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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7일 월요일

[번역글] Merkel and Whose Army?

폴더를 정리하다가 번역하려고  긁어놨다가 까맣게 잊어먹은 글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트럼프 당선 직후 멘붕해서 독일 찬양가를 부르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독일 연구자의 포린 폴리시 칼럼 “Merkel and Whose Army?”인데 내용이 하드 파워를 중시하는 제 취향에 딱 맞아 번역을 해 봅니다. 자국의 문제를 냉철하다 못해 시니컬하게 비판하는 점이 아주 좋습니다. 제목은 좀 의역을 했습니다.


**********
메르켈, 그런데 군대는?


한스 쿤드나니Hans Kundnani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독일에서 ‘엄마’라고 불린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선출된 직후 전 세계의 부정적인 반응을 고려하면, 조만간 다른 나라들도 메르켈을 그렇게 부를지 모른다. 트럼프가 미국이 “자유세계의 지도국” 역할을 그만둬야 한다는 뜻을 내비칠 수록 메르켈의 독일을 가장 유력한 대안이라고 보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메르켈 본인도 인정한 것 처럼 그런 생각은 말도 안된다. 메르켈은 지난 11월 20일 총리 4선에 도전하면서 한 연설에서도 이 생각을 밝힌 바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독일의 국력이 항상 유럽이라는 지역에 국한됐다는 점이다. 독일은 전 세계적 규모의 강대국이 아니며, 아시아에 있는 취약한 서방의 동맹국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니 독일은 미국을 대신해 ‘자유 유럽의 지도국’ 정도나 될 수 있을까 싶다.


사실 독일은 ‘자유 유럽의 지도국’ 조차 버겁다. 만약 리더쉽이라는 단어를 순수하게 ‘도덕적 상징성’에 국한한다면 독일은 그 기준을 충족할 지 모른다. 물론 그러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리더쉽에는 냉전 이래로 다른 국가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확고한 군사적 보장을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독일은 그럴 능력이 없다. 독일의 군사력은 최소한도의 수준인데다 독일인들은 그나마 가지고 있는 정치적, 문화적 국력 조차 발휘할 의지가 없다.
뉴욕 타임즈의 캐롤 지아코모는 미국 대선 직후 독일이 “나토에서 미국을 대신할 지 모른다”는 예측을 했다. 하지만 어떤 나라가 장갑차에 기관총 대신 검은색으로 칠한 나무막대기를 달고 다니는 나라에게 그 역할을 맡기려 들겠는가. 독일이 2014년 나토 훈련에서 그러지 않았던가.


그냥 단순히 독일과 미국의 국방비만 비교해도 답이 나온다. 2015년 기준으로  IISS의 통계를 보면 미국의 국방예산은 5975억 달러였다. 하지만 독일의 국방예산은 367억 달러로 미국의 12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독일의 국방예산은 프랑스(468억 달러)나 영국(562억 달러) 보다도 적다. 게다가 프랑스와 영국은 미국과 같은 핵무기 보유국이다. 현재 프랑스와 영국의 정치적 상황이 엉망이긴 해도, 군사력의 관점에서 보면 이 두 나라가 독일 보다는 ‘자유세계의 지도국’에 더 적합할 것이다.


독일의 국방예산 규모는 독일의 경제력과 비교했을때 더 심각하다. 나토 가맹국들은 GDP의 2퍼센트를 국방예산으로 지출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을 제외하면 오직 그리스, 에스토니아, 폴란드, 영국 등 4개국만이 이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독일은 고작 1.3퍼센트만 국방예산으로 지출했는데 이것은 나토 가맹국 중에서도 최하위 수준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1.2퍼센트 미만으로 까지 떨어졌다. 겨우 올해에 와서야 메르켈은 GDP의 2퍼센트를 국방비로 지출하겠다고 공표했다. 트럼프가 당선된 직후 독일 총리는 재차 이 목표를 표명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 목표를 달성할 것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독일 정부가 실천한 것은 2017년에 국방예산을 8퍼센트 증액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GDP의 고작 1.22퍼센트가 됐다.


국방예산도 그렇고 독일군의 능력도 마찬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냉전당시 독일연방군은 소련의 유럽 침공을 막기 위해 대규모의 병력을, 약 50만의 병력과 레오파르트2 전차 2,500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현재 독일연방군은 176,752명과 레오파르트2 전차 200대로 줄어들었다. 병력면에서 보면 130만에 달하는 미군의 7분의 1 남짓한 규모다. 독일 공군은 109대의 유로파이터 타이푼과 89대의 구식 토네이도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미국 공군은 수많은 F-35, F-22, F-16, F-15를 보유하고 있다. 해군을 비교하면 그 격차가 더 크다. 미 해군은 12개 항모전투단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 해군의 가장 강력한 군함은 프리킷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달랑 10척이다.


올해에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독일 국방부장관은 향후 15년간 군장비에 1300억 유로(14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부 예산은 신규장비 구매에 편성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예산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장비를 유지보수하는데 사용될 것이다. 일련의 보고서들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 장비들은 2010년 이래의 국방예산 감축으로 운용할 수 없게된 것들이다. 즉 독일군은 전투력을 증강하는게 아니라 겨우 현존 전력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예를들어 독일 공군의 유로파이터 109대 중 42대, NH90 헬리콥터는 겨우 2대만 운용가능한 상태이다. 그리고 2014년 나토훈련에서 있었던 악명높은 검은 나무막대기 사건의 원인은, 독일연방군 내부 보고서를 인용한 독일 공영방송 ARD 보도에 따르면 중기관총이 부족해서 발생한 일이었다.


독일의 낮은 국방예산 수준과 독일연방군의 부족한 능력은 독일의 전략 문화에 그 원인이 있다. 독일인은 물론 다른 나라 사람들도 이 원인이 독일이 과거 일으킨 군사적 재난에 대한 반동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의 현상은 지난 25년간 진행되었던 일이다. 독일은 1990년 통일 후 첫 10년간 군사력 사용 문제에서 프랑스 및 영국과 협력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런 경향은 독일이 1999년 코소보 전쟁에 개입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독일의 대외정책에서 “또다시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는 구호가 “아우슈비츠를 되풀이 하지 말자”로 바뀌는 듯 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르면서 독일의 군사 개입이 실패라는 인식이 확산되자 “또다시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는 기조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독일은 2011년 리비아 문제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많은 독일인들이 이 결정을 지지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사태라는 전략적 충격 조차 독일인들의 군사력 사용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못했다. 지난 여름 독일 외무장관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는 독일도 참여한 나토 군사훈련을 ‘무력 도발’이라고 했다.


독일인들은 자국을 평화세력(Friedensmacht)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 단어는 원래 냉전당시 동독이 자국을 칭하면서 사용했으며 1980년대에 녹색당에서 활동하다가 극우 정당으로 전향한 전직 독일공군 대령 알프레트 메흐터샤이머가 1993년 독일에 적용한 것이다. 독일인들은 미국 처럼 군인을 영예롭게 여기지 않는다. 미국 군인들은 공항에 들어설 때 미국인들로 부터 박수 갈채를 받지만 독일 군인은 그럴 일이 없다. 그래서 독일 연방군은 모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독일 국방부는 모병을 위해 TV 리얼리티 쇼 까지 끌어들였다. 지난 5월 라이엔 국방장관은 2023년까지 독일군을 7,000명 증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어떻게 이 목표를 달성할 것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독일인들의 태도도 조금 바뀐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최근 독일연방군사사-사회과학 연구소가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설문 대상자의 절반이 국방예산을 증액해야 한다고 답했는데 이것은 2000년 이래 처음 있는 현상이다. 그리고 대부분이 독일 연방군 증강을 지지했다. 하지만 독일인들이 발트 3국이나 폴란드 처럼 러시아를 위협으로 느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여론이 급변한 원인은 난민 문제였다. 난민 문제를 러시아 보다 독일에 더 위협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독일인들은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는 것 보다 난민이 독일을 휩쓰는 것을 더 우려해 안보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듯 하다. 최근 정부가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독일인의 다수는 안정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훈련 강화를 지지하고 있다. 전투 작전을 중요시 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물론 21세기에는 군사력보다 경제력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병합한 사건이나 아시아에서 전개되는 영토 분쟁과 군비경쟁에 미뤄 볼때 설득력이 없다. 독일 처럼 수출, 즉 해외 시장에 극단적으로 의존하는 국가에게 있어 경제력은 국력의 근원이면서 약점이다.


독일이 유럽 바깥에서는 군사력이건 경제력이건간에 하드파워를 발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메르켈은 기껏해야 ‘자유 세계의 도덕적 지도자’ 정도나 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최근 유로 위기에서 메르켈이 보인 행태를 보면 그 조차도 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메르켈을 성토할 그리스인, 스페인인, 이탈리아인이 넘쳐난다. 설사 메르켈이 자유세계의 지도자가 된다 해도 전체주의의 부활을 우려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보다는 이오시프 스탈린이 교황에 대해 했다는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그래 교황은 몇개 사단이나 가지고 있소?”

2016년 7월 27일 수요일

Robert Forczyk, Tank Warfare on the Eastern Front 1943-1945: Red Steamroller (Pen and Sword, 2016)

매우 흥미롭게 읽었던 책의 후속작이 나온다면 항상 기대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전작이 좋았다고 후속작도 좋으란 법은 없지요. Robert Forczyk의 Tank Warfare on the Eastern Front 1943-1945: Red Steamroller (Pen and Sword, 2016)는 딱 그런 경우입니다. 전작인 Tank Warfare on the Eastern Front 1941-1942: Schwerpunkt (Pen and Sword, 2014)가 매우 재미있어서 기대를 했으나 아마존 서평 부터 심상치 않더니 정말 실망스럽군요.

이 책의 단점은 이렇습니다.

1. 서술의 불균형.
- 제목은 Tank Warfare on the Eastern Front 1943~1945라고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1943년'에 대부분의 서술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제가 읽은 E-Book 기준으로 1943년도의 작전을 다루는 부분은 14쪽 부터 199쪽까지 인데, 1944년 1월 부터 8월까지의 작전을 서술하는데는 216~252쪽, 1944년 9월 부터 1945년 5월까지의 작전은 252~255쪽만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전쟁 말기의 작전을 불과 4쪽만 가지고 대충 서술하고 넘어가는데서는 거의 황당함을 느낄 지경입니다. 물론 저자가 1943년 이후의 작전은 중요성이 덜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으나 그럴 거라면 애시당초 책을 1943년의 기갑작전에 집중해서 썼어야 한다고 봅니다.

2. 매우 제한적인 1차사료 활용
- 이 책의 주석만으로 판단하면 1차사료 활용이 전작에 비해 격감했습니다. 대부분의 주석이 2차사료를 출처로 하고 있습니다. 전작의 경우도 1차사료 활용이 미국에 소장중인 독일 노획문서에 한정된다는 한계가 있긴 했습니다만 이 책은 독일 노획문서 조차도 그리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 않아 보입니다.
 사료 활용면에서 이렇다 할 장점이 없으니 책의 내용도 매우 평이하고 결론도 평이합니다. '독일이 연료 소모가 큰 중전차 생산에 집중한 것은 패착이다' '무장친위대와 공군이 많은 자원을 소모해 육군 기갑전력의 증강을 방해했다' '히틀러가 조장한 비효율적 관료제가 독일 군수산업에 악영향을 끼쳤다'와 같은 주장은 합리적이지만 기존의 연구자들도 충분히 지적해 온 문제입니다. 기존의 주장만을 답습하는데 그친다면 이 책의 의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 지 회의적이군요.


 다만 1943년과 1944년 초의 기갑작전이 잘 정리된 점은 충분한 장점입니다. 저는 뭔가 좀 새로운 내용이 없을까 기대해서 실망했지만, 개설서라는 측면에서는 무난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전작에 비해서는 확실히 실망스럽습니다.


2015년 11월 7일 토요일

Christer Bergström, The Battle of Britain:An Epic Conflict Revisited(Casemate, 2015)


아마존에 주문한 책 몇권이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훑어 보는 중 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건 큼지막한 판형의 The Battle of Britain:An Epic Conflict Revisited입니다. 저자인 Christer Bergström은 이 책에서 전작인 The Ardennes, 1944-1945: Hitler's Winter Offensive만큼이나 논쟁적인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

한줄로 요약하면 영국본토방공전에서 실제 전투 손실은 영국공군이 독일공군 보다 더 컸다는 것 입니다.

저자는 그동안 영국본토방공전에서 영국군이 독일군에 두배의 손실을 입혔다는 것이 잘못된 통계방식에 근거하고 있다고 봅니다. 즉 영국군의 손실은 전투기사령부 소속 전력만을 집계하고 있으며 그나마 300대 가까이 축소평가되어 있는 반면 독일공군은 전투기부대는 물론 폭격기부대를 합산했으며 여기에 전투손실과 비전투손실을 합쳐놓고 있어 그 피해가 과대평가됐다는 것 입니다.
저자는 영국본토방공전에서 실제 전투손실은 영국공군이 1800대, 독일공군이 1400대 정도로 손실비에서는 오히려 독일공군이 우세했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결론에 따르면 영국본토방공전 기간 중 영국공군의 전투손실은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전투기사령부: 약 1200~1300대
폭격기사령부: 349대
연안사령부(RAF Coastal Command): 148대

저자는 전투기사령부의 전투기 손실을 집계하면서 완전손실 1,023~1,135대에 1940년 7월 부터 10월까지 격추되었다가 회수되어 수리된 289대를 더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폭격기 사령부와 연안사령부의 손실을 합산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게 여겨지는데 전투기사령부의 손실을 다시 집계해야 한다는 주장은 상당히 논쟁이 될 것 같습니다.(주로 비판적인 방향에서요.) 반면 독일공군의 전투손실은 1940년 7월 10일 부터 10월 31일까지 1,369대라고 집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중에서 1,020대가 영국공군의 스핏파이어와 허리케인, 디파이언트에 격추되었다고 봅니다.

두 번째로 논쟁적인 주장은 Bf 110이 영국공군 전투기를 상대로 약간 우세한 교환비를 보였던 것이 아니냐는 것 입니다. 전후에 나온 저작들은 영국본토방공전에서 무겁고 둔한 Bf 110이 스핏파이어나 허리케인의 상대가 되지 못해 큰 손실을 입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와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것 입니다. 예를들어 영국공군 전투기의 손실 원인을 특정할 수 있는 1940년 8월 8일 부터 9월 7일까지의 기록을 보면 전투기에 의한 손실중 23%가 Bf 110에 의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독일측의 격추 주장과 거의 비슷하다는 것 입니다. 독일측의 기록에 따르면 7월 1일 부터 10월 31일까지 전투기의 격추전과 중 Bf 110이 27.8%, Bf 109가 72.2%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Bf 110이 전체 격추의 27.8%를 차지했다는 전제하에 손실비를 평가하면 1940년 7월 1일 부터 10월 31일까지 Bf 110은 196대가 전투에서 격추된 반면 같은 기간에 290대를 격추하여 1.5:1이라는 우세한 교환비를 달성했다고 추정합니다. 저자는 Bf 110이 다소 우세한 교환비를 보인 원인이 고고도에서 급강하하면서 일격이탈을 하는 전술을 택했기 때문이지 않겠냐는 추측을 합니다.

전반적으로는 영국본토방공전이 영국의 전략적 대승리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지만 항공작전의 전개 양상에 대해서는 도발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항공전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2014년 4월 13일 일요일

독일공군의 항공기 손실 통계 (1939.9~1944.12)

통계자료 하나를 소개합니다. 독일공군 제2폭격항공단의 부대사를 쓴 울프 발케Ulf Balke가 집계한 독일공군의 항공기 손실내역입니다. 이 블로그에서 몇차례 설명했듯 독일공군의 문서 중에서 전쟁 말기에 상실된 것이 많다 보니 전후 독일공군의 손실을 집계하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집계한 주체에 따라 통계가 차이를 보이는데 그 점을 감안하시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지난번에 올린 “독일 공군 전선부대의 항공기 손실 (1939.12~1945.2)”은 전투부대의 손실만 집계한 통계인데 이것은 훈련부대를 포함한 독일공군의 전체 손실을 다루고 있습니다. 1945년 통계가 빠진게 아쉽긴 합니다만 1944년까지는 그런대로 집계가 되어 있어 쓸만한 통계입니다. 지난번에 소개했던 표는 ‘전투손실’과 ‘비전투손실’로 구분을 했는데 이 표는 ‘완전손실’과 ‘파손’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표. 독일공군의 항공기 손실(1939.12~1944. 12)
년월
완전손실
파손
1939년 9월
241
?
1939년 10월
66
?
1939년 11월
83
?
1939년 12월
42
?
1940년 1월
55
?
1940년 2월
52
?
1940년 3월
85
107
1940년 4월
256
166
1940년 5월
1,069
297
1940년 6월
387
179
1940년 7월
394
252
1940년 8월
741
283
1940년 9월
681
299
1940년 10월
402
240
1940년 11월
274
199
1940년 12월
158
143
1941년 1월
145
117
1941년 2월
182
157
1941년 3월
270
224
1941년 4월
454
309
1941년 5월
404
295
1941년 6월
697
527
1941년 7월
905
602
1941년 8월
530
439
1941년 9월
489
366
1941년 10월
458
386
1941년 11월
349
307
1941년 12월
385
255
1942년 1월
429
241
1942년 2월
400
305
1942년 3월
505
421
1942년 4월
483
446
1942년 5월
735
501
1942년 6월
677
619
1942년 7월
706
543
1942년 8월
812
700
1942년 9월
699
602
1942년 10월
522
417
1942년 11월
506
265
1942년 12월
869
475
1943년 1월
941
525
1943년 2월
683
450
1943년 3월
747
611
1943년 4월
998
795
1943년 5월
1,219
855
1943년 6월
905
851
1943년 7월
1,387
1,081
1943년 8월
1,455
1,137
1943년 9월
1,246
870
1943년 10월
1,278
853
1943년 11월
1,020
682
1943년 12월
814
539
1944년 1월
1,239
873
1944년 2월
1,316
975
1944년 3월
1,662
1,268
1944년 4월
1,956
1,532
1944년 5월
1,845
1,486
1944년 6월
1,860
1,524
1944년 7월
2,156
1,649
1944년 8월
1,983
1,355
1944년 9월
1,540
886
1944년 10월
1,153
807
1944년 11월
1,204
828
1944년 12월
1,517
1,037
[표출처 : 1939년 9월 부터 1941년 12월까지는 Ulf Balke, Der Luftkrieg in Europa 1939~1941, 1권(Bechtermünz Verlag, 1997), p.429, 1942년 1월 부터 1944년 12월까지는 같은 책 2권 p.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