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의 美利堅史 입니다. 바보이반님이 근혜공주님 이야기를 써 보는게 어떠냐는 의견을 주셔서 썼는데 아무래도 이명박 각하의 반격하는 모양을 봐서 7월 달에 속편도 써야 겠습니다.
================================해제조지 부시 주니어 8년 4월에 벌어진 팔공산성 전투는 한쿡 고대사에 한 획을 그은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이 전투를 계기로 천하 제패를 꿈꾸던 명박왕의 세력은 경기 일대로 축소되었으며
근혜공주는 천하 제일 명장이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팔공산성 전투는 이렇게 역사적으로 중대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한쿡 내에는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재구성할 자료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은 모두 우리의 고대 역사서 20만권을 동대문에 엿바꿔 먹은 일본의 만행 탓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쿡사편찬위원회는 최근 美利堅史의 한국관련 기사에 팔공산 전투와 관계된 내용이 많이 실려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쿡사 편찬위원회는 미리견사에 실린 한쿡 관계 기사 중에서 팔공산성 전투에 관련 부분을 발췌 편집하여 팔공산성 전투 자료집을 편찬하는 바 입니다.
쿡사편찬위원장
****************자유 8년(조지 부시 주니어 8년) 2월, 국왕이 여의도에 나아가 교서를 반포하기를
“삼가 생각컨데 태조(이승만) 께서 홍업(洪業)을 초창하시고 태종(박정희)께서 큰 사업을 이어 받으시어 삼가고 조심하여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하며 충성은 천자에게 이르고 효하고 공경함이 신명을 통하여 나라의 안팎이 다스려 평안하였다. (중략) 그런데 근자에 친북좌파 10년에 민생이 파탄에 이르고 노란 도적들이 나라를 어지럽혀 백성을 구제할 방법을 알지 못하였다. 다행히도 문무의 신료들이 추대해서 나에게 즉위하기를 권하므로 사양하여도 되지 않아 여의도에 대위에 나아갔노라. (중략) 이제 나라 안으로는 운하를 파고 나라 밖으로는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여 선진화의 원년으로 삼겠노라”
이에 모든 신료가 만세를 부르니 환성이 우레같이 끓어 올랐다.
美利堅史 卷三百 李明博世家
****************자유 8년 3월, 이재오, 이방호 등이 거병하여 박근혜를 삼성동에 유폐하였다. 강재섭이 나서 박근혜를 유폐함이 부당하다 하였으나 이재오가 듣지 아니하였다. 이에 서청원이 親朴의 기치를 들고 거병하니 영남의 뜻있는 장사들이 팔뚝을 걷고 동참하였다. 또한 홍사덕도 군사를 일으키니 여러 군현에서 무소속의 깃발을 들고 거병하는 자가 수십이었다. 이에 국왕이 이방호를 平嶺南都元帥에 임명하고 군사 수십만을 징발하여 서청원을 토벌하도록 하였다.
이때 도성에는 아동들 사이에
괴이한 노래가 퍼졌다.
축지법~♪ 축지법~♪ 공주님 쓰신다~♪
동에번쩍 서에번쩍 선거판을 쥐락펴락
총선정국 주름잡아 공주님 가신다
각하가 쓰시던 축지법~♪
오늘은 공주님 쓰신다~♪
팔공의 전법 신묘한 전법 공주님 쓰신다~♪국왕이 크게 노하여 노래를 금하였으나 날이 갈수록 노래가 널리 퍼졌다.
美利堅史 卷三百 李明博世家
****************자유 8년 3월, 노회찬이 스스로 진보대장군(進步大將軍)을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노원으로 나왔다. 강재섭이 홍정욱에게 군사를 주어 노회찬을 토벌하도록 하였다. 홍정욱이 군사를 이끌고 노원에 당도하니 노회찬은 이미 진을 치고 관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노회찬이 홍정욱을 보고 손가락질 하였다.
“네놈의 아비는 雷鷹 이라는 극을 찍으며 아동들이나 홀리던 광대가 아니더냐? 광대가 말을 타고 갑주를 걸쳤다고 장수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에 홍정욱이 분개하여 양손에 뉴타운과 자사고를 뽑아들고 크게 외쳤다.
“오늘 반드시 서민배우의 아들이 노동귀족을 무찌르리라!”
노회찬과 홍정욱이 수십합을 겨루니 홍정욱이 조금도 밀리지 아니하였다. 마침내 홍정욱이 틈을 엿봐 뉴타운과 자사고로 노회찬을 맞추니 노회찬이 낙마하였다. 이에 관군이 환성을 울리며 공격하여 진보군이 크게 패하였다.
美利堅史 卷二十九萬四百二 洪政旭列傳
****************자유 8년 3월, 손학규가 군사를 일으켰다. 손학규는 자유 7년(조지 부시 주니어 7년)에 황건적 수십만을 거두어 군세가 성대하였다. 손학규의 휘하에는 장군이라 칭하는 자만 140여인에 달하였고 황건적의 두령 지공장군(地公將軍) 정동영도 있었다. 정동영은 지난 싸움에서 국왕 이명박에게 패한 바 있어 항상 복수할 뜻을 품고 있었다.
손학규는 군사를 일으켜 종로구로 향하고 정동영은 동작으로 향했다. 손학규가 군사들을 독려하며 종로성을 맹렬히 공격했으나 박진이 힘을 다해 맞서 싸우니 손학규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군사를 물렸다. 박진이 성문을 열고 추격하여 손학규의 군사를 크게 파하였다.
한편, 울산공 정몽준도 정동영이 동작을 친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황선홍, 안정환, 허재, 김흥국 등 여러 장수와 가병을 이끌고 북상하였다. 정동영이 진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동작성을 치려 할 때 정몽준의 기병이 당도하여 정동영을 치니 정동영군이 크게 참패하여 수십리를 패주하였다.
美利堅史 卷十二萬七千七百二十五 孫鶴圭列傳
****************문국현이 군사를 이끌고 은평에 진을 치니 국왕이 이재오를 平恩平大元帥로 삼아 문국현을 토벌하도록 하였다. 문국현은 겨울에 국왕 명박과의 전투에서 패해 군세가 크게 위축되어 있었다. 이재오가 말을 달려 은평에 도착하여 문국현이 진 친 것을 보고 크게 비웃었다.
“지금 국현이 남은 잔당을 모아 진을 친 모습이 마치 堆土機 앞의 철거민 같도다. 단숨에 쓸어버리고 남은 잔당은 운하 공사에 노역을 시키겠노라”
이 말을 들은 국현의 군사들이 죽을 힘을 다해 싸우니 관군이 크게 불리하였다. 이 말을 들은 국왕이 크게 놀라 재오를 격려하였다. 국왕이 재오를 격려하니 국현이 여러 군사들에게 말하였다.
“지금 형세를 관망하니 우리가 여기에서 패한다면 우리 가솔들은 살아남더라도 꼼짝없이 노비가 되어 운하 공사장에서 평생 사역하는 치욕을 당할 것이다. 여기서 힘껏 싸워 치욕을 면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군사들이 이 말을 듣고 감격하여 마침내 관군을 무찌르고 수십리를 추격하였다. 이재오는 당황하여 말을 타고 도망치다 낙마하였다.
美利堅史 卷十二萬七千七百二十五 孫鶴圭列傳
****************최연희는 일찍이 수십의 기자에 단기필마로 돌진하여 그 중 여기자의 슴가를 취하여 명성을 떨쳤다. 이후 최연희의 명성이 천하에 널리 퍼지니 전국의 부녀자들은 최연희의 이름 석자만 들어도 두려워 하여 집밖을 나서지 못하였다.
자유 8년 3월, 최연희가 무소속의 기치를 내걸고 군사를 일으켜 동해 삼척을 평정하고 정인억이 이끄는 관군을 대파하니 국왕이 크게 놀라 전여옥과 나경원에게 군사를 주어 최연희를 토벌하도록 하였다. 전여옥이 군사를 이끌고 진을 치니 최연희가 단기필마로 호탕하게 웃으며 나왔다.
“성을 세 개 가진 잡년아! 슴가를 내놓아라!”
전여옥이 단 일합도 견디지 못하고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니 나경원이 나와 구원하려 하였으나 나경원도 최연희를 당하지 못하였다. 두 장수가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니 최연희가 뒤쫓으며 관군을 크게 무찔렀다.
美利堅史 卷 六十九 萬六千九百六十九 崔鉛熙列傳
****************서청원과 홍사덕은 군사를 이끌고 팔공산성에 도착하여 진을쳤다. 홍사덕이 감격하여 말하였다.
“팔공산성은 일찍이 홍건적의 난 때 도적을 크게 무찔러 중흥의 기틀을 닦은 곳입니다. 이후 선왕들은 여러 싸움에서 항상 팔공산성에 의지하여 이겼는데 오늘 우리가 이곳에 진을 친 것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징조입니다.”
마침내 이방호가 이끄는 군사가 팔공산성 아래에 도착하여 진을 쳤다. 그 군세가 심히 성대하여 푸른 비단에 李자를 넣은 깃발이 수십리에 나부꼈다. 이방호가 부장 정종복, 박형준 등을 이끌고 팔공산성 아래 도착하여 외쳤다.
“서청원과 홍사덕은 당장 성문을 열고 항복하라! 지금 병장기를 버리고 항복하면 운하 공사장에 한 자리 마련해 주겠노라!”
서청원이 비웃으며 외쳤다.
“방호야! 나는 운하보다 윤하를 좋아하느니라!”
방호가 분노하여 삼일 밤낮으로 堆土機와 穵掘機를 이용해 성을 공격했으나 아무 성과가 없었다. 그러나 관군의 군세가 성대하여 청원과 사덕도 함부로 성밖을 나서지 못하였다. 청원과 사덕이 관군을 파할 계책을 논의하였으나 뾰족한 수가 없어 시름만 깊어갈 뿐이었다.
이때 근혜 공주가 청원에게 밀지를 보내니 편지의 겉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편지에 쓰인대로 하면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
청원은 편지를 읽은 뒤 크게 기뻐하며 장수들에게 출전을 명하였다.
다음날 청원과 사덕이 성문을 열고 팔공산성 아래 진을 치니 방호가 이를 보고 기이하게 생각하였다. 방호가 말을 달려 친박군의 진 친 것을 보니 처음 보는 기이한 진이었다. 부장들도 청원이 진 친 것을 보고 기이하고 두렵게 생각하여 함부로 나서지 못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머뭇거리자 방호가 크게 노하여 공격을 명하였다. 그러나 관군의 숫자가 많음에도 청원이 친 진을 무너뜨리지 못하였다. 오히려 정종복, 박형준 등 부장들만 무수히 낙마하니 관군의 사기가 꺾여 크게 패하였다. 청원과 사덕이 군사를 이끌고 치니 관군은 수백리를 패주하여 사천으로 달아났다.
방호가 사천까지 달아나 겨우 군사를 수습하였는데 그래도 그 수효가 수만이었다. 이때 사천의 산중에 강기갑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강기갑이 방호가 사천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민병을 조직하여 싸우러 나서니 방호가 크게 비웃었다.
“저자는 친북좌파가 아니냐? 내가 서청원과 홍사덕에게 원한을 갚기 전에 저자를 먼저 잡아야 겠다!”
이방호가 말을 달려 싸움을 돋우니 강기갑도 말을 달려 나왔다.
“방호야! 나의 박사모(朴蛇矛)를 받아라!”
방호가 강기갑을 맞서 싸웠으나 방호의 창이 박사모를 능히 당해내지 못하였다. 몇 합에 방호의 창이 부러지고 낙마하니 부장들이 방호를 호위하여 겨우 사지를 벗어났다. 이때 사천을 벗어난 것이 불과 수십기였다.
근혜 공주가 고안한 진법을 후대에 측은지진(惻隱之陣)이라 하였는데 오늘날은 전하지 아니한다.
美利堅史 卷 十一萬九 徐淸源列傳
****************관군이 수백리를 패주하여 추풍령에 이르렀을 때 돌연 방호가 크게 웃었다.
한 장수가 물었다.
“장군. 싸움에 패하여 남은 군사도 없는데 어찌 그리 즐거우십니까?”
방호가 말하였다.
“내 일찍이 근혜 공주의 지략이 신묘하다 들었는데 지금 보니 어리석기 짝이 없도다. 내가 용병을 한다면 미리 추풍령에 군사를 매복하였을 것이다.”
이때 한 장수가 대군을 이끌고 길을 막으며 벽력같이 소리쳤다.
“나는 예산 땅의 이회창이다. 근혜 공주님의 명을 받들어 너를 기다린 지 오래다!”
회창의 군사들이 방호를 에워싸니 방호가 마침내 부장들과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었다.
“이회창공! 예전의 인연을 생각하시여 목숨만은 부지하게 해 주소서.”
이회창이 말에서 굽어보니 방호와 그를 따르는 장졸들이 행색이 초라한지라 차마 벨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구나”
이회창은 한 마디 긴 탄식을 하고 말머리를 돌려 자유선진당사로 돌아갔다.
美利堅史 卷 三十一萬七千六百四十 李方鎬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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