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利堅史] 권42 빌 클린턴 본기
변화(Change) 원년(오바마 원년) 3월, 북괴가 두만강을 유람하던 '로라 링'과 '유나 리'라는 부녀자 두 명을 사로잡아 평양으로 끌고 간 일로 천하가 소란스러웠다. 조정에서도 이들을 구할 방도가 없어 근심만 할 뿐이었다.
클린턴 태상황제가 이 소식을 듣고 말하였다.
"백성들의 어버이가 되어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곧 예부(禮部)에 전하여 평양으로 가 부녀자들을 구해 올 뜻을 밝혔다.
변화 원년 8월, 태상황제가 비거(飛車)를 타고 평양에 이르니 추장 김정일이 크게 놀랐다.
"미리견의 태상황제는 호색한이라 들었는데 지금 평양에 온 것을 보니 필히 기쁨조를 취하러 온 것이다."
김정일이 근심하니 여러 두목들이 앞다투어 간하였다.
"미리견의 태상황제는 호색한이라 평양에 오래 머무르면 반드시 큰 화가 될 것입니다. 평양에 처녀의 씨가 마르기전에 일전에 사로잡은 미리견의 부녀자들을 돌려보내소서."
김정일이 두목들의 말을 옳게 여겨 사로잡은 부녀자들을 돌려보냈다.
클린턴 태상황제가 사로잡힌 부녀자들을 구해 돌아오니 모든 백성들이 그 덕을 찬양하였다.
그러나 부녀자의 가족들은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니 이웃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었다.
"이렇게 기쁜 날에 오히려 수심이 가득하니 어찌 된 일입니까?"
로라 링의 모친이 눈물을 흘리며 말 하였다.
"태상황께서 색을 밝히는것 온 천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제 여식이 태상황 폐하와 같은 비거에 탔으니 어찌 근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웃 사람들도 그 말을 듣고 안색이 변하였다.
2009년 8월 16일 일요일
2009년 8월 14일 금요일
미국 정부의 동방부대 소속 포로 처리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포로 관리에 대한 자료를 찾던 중 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찾았습니다. 한국전쟁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입니다만. 2차 대전 중 동방부대(Osttruppen) 포로에 대한 내용입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그래도 참고할 만한 내용이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소련 국적의 독일군 포로에 대한 내용은 이게 전부여서 매우 아쉽습니다만 그래도 흥미로운 점이 있긴 합니다. 먼저 미국으로 이송된 동방부대 소속의 포로가 4,300명 정도라는 겁니다. 생각보다는 적은 숫자이고 외교적으로 특별한 사례이기 때문에 만약 뒤에 관련 연구를 한다면 의외로 수월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소련정부와 송환 협상도 이루어 졌으니 관련 문서가 별도로 분류되어 있을 것 같네요.
두 번째는 소련 정부가 초기에 이들의 존재를 부인했다는 점 입니다. 한 두명도 아니고 수천명의 자국 국민들이 독일군의 편에 서서 총을 들었다는게 알려지면 이래 저래 난감할 것 입니다. 그래도 반역자들을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최대한 빨리 송환하려고 한 모양입니다.
격리를 하기 이전인 전쟁 초기에 수많은 독일 포로가 수용을 위해 미국으로 이송되었다. 이들 포로 중 약 4,300명이 뒤에 소련 국적자로 판명되었다. 이들의 존재가 밝혀지자 이 포로들은 곧 다른 독일인 포로들과 격리되었으며 소련으로 송환시키기 위해서 미국에 파견된 소련 대표단의 심사를 받을 특수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소련정부가 이들의 존재를 부인하였다. 그래서 이들은 다시 일반 (독일) 포로와 동일하게 취급되었다. 소련은 뒤에 가서야 이들을 소련인으로 취급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들 포로들은 소련 당국이 선박편을 준비하는 것에 맞춰 소련으로 송환되었다.
George G. Lewis and John Mewha(1955), History of Prisoner of War Utilization by the United States Army, 1776-1945, Department of the Army, p.148
소련 국적의 독일군 포로에 대한 내용은 이게 전부여서 매우 아쉽습니다만 그래도 흥미로운 점이 있긴 합니다. 먼저 미국으로 이송된 동방부대 소속의 포로가 4,300명 정도라는 겁니다. 생각보다는 적은 숫자이고 외교적으로 특별한 사례이기 때문에 만약 뒤에 관련 연구를 한다면 의외로 수월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소련정부와 송환 협상도 이루어 졌으니 관련 문서가 별도로 분류되어 있을 것 같네요.
두 번째는 소련 정부가 초기에 이들의 존재를 부인했다는 점 입니다. 한 두명도 아니고 수천명의 자국 국민들이 독일군의 편에 서서 총을 들었다는게 알려지면 이래 저래 난감할 것 입니다. 그래도 반역자들을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최대한 빨리 송환하려고 한 모양입니다.
씁슬함
전두환前대통령, DJ 병상찾아 쾌유기원
씁슬한 기사로군요. 기사의 일부만 발췌해 봅니다.
예. 전두환은 역사의 승리자는 될 수 없겠지만 인생에서는 승리를 거둔것 같습니다.
우울하군요.
씁슬한 기사로군요. 기사의 일부만 발췌해 봅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 때 전직 (대통령) 들이 제일 행복했다"며 "김 전 대통령 재임기간 10년 가까이 초대받아 세상 돌아가는 상황도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도움도 많이 받았다"고 치켜세웠다.
예. 전두환은 역사의 승리자는 될 수 없겠지만 인생에서는 승리를 거둔것 같습니다.
우울하군요.
2009년 8월 13일 목요일
The Ideological Origins of Nazi Imperialism, 그리고 잡담 약간
Woodruff D. Smith의 The Ideological Origins of Nazi Imperialism을 다시 한번 읽었습니다. 읽은지 꽤 돼서 내용이 가물가물해서 한 번 더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일 때문에 어수선해서 그런지 한 번 더 읽었지만 읽은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최근의 ‘간도떡밥’ 때문인지 재미있게 읽히긴 하더군요.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역시 파국으로 치닫기 직전인 9장의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입니다. 저자인 Smith 또한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는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제국주의적 정서’가 대중에게 광범위하게 파고들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그 대표적인 예로 1920년대에 제국주의적 팽창을 주제로 한 소설들이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는 1926년에 출간된 그림(Hans Grimm)의 소설 “Volk ohne Raum”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유사한 종류의 소설 중 성공한 작품으로 1926년부터 1935년까지 315,000부가 팔렸다고 하는군요.
이 소설의 저자인 그림은 유럽 외부의 식민지 획득을 옹호하고 Lebensraum을 동유럽에서 찾는 나치에 비판적인 경향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소설은 기본적으로 독일의 팽창을 옹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중에게 Lebensraum 사상이 광범위하게 확산될 수 있는 매개가 되었으며 정치적 보수주의를 확신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가장 재미있게 읽힌 이유는 위에서도 언급했듯 얼마 전 튀어나온 간도 반환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간도 반환 문제는 상식적으로 봤을 때 말도 안되는 이야기 이지만 대중매체를 통해 주기적으로 재생산 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같은 언론사가 간도 회복 캠페인 같은 짓을 앞장서서 하기도 했지요. 2009년이 지나간다고 하더라도 간도 떡밥은 미래에 다른 형태로 변주되어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문제는 이런 대책 없는 망상을 무책임하게 유포하고 있는 대중매체들입니다. 한국이야 독일 같은 강대국이 아니니 극우 정당이 집권해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개념 없는 민족주의 프로파간다가 판을 치는 것은 단순히 웃어 넘길 일은 아닙니다.
독도와 같이 민감한 문제가 튀어 나올 때 마다 반복되는 정치인들의 호들갑에서 볼 수 있듯 민족주의적인 정서는 정치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입니다. 그리도 한반도 균형자론 같은 외교적 망신사례에서 볼 수 있듯 외교 정책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업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싸구려 민족주의를 팔어먹으려는 움직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이것은 어떻게든 대중의 정서에 영향을 끼칠 것 입니다. 물론 한국의 현실을 볼 때 나치 독일처럼 파국적으로 폭주하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역시 파국으로 치닫기 직전인 9장의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입니다. 저자인 Smith 또한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는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제국주의적 정서’가 대중에게 광범위하게 파고들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그 대표적인 예로 1920년대에 제국주의적 팽창을 주제로 한 소설들이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는 1926년에 출간된 그림(Hans Grimm)의 소설 “Volk ohne Raum”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유사한 종류의 소설 중 성공한 작품으로 1926년부터 1935년까지 315,000부가 팔렸다고 하는군요.
이 소설의 저자인 그림은 유럽 외부의 식민지 획득을 옹호하고 Lebensraum을 동유럽에서 찾는 나치에 비판적인 경향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소설은 기본적으로 독일의 팽창을 옹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중에게 Lebensraum 사상이 광범위하게 확산될 수 있는 매개가 되었으며 정치적 보수주의를 확신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가장 재미있게 읽힌 이유는 위에서도 언급했듯 얼마 전 튀어나온 간도 반환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간도 반환 문제는 상식적으로 봤을 때 말도 안되는 이야기 이지만 대중매체를 통해 주기적으로 재생산 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같은 언론사가 간도 회복 캠페인 같은 짓을 앞장서서 하기도 했지요. 2009년이 지나간다고 하더라도 간도 떡밥은 미래에 다른 형태로 변주되어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문제는 이런 대책 없는 망상을 무책임하게 유포하고 있는 대중매체들입니다. 한국이야 독일 같은 강대국이 아니니 극우 정당이 집권해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개념 없는 민족주의 프로파간다가 판을 치는 것은 단순히 웃어 넘길 일은 아닙니다.
독도와 같이 민감한 문제가 튀어 나올 때 마다 반복되는 정치인들의 호들갑에서 볼 수 있듯 민족주의적인 정서는 정치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입니다. 그리도 한반도 균형자론 같은 외교적 망신사례에서 볼 수 있듯 외교 정책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업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싸구려 민족주의를 팔어먹으려는 움직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이것은 어떻게든 대중의 정서에 영향을 끼칠 것 입니다. 물론 한국의 현실을 볼 때 나치 독일처럼 파국적으로 폭주하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피드 구독하기:
글 (A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