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5일 월요일

맥아더 기념관 - 1

지난달 초에는 버지니아주 노퍽(Norfolk)에 있는 맥아더 아카이브와 기념관을 다녀왔습니다.  이곳은 인터넷이 느려서 사진을 많이 올리면 브라우저가 상당히 버벅거리더군요. 그래서 내용은 별로 없지만 좀 나눠서 올립니다.



맥아더 아카이브의 소장 자료를 개략적으로 조사하러 갔는데 예상대로 특별히 NARA와 차별되는 자료는 없더군요. 대신 그곳에 간 김에 바로 옆에 있는 기념관도 함께 구경을 했습니다.

맥아더 기념관 구관. 바로 옆에 신관이 들어섰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을 묘사한 꽤 유명한 부조

그런데 마침 제가 방문했을때는 맥아더 기념관 신관이 개관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제가 방문하고 일주일 뒤에 개관했다고 하더군요.

맥아더 기념관 신관
곧 신관이 개관할 예정이었지만 구관도 아직 볼만한 전시물이 조금은 남아 있더군요. 일단 구관에 들어서면 먼저 맥아더와 그의 부인이 안치된 두개의 관이 관람객을 맞이 합니다. 주변은 맥아더가 참가한 전역과 그가 지휘했던 부대들의 부대기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꽤 인상적인 배치였습니다.

상당히 인상적인 배치였습니다

맥아더와 부인의 관

전시관의 전시물은 비교적 평이한 편이었습니다. 맥아더의 이력과 당시 국제정세를 간략히 설명해주는 전시판과 관련된 전시물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주로 복식, 군장, 소화기 등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특별한 설명은 필요가 없을 듯 싶으니 사진만 올리겠습니다.

맥아더의 초기 군경력을 보여주는 전시판

1903년 경의 미육사 생도 제복
1차대전 시기를 다룬 전시실
맥아더의 초기 군생활을 다룬 전시실 다음에는 1차대전기 맥아더의 활동을 다룬 전시실이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군장, 소화기류 중심으로 전시가 되어 있는데 그래도 눈에 확 들어오는 전시물이 하나 있더군요. 1차대전 당시 서부전선의 참호를 1:1로 재현한 디오라마였습니다.

은근히 그럴싸 합니다.
상당히 괴로워 보입니다(?)
대부분의 전시물은 이런 군장류 입니다
가장 위에 있는 훈장이 맥아더가 1차대전 당시 수여받은 공로기장이랍니다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의 전간기를 다룬 전시물은 대부분 설명문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내용은 상당히 알찬 편이지만 책에서도 알수 있는 내용들이라서 사진은 생략.

태평양전쟁 초기를 다룬 전시실도 특별히 다를 것은 없지만 재미있는 전시물이 아예 없지는 않았습니다. 맥아더가 코레히도르 시절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권총이 그 중 하나입니다.

맥아더가 코레히도르에 포위되어 있을 당시 소지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권총이랍니다
맥아더가 코레히도를 탈출할때 탑승한 PT-41의 모형



2012년 10월 27일 토요일

NARA 소장 독일노획문서에 대한 잡상 - 1. 독일기갑총감부문서 T78 R616

이곳에 온 뒤 시간이 날때마다 칼리지파크의 NARA 4층 마이크로 필름 열람실에서 독일노획문서를 촬영하고 있습니다. 사실 남는 자투리 시간에 촬영을 하다보니 굉장히 속도가 느려서 이제 겨우 필름 세롤을 촬영했습니다. 이 상태라면 독일자료는 그리 많이 수집할수 없을것 같군요. 돈만 넉넉하다면 그냥 DVD로 복사를 신청하겠습니다만 한롤에 125달러나 하는지라;;;;

오늘은 노획문서 중에서 미국이 소장한 독일육군 기갑총감부 문서의 첫번째롤, T78 R616을 모두 촬영했습니다. 자료를 대략 훑어본 소감을 말씀드리죠.



T78 R616은 크게 두개의 폴더로 나뉘어 있습니다. 첫번째 폴더는 1944년 9월에서 10월까지 독립전차대대와 독립대전차대대의 편제에 대한 자료들이 들어있고 두번째 폴더는 1943년 7월부터 1943년 12월까지 기갑사단의 편제에 대한 자료들이 들어있습니다. 두번째 폴더는 바로 2차대전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유용한 자료집인 Kamen Nevenkin의 Fire Brigade : The Panzer Divisions 1943 - 1945의 기본사료 중 하나입니다.

간략히 살펴보면 전쟁 말기에 노획된 사료들이니 만큼 누락된 부분이 가끔 있습니다. 특히 두번째 폴더의 1943년 7월~8월 시기의 자료들은 누락된 사단이 제법 있어서 해당 사단의 상급제대, 특히 야전군 단위 제대의 사료에서 보충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독일군의 사단단위 사료들은 미국에서도 소장하지 못한 것이 많으니 혹시나 독일에서 자료수집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온다면 그때 확인하는 수 밖에 없겠네요.

전반적으로 매우 유용한 사료입니다.

첫번째 폴더는 유명한 중전차대대에서 노획장비로 편성된 잡다한 독립전차대대에 이르기까지 대대급 독립기갑부대의 월별현황을 보여줍니다. 비록 두달치에 불과하지만. 아쉬운점은 중전차대대에 대한 자료가 상대적으로 누락된 부분이 많다는 점 입니다.

두번째 폴더는 기갑부대들의 편제와 장비현황을 1개월 단위로 확인할 수 있으며 부대에 따라서는 매우 상세한 장비보유 현황을 알수 있습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대대단위의 차량보유량과 화기보유량이 명시된 자료도 섞여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제13기갑사단이나 제23기갑사단 처럼 상세하게 목록을 작성한 경우와 상대적으로 내용이 소략한 보고서들이 섞여 있는 점은 아쉽습니다.

2012년 10월 16일 화요일

2차대전 후반기 독일군의 대전차포 손실률

2차대전 중 독일육군 병기국Heereswaffenamt 문서를 훑어보다가 재미있는 통계가 하나 보여서 포스팅을 합니다.

넵. 또 땜빵 포스팅입니다. ㅋㅋㅋ. 제대로 된 글은 귀국하고 자료를 정리하면서 하도록 하지요.(넵. 언제가 될지는 기약할 수가 없지요;;;;;)

이 통계는 매달 1일 보유하고 있는 수량을 기준으로 한달 동안 상실한 수량을 가지고 백분율로 환산한 것 입니다. 원래 인용한 도표에 수량은 나와 있지 않고 백분율 수치만 표시되어 있으니 이것만 올립니다. 월별 손실은 다른 병기국 문서에 월별로 정리가 되어 있는데 롤별로 흩어져 있어서 다 모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 싶습니다. 원본 문서는 그래프에 색을 칠해서 구분하고 있는데 미국인들이 흑백 마이크로 필름으로 촬영을 했는지라 알아보는게 살짝 골치 아팠습니다.

일단 도표부터 나갑니다.

표.독일군의 대전차포 손실률(1943.7~1944.9, 단위:%)

견인식
대전차포


자주
대전차포


88mm
Pak43/41
75mm
Pak40/41
76.2mm
Pak36(r)
나스호른
마더
1943.7
17
11
8
4
14
1943.8
31
13
14
14
11
1943.9
3
7
10
2
13
1943.10
5
7
1
10
7
1943.11
3
4
4
1
1
1943.12
7
6
14
8
12
1944.1
8
10
22
8
13
1944.2
24
16
39
13
5
1944.3
3
10
5
15
3
1944.4
6
3
7
6
18
1944.5
2
10
19
1
6
1944.6
4
2
1
28
8
1944.7
2
21
5
30
40
1944.8
66
34
43
19
13
1944.9
37
20
15
38
26
[표출처 : “s.Pak(Mot.z) Verluste 1943/44”(1944.11.8), NARA T78 Roll145; “SF- Verluste 1943/44”(1944.11.7), NARA T78 Roll145]

처음에 이 표를 봤을때는 대전차포의 형식에 따라 쉽게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손실률 차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단은 견인식 대전차포의 손실이 자주 대전차포 보다 높은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이보다도 1944년 1~3월 동부전선에서의 퇴각전과 1944년 7~9월 동쪽과 서쪽 양전선의 붕괴 시기에 모든 대전차포의 손실률이 폭증하는 것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군요. 이런 후퇴시기에는 크고 무거운 88mm 계열의 손실이 늘어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기갑장비의 손실률과 함께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2012년 10월 13일 토요일

후지사키 이치히로 주미일본대사의 강연을 갔다 왔습니다

어제는 NARA에 가지 않고 브루킹스 재단에서 주최하는 주미일본대사 후지사키 이치히로(藤崎 一郎)의 강연을 갔다 왔습니다. 영어 공부도 할 겸, 현재 시끄러운 현안에 대한 일본 외교관의 입장은 어떤가 들어볼 겸 갔는데 생각보다는 조금 심심한 강연이었습니다.

후지사키 이치히로(藤崎 一郎) 주미일본대사

강연제목은 Japan in Asia였습니다. 좀 모범답안 같은 분위기를 풍기긴 했습니다.

후지사키 대사는 주로 경제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점은 일본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현재 서구에서 바라보는 것 처럼 심각한 위기는 아니라는 것 이었습니다. 일본대사는 현재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미국과 독일의 리더쉽 부재를 일본에 빗댄 이코노미스트를 가지고 가벼운 농담을 던지면서 일본경제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직업외교관 답게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더군요.

"오바하지 맙시다."
다음으로는 에너지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지난 후쿠시마 참사 이후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의존을 줄이려는 노력이 진행중이며 앞으로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이야기 했습니다.

원래 기대했던 센카쿠 문제라던가 과거사문제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이야기가 없었고 오키나와의 미군 재배치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정부의 공식입장을 대변하는 모범답안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도 미군 재배치 문제는 나름 재미있더군요. 오키나와의 미군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지역의 안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요지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현재 골치가 아픈 후텐마 기지 문제도 간략하게 언급을 했는데 메모를 해 놓지 않아서 기억이 정확하지가 않네요;;;;

나름 재미있었던 부분은 현재 일본 청년들의 도전 정신의 부족을 질타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이건 무슨 일본판 20대 XXX론인가 싶었는데 일본 청년들이 일본에 만족하여 더 큰 세상에 도전하려는 성향이 없다는 이야기 였습니다. 일본 청년들의 시야가 일본 안으로 좁아지는 것에 대한 우려라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일본인들의 평균적인 영어 능력 부족에 대해서도 우려했습니다. 일본의 외국어 교육은 실패했다는;;;; 이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니 제 짧은 영어 실력이 생각나서 민망하더군요.

일본대사의 연설이 끝난뒤 사회자의 정리가 있고나서 방청석의 질문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많이 제기된 질문은 센카쿠 문제였습니다. 홍콩에서 온 중국인 한명과 타이완 인 두명이 센카쿠 문제를 제기했는데 일본대사는 당연히 일본정부의 공식입장을 설명하고 끝냈습니다. 다소 귀찮아 한다는 느낌도 들더군요. 그리고 필리핀인으로 생각되는 여성 한명이 일본의 군사력을 "억제(Deterrence)"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느냐는 요지로 질문을 했는데 일본대사는 일본의 군사력은 어디까지나 "방어"를 위한 것이지 억제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고 답변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인 유학생 한명이 위안부 문제와 과거사 문제를 제기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일본정부가 아시아여성기금을 만드는 등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 왔음을 강조하는 판에 박힌 답변을 했습니다.

전반적으로 심심한 강연이었지만 직업외교관의 태도나 화술을 구경하는 재미는 있었습니다. 특히 민감한 질문에 대해서 자신은 정책입안자가 아니라 옵저버의 위치에 있다고 전제하면서 답변하는게 기억에 남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