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11일 목요일

대원수 동지의 편지

스탈린이 다른 인간을 신뢰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는데 간혹 예외도 있었다고 합니다. 몰로토프가 대표적인 사람인데 그래서 그런지 스탈린이 몰로토프에게 보낸 편지들은 꽤 재미있는 내용이 많습니다. 예일대에서 꾸준히 내고 있는 Annals of Communism Series 중에는 바로 스탈린이 몰로토프에게 보낸 편지들을 추려서 단행본으로 낸 것이 한 권 있습니다. 이 책은 1936년까지의 편지들을 수록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내용은 주로 1930년 까지의 편지에 많고 1931년 부터 1936년까지의 편지들은 매우 적은 분량만 실려 있습니다.

편집자가 편지들을 잘 선정해서 그런지 재미있는 내용이 많은데 오늘 읽은 것 중에서 하나를 골라 봤습니다.

몰로트슈타인(Молотштейн)*, 잘 지내고 있나?

도데체 거기서 뭘 하고 있길래 아무 소식도 없는겐가? 자네가 있는 곳의 사정은 어떤가? 잘 돌아가고 있나 아니면 그렇지 못한가? 뭔가 좀 써서 보내주게나.

이곳은 잘 돌아가고 있네.

1) 곡물 징발은 꾸준히 진행중이네. 오늘 우리는 비상시를 대비해 곡물 비축량을 1억2천만 푸드(пуд, 1푸드는 약16.38kg)로 높여잡았네. 이바노보-보즈네센스크, 하리코프와 같은 공업도시에 대한 배급량을 높였다네.
2) 집단농장 운동도 급속히 고조되고 있네. 물론 농업용 기계와 트랙터가 부족해서 달리 방법이 없다보니 보통 농기구를 긁어모아 사용해야 했는데 파종 면적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증가했다네.(어떤 지역은 50퍼센트나 증가했네!) 볼가강 하류 지방에서는 전체 농민 중 60퍼센트가 집단농장에 가입했네.(이미 가입했단 말이지!) 우리 당내의 우파 녀석들은 너무 놀라 눈알이 튀어나오려고 하고 있어.

3) 대외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네. 중국 문제를 처리해야 하네. 우리 극동군의 동지들이 중국인들에게 충분한 경고를 주었을 거야. 얼마전에 장쉐량(張學良)이 차이(蔡)와 시마노프스키 동지가 만나서 합의한 사안에 동의하겠다는 전문을 보냈네. 미국과 영국, 프랑스의 개입에 대해서는 거칠게 대응하지 않고 그냥 거절만 했네. 우리는 이정도만 할 수 있었으니까. 볼셰비키가 뭘 원하는지 그들도 알게 해 줘야지! 중국의 지주들은 우리의 극동군이 가르쳐준 교훈을 잊지 않을 거야. 우리가 내건 조건들이 이행되기 전에는 우리 군대를 철수시키지 않기로 결정했네. 리트비노프가 중앙집행위원회에서 했던 연설을 한 번 읽어보게. 꽤 괞찮은 연설이었어.
4) 아마 자네도 신문을 통해 이번 인사이동에 대해 알고 있을것 같네. 이번 인사이동에서 새롭게 바뀐 것은 톰스키(Михаил Павлович Томский)를 쿠이비셰프(Валериа́н Влади́мирович Ку́йбышев)의 보좌역으로 임명한 것(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쿠이비셰프는 이 조치가 자신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네), 그리고 슈바르츠를 석탄협회 회장으로 임명한 걸세.(이 경우에는 더 나은 사람이 없었네)
5) (세명의) 우파들**은 열심히 움직이고 있네만 별다른 진척을 거두지 못하고 있네. 릐코프(Алексе́й Ива́нович Ры́ков)는 야코블레프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머리를 굴렸지만 우리가 미리 손을 써 놓았지.

그래. 이제 때가 되었네.

1929 년 12월 5일

Lars T. Lih, Oleg V. Naumov, and Oleg V. Khlevniuk(ed.), Stalin's Letters to Molotov 1925-1936(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5), pp.183-184

*스탈린이 몰로토프를 부를때 쓴 애칭 중 하나로 몰로토프가 유태인이란 걸 농담삼아 비꼰 것 입니다.
** 세명의 우파는 편지에 언급된 릐코프와 톰스키, 그리고 부하린(Никола́й Ива́нович Буха́рин) 입니다.

이 편지에서 역시 후덜덜한 부분은 농업 집단화의 성과를 자찬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미 수없이 많은 농민들이 희생되었지만 강철의 대원수는 그런 사실에는 눈꼽만큼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오직 성과를 초과 달성한 것과 그의 정적들을 엿먹인 것에만 기뻐하고 있습니다. 타인에게는 눈꼽만큼도 관심없고 오직 자신의 생각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형적인 초딩마인드이지요.

그런데 이게 도통 남의 일 같지만 않은게, 높은 자리에 초딩 마인드의 소유자들이 들어앉는 경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흔한 일이라서 말입니다.

1954년에 제안된 어떤 한국군 해병대 개편안

한국전쟁 직후 한국군의 재편성 시기의 기록을 보면 꽤 재미있는 것이 많습니다. 특히 미국측이 검토하다가 폐기한 한국군 편제를 보면 아주 재미있지요. 여기서는 1954년에 검토되었던 한국군 해병사단 창설안 중 하나를 이야기 해 볼까 합니다. 1954년 5월 17일자로 되어 있는 미해군 군사고문단 소속의 해병대 군수고문관이 작성한 문서를 보면 한국군 해병여단을 미군 해병사단의 편제에 근접하는 규모로 확대개편하고 이에 필요한 지원부대를 편성할 경우 필요한 군수지원품목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에 따르면 한국군 해병여단을 사단으로 확대 개편하기 위해 필요한 추가 전투장비는 다음과 같습니다.*

카빈(M2) : 876정
소총 (M1) : 2,206정
자동소총(M1918A2) : 212정
권총(M1911A1) : 1,247정
기관총 (M1917A1) : 118정
기관총(50구경 M2) : 87정
유탄발사기 : 1,400정
105mm 유탄포 : 42문
155mm 유탄포 : 18문
3.5인치 바주카포 : 320문
60mm 박격포 : 53문
81mm 박격포 : 89문
4.2인치 박격포 : 30문
75mm 무반동포 : 15문
화염방사기 : 188대
전차 (M26/M4A3 105mm) : 85대
40mm 대공포 : 32문
LVT-A : 18대
LVT-4 : 224대

이 안에 따르면 한국군 해병대를 사단급으로 확대개편하고 지원부대를 증편하는데 필요한 비용은 총 2786만6452달러가 소요되었고 여기에 1년치의 군수품을 합하면 총 비용은 8500만3349달러에 달했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직전 미국정부가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를 위해 1950년 회계연도 예산으로 배정한 비용이 1천만 달러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규모의 지원이 아닐수 없었습니다.(그 사이의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더라도) 지원내역에 들어있는 장비를 보면 M-26전차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은 당시 한국 육군에 배치되고 있던 전차가 M4A3E8이었다는 것과 비교하면 파격적인 것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만약 이 원조안 대로 한국 해병사단을 편성했다면 장비상으로 한국군 최강의 전력이 되었을 것이 틀림 없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 여기에 언급된 원조안은 채택되지 못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한국 육군 20개 사단 계획에 필요한 예산만 해도 막대한 규모였기 때문에 해병대까지 요란하게 무장시킬 비용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 실현되지 못하고 폐기되는 계획들은 실제로 실행되는 계획보다 근사한 법이지요.

*'Expansion Program for the Korean Marine Corps plus support for one(1) year, Cost of', RG 330, 330.2 General Records of the Office of the Secretary of Defense(OSD), 1941-87, 330.2.4 Records of Other Special Assistants, Entry 185, Van Fleet Report Files, Box 11, Korean War Corps Expansion Program

2010년 2월 8일 월요일

대북정책에 대한 융통성 있는 접근에 대한 희망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서 한마디. 제가 보수적인 경향이 있다 보니 제 블로그에 들러주시는 분 중에서 저를 한나라당 지지자로 오인하시는 사례가 종종있습니다. 제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저는 (특히 외교안보정책에 있어) 보수적인 민주당 지지자입니다. 김대중 정부 후반기와 노무현 정부 전기간의 외교안보정책에 대해서 극도로 부정적이긴 합니다만 한나라당 지지자는 아닙니다. 강인덕 같은 보수적인 인사를 통일부 수장에 임명하는 등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대북정책을 시사했던 김대중 정부 초기에는 꽤 기대감이 크기도 했지요.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원래는 작년 연말에 쓰려고 했는데 제가 기억력이 좋지 않다 보니 좀 많이 밀리게 됐군요.

언제부터인가는 모르겠지만 정치적인 갈등이 심화되면서 개별 정당은 물론 정당 지지자들 간에도 대립각이 극단적으로 날카로워진다는 느낌입니다. 상대 정당, 정파의 정책은 무조건 틀린 것이고 내가 지지하는 정당,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의 주장만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라는 주장이 횡행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 입니다. 저와 같은 당을 지지하시는 분들은 불쾌하시겠지만 김대중의 대북정책이 무조건 옳은 것이며 그것을 계승해 발전시킨 노무현도 당연히 옳은 것이라는 주장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됩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대북정책이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북한의 1차 핵실험으로 명백해 졌으며 민주당-열린우리당이 집권한 10년 동안 북한은 남한의 유화적인 정책에 상응하는 대응을 사실상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제한적인 이산가족 방문이나 제한적인 정치사회단체들의 활동같은 통일쇼를 예로 들진 맙시다) 한계점이 명백히 드러난 상황에서도 한나라당의 공세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느라 정책에 대한 반성을 거의 하지 못한 점은 부메랑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북한의 핵실험 이후에는 보수층의 파상적인 공세에 무기력하게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화정책 만으로는 북한에 대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이 드러난 이후에도 개혁진영은 김대중과 노무현의 대북정책을 옹호하는데 주력했지만 이것은 한나라당에 비해 훨씬 적은 개혁진영의 고정지지층을 결속시키는 역할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습니다.

물론 저도 대북유화정책이 조건만 갖춰진다면 충분한 효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 통일을 고려하고 있다면 북한과의 교류 필요성을 절대 부정하지는 못 할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이 핵실험을 공개적으로 실시하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실험을 하는 마당에 그것은 미국과 일본을 겨냥한 것이다,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 하는 식으로 어설픈 물타기를 한다면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참으로 낯뜨거운 것은 노무현 정부당시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했을 때는 미국의 압박정책이 문제라고 합리화하기 바쁘던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들어와 북한이 2차 핵실험을 하자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하는데 여념이 없었다는 것 입니다. 비슷한 사례는 셀수 없이 많습니다. 2002년 북한과의 교전으로 한국 해군이 많은 사상자를 냈을 때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옹호하느라 바쁘던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에서 금강산 관광객이 한명 살해당했을 때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하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지요. 북한이 유화정책을 해도 도발하고 강경정책, 또는 무시하는 정책을 해도 도발한다면 도데체 유화정책이 무슨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비극적인 것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파의 대북정책을 맹목적으로 옹호하기 위해서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 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반성적인 자기성찰이란 불가능해 지고 융통성마저 잃게 됩니다.

만약 북한이 개혁진영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준다면 대북유화정책을 굳건히 견지해 나간 것이 결과적으로 큰 이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 외교안보정책에 있어 개혁진영이 주도권을 쥐는 상황도 충분히 가능할 것 입니다. 하지만 반대되는 경우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럴 경우 정치적으로 체력이 약한 개혁진영이 입게될 타격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1989~1990년 동독이 붕괴될 당시 서독의 사민당(SPD)는 동독과의 점진적 통일을 주장했지만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치닫자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반면 기민-기사당 측은 동독의 혼란이 가속화 되자 동방정책의 틀을 깨고 적극적인 흡수통일로 노선을 전환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사민당은 동방정책의 연장선 상에서 온건한 정책을 고수한 까닭에 동독의 붕괴를 일관적으로 추진한 기민-기사당이 외교안보적인 승리를 거머쥐는 사태에 무기력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래는 불확실 한 것 입니다. 민주당 측이 원하는 것 처럼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가 연착륙 할 가능성도 있지만 그와는 반대로 북한이 체제유지를 고수하다가 갑자기 붕괴하는 급변사태를 맞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개혁진영이 북한에 대한 유화정책을 고수한 것이 치명적인 부메랑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지지기반이 한나라당에 비해 취약한 민주당과 그 밖의 진보정당들이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와 흡수통일이라는 상황이 닥칠 경우 한나라당에게 수동적으로 말려들어가고 결과적으로 외교안보분야에서 장기적으로 주도권을 상실하게 되는 것 입니다.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보수정당에게 수동적으로 말려들어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유를 마련했으면 하는게 저의 작은 기대입니다.

2010년 2월 5일 금요일

황군의 정신력은 세계 최강?!?!

쇼와(昭和) 15년(1940년), 지나 전선에서 혁혁한 공훈을 세우고 귀국한 김석원 중좌는 어떤 잡지에 이런 글을 기고하셨더랍니다.

나는 전지에 나갓슬때 황군의 아름다운 행동이며 부상병이 엉금엉금 기여가면서 돌격해 나가든그 눈물나는 정경을 생각하면 전쟁이란 반드시 무긔로만 익이는 것이 아니라 용사들의 아름답고, 놉고, 굿센 정신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와 갓흔 정신이 투철한 우리 황군이 세계에서 제일 강한것은 당연한 리치입니다. 명치 37, 8년 일로전쟁때 탄환대신으로 2만명의 황군이 적의 진지에 뛰여드러가 성공한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 황군이 얼마나 굿센 정신을 가젓는지 아실 것 입니다.

김석원, 「軍人의 立場에서 銃後에 附託함」,『家庭之友』(1940. 1) 28호, 4~5쪽

이 시절의 정신력 드립에 대해서는 예전에도 한번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군인 뿐 아니라 식민지 지식인들도 황군의 정신력을 찬양하던 시절이죠.

김중좌께서는 정말 황군의 정신력에 감화받으셔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해방되고 1사단장을 하실 때도 육탄 10용사 같은 황군의 전통을 잇는 공격을 좋아하셨다고 하죠. 김석원 외에도 채병덕 같은 양반들도 정신력 드립을 쳐대고 있었던 걸 보면 정말 이것이야 말로 최악의 식민지 잔재인듯;;;;


잡담 하나. 위에서 인용한 글은 요즘 국립중앙도서관에 전자문서로 열람 가능하게 되어 있더군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아주 깨끗하게 스캔을 잘 해 놓아서 제가 예전에 복사했던 상태 나쁜 것은 못 보겠더군요. 전자문서들이 잘 되어 있다보니 옛날에 구닥다리 복사기로 복사한 것들 중 통째로 복사해서 제본 뜬 것이 아니면 모두 이면지로 재활용 하고 있지요.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 이상 국립중앙도서관이 문 닫지는 않을 테니.

잡담 둘. 위의 인용문에서 *표 표시한 것은 아무래도 203고지 전투를 이야기 하는 것 같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