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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21일 토요일

露西亞 國王 흐루쇼프의 兵車 無用論

케네디 4년에 노서아 국왕 흐루쇼프가 여러 신료들에게 군사를 줄여 백성의 삶을 편하게 하라 하교했다. 그리고 특히 병거가 너무 많다 하니 그 말이 다음과 같았다.

지난 전쟁에서 전차는 공격의 중핵으로, 그리고 방어의 지주로서 활약했습니다. 전차는 소화기에 대해서 무적이었고 단지 명중율이 낮은 대포만이 전차를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쟁말기에 모든 상황이 돌변했습니다. 적은 판쩌 파우스트로 아군의 전차들을 손쉽게 격파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우리의 숫적 우세가 너무나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이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오늘날 대전차 로켓은 전차의 최대 사정거리인 수 킬로미터 밖에서도 전차를 격파할 수 있습니다. 전차와 자주포, 병력수송장갑차는 이제 병사들에게 덫이 될 뿐입니다. 왜 이런 상황에서 쓸데없이 전차와 장갑차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합니까? 수십억 루블이 낭비되고 있습니다.

Roger R. Reese, Red Commanders : A social history of the soviet army officer corps, 1919~1991, p190~191


결론.

병거의 왕국 노서아에 병거 무용론을 일으킨 판쩌 파우스트는 역시 위대한 병기다???

2006년 10월 16일 월요일

Die Gefangenen - Guido Knopp

귀도 크놉(Guido Knopp)의 저작들은 대부분 방송용 다큐멘터리와 함께 기획됐고 독일 제 3제국 시기를 다루고 있다. 이중 일부는 국내에도 번역된 바 있다.

Die Gefangenen은 2003년 ZDF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로 편성표를 보니 책 또한 다큐멘터리와 같은 구성을 취하고 있는 것 같다. 하긴, 그러고 보니 이건 크놉의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다. 어쨌건 2003년에 한 이 다큐멘터리는 아직 보지 못했으니 뭐라고 말 할건 없고 간단히 이 책을 훑어본 느낌만 적어볼까 한다.

첫 장은 스탈린그라드에서 생포된 포로들부터 시작해 바그라티온 작전까지 동부전선에서 생포된 포로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주제는 잘 알려져 있고 다른 저작들에서도 많이 다루는지라 특별히 흥미가 당기진 않는다.
두 번째 장은 영국에 잡힌 포로들의 이야기이고 세 번째 장은 소련에 강제 이송된 민간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강제 이송된 민간인들의 이야기는 이전에는 단편적으로 접했는데 이 책에서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네 번째 장은 포로생활치고는 팔자가 늘어졌다는 미국의 포로수용소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히 이 장에는 재미있는 사진이 많다.(대표적인 것이라면 역시 콜라를 마시면서 즐거워하는 독일 포로들. 코카콜라 광고에 이 사진을 써먹으면 어떨가?)
다섯번째 장은 전쟁 종결 직후 독일내의 임시수용소에 수용된 포로들의 생고생을 다루고 있다. 이 주제는 우익 작가들이 “아이젠하워의 학살” 같은 선정적인 제목으로 즐겨 써먹는 소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프랑스에 끌려간 포로들의 이야기도 있는데 원래 유태인의 추방지로 고려됐던 마다가스카르에 독일 포로수용소가 설치됐다는 것은 꽤 아이러니하다.
마지막 장은 포로들, 특히 소련에 수용됐던 포로들의 귀환 과정을 다루고 있다. 어떻게 보면 2차 대전은 사실상 이 때 끝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전쟁으로 완전히 붕괴된 한 세대의 이야기가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장이다.

간혹 2차 대전당시 독일인들이 겪은 고난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독일은 전범국이네” 어쩌구 하는 이야기들을 신물나게 듣게 된다. 글쎄? 하지만 역사적인 고통이 어떤 한 집단의 전유물 인 것 처럼 떠드는 것 보다 더한 위선이 어디 있겠는가. 어차피 전쟁은 모든 사람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 뿐이다. 가끔씩 손가락질 당하는 사람들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여 보는 것도 정신건강엔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를 딱딱하지 않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 이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오늘부터 조금씩 번역을 해 볼 생각이다.

2006년 10월 6일 금요일

공산당 서기장 = 짜르

우리의 스탈린 전하께서 1935년 대비마마를 알현했을 때의 일화

"어머니, 왜 이렇게 세게 때리시는 건가요?”

스탈린이 어머니에게 묻자 케케(스탈린 어머니의 애칭)은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너무 장해서 그런단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이쇼프, 지금 네가 하는 일이 도데체 뭐냐?”

스탈린의 초상은 전국 각지에 붙어 있었기 때문에 스탈린이 어떤 사람인가는 누구라도 다 알고 있었다. 케케는 그저 자기 아들의 자랑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스탈린은 이렇게 대답했다.

“어머니. 짜르를 기억하시죠? 저는 지금 짜르와 같은 위치에 있답니다.”

케케의 소박한 대답은 너무나 웃기는 것이었다.

“그래? 성직자를 하지 않은게 천만 다행이구나!”

Edvard Radzinsky, Stalin, Anchor Books, 1996, 24p


공산당 서기장과 짜르가 같은 것이라는 것은 이미 스탈린 동지께서 교시하셨던 것이다...

2006년 8월 19일 토요일

NSC-68의 소련 핵 전력 평가

업무상(?) NSC-68을 읽는 중이다. 거의 60년 전에 생산된 문서이니 만큼 냉전 이후 공개된 실상과 비교하며 읽어 보면 참 재미있다.

이 중 흥미로운 부분은 소련의 핵탄두 보유에 대한 예상이다. NSC-68 19쪽에는 소련의 핵 전력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전략)

현재 소련의 핵 전력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CIA, 국무성, 육군, 해군, 공군 및 원자력에너지위원회는 소련의 원자폭탄 생산능력을 다음과 같이 추산하고 있다.

1950년 중반까지 : 10-20
1951년 중반까지 : 25-45
1952년 중반까지 : 45-90
1953년 중반까지 : 70-135
1954년 중반까지 : 200

(후략)….


그렇다면 당시 실제 소련의 핵무기 보유량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1950년 : 5발
1951년 : 25발
1952년 : 50발
1953년 : 120발
1954년 : 150발

참고로 같은 시기 미국의 핵무기 보유량은 다음과 같았다.

1950년 : 298발
1951년 : 438발
1952년 : 832발
1953년 : 1,161발
1954년 : 1,630발

소련의 핵탄두 보유량이 미국을 능가하는 것은 1977년의 일로서 미국이 1967년을 기점으로 핵탄두 보유량을 줄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론은?

大美利堅國 萬萬歲!!!

2006년 8월 17일 목요일

The Soviet High Command : A Military-Political History, 1918-1941 by John Erickson

어쩌다 보니 사정상 오랫만에 이 책을 더 읽게 됐다. 벌써부터 두꺼운 책 읽은 것이 귀찮아져 압박을 느끼던 차에 이 물건을 읽게 돼 압박이 더 심해지는 중이다.

하여튼,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 에릭슨은 대단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냉전시기에 이 정도로 자료 조사를 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일 아닌가. 책장을 넘길 때 마다 출간된 지 40년이 넘은 책에 위압감 마저 느낀다.

당시에는 상당한 수작으로 평가 받았던 매킨토시의 저작도 세월의 압박을 견디진 못 했는데 에릭슨의 저작들은 수많은 일차 사료가 공개된 90년대 이후에도 호평을 받는 것을 보면 역시 에릭슨은 '本座'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책 뒷부분에 달린 부록들은 모르는 사람에게 유식한 척 하고 싶을 때 베껴 쓰기 딱 좋게 정리도 잘 돼 있어 나같이 게으른자에게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세월의 압박으로 중간 중간 저자가 확실치 않다고 인정한 부분도 있지만 당분간 영어권에서 2차대전 이전의 소련 군사사에 관해 이정도의 저작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물론 나의 어설픈 짐작이 맞지 않는다면 더 좋겠지만) 비교적 최근에 나온 짐케의 저작이 비싼 가격에 비해 다소 실망을 안겨 준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두꺼운 책이 모두 멋진 책은 아니지만 멋진 책 중에는 두꺼운 책이 많은 것 같다.

2006년 5월 31일 수요일

Ivan's War - Catherine Merridale

개인적으로 “러시아”라고 하면 풍기는 이미지는 뭔가 있어 보이는 나라, 문학과 예술의나라, 또는 이젠 망해버린 사회주의의 심장 등 무거운 것들이다.(사람에 따라 “헐값에 건드릴 수 있는 러시아 여자를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전반적으로 볼 때 국내에서는 아직 러시아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은 것 같다. 아무래도 냉전기간 동안 북한을 지원한 “악의 제국”이란 이미지가 강해서 일 듯 싶다.
또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보다 러시아어를 하는 사람의 숫자가 너무 적다 보니 러시아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가 미국에 비해 극히 적었다.
그 결과 2차 세계대전에서도 소련, 러시아의 희생과 기여는 평가 절하 돼 왔는데 수년 전부터 영국과 미국에서 출간된 훌륭한 독소전 관련 서적들이 출간되기 시작해 이런 인식들이 조금씩 바뀌어 가는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러시아 인’의 이야기를 알 수 있는 책들은 국내에 제대로 출간되지 않은 것 같다.

사실 내 개인적으로도 2차 대전사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은 해 왔지만 정작 소련에 대해 읽은 책들은 거의 대부분 거시적인 정책, 사회구조, 혹은 특정 전투를 다룬 딱딱한 것 들 뿐 이었고 그 전쟁을 치룬 ‘인간’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해가 없었다.

Catherine Merridale의 Ivan’s War는 이런 점에서 매우 반가운 서적이다.
Ivan’s War는 책의 제목인 이반(동성애자가 아니다!!!)으로 대표되는 소련인들이 전쟁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시간의 경과에 따라 풀어 쓰고 있다.
Merridale은 수많은 참전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 하고 기밀 해제된 문서 보관소의 일차사료들을 뒤지면서 쉽고 재미있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은 책을 써 냈다.

그리 긴 책은 아니지만 이 책은 전투, 부상, 죽음, 전장의 일상, 귀환 그리고 사랑 등 인간이 전쟁에서 겪을 수 있을 법한 이야기들을 거의 다루고 있다.

책에 나오는 소련인들(대부분 러시아인들 이지만 간혹 소수민족의 이야기도 있다)의 이야기는 전쟁 이후 공식화된 소련식의 ‘영웅’ 또는 독일이나 미국이 그리는 ‘잔혹한 야만인’과는 거리가 멀다.
소련인들 역시 다른 나라의 인간들 처럼 전투마다 공포를 느끼며 살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전쟁과 군대라는 거대한 바퀴에 깔려 으스러질 뿐이다.
소련이 붕괴되기 까지는 결코 공식적으로 언급할 수도 없었던 죄수부대 이야기나 소련 정부에 반항하는 우크라이나와 리투아니아의 농민들, 조국을 위해 희생했지만 반역자로 낙인 찍힌 전쟁포로들, 승리한 조국에서 한몫 챙겨보고자 갑자기 애국자로 돌변하는 1943년의 빨치산 등 ‘정말로 인간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흔히 “러시아인의 야만성”이 원인으로 설명되는 1945년 독일의 대학살에 대한 러시아 인들의 입장도 흥미롭다.
많은 병사들이 독일에 대한 적개심과 함께 무의식적으로 경외하던 독일에 대한 승리감,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감정들은 러시아, 소련인들이 민족주의와 소련 정부의 선전과 함께 확대 재생산 됐는데 독일문화를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퇴폐적인 문화로, 소련은 사회주의로 건강한 정신을 가지게 된 사회라는 인식을 가진 병사들이 많았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영국이나 벨기에가 아프리카에서 학살을 자행할 때 학살대상에 대해 문화적 우월감을 가졌기 때문에 학살이 가능했던 것 처럼 소련인들도 승리를 거듭하면서 가지게 된 독일에 대한 우월감이 학살의 동인 중 하나로 작용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전쟁이 끝난 다음의 삶을 한 장을 할애해 다루고 있다.
1945년에 귀국한 병사들은 승리한 영웅들로 환영을 받았지만 그 이후에 귀국한 병사들은 아무런 환영 없이 전쟁으로 피폐해진 조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적을 무찌르고 승리했지만 고향에 돌아와 남은 것이 집조차 없어 구덩이를 파고 생활하는 아내와 자식들 이라면, ‘조국’을 위해 희생한 상이 군인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안전을 해친다는 이유로 강제로 도시에서 추방된 사람이라면 과연 그 누가 승리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까?
전쟁이 끝난 뒤 우크라이나를 덮친 1946년의 대기근이 수많은 아사자를 냈다는 대목에서는 제 3자의 입장에서도 뭐라 말 할 수 없는 비참함이 느껴질 뿐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러시아인들에 대해 단순한 감정(혐오감, 경외감 등등)을 느끼기 보다는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술자리에서 거창한 ‘국가 전략’을 논하는 멍청이들이나 주석궁으로 탱크를 몰고 가자는 정신병자들을 볼 때 마다 이런 책들이 많이 번역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저자는 책 마지막 부분을 치열한 격전에 펼쳐진 프로호로브카의 박물관을 방문했던 이야기로 마무리 하고 있다.
매우 감동적이어서 그대로 인용해 본다.

나는 러시아의 격전지였던 프로호로브카 박물관의 큐레이터에게 이렇게 물어봤다. 
“참전용사들이 박물관을 찿으면 어떤 이야기를 하나요?”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분들은 말씀을 많이 하지 않으신답니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어떨 땐 그냥 서 있기만 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지요.”

2006년 4월 25일 화요일

두개의 군대, 두개의 혁명(재탕+약간 수정)

정치는 현실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래서 그런지 혁명을 꿈꾸는 이상주의자들도 정권을 잡으면 그들이 뒤엎은 세력들 보다 더 정치적이 된다. 하기사. 대한민국의 얼치기 혁명가들은 이상도 없는 주제에 현실 감각도 없지...
이상주의자들이 가장 현실과 타협을 잘 하게 되는 것이 정치고 정치 중에서도 군사문제가 최고인 듯 싶다.
그 사례를 가장 잘 보여주는건 아마도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오늘날 책을 통해서 접하는 절대 왕정시기 일반 사병의 군대 생활은 안락하고 좋다고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던 것 같다. 기본적인 의식주 자체가 형편 없었고 당시의 보병 전술 상 엄한 군기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군대내에서 구타도 공식적으로 장려 되었다고 하니까. 1764년에 베를린을 방문했던 보스웰(James Boswell)이란 영국인은 한 프로이센 보병연대의 훈련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유럽 최고의 군대라는 프로이센 군대의 훈련을 참관한 보스웰의 소감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공원에서 한 프로이센군 연대가 훈련하는 것을 구경했다. 병사들은 매우 겁에 질려있는 것 같았다. 병사들은 훈련 중 조금만 실수하더라도 개처럼 두들겨 맞았다.”

평상시의 생활이 이렇게 가혹하니 전쟁 때는 오죽 했을까. 7년 전쟁 다시 프로이센군의 병력 손실 중에서 약 8만 명이 탈영으로 인한 손실이었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프로이센군대의 탈영에 대해 연구한 단행본도 한 권 있는 모양이다.

이러던 와중에 프랑스 혁명이 터졌다. 혁명으로 멋진 신세계로 변한 프랑스에서는 군대까지 멋진 신세계가 돼 버렸다. 평소 군생활이 비참했으니 이참에 한번 갈아보자!! 하는 게 정상이긴 하겠지만 그게 좀 정도가 지나쳤던 것 같다. 혁명 덕택에 대부분 귀족 출신인 장교들의 권위는 땅바닥에 처 박히게 됐다.
혁명으로 귀족들의 권위를 지탱해주던 사회 구조가 통째로 붕괴되었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1788년 당시 9,478명이던 장교 중 약 6,000명 정도가 1791년에서 1792년 사이에 군대를 그만 두고 외국으로 도망치거나 숨어 버렸다고 한다.

그 덕택에 프랑스 군대는 매우~ 매우~ 자율적인 군대가 되어 버렸다. 이제 장교를 병사들의 투표로 선출하고 갈아 치워 버렸으니 군대꼴이 제대로 돌아갈리가 없었다. 빠 드 깔레 연대 1 대대는 고다르(Godart)라는 부사관을 대대장으로 선출했는데 고다르가 훈련을 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당장 들고 일어나서 고다르를 교수형에 처하려 했다고 한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다행히도 고다르는 목숨을 건져서 나폴레옹이 황제가 됐을 때는 장군의 반열에 올랐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많은 병사들이 자율적으로 험악하게 나가니 차라리 탈영을 하는 병사는 양반축에 들어갔다. 물론 탈영도 너무 많이 하는 게 문제이긴 했지만.
혁명 직전에 182,000명이었던 정규군은 1792년에는 11만 명으로 격감했다. 많은 병사들은 귀찮게 자율적으로 부대를 운영하는 것 보다는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쪽을 더 선호했던 모양이다. 아마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어쨌든 자유를 외치던 혁명가들도 혁명 전쟁을 치루기 위해서는 군대의 규율을 바로 잡아야 했다. 결국 자유를 외치던 혁명가들은 체제 유지를 위해서 군사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고 그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잘 잡힌 규율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
1799년에 나폴레옹이 시작한 군대 개혁이란 솔직히 말해서 구체제하의 엄격한 규율을 다시 도입하는 것 이었다. 나중에 나폴레옹은 헌병이야 말로 군대의 규율을 유지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 했다고 한다. 결국 혁명으로 인한 자유의 열기는 최소한 군대에서는 완전히 사그러 들었다.

사회는 자유로울 수 있어도 군대는 결코 그럴 수가 없는 조직이니.

그리고 대략 130년 뒤에 역사는 비슷하게 반복 됐다.

1917년, 이번에는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러시아 군대도 구타라면 유럽에서 손꼽히는 국가였다. 요즘도 러시아 군대의 구타는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하는걸 보면 러시아 군대는 별로 진보한 것 같진 않지만. 군인에 대한 처우도 좋지 않아서 하급 장교들은 기차의 2등 칸을 탈 수가 없었다고 한다. 예산 절감을 위해서 하급 장교들에게는 3등칸 요금만 지급했다나?

러시아는 표면상으로는 19세기 중반의 농노 해방 등의 개혁을 취해서 18세기 말의 프랑스 같은 체제는 아니었다. 실제로 장교 집단의 계급 구성을 보면 대령급 이하 장교의 40%는 과거의 농노 계급 출신이었다고 한다. 특히 보병 병과는 과거 농노였던 계층 출신의 장교들이 많았다고 한다.(상대적으로 기병 병과는 귀족 출신이 많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근위사단 같은 핵심 보직은 귀족 출신 장교들이 차지했다. 농노 계층 출신 장교들의 교육 수준과 자질이 낮았기 때문에 귀족 출신 장교들의 엘리트 의식은 대단했다고 한다. 그래봐야 서유럽,특히 독일 장교단과 비교하면 러시아 장교들의 수준은 도토리 키재기 였지만.

러시아도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혁명이 터지자 군대의 규율이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다. 이미 2월 혁명당시 군대는 충분히 엉망이 된 상태였다. 전쟁에 염증을 느낀 병사들은 제멋대로 탈영해서 귀향해 버리거나 부대에 남아 있더라도 장교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레닌이 10월 혁명을 일으킬 무렵에는 러시아 군대의 상태가 충분히 엉망이었다. 볼셰비키들의 혁명을 진압하기 위해서 출동한 정부군은 오히려 사병들이 볼셰비키를 지지해 버리면서 그대로 붕괴되었고 총사령관 두호닌은 볼셰비키를 지지하는 병사들에게 체포되어 모길료프역 앞에서 총살당했다고 한다. 오오 혁명 만세! 혁명 직후 볼셰비키는 장교 계급을 폐지하고 호칭을 사단지휘관, 연대지휘관 같은 식으로 바꿔 버렸다. 그리고 역시 프랑스 처럼 지휘관을 투표로 선출했다. 대개는 인기 많은 부사관들이 중대장이나 포대장으로 많이 선출 되었다고 한다. 35 보병사단의 경우 혁명 전에는 상병이었던 병사가 투표에 의해 사단 참모장으로 선출 됐다고 한다.

귀족 출신 장교들을 불신했던 자코뱅들처럼 볼셰비키들도 짜르 체제에서 양성된 장교들을 혐오했다. 혁명 직후에 약 8,000명의 장교가 볼셰비키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지만 많은 볼셰비키들은 노동자 계급으로 새로운 장교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교들에게는 다행히도 내전이라는 불씨가 볼셰비키들의 발등에 떨어졌다. 막상 전쟁이 터지자 투표로 선출된 지휘관들 상당수는 지휘 능력이 없다는게 드러났고 지나치게 “민주화된” 군대는 제대로 전투를 하지 못 했다.
트로츠키는 내전 초반에 30개 사단을 조직할 계획이었지만 전황이 악화되자 1918년 5월에는 추가로 58개 사단을 더 편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신규 부대 편성은 한시가 급한 문제였기 때문에 짜르 시절의 장교들은 거의 대부분 지원만 하면 받아 들여졌다. 결국 구 체제의 장교들은 슬금 슬쩍 새로운 체제에 편입될 수 있었다. 내전이 끝난 뒤에 공산당은 다시 장교들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도 30년대에 들어가면서 전쟁 위기가 고조되자 중단되고 장교의 권위는 상승했다. 그리고 2차 대전을 거친 뒤 등장한 “소련군(소련 군대가 정식으로 “소련군”이라고 불린 것은 2차 대전 이후라고 한다.)”은 장교의 권위가 절대적이 된 강압적인 군대가 돼 버렸다.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이 잘 보여주듯이 혁명은 정치 논리만 가지고도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전쟁은 정치 논리만 가지고는 절대 수행할 수 없는 일 이다.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러시아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은 구 체제의 군사 엘리트들을 불신했지만 결국에는 자신들이 만든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구체제 하에서 육성된 군사 엘리트들에 의존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했다. 정말 세상은 재미있는 곳이다. 뭐, 이런 몇 개의 사례를 보면 역사라는 건 돌고 도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이 글을 쓰면서 참고한 자료는 대략 아래와 같다.

Bruce W Menning, Bayonets before Bullets : The Imperial Russian Army 1861-1914
Gunther E. Rothenberg, The Art of Warfate in the Age of Napoleon
John Erickson, The Soviet High Command : A military-political history 1918-1941
Mark von Hagen, Soldiers in the Proletarian Dictatorship : The Red Army and the Soviet Socialist State, 1917-1930
M. S. Anderson, War and Society in Europe of the old regime 1618-1789
Roger R. Reese, Red Commanders
Victor Serge, 러시아 혁명의 진실(한국어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