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20일 토요일

군대의 동성애 혐오에 대한 페미니즘적 설명

Nimishel님의 블로그에서 미군의 동성애자 관련 규정에 대한 글을 읽고 생각난 글이 하나 있어서 불법날림번역을 조금 해 봅니다. 왜 군대가 동성애자, 특히 게이에게 적대적인가에 대해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설명한 글인데 제법 재미있습니다.

군대가 동성애자를 기피하는 경향이 만연해 있는 원인은 아마도 적을 '여성화' 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 동성애자는 이 책의 3장과 4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중요한 생물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게이들은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을 만들고 체구가 크며 강한 존재들이다. 게이 군인들이 일반 군인들과 다른 점은 성과 지배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군대 내의 게이는 군인을 군대 외부의 여성, 즉 고향이나 부대 인근의 사창가, 항구의 여성, 또는 핀업(pin up) 사진이나 지갑속 사진으로 존재하는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존재에 대해 지배적인 성적 행위자로써 만드는 것을 애매하게 만드는 존재다. "남자간의 동성애는 여성적인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동성애자로 알려진 남성의 존재는 ... 남성이 아닌, 즉 여성으로 상징되는 적에 대해 폭력을 가해야 하는 ... 남자로 이루어진 집단의 사회적 동질성을 흔들어 놓는다." 오늘날 많은 나라의 군대는 계급을 넘어서는 친교에 대해 규제를 가하고 금지하고 있으며  "동성애를 병사들이 가져야 할 호전적인 '남자다움'에 대한 위협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남성의 가치 중 으뜸으로 치는 정력은 "동성애자에게는 해당 되는 것이 아니며" 동성애자들의 경우는 "그와는 다른 것"으로 간주된다.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서 여자와 같은 취급을 받는 남자, 즉 '두 영혼의 사람들(berdache)'이 전쟁에서 담당하는 역할은 이와 같은 관점에서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서 평생을 여자 옷을 입고 여자의 역할(성적으로도)을 하는 남자들은 체구도 크고 강하지만 관습적으로는 여자로 취급받는다. 그렇다면 전쟁이 일어난다면 이들은 생물학적 성에 따라 일반적인 전사로 취급 받았는가?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으며 두 영혼의 사람들은 전투에 참여하는데 제약을 받았다. 두 영혼의 사람들은 보통 보급품과 무기를 운반했으며 전사자들을 매장하는 일을 담당했다. 17세기 일리노이 부족의 경우와 같이 두 영혼의 사람들이 전투에 참여하더라도 활과 화살은 사용하지 못 했으며 곤봉만을 써야 했다. 여자들이 전투나 사냥에 쓰이는 특정한 무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관습이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두 영혼의 사람들은 전투에서 그들의 육체적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하고 여성의 역할만을 수행해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도 동성애는 여성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남성성과 반대되고 상무정신과는 맞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 예를 들자면 1967년 당시 반전 시위대들은 보통 절반 정도가 여성이고 나머지는 "남성적인 근육질의 사내"나 "긴 머리의 히피", 또는 언제라도 경찰과 맞서 싸울 "군복을 걸친 남자들"이 뒤섞여 있었지만 거의 모든 반전시위에서" 남성 반대자들로 부터 (동성애자를 의미하는) "faggot"나 "queer"라는 조롱을 받았다. 반전시위대가 전쟁에 반대했기 때문에 이들은 유약하고 여성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동성애자라는 딱지가 붙은 것이다.

그러나 게이 군인들에게 덧씌워진 오늘날의 동성애 혐오자들의 인식은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다. 미군의 동성애자 혐오는 "동성애가 남성의 여성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는 문화적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다른 문화권에서는 남자간의 동성애가 "남자들 사이에서 남성성을 강화하고" 이것을 통해 "군사적 동원의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보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테베의 신성대(神聖隊)에서는 병사들간의 동성애가 공개적으로 장려되었다. 남자들을 그들의 애인들과 같은 열에 배치한다면 그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 있기 때문에 비겁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남자 병사들간의 성적인 관계는 결속력을 강화하고 동기부여를 하는 기능을 했다. 이성애자인 병사가 자신의 전우에게 깊은 사랑을 나타내는 것으로 전우를 위해 싸울 동기를 만들었고 그리스의 군인들은 이러한 동기에 성적인 결속을 추가했다.

테베의 경우는 아주 특별하지는 않지만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면 흔치 않은 경우이다. 군대 내에서 게이 병사의 존재를 용인하는 것은 각 나라의 군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20세기 미군은 전시(병사의 필요는 높지만 인적 자원은 부족한)에는 게이 병사들을 용인하고 평시에는 용인하지 않는 것을 반복해왔다. 이런 경향은 여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평시에는 이상적인 군대에 부합되도록 규칙이 강화되었지만 전쟁이 되면 규칙은 유연해졌다. (현재 미군은 완전 지원병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병사는 상대적으로 부족하지만 병사의 필요성이 아주 절박한 것도 아니어서 어정쩡하다고 할 수 있다.)

간혹 게이 병사에 대한 불관용 정책은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 중 하나가 동성애에 대해 사형을 부과하는 것이다. 1942년에서 1945년 사이에 독일 친위대의 장교들이 바로 이런 경우였다. 영국 해군에서도 19세기 초 까지 동성애 행위를 한 장교는 돛대에서 목을 매달았다. (윈스턴 처칠은 2차대전 중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놈의 해군 전통은 입에 담지도 말게. 해군의 전통이래 봤자 럼주나 처먹고 남색질에 채찍질 하는 것 말고 뭐가 있나?[Don't talk to me about naval tradition. It's nothing but rum, sodomy, and the lash])"

역 설적이게도 오늘날 서구의 전쟁에서 병사가 전우에게 느끼는 격한 사랑의 감정은 근대 사상에서 여성성으로 간주하는 정서적인 유대를 만들기도 한다.(이 경우에는 군대가 필요로 한다) 이러한 유대감은 쉽게 성적인 것으로 바뀐다. 1차대전 당시 시에서는 남자간의 사랑을 이렇게 찬양했다. "남자간의 사랑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나타나네." 로버트 그레이브스(Robert Graves)는 (자신의 자서전과 작품에서) 그가 21세 이전까지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을 삭제했다. 히르쉬펠트에 따르면 1차대전 중 지휘관들은 군대내의 동성애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했지만 실제로 동성애자는 별로 많지 않았다고 한다. "지극히 일반적인 관점으로 보면" 독일군 병사 중 게이는 전체의 2퍼센트에 불과했다고 한다. 1차대전 당시 "적지 않은 수의" 게이들이 적극적으로 전쟁에 참여했으며 이중 상당수는 독일의 동성애자에 대한 박해를 피해 망명했던 사람들 이었다. 히르쉬펠트는 독일의 게이들은 자신의 남성성을 되찾거나 불행한 삶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전쟁에 참여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2차대전이 발발했을 때는 1차대전 장시 영국 "젊은이들(lads)"에게 인기를 끌었던 동성애를 다룬 문학작품이 나타나지 않았다.

Joshua S. Goldstein, War and Gender : How Gender shapes the War System and Vice Versa,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1, pp.374-376

이 글의 저자인 골드스타인은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전쟁이란 폭력적이 남성성이 발현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쟁 중 적군에 대한 강간이 자행되는 경우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합니다. 적군에 대한 동성애적 강간이 이루어지는 배경에도 적군에게 굴복시켜야 할 여성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문화적인 의미가 깔려 있다는 것 입니다.(대표적인 예로 들은 것이 잔뜩 발기한 성기를 곧추세우고 페르시아군을 뒤쫓는 그리스 병사를 묘사한 도기이죠) 꽤 잘 들어맞는 설명같은데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잡담 하나. 본문에 언급된 히르쉬펠트의 저작은 1934년에 출간된 The sexual history of the world war인데 2006년에 University Press of Pacific에서 복간해 쉽게 구해볼 수 있습니다.

북버지니아군의 보급 문제

요즘 읽고 있는 책 중에 Edward Hagerman의 The American Civil War and the origins of modern warfare가 있습니다. 책 제목에서 짐작하실 수 있으시겠지만 미국 남북전쟁에서 소모전, 참호전과 같은 근대적 전쟁의 요소가 등장했고 남북 양측의 군대가 모두 새롭게 변화한 전쟁 상황에 맞춰 지휘구조와 전략 전술 등을 재정립해 나갔다는 내용입니다.

시간 날 때 마다 조금씩 읽고 있어서 이제야 게티즈버그 전역을 다룬 부분을 읽고 있습니다. 이부분이 아주 재미있는데 저자는 리가 지휘하는 북버지니아 야전군(Army of Northern Virginia)이 챈슬러빌(Chancellorsville)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북진하는 과정에서 겪은 심각한 보급문제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보급품의 부족 뿐 아니라 철도, 마차와 같은 수송수단 자체의 부족이 북버지니아군의 공세의 발목을 잡는 치명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입니다.

저자는 북버지니아군의 보급문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보급에 필요한 마필의 부족입니다. 말의 부족이 심각하다 보니 1863년 봄에 대규모 편제 개편을 통해 보급부대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나갔지만 그런 조치를 취하고도 편제를 채우지 못했다고 합니다. 해상봉쇄 때문에 말을 수입할 수 없어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또는 멕시코를 통해 마필을 수입해야 했는데 이곳에서 조달하는 말은 질이 좋지 못했으며 결정적으로 전투에서 소모하는 말이 더 많았다고 하니 말 다했지요;;;; 말의 부족으로 정찰과 보급로 경비를 담당할 기병도 부족했으니 포병이나 기타 지원부대의 상황은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지요. 다음으로는 남부연합의 고질적 약점인 철도 문제를 꼽고 있습니다. 1863년 봄이 되면 철도의 연장은 커녕 기존 철도의 유지도 어려운 지경이었다고 하니 말이 충분했다 하더라도 고민이 많았을 것 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작전 지역에서 대규모 야전군의 보급에 필요한 물자를 징발할 대도시가 드물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로 향한 진격에서 겪었던 것과 비슷한 문제라고 할 수 있겠는데 보급에 필요한 대도시가 드문 만큼 보다 더 넓은 지역에서 징발을 실시해야 하고 이 경우 마필 부족은 그야말로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저자는 이런 문제때문에 리가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패배한 뒤에는 철도에서 가까운 곳에서 전투를 수행하려는 경향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극도로 제한적인 보급능력이 작전행동의 자유까지 제약하게 된 셈입니다. 물론 이 배경에는 남부연합의 총체적인 전쟁수행 역량이 그야말로 안습이었다는 문제가 있겠습니다만.

2010년 2월 15일 월요일

엄청난 설득력

미국의 전쟁수행능력에 대한 어떤 군사사학자의 논평.

미국은 1941년 부터 1945년 까지 매우 '모순적인' 전쟁을 치렀다. 미국은 글자그대로 '세계적 차원의' 전쟁을 치른 유일한 참전국이었으나 전쟁수행을 위한 국가적 동원의 정도에 있어서는 동맹국이나 적국의 '총력전' 수준에 한참 모자랐다.

Dennis Showalter, 'Global Yet Not Total : The U.S. War Effort and Its Consequences', Roger Chickering, Stig Förster and Bernd Greiner(Ed.), A World at Total War : Global Conflict and the Politics of Destruction, 1937-1945(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5), p.109

엄청난 설득력이죠. 쇼왈터의 이 글을 읽으면 무신론자도 천조국의 힘을 숭배하는 물신론자로 바뀌게 된다는;;;;;

2010년 2월 11일 목요일

기분전환

어제는 너무 우울하다 보니 일이 잘 안되더군요. 할 일도 있고 하니 바람쐬러 나돌아다닐 팔자도 아니어서 의자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기분전환을 할 방법을 찾아 봤습니다.

그래서 모니터 바탕화면을 이것으로 교체했습니다.




바탕화면을 교체하니 심란한 마음이 가라앉고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빨리 에바 파 DVD 내 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