의 표에서 자주대전차포로 표기한 것은 대부분 마더이고 中대전차포는 대부분 50mm Pak38, 重대전차포는 대부분 75mm Pak40 입니다.


1. 육군본부 및 중부집단군 직할 예비대
3호전차
4호전차
돌격포
자주
대전차포
대전차포
대전차포
20기갑사단
7
83
28?
5?
기갑척탄병사단 FHH
11
26
4
12
14보병사단
8
31
707경비사단
1
6
[Gerd Niepold, Mittlere Ostfront Juni ‘44, (Mittler&Sohn, 1985), p.35;  Rolf Hinze, Der Zusammenbruch der Heeresgruppe Mitte im Osten 1944, (Motorbuch Verlag, 1980), p.282; Kamen Nevenkin, Fire Brigades : The Panzer Divisions 1943-1945, (J.J.Fedorowicz, 2008), p.464]

1번 표에서 20기갑사단의 대전차포 보유현황은 1944년 6월 1일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 바그라티온 작전개시당시의 현황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 합니다. 기갑척탄병사단 펠트헤른할레와 제14보병사단의 기갑차량 보유대수는 1944년 6월 20일 기준으로 작전개시 당시의 숫자와 큰 차이는 없을 것 입니다. 자주대전차포와 견인식대전차포의 통계는 위에 적은 힌체의 저작에서 인용한 것 입니다.


2. 제3기갑군 소속사단
3호전차
4호전차
돌격포
자주
대전차포
대전차포
대전차포
군직할대 및 기타
95보병사단
8
21
201경비사단
?
?
9군단
252보병사단
7
14
21
D분견군단
12
21
53군단
246보병사단
14
21
4공군야전사단
17
19
6공군야전사단
19
21
206보병사단
17
21
6군단
197보병사단
11
20
299보병사단
9
22
256보병사단
10
9
15
[Rolf Hinze, Der Zusammenbruch der Heeresgruppe Mitte im Osten 1944, (Motorbuch Verlag, 1980), pp.278~280]

2번표는 모두 힌체의 저작에서 인용한 것 입니다. 이 표에는 제3기갑군 소속 보병사단들에 돌격포가 배치되어 있지 않았다고 되어 있는데 한번더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D분견군단Korps-abteilung D의 대전차포는 모두 95보병사단에서 지원된 전력이라고 합니다.

3. 제4군 소속사단
3호전차
4호전차
돌격포
자주
대전차포
대전차포
대전차포
군직할대 및 기타
286경비사단
27군단
78돌격사단
31
18
?
?
25기갑척탄병사단
3
45
16(10)
8
26
260보병사단
5
25
39기갑군단
110보병사단
6
4
22
337보병사단
10
8
22
12보병사단
10
7
22
31보병사단
10
?
?
12군단
18기갑척탄병사단
2
32
267보병사단
9
2
22
57보병사단
6
18
[Gerd Niepold, Mittlere Ostfront Juni ‘44, (Mittler&Sohn, 1985), p.35; Rolf Hinze, Der Zusammenbruch der Heeresgruppe Mitte im Osten 1944, (Motorbuch Verlag, 1980), pp.281~283, Bernd Hartmann, Geschichte des Panzerregiments 5 1935~1943 und der Panzerabteilung 5 1943~1945, (2002)]

제4군은 바그라티온 작전이 개시될 당시 중부집단군에서 가장 강력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중부집단군이 보유하고 있던 480대의 돌격포 중에서 246대가 제4군에 집중되어 있었다고 하지요. 돌격포여단 외에도 보병사단들 상당수가 돌격포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제25기갑척탄병사단의 전력에 대한 서술에서 인용한 니폴트는 6월 20일에 자주대전차포 10대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힌체는 16대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5기갑척탄병사단은 제5전차대대에 돌격포 45대외에 3호 지휘전차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바그라티온 작전이 개시될 당시 정확한 보유대수를 아직 확인하지 못했는데 완편된 상태에서는 3대의 3호 지휘전차를 보유하는 것이 정상이므로 일단 그렇게 정리했습니다.


4. 제9군 소속사단
3호전차
4호전차
돌격포
자주
대전차포
대전차포
대전차포
35군단
134보병사단
9
2
22
296보병사단
4
22
6보병사단
10
4
21
383보병사단
4
21
45보병사단
10
18
41기갑군단
36보병사단
7
6
21
35보병사단
9
12
4
129보병사단
7
9
17
55군단
292보병사단
7
25
102보병사단
14
12
26
[Rolf Hinze, Der Zusammenbruch der Heeresgruppe Mitte im Osten 1944, (Motorbuch Verlag, 1980), pp.283~286]

바그라티온 작전이 개시될 즈음 제102보병사단은 보유하고 있던 돌격포들을 상급부대인 제55군단의 직할로 차출당했습니다.

이 표도 완전히 정리된 것이 아니라서 다른 자료를 구하는대로 수정을 할 예정입니다. 다음에는 작전 기간 중 증원된 기갑전력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혹시나 통계를 정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으면 중전차대대와 돌격포여단, 중대전차대대 선에서 정리를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글을 쓰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