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September 30, 2008

[妄想劇場] 헬싱 6화

이 이야기는 정신건강에 매우 해롭습니다.


[妄想劇場] 헬싱 - 예고편???

[妄想劇場] 헬싱 1-2화

[妄想劇場] 헬싱 3-4화

[妄想劇場] 헬싱 5화


-서해해상, OO페리호

“미치겠네;;;”

여객선의 승객과 선원들은 취객 박연차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바다에 던져 버릴 수도 없고;;;;”

박연차는 승객들의 짜증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계속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앗! 저게 뭐야?”

저 멀리서 바다를 가르며 쾌속으로 질주해오는 오리보트 한 척이 있었다. 그리고 그 보트에는 한 남자가 우뚝 서 있었으니 그는 바로.

허! 경! 영!

만취해서 헤롱거리던 박연차도 순간 엄청난 기운을 느끼고 눈을 떴다.

“녀석이 온다!”

박연차는 허경영을 유인하라는 무현 소좌의 지령을 떠올렸다. 박연차는 허경영을 맨정신으로는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만취하도록 술을 퍼먹었으나 허경영의 기를 느끼자 조금씩 제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 녀석이야! 그 녀석이야! 광기의 대변자가 온다’

박연차는 사지가 떨렸다.

타앗!

허경영은 오리보트를 여객선의 우현에 대고는 바로 여객선으로 뛰어올라 갑판 한가운데 우아하게 착지했다.

“10대 공약 제1호 개방!”

박연차는 뭔가 지껄이려고 했으나 술에 취해 혓바닥이 꼬여버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버버….”

허경영은 강렬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박연차에게 다가갔다. 허경영은 만취해서 몸도 가누지 못하는 박연차에게 사자후를 토하기 시작했다.

“박연차! 만취해서 고성방가를 하는 것은 경범죄라는 것을 모르는가?”

“!”

“내가 저술한 ‘3,000명의 살생부’는 읽어 봤나?”

박연차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허경영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친절하게 설명했다.

“내가 집권하면 3,057명의 사회지도층에 대한 퇴출수사와 재산조사 및 회수에 착수할 예정이다. 두렵지 않나?”

“어버버버;;;;;”

박연차는 뭔가 지껄여야 겠다는 생각은 했으나 도데체 말로 나오지가 않았다.

‘쉬발. 술을 너무 마셨구나.’

그러나 후회해도 때는 늦었다. 허경영의 사자후는 자비심 없이 박연차의 귓전을 때렸다.

“그리고 나는 우리나라 상류층이 포탈하고 있는 연간 100조원의 소득세를 모두 징수해 경제혁명의 발판으로 삼을 것이다. 박연차! 너는 모범납세자인가?”

‘끄으;;;;;’

“자. 국립부정부패자 전시관에 면상을 올리기 싫다면 지금이라도 죄를 뉘우쳐라!”

“끄어어어~”

박연차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허경영에게 도전한 것을 후회했다. 박연차는 허경영을 맨정신으로도 상대할 수 없고 만취상태로도 상대할 수 없다는 값비싼 교훈을 얻었다.


-서울톨게이트 전방 2km

“박연차. 수고했다. 작전은 성공이다! 완벽해!”

무현소좌가 탑승한 선두의 리무진 버스 앞에 서울톨게이트가 나타났다.

“서울이다!”

버스에 타고 있던 노사모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울렸다.

무현소좌는 마이크를 잡았다.

“그렇다. 저것이 우리가 기다리고 염원했던 서울의 불빛이다! 나는 약속대로 제군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저 그리운 정치판으로!”

“소좌님!”

“자. 그리고 30분 뒤면 한강을 건너 여의도로 간다!”

이때 버스기사가 말했다.

“강변순환도로가 조금 막힌답니다.”

“….”

무현소좌는 다시 말을 계속했다.

“자, 어쨌건 늦어도 한 시간 뒤면 한강을 건너 여의도로 간다. 자! 제군들. 깽판을 만들어라!”


-한나라당 상황실

“큰일났습니다. 대표님. 영등포 지구당사가 통신두절. 연락을 취할 수 없습니다!”

“동작구 지구당으로부터 전보! 정체불명의 바보들과 교전 중!”

한나라당 당사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당사에 와 있던 박근혜는 시계를 쳐다봤다.

“시작됐다. 드디어 시작된 겁니다.”

이때였다. 손학규와 그 일당이 상황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하하하! 박희태에다가 박근혜까지 와 있군! 행운인걸!”

“큭큭큭!”

박근혜는 손학규를 비웃었다.

“너 이년! 뭐가 우스워?”

“너는 그냥 낙동강 오리알 같은 철새야. 굳건한 지지 기반도 없는 주제에 누구 앞에서 행패야?”

“내가 철새라고?”

손학규는 발끈하면서 앞으로 나섰다. 근혜가 소리를 질렀다.

“종필이 아저씨!”

스윽!

구석에 짱박혀 있던 김종필이 으스스한 포스를 풍기며 나타났다.

“허억! 당신은!”

“자. 상대해 주마. 철새들아!”

정치 9단 김종필의 가차 없는 응징이 시작됐다.


-여의도 공원 앞

관광버스에서 내린 노사모가 여의도 공원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리무진 버스에서 무현 소좌가 내려섰다.

“소좌! 소좌!”

노사모의 환호성이 여의도를 울렸다.

“노사모 전원 주목!”

일순간 주위가 잠잠해 졌다. 무현 소좌는 느글느글한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자아! 소원성취의 밤이 왔다! 정치의 밤에 온걸 환영한다!”

“와아!”

“목표는 유신기관, 그리고 허경영의 타도다!

조기숙! 조기숙!

너에게 관광버스 두대를 준다. 유신기관 본부로 직행해라. 허나 무리한 공격은 피해라. 나와 본대가 도착하기를 기다려라.”

조기숙이 재수없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수고스럽게 그럴 필요 없습니다. 허경영이 없는 유신기관 따위는 경로당에 불과하죠.”

무현 소좌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 여자들이 있다. 박근혜와 송영선을 우습게 보지 마라.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 육영수의 머리모양을 하고 박정희 같은 말을 하는 존재다. 저 허경영이 인정한 허경영의 주인이다.

그리고 대변인 송영선, 하하하. 바보 같은 존재지. 그녀는 자기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 줄도 몰라. 하여튼 이 녀석은 재밌어.

어쨌든 나는 두 여자를 허경영과 동일한 존재라고 결론짓고 있다. 알았나 조기숙? 무리하지 마라. 내가 도착하기를 기다려.”

“네. 알겠습니다. 노짱.”

“그럼 좋아. 제군들. 봇물을 터라. 정치 탁류의 봇물을 터라!”


-한나라당 당사

손학규와 그 일당은 제압되었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상황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여의도 전체에 노사모입니다.”

“서울시의 다른 지구당과도 연락이 두절입니다!”

박근혜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방금전의 손학규와 같아. 한 자리의 유혹에 빠진 철새가 많았다고!”

박희태와 당직자들은 아연실색했다.

“박희태 대표. 어서 이곳을 피하세요. 10분안에 노빠들이 들이닥칠 겁니다.”


-여의도

여의도 전체는 노사모가 확성기로 내지르는 소음으로 가득찼다. 1년 365일 작은 시위 한번 없는 날이 없는 여의도였으나 노빠의 대규모 습격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로 스트레스를 팍팍 받는 직장인들은 저마다 욕을 하며 지나갔다.

박근혜와 김종필은 큰길을 피해 차를 몰았다. 그때 갑자기 한 명의 그림자가 그 앞을 막아섰다. 김종필 집사의 얼굴은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아가씨. 어서 방향을 돌려 피하십시오. 뒤돌아 보지 말고 전속력으로! 아시겠습니까?”

“종필이 아저씨!”

“빨리요. 지금의 저로서는 저곳의 저놈에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박근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를 돌려 달아났다. 김종필의 앞으로 한 남자가 다가왔다.

“역시! 역시 네놈인가!”

김종필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래 집사. 오랜만이야!”

김영삼이 띨띨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잠시 뒤 원효대교 앞

“박근혜 이동 중!”

“추격하라!”

“박근혜는 단신이다! 포획하라!”

박근혜는 노사모를 피해 필사적으로 액셀레이터를 밟았다. 그런데 열심히 달리던 자동차가 갑자기 멈춰섰다.

“뭐야 이게!”

자세히 살펴보니 기름이 없었다.

“아흙! 기름값 아낀다고 2만원치만 넣었더니!”

박근혜는 뒤늦은 후회를 했으나 이미 늦었다. 노사모가 박근혜의 자동차를 둘러쌌다.

“포기해라 박근혜!”

박근혜는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차에서 내렸다.

“좋다. 노빠들. 우리 아빠의 혁명공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읊어주마!”

“크흐흐. 이년 훌륭하군!”

노빠들은 박근혜를 비웃으며 조금씩 다가왔다. 그때-

“잠깐! 우리 모두 치수문제라던가 수질문제 차원에서 대운하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 해보는게 어떨까?”

“!”

“너는! 소망교회 18과 공구리오테…”

노빠들도 경악했다.

“대운하 전도사!”

“정치목사!”

“목사...."


추!



부!



길!



- 효창공원

이명박 장로는 공원 벤치에 누워 소망교회 주보를 읽고 있었다. 소망교회 집사 한 사람이 다가왔다.

“국장님. 이명박 국장님 일어나십시오. 여의도에 보낸 공구리오테가 박근혜를 사로잡아 추격하는 노사모와 말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쳇. 찌질이 같은 놈들. 교전은 삼가라고 했을 텐데.”

여의도에서 노사모의 확성기 소리가 들려왔다.

“호. 정말 시끄러운데. 마치 도떼기 시장같군.”

“퇴근길 직장인들의 불쾌지수가 더 높아졌습니다.”

“흥. 무능한 룸펜들에게 한번 정치 맛을 보여주니까 이렇게 된거야. 자업자득이지!”

“하하하! 그렇습니다.”

저벅! 저벅!

군복을 입은 수천명의 중년 남성들이 효창공원을 가득 메웠다.


“북파공작원 전우회 총원 340명 참전!”



“예비역 대령 연합회 총원 118명 참전!”



“고엽제전우회 총원 257명 참전!”



“뉴라이트 전국연합 총원 2457명 참전!”



뉴라이트 회원 대표가 이명박에게 보고했다.

“우리는 친북좌파 척결의 대의를 위해 참전했습니다. 우리 군단은 반공십자군을 편성. 총 지휘권을 이명박 장로께 위임합니다!”

이명박은 썩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할렐루야! 아멘! 전신전령으로 받겠다. 목표는 여의도. 열광적인 성전을 발동한다!”

“아~ 멘!”

저벅! 저벅!

이명박의 명령과 함께 반공십자군은 공원에 대기시킨 육공트럭에 올라탔다.

“크크크. 내가. 고물을 팔아 연명하던 내가 소망교회 장로! 반공십자군을 지휘하게 되었어! 하하하!”

이명박의 음산한 웃음소리와 함께 반공십자군을 태운 트럭의 대열이 마포대교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무서워라;;;;

어제는 하루종일 두통에 시달려서 거의 아무일도 못하고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약을 먹고 자다 깨보니 무시무시한 미국발 뉴스가 뜨는군요.

왠지 올 연말은 여러모로 훈훈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입니다.;;;;;

Sunday, September 28, 2008

[妄想劇場] 헬싱 5화

이 이야기는 정신건강에 매우 해롭습니다.

[妄想劇場] 헬싱 - 예고편???

[妄想劇場] 헬싱 1-2화

[妄想劇場] 헬싱 3-4화

-봉하마을

유시민이 특전사에 사살당하는 멧돼지 같은 비명을 지르며 뻗어버리는 장면을 본 무현 소좌는 음산한 웃음소리를 냈다.

“아아. 유시민의 정신이 나가 버리다니! 하하하. 역시 황당하군! 엄청나게 황당해. 존재한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옆에 서 있던 명계남은 민망해서 어쩔 줄 몰랐다.

“죄송합니다. 유시민이 저렇게 쉽게 당할 줄은…”

“아니야. 허경영을 상대로 저 정도 지껄였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놀랄만한 발전이다! 나를 따르는 노빠들. 그것들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라고.”

무현 소좌는 허경영과 유시민의 전투를 지켜 본 뒤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무현 소좌는 담배를 끈 뒤 슈퍼마켓 밖에 세워둔 ATV에 올라탔다.


-김해시 모처

허경영과 송영선은 난감한 표정으로 길가에 서 있었다. 유시민과 노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 지갑을 털린 것이었다. 근혜에게 전화를 했다가 욕만 바가지로 먹은 허경영의 표정은 더욱 더 침울했다. 그런데 갑자기 소망교회 이름이 붙은 승합차 한대가 그들의 앞에 섰다.

“어서 타라.”

운전사는 추부길이었다.


-다시 봉하마을

무현 소좌의 사저 앞마당에는 민주당의 원로들이 모여있었다.

“그 이야기 들었습니까? 노빠들은 무현을 ‘슨상님 대행’으로 부른다더군요”

“듣기 거북하군. 부산 촌놈 주제에!”

이때였다.

“소좌님이 돌아오셨다!”

무현 소좌가 느글느글한 표정을 지으며 나타났다.

“슨상님 특사 18호.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조순형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도데체 자네 뭘하고 있는거야?”

“말씀을 드릴 수가 없군요. 지금은 은퇴하신 슨상님의 비밀 지령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대답할 수 없습니다.”

“감히 너 따위가 슨상님의 이름을 빌려..”

“저는 명령을 실행하고 있을 뿐 입니다.”

조순형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탄핵 당하고 싶은거냐!”

순간 주변의 공기가 험악해졌다. 노빠들이 민주당 원로들을 둘러쌌다. 조기숙이 인상을 구기며 앞으로 나섰다.

“노사모는 소좌가 준비해 온 것. 용서할 수 없어. 이 난닝구들!”

민주당 원로들은 기가 질렸다. 조순형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소좌. 도데체 노빠들을 데리고 뭘 하려는 건가!”

노무현은 느글느글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내 목적? 흐흐흐. 목적 말입니까? 정치의 환희를 무한대로 맛보는 겁니다.”


-얼마 뒤 유신기관 서울 본부

회의실에는 각 반공단체의 수장들이 집합해 있었다.

“허경영은 아직 안 왔는가?”

한국자유총연맹 회장에 박근혜에게 물었다.

“조금 있으면 도착할 겁니다.”

박근혜는 맞은 편에 앉은 이명박이 썩소를 짓고 있어서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철컥!

드디어 허경영과 송영선이 회의실에 들어섰다.

“그럼 보고 하겠습니다.”

허경영은 도착하자 마자 보고를 시작했다.

“몇 년 전 자아도취에 빠진 소좌 한명이 있었습니다. 그는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정당을 만들어 정치 개혁을 하자는 구호 아래 열린 우리당을 만들었지요. 그리고 백년정당이니 전국정당이니 하는 망발을 했습니다.”

그리고 박근혜가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그 망상은 우리가 물거품으로 만들었습니다.”

다시 허경영의 말이 계속됐다.

“하지만 그들은 단념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봉하마을에는 놀랄만한 골수 노빠들만 모였고 마침내 그들은 키보드 질만 하다가 세상으로 발을 내 딛었습니다. 골수 노빠들의 모임, 정상적인 판단력을 상실한 자들의 집단. 이것이야 말로 열린 우리당의 최후의 패잔병.”

“!”

“노! 사! 모!”

이때였다.

“역시 다들 모여 있었네.”

노사모 후드티를 입은 노혜경이 썩소를 날리며 회의장으로 들어왔다.

“저는 특사입니다.”

박근혜는 어이가 없어 물었다.

“뭐, 특사라고? 종필이 아저씨!”

“경비서는 영감이 오늘 병가를 내서 경비실이 비었습니다.”

“….”

노혜경은 회의실의 노트북을 켰다.

“오늘 모이신 전국의 반공단체 지도자 분들께 저희의 지도자이신 무현 소좌님의 말씀이 있으실 겁니다. 잘 들으세요.”

그리고 바로 회의실의 스크린에 무현 소좌의 면상이 나타났다.

“오랜만이군! 허경영군!”

“그만 하시지 소좌.”

노무현은 박근혜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이 유신기관의 책임자인가?”

“목적이 뭐지?”

“목적? 목적 말인가? 후후후. 이봐 노처녀. 그건 쓸데 없는 질문이야. 결론부터 말해주지. 내 목적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

“!”

그리고 화면은 다시 봉하마을에 몰려든 수많은 노사모 회원들을 비췄다. 노혜경이 썩소를 날리며 말했다.

“소좌님. 좀 충격적이지 않을까요? 여긴 노까들이 많다구요.”

이명박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당신들 미쳤구만!”

노무현은 느글느글한 미소를 날리며 받아쳤다.

“한반도를 남북으로 횡단하는 운하를 만들자는 정신 나간 소리를 해 대면서 내가 정치를 하건 말건 무슨 상관이야!”

이명박은 무안해 졌다. 노무현은 말을 계속했다.

“결론부터 말해 줄까? 할 수 있다면 다들 나를 멈추게 해 보라고 하고 싶군! 자칭 반공 애국지사 여러분! 하지만 안 됐군. 내 적은 당신들 뿐 만이 아니라고. 18과, 한나라당, 유신기관. 그리고!”

“!”

“저기 저 허경영까지!”

“크하하하하!”

노무현의 장광설을 듣고 있던 허경영은 호탕하게 웃으며 외쳤다.

“집념이 강한 놈이군! 하하. 정말 난감한 선전포고다! 좋아, 좋아, 몇 번이건 받아주지!”

가만히 듣고 있던 박근혜도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선전포고? 장난치냐? 당신들은 그냥 찌질이 정치룸펜 집단에 불과하다고.”

“그래? 그럼 이만. 노처녀! 정치판에서 만날 걸 즐겁게 기다리지!”


-같은 시각, 인천 해양경찰서 상황실

“이럴수가!”

“무슨 일이야?”

“여객선 한 척에서 취객에 의한 난동이 일어났습니다.”

“그게 뭐?”

“취객이 박연차 라는데요.”


-같은 시각 봉하마을

선전포고를 마친 무현 소좌는 앞마당으로 나왔다. 마당에는 수많은 노빠들이 도열해 있었다. 잠시 침묵하던 무현 소좌는 특유의 느글 느글한 미소를 지으며 연설을 시작했다.

“제군들! 나는 정치가 좋다.

제군들, 나는 정치가 너무 좋다.

제군들, 정치를 아주 아주 좋아한다.

청문회가 좋다.
선거 유세가 좋다.
TV 토론이 좋다.
방송 인터뷰가 좋다.
국민과의 대화가 좋다
국회 연설이 좋다.
해외 순방이 좋다.

유세장에서 방송국에서
신문사에서 국회에서
정부청사에서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장에서 유엔총회에서
백악관에서 주석궁에서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정치를 아주 좋아한다.

탄핵 역풍으로 혼란과 함께 민주당이 뒤흔들어 지는 것이 좋다.

풍비박산난 민주당 낙선 의원들을 인터넷에서 조롱하는 것에 가슴이 뛴다.

노사모의 키보드질에 수구 꼴통들의 울화통이 터지는 것이 좋다.

비명이 울려 퍼지고 박살난 민주당에서 떨려난 당직자들이 노숙자가 될 때 마음이 후련해진다.

키보드로 무장한 노사모가 인터넷 게시판을 유린하는 것이 좋다.

공황 상태의 노사모가 조선일보 게시판에 몇 번이고 악플을 달 때 감동을 느낀다.

개표 방송에서 정동영의 득표수를 확인한 뒤 애도를 표하는 것도 빠져서는 안된다.

울부짖는 통합 민주당을 상냥하게 달래다가 주요 직위를 차지해 도로 열린우리당을 만드는 것도 최고다.

가여운 난닝구들이 잡다한 논리로 꿋꿋하게 저항할 때 나의 측근들이 민주당의 주요 직위를 차지하는 것이 행복하다.

노사모가 이유 없이 열폭하는 것이 좋다.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던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건 매우 매우 슬플지도 모르지.

난닝구들의 뒷통수를 후려쳐 섬멸시키는 것도 좋아하고 인터넷에서 스토커 짓을 하며 해충 같은 난닝구들이 굴욕적인 패배를 맞게 하는걸 극도로 즐긴다.

제군들. 나는 이 정치판이 난장판이 되길 원한다.

제군. 나를 따르는 노사모 제군들.

제군들은 어떻게 되기를 원하나?

변화 없는 보통의 정치?

갑작스런 청문회 스타도 없는 그런 정치를 원하나?

아니면 모든 상식을 뒤엎고 꼴리는 대로 내뱉는 깽판과 같은 정치를 원하나?

정치! 정치! 정치!

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리는 지금 혼신의 힘을 다해 깽판을 치려 하고 있다.

그렇지만 골방의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나 두들기던 우리들에게 평범한 정치는 택도 없다!

큰 깽판을.

다시는 일어날 수 없는 큰 깽판을!

우리는 겨우 천명이지만 평범한 찌질이는 아니다.

제군들의 깽판질 만은 일당 천의 최강자 들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결국 우리들, 제군들과 나는 총병력 1백만과 1인의 집단이 된다.

우리를 여당에서 쫒아내 룸펜으로 전락시킨 놈들을 두들겨 깨우자!

놈들의 눈과 귀를 깨우고 머리털 한 올 까지도 우리를 기억 나게 하자.

녀석들에게 짜증이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나게 해 줘라.

녀석들에게 우리의 헛소리를 다시 듣게 하라.

하늘과 땅 어디에도 녀석들이 상상하지도 못할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가르쳐 줘라.

일천 노사모로 한국을 끝장내 버린다.

노사모의 지휘관으로부터 전 회원에 명령이다!

가자 제군들!"

부릉! 부릉!

노사모가 전세낸 관광버스들에 일제히 시동이 걸렸다.

Saturday, September 27, 2008

조지 오웰의 수류탄에 대한 추억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다 보면 조지 오웰이 장비 부족에 대한 불평을 자주 늘어놓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내전 초반 쓸만한 정규군 부대들은 프랑코 쪽에 많이 합류했고 소련의 지원도 내전 초기에는 외국 지원병들에게 잘 들어가지 않아서 장비 부족은 꽤 심각했던 모양이더군요. 조지 오웰의 무기에 대한 불평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사제 수류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철모도, 총검도 없었다. 리볼버나 피스톨도 없었다. 폭탄은 다섯 명이나 열 명에 하나 씩이었다. 이 시기에 사용되던 폭탄은 ‘F.A.I.수류탄’으로 알려진 무시무시한 것 이었다. 전쟁 초기에 무정부주의자들이 생산하던 것 이었다. 이것은 원리상으로는 달걀 모양의 밀스 수류탄과 같았으나, 레버가 핀이 아닌 테이프 조각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테이프를 떼는 즉시 최대한 빠른 속도로 수류탄을 던져야 했다.

이 수류탄을 “공평하다”고들 했다. 맞은 사람과 던진 사람을 다 죽였기 때문이다.

다른 종류도 몇 가지 있었는데, ‘F.A.I. 수류탄’보다 더 원시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약간은 – 그러니까 던지는 사람에게 – 덜 위험할 것 같았다. 그나마 던질 만한 수류탄을 보게 된 것은 (1937년) 3월 말이 지나서였다.

조지 오웰/정영목 옮김, 『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2001, 50쪽

※F.A.I.는 1927년에 조직된 무정부주의 단체입니다. Federación Anarquista Ibérica의 약자이죠.

예전에 한국전쟁 당시 제주도에서 수류탄 개발에 참여하셨던 원로 기술자 한 분을 뵌 적이 있었습니다. 찾아 뵈었을 무렵에는 화장품 회사 고문으로 계시면서 가끔 글을 쓰고 계셨지요. 그 분 말씀이 수류탄을 개발하면서 시험할 사람이 따로 없다 보니 기술자들이 직접 수류탄 시제품 시험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귀한 기술자들이 어이없게 희생된 사례가 꽤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 분의 증언을 들으면서 수류탄도 의외로 만들기 어려운 물건이구나 싶었는데 뒤에 조지 오웰의 글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그 분의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생각해 보면 17세기 말에 원시적 수류탄이 사용된 뒤 요즘과 같은 모양을 가지기 까지 거의 300년 정도가 걸렸으니 지금 보면 참 단순한 물건 이라도 우습게 봐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Wednesday, September 24, 2008

[妄想劇場] 멋지다! 노사루

“랄라랄라~”

정세균은 콧노래를 부르며 교문을 들어섰다. 오늘이 바로 전학 첫 날인 것이었다.

“아아. 지금까지는 전학 다니느라 친구를 사귈 수 없었지만 이번엔 꼭 제대로 된 친구를 사겨야지!”

정세균의 머릿속은 장밋빛 환상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그 꿈은 몇 시간 되지 않아 망가지고 말았으니…

“자. 새로 온 전학생을 소개한다.”

담임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정세균을 소개하려 할 때였다.

“모두 반가워! 내 이름은 정…”

정세균이 자기 소개를 마치기도 전에 창문 밖에서 음산한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O sole mio~ sta 'nfronte a te~
O sole, 'o sole mio~ sta 'nfronte a te~

“이 노래는!”

순간 교실에 있던 사람은 정세균을 제외하고 모두 얼어 붙었다.

“놈이다!”

담임선생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곤 교실을 뛰쳐나갔다.

“뭐야. 이게 뭐야?”

정세균은 당황했다. 학생들은 모두 얼어붙어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드르륵!

교실 창문이 열리며 느글느글한 면상의 학생 하나가 들어왔다.

“오우! 모두 오랜만이야.”

학생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묵묵 부답이었다. 답답함을 느낀 정세균이 느글느글한 면상의 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난 새로 전학온 정세균이라고 해. 너는 누구니?”

느글느글한 면상의 학생은 정세균을 훑어 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 세균. 고향은 어디지?”

“어… 나는 전북 장수 출신인데…”

“오옷. 전북! 진보 개혁의 본거지잖아. 원츄!”

“뭐야. 날 좋아하는 것 같긴 한데 뭔가 기분나빠;;;;”

“좋아. 세균. 내 소개를 하지. 내 이름은 노사루라고 해. 앞으로 잘 지내 보자.”

잠시 뒤. 학교 옥상.

정세균과 노사루는 옥상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아. 담배를 피워야지.”

노사루는 바지 주머니에서 거의 다 피운 담배 꽁초 하나를 꺼냈다. 정세균은 경악했다.

‘뭐야! 저거 휴지통에서 주운 것 아냐?’

노사루는 담배를 한 모금 빨더니 중얼거렸다.

“크어. 역시 담배는 필터까지 태워야 제맛이야!”

‘전혀 아닌 것 같아…”

노사루를 측은하게 생각한 세균은 가방안에 있던 담배 한갑을 내밀었다.

“자. 이거라도 피워.”

노사루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세균. 이런… 이런거 굳이 주지 않아도 괜찮은데…”

그리고는 한 갑을 다 빼앗아 피웠다.

‘뭐야 이 색희;;;;; 존나 뻔뻔하잖아.’

세균의 어이가 가출했다. 세균은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었으나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말을 걸었다.

“그래. 노사루. 지난 반년간 어디서 뭘 하고 지냈니?”

“아.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 이거 함부로 말하긴 그런데…. 그래도 세균이 에겐 이야기 해 주지!”

노사루는 침을 튀기며 말을 계속했다.

“고향인 봉하마을에 집을 짓고 농사를 지었지. 용인에서 오리를 사다가 논에 풀어놨는데 뒷산에서 들고양이나 오소리가 내려와 다 잡아먹었어.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어. 매일 같이 내 팬클럽이 찾아오느라 정신 없었지.”

‘이런 미친놈을 좋아하는 병신들이 있단 말야?;;;;;’

“하지만 세상은 나를 내버려 두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반년간 다시 정치 무공을 연마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지. 그래서 만든게 민주주의 2.0이야!”

노사루는 자랑스럽게 노트북을 꺼내 민주주의 2.0을 보여줬다.

정세균은 속으로 욕을 했다.

‘아놔. 2.0이라면서 RSS 피드도 지원 안하네. 존나 구리구만.’

“그러고 보니 너한테 신세를 졌으니 닉네임 하나는 지어줘야겠지?”

“아냐. 그런 거 필요 없어!”

그러나 노사루는 세균의 말은 쌩까고 벌써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호남이 고향이니 난닝구나 호구가 좋겠어.”

이 말을 들은 정세균의 머릿속은 하얗게 질렸다.

‘안돼! 난닝구 같은 건!’

“그래. 그럼 오늘부터 세균이의 닉네임은 난닝….”

“그래! 노사루! 호구가 좋겠어!”

“좋아. 오늘부터 호구라 부르지.”

잠시 뒤 하교길.

노사루는 괴로워하는 정세균은 아랑곳 않은 채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나는 항상 반미 자주적 태도를 견지해 왔지. 내 팬들이 열광하는 이유야.”

이때 옆 동네 고등학교의 한물간 양아치 부시가 나타났다.

“어이 노사루. 내가 군대가 필요한데 군대 좀 내놔라.”

순간 노사루의 반미 자주적 태도가 돌변했다.

“넵. 굽실굽실.”

세균은 경악했다.

‘뭐야. 이건. 노뽕식 자주인가!’

둘은 다시 길을 걸었다. 노사루의 장광설도 계속됐다.

“나는 항상 진보개혁 진영이 호남의 울타리를 벗어나 전국 정당으로 발돋움 하길 원했지.”

이때 팔공 공주파의 보스 박근혜와 똘마니들이 나타났다. 순간 노사루는 박근혜에게 달려갔다.

“근혜씨! 제발 대연정에 참여해 주세요!”

박근혜는 일절 대꾸 없이 똘마니들을 데리고 갈 길을 갔다.

정세균은 또 다시 경악했다.

‘뭐 이런 병신이 다 있어?’

두 사람은 다시 길을 갔다. 이번에는 서민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그래 노사루. 잘 걸렸다! 오늘은 끝장을 보자.”

그런데 이번엔 노사루의 태도가 달랐다. 노사루는 썩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훗. 내가 그동안 연마한 필살기를 보여주지.”

다다다다!

“뭐야! 저 괴상한 걸음은?”

“간다! 왼쪽 깜박이 켜고 우회전 하기!”

노사루의 필살기가 작렬하자 서민들은 모두 토네이도에 휩쓸린 기왓장처럼 날아가 버렸다. 정세균은 겁에 질려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서민들을 한 방으로;;;; 정말 굉장하다.”

그러나 호구가 노사루의 황당함을 알게 되는 것은 이제 시작이었다.

한동안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는데 역시 우리의 노뽕. 가만히 있질 않는군요. 헬싱도 빨리 마무리 지어야 겠습니다.

Tuesday, September 23, 2008

오늘 구입한 책

저녁에 서점에 들렀다가 책을 한 권 샀습니다.


표지가 멋져서(!) 집어들었는데 목차와 본문의 몇몇 부분을 대략 훑어 보니 꽤 재미있어 보이더군요. 돌아오는 버스에서 조금 더 읽었습니다. 대략 훑어 보니 저자가 아시아 문제에 있어서 민족주의의 강화를 가장 우려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특히 한국 부분에서는 노무현 정부 들어 부쩍 높아진 한국의 민족주의 문제가 한-미-일 삼각동맹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꽤 주목하고 있더군요. 대표적으로 2005년에 있었다는, 한국이 미국에게 한미동맹의 가상적으로 '일본'을 넣자고 요구한 민망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헉;;;; 브레진스키의 '거대한 체스판'을 재미있게 읽은 경험이 있는데 이 책은 그 책 보다는 조금 딱딱해도 비슷하게 재미있어 보입니다.

Friday, September 19, 2008

국공내전 당시 국민당군에 대한 약간의 잡설

그냥 잡담입니다. ^^

첫 번째 잡설. 국민당군의 장개석 직할 사단의 무장 상태에 대한 것 입니다. 원래 sonnet님의 글, “회해전투 당시 사단 무장”을 읽은 뒤 관련 자료를 찾아서 트랙백 해야 겠다 하다가 건망증으로 잊어 버리고 이제서야 올리게 되는 군요.

1947년 중순 3각 편제로 편성된 일반적인 “장개석 직할 사단”의 무장 상태는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비교 대상으로 비슷한 시기 인민해방군의 동급 부대인 종대(纵队)의 장비현황도 같이 올려 봅니다.


이 표에서 재미있는 것은 전체적으로 인민해방군의 동급 부대가 장비와 화력에서 열세인 것은 사실인데 50mm박격포와 경기관총에서는 격차가 비교적 적다는 점 입니다. 국민당군에 비해서 중화기는 부족하지만 경장비는 그럭저럭 충실한 수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국민당군 보다 장비가 열세인 것은 어쩔 수 없지요. 인민해방군은 차량 같은 경우는 아예 보유하고 있질 못 합니다.

두 번째 잡설. 회해전역(淮海战役) 당시 국민당군의 전투서열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회해전역 당시 국민당군의 사단급 전투서열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제2병단 : 사령 구청천(邱淸泉)
-제5군 : 45사, 46사, 200사
-제70군 : 32사, 96사, 139사
-제74군 : 51사, 57사, 58사
-제12군 : 112사, 238사
-제72군 : 34사, 233사, 122사
-제116군 : 287사, 288사
기병 제1여
독립여

제6병단 : 사령 이연년(李延年)
-제99군 : 92사, 99사, 268사
-제39군 : 103사, 147사
-제54군 : 8사, 198사, 291사
-제96군 : 141사, 212사

제7병단 : 사령 황백도(黃百韜)
-제25군 : 40사, 108사, 148사
-제63군 : 152사, 186사
-제64군 : 156사, 159사
-제100군: 44사, 63사
-제44군 : 150사, 162사

제13병단 : 사령 이미(李彌)
-제8군 : 42사, 107사, 237사
-제9군 : 3사, 166사, 253사
-제115군 : 39사, 180사
-제64군 : 156사, 159사

제16병단 : 사령 손원량(孫元良)
-제41군 : 122사, 124사
-제47군 : 125사, 127사

제12병단 :사령 황유(黃維)
-제10군 : 18사, 75사, 114사
-제14군 : 10사, 85사, 83사
-제18군 : 11사, 49사, 118사
-제85군 : 23사, 110사, 216사

제4수정구(绥靖区) : 사령 류여명(劉汝明)
-제55군 : 29사, 74사, 181사
-제68군 : 81사, 119사, 143사

제3수정구 : 사령 풍치안(馮治安)
-제59군 : 38사, 180사
-제77군 : 37사, 132사

독립 제107군 : 260사, 261사
독립 제20군 : 133사, 134사

이상의 전투서열은 중국 국민당군의 구조에 대해 꽤 재미있는 점을 보여줍니다. 장개석 직계부대와 군벌 계통 부대가 뒤섞여 있는 잡탕이란 점이죠.
회해전역에 투입된 국민당 군의 총 77개 사단 중 장개석 직계, 즉 중앙군 직계 사단은 46개 사단입니다. 원래 동북군계에서 장개석 쪽으로 넘어온 112사와 광동계에서 넘어온 152사를 중앙군 계열로 분류하면 48개 사단이군요. 여기에 기병 1여가 중앙군 직계이니 장개석 직계의 부대는 총 48개 사단과 1개 여단이 됩니다. 나머지 32개 사단은 국민당이 아니라 다른 군벌 소속 부대로 장개석 쪽에 붙은 사단이 되겠습니다.
다시 각 병단 별로 중앙군 직계 사단의 비율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2병단 : 총 16개 사단, 2개 여단 / 중앙군 직계 13개 사단, 1개 여단
제6병단 : 총 10개 사단 / 중앙군 직계 9개 사단
제7병단 : 총 11개 사단 / 중앙군 직계 5개 사단
제13병단 : 총 10개 사단 / 중앙군 직계 7개 사단
제16병단 : 총 4개 사단
제12병단 : 총 12개 사단 / 중앙군 직계 11개 사단
제4수정구 : 총 6개 사단
제3수정구 : 총 4개 사단
독립 제107군 : 총 2개 사단 사단 / 중앙군 직계 2개 사단
독립 제20군 : 총 2개

중앙군 직할 사단의 숫자로 보면 구청천의 제2병단과 황유의 제12병단이 실질적인 주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7병단은 중앙군에 광동계(粤)와 사천계(川) 사단이 뒤섞여 있었고 16병단은 4개 사단 전체가 사천계, 그리고 제3수정구와 제4수정구는 모두 서북계, 독립 제20군은 모두 사천계 사단으로 편성되어 있었습니다. 장개석의 북벌 자체도 국민당 직계에 잡다한 군벌 부대를 긁어모아 완성한 것이었고 이런 난감한 구조는 중일전쟁을 거치면서도 결코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제롬 첸(陳志讓)이 재미있게 지적한 것 처럼 중국의 상황은 일본의 전국시대와 비슷했는데 장개석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아니었던 것 이죠.

다시 회해전역 이야기로 돌아가면, 인민해방군의 제 1단계 공격으로 괴멸당한 황백도의 제7병단은 서북군벌인 풍치안의 제3수정구가 반란을 일으켜 인민해방군에 가담하면서 퇴로가 차단되어 포위됩니다. 제3수정구의 반란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던 것 입니다. 상대적으로 기동성에서 우위에 있었던 제7병단은 어이없게 퇴로가 차단되면서 도보로 추격해온 인민해방군에게 따라잡히게 됩니다. 만약 제3수구의 반란이 없었다면 제7병단은 예정대로 철수를 마쳤을 수도 있을 것 입니다. 이렇게 해서 퇴로가 차단된 제7병단은 서주방면으로 돌파하려 노력합니다만 서주에서 증원 나온 제2병단과 제13병단의 지원공격도 반란을 일으킨 제3수구에 인민해방군 산동병단 소속의 3개 종대가 증원되면서 막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니 제7병단은 그대로 전멸해 버리고 맙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군벌부대가 다수 섞여 있어 전투력이 떨어졌던 것이 제7병단이 돌파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 이 점은 나중에 더 공부를 해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인민해방군의 회해전역 2단계 작전에서 국민당군의 정예부대인 황유의 제12병단이 섬멸된 문제입니다. 1948년 11월 24일, 장개석은 숙현(宿懸)을 탈환해 진포철도를 개통한 뒤 주력부대를 회남으로 철수시켜 방어에 임한다는 결정을 내립니다. 그런데 원래 숙현지역을 방어하던 것은 제4수정구 였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제4수정구도 제3수정구와 같은 서북계 부대였습니다. 제4수정구는 11월 15일 인민해방군 주력의 1단계 공격에 그대로 밀려나면서 숙현을 넘겨줬습니다. 인민해방군은 숙현 탈환을 위해 북상하는 황유 병단을 유인해서 섬멸할 계획을 짰는데 숙현이 제대로 방어됐더라면 이런 덫이 놓이진 않았겠지요. 황유의 제12병단이 예정대로 숙현 탈환을 위해 공격을 개시하자 인민해방군은 유인하기 위해서 일부러 철수했고 이를 추격한 황유 병단은 그대로 포위되어 섬멸됩니다.

그리고 회해전역에서 가장 결정적인 패배는 두율명이 지휘하는 제 2, 제 13병단이 포위되어 섬멸된 것이었습니다. 두율명 집단이 포위된 것은 황유 병단을 구원하기 위해 남하하다가 인민해방군에게 포착되었기 때문이니 결국은 제3, 제4수정구가 문제였던 셈 입니다. 서북군벌계의 이 두 수정구는 장개석의 이탈리아군(?)이 된 셈 입니다.

국공내전시기의 다른 전역에 대해서도 장개석의 중앙군과 군벌계 사단의 전투 양상을 분석해 보면 아주 재미있을 듯 싶습니다.

참고문헌
中国人民革命军博物馆 编,『中国人民解放军战史图集』,中国地图出版社, 1990
曹剑浪,『国民党军简史』下, 解放军出版社,2004
国防大学 “战史简编” 编写组,『中国人民解放军战史简编』, 解放军出版社,1983/2003
국방군사연구소, 『중공군의 전략전술 변천사』, 1996
陳志讓, 박준수 옮김, 『軍紳政權 : 근대중국 군벌의 실상』, 고려원, 1993

라이스에게 어울리는 일

Rice ruft zu Widerstand gegen "russische Aggression" auf

그간 대동강 촌놈들 같이 격에도 맞지 않는 것들을 상대하느라 얼마나 굴욕이셨습니까. 비록 레이건 각하 시절 만큼 흉폭하진 못하지만 곰돌이의 재롱 정도는 되어야 귀하의 그릇에 걸맞을 겁니다. 하필 현재 대통령의 치세 말에 이런 일이 터져서 곰돌이들을 상대할 시간이 몇 달 남지 않은게 아쉽다면 아쉽겠습니다.

Wednesday, September 17, 2008

히치하이커 가이드의 여섯번째 책이 나온다는군요

가디언에 재미있는 기사가 하나 실렸습니다.

Eoin Colfer to write sixth Hitchhiker's Guide book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의 여섯번째 책이 나오게 된다는군요. 더글라스 아담스가 어이없게 요절하는 바람에 시리즈가 끝장난줄 알았는데 아담스의 부인인 제인 벨슨이 다른 작가에게 여섯번째 소설의 집필을 의뢰했다고 합니다. 사망한 아담스를 대신해서 여섯번째 가이드를 집필할 작가는 오웬 콜퍼(Eoin Colfer)라는 동화작가라고 하는군요. 아동문학쪽으로는 아는게 없어서 콜퍼라는 작가가 어느 정도의 작가인지는 모르겠으나 벨슨이 직접 고른 사람이니 한번 믿어 보고는 싶습니다. 매우 유명한 작가인 것 같은데 아담스의 유쾌한 필력을 따라갈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God Delusion을 사망한 아담스에게 바친다고 했던 도킨스는 벨슨의 결정을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합니다. 도킨스도 아담스의 팬이었던 모양인데 말이죠.

Tuesday, September 16, 2008

Zeitgeschichte Online - 재미있는 논문이 많은 사이트

비록 조금 하락하긴 했으나 유로 환율은 여전히 높습니다. 좋은 책들은 어디에서나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특히 독일어권 서적들은 비싼 유로때문에 여전히 지르기가 두려운 물건이지요. 그러나 어디 단행본만 읽으란 법이 있겠습니까. 다행히도 인터넷 덕분에 공짜로도 독일어권의 흥미로운 연구들을 접할 수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오늘 소개할 사이트는 바로 이곳 입니다.

Zeitgeschichte-Online

이 사이트는 독일 현대사와 관련된 연구논문과 에세이들을 PDF 형식으로 무료 제공하고 있는데 독일 현대사를 다루다 보니 2차대전과 관련된 글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초기 냉전시기를 다루는 글들도 많으니 2차대전에 관심없는 분들에게도 유용할 것 같군요. 물론 본격적인 군사사 논문은 별로 없으나 2차대전에 관한 사회사, 문화사쪽 논문은 많습니다. 그리고 에세이 중에는 영어로 된 에세이도 조금 있으니 독일어를 못하시는 분들도 쓸만합니다.
예전에 이곳을 이용할 때는 서버의 문제인지 2메가 정도 되는 논문 한편을 다운 받는데 10분 정도 걸리기도 했는데 언제 부터인지 꽤 빨라졌습니다. 물론 외부링크로 걸려있는 글들은 해당 기관에 따라 속도가 다릅니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예전에 나온 논문들, 특히 대학들의 외부링크로 걸려 있는 논문들 중에서 링크가 깨진 것이 더러 있는데 이것을 그대로 방치해 놨다는 것 정도 입니다. 그래도 많은 수는 해당 대학의 온라인 도서관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바뀐 주소로 연결되니 큰 문제는 없습니다.

Monday, September 15, 2008

언어유희의 매력!

14일에 가디언에 실린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대한 Robert Fox의 글 입니다. 제목에 주목하십시오..


George Bush's executive disorder


executive disorder!


executive disorder!!


executive disorder!!!


executive disorder!!!!


으하하. 정말 좋습니다. 이런 센스는!

이런 말장난이 계속되는 한 대영제국은 몰락하지 않습니다.

Sunday, September 14, 2008

장군님의 협상술

지난 7월에 sonnet님과 漁夫님이 공산주의 국가의 협상술에 대한 글을 써 주셨습니다.

How Communists Negotiate - sonnet

지도국 발표 담화 - sonnet

북한식 협상술의 한 예 - 漁夫

이쪽 동네의 상식으로는 황당한 이야기가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는데 최근 남베트남 붕괴 당시 북베트남에 포로가 되어 고생했던 이대용 공사의 회고록에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있더군요.

먼 훗날에 알게 된 일이지만, 1978년 7월 24일부터 인도 뉴델리에 있는 주 인도 베트남 대사관이 소유하고 있는 부속건물인 허름한 독립가옥에서, 한국∙북한∙베트남의 3개국 외교 대표단들이 모여 호치민 시 치화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는 한국 외교관들의 석방 문제에 대해 비밀 회담을 하고 있었다.

(중략)

북한측 대표단은 조명일이 수석대표였다. 조명일은 당시 대남비서 김중린 밑에서 사실상 남북대화를 총괄해 온 통일전선부 부부장이었다. 대표로는 노동당 3호 청사 통일전선부의 박영수, 김완수 등이었다.
그들은 나를 압박하여 북한으로 가겠다는 자의 망명서를 받아내는 것과 그대로 석방하여 서울로 보내는 양면시나리오까지 가지고 있었으나, 석방할 때 남한에서 복역중인 남파간첩과 한국 외교관은 교환비율은 뉴델리 3자 회담의 진전을 봐 가며 조절하기로 정하고 있었다. 평양을 출발하기 전에 대남비서 김중린은 이들 대표단을 데리고 당 중앙이며 조직비서인 김정일의 지시를 받기 위해 찾아갔다.

황일호 씨의 증언에 의하면, 이때 김정일은, “남조선에 갇혀 있는 남조선 혁명가(남파간첩)가 현재 얼마나 되느냐?”고 김중린에게 물었다. “400명 될 겁니다만…” 김중린이 대답하자, 김정일은 대뜸, “으음…. 그러면 1명당 150명으로 바꾸자고 그래…”라고 명령했다.
나를 평양으로 데리고 가더라도 나머지 한국 외교관 두 명에 대한 교환비율이 될 수 있고, 또 나를 서울로 보낼 때에는 한국 외교관 세 명에 대한 교환비율이 될 수 있는 수치는 이렇게 김정일의 한 마디에 따라 결정된 셈이다. 너무도 엄청난 편차가 있는 교환비율에 김중린이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자, 김정일은 한마디 덧붙였다.

“왜 그러는가? 많아서 그런가? 회담에 임할 사람들이 그렇게 졸장부 여서야 되겠느냐. 회담이든 뭐든 처음부터 판을 크게 치고 내밀어야지… 그러면 얼마로 하려 했는가?”

김정일의 말은 절대로 오류가 없는 신(神)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김중린 이하 모두가 묵묵부답이었다.

이대용, 『최후의 월남공사 李大鎔은 말한다 – 김정일과의 악연 1809일』, 경학사, 2000, 130~131쪽

물론 이것은 이대용 공사가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니라 제 3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이야기 이지만 요즘 북한의 해괴한 협상 행태를 보면 충분히 있음직한 이야기 입니다. 북한이 외교협상에서 황당무계한 발언을 일삼은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닌데 정책의 최고결정권자들이 저렇게 해괴한 발상을 탑재하고 있다면 그 원인은 쉽게 설명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요.

Tuesday, September 9, 2008

미군의 파키스탄 영내 공습

U.S. Attack on Taliban Kills 23 in Pakistan

얼마전 미국이 파키스탄 영내로 지상군을 투입했는데 이번에는 미사일을 날렸군요. 흥미로운 기사였습니다.

※ 미군이 처음으로 파키스탄 영내를 공식적으로 공격한 사건은 라피에사쥬님이 며칠전에 글을 하나 써 주셨습니다.
=>Angoor Ada 강습, 미군 처음으로 파키스탄영토에 발을 내딛다.

결국 파키스탄의 국경지대가 탈레반의 '성지'처럼 돼 버렸으니 이걸 그냥 놔 둘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베트남 전쟁과 비슷한 양상이군요.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이것은 베트남 전쟁당시 미국과 남베트남군이 여론의 비난을 감수해 가면서까지 라오스나 캄보디아 영내로 진입해 군사작전을 펼친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입니다.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한 내륙국가들이 길다란 국경을 마주하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환경은 비정규전을 펼치는 입장에서 그야 말로 천혜의 축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정규군이라면 외교적 물의를 무릅쓰고 국경을 멋대로 넘을 수 없지만 이쪽은 그런걸 개의치 않아도 될 상황이니 아주 좋지요. 미국의 라오스나 캄보디아내 군사작전은 반전여론에 기름만 들이 붓고 결국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 했는데 최근 수행된 파키스탄 월경작전도 정치적인 부담만 만들어 주고 끝날 것 같은 생각입니다.

뭐, 앞으로 미국이 파키스탄 문제를 어떻게 요리하느냐가 관건이겠군요. 어쨌건 미국은 외교적으로 파키스탄 정부의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위치에 있으니 말이죠.

Sunday, September 7, 2008

한국군에 대한 공군기 원조 문제 : 1948~1950

정부수립 이후 한국정부의 기본적인 국방정책은 병력을 증강하는 것 이었습니다. 나중에 미국측이 간파한 대로 이승만 정부는 일단 미국 측이 원조 상한선으로 인가한 병력 보다 더 많은 군대를 만든 뒤 외교협상을 통해 무기를 원조 받으려는 심산이었습니다. 그리고 공군도 이런 계획의 일부였습니다. 한국정부는 정부 수립 직후부터 미국 측에게 중포를 포함한 중화기와 전투기를 원조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1948년 12월 1일 미국 임시군사고문단장 로버츠(William L. Roberts) 준장의 문서에는 이범석 장관이 친서를 보내 구축함(DD), 호위구축함(DE)를 포함한 대형함정과 전투기를 원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미국 측은 이런 황당한 요구를 어이없게 생각했지만 이것은 이후 이승만 정부가 군사원조 문제를 두고 미국 측을 괴롭히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NSC 8과 1949년 3월 22일의 NSC 8/2 모두 한국군에는 연락기를 갖춘 육군항공대 이상의 항공전력은 인정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이전까지 대한 군사원조에 대한 미국측의 기본적인 입장은 NSC 8/2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로 한정되고 있었으니 어찌 보면 한국 측이 아무리 용을 쓰더라도 외부의 충격이 없는 이상 공군에 대한 지원은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미국 국무부는 1949년 4월 21일 주한미국대사관에 보낸 문서를 통해 한국 육군에 20대 정도의 연락기를 추가로 지원할 수 는 있으나 그 이상의 항공전력은 허용할 수 없다는 내용을 통보합니다. 이 무렵 옹진 반도 등 38선의 무장충돌과 후방의 빨치산 토벌 작전 때문에 한국 육군은 항공지원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1949년 3월 8일에 채병덕 장군은 로버츠 준장에게 일선의 부대들로부터 항공지원에 대한 요구가 빗발치고 있어서 전투용 항공기의 원조가 시급하다는 서한을 보냅니다.

하지만 이승만을 비롯한 한국측 인사들은 정권의 생존이 달린 문제였기 때문에 미국 대사관과 군사고문단이 질리도록 공군을 포함한 추가 군사원조를 요청했고 미국 대사관은 국무부에 이승만을 안심시킬 수 있는 뭔가 확고한 안보공약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NSC 8/2가 있으니 본질적으로 이승만을 안심시킬 안보공약은 마땅하지가 않았습니다.
1949년 5월 3일, 미국대사관은 주한미군사고문단과 협의한 결과 국무부가 허가한 20대의 연락기 외에 15대의 AT-6과 5대의 C-47을 추가로 지원하는 안을 국무부에 보냅니다. 무초는 전투기는 원조하지 못하더라도 경비행기 이상의 지원은 해 줘야 이승만이 더 이상의 무리한 요구를 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특히 AT-6을 원조할 경우 한국측의 사기가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덧붙였습니다. 그렇지만 국무부는 여전히 L-4나 L-5 이상의 항공기는 지원할 계획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무초의 예상은 정확했습니다. 1949년 7월 1일, 이승만 대통령은 무초대사에게 F-80 전투기 10대를 원조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무초가 국무부에 전송한 전문에 따르면 이승만은 한국군이 F-80을 운용할 능력이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국무부를 통해 이승만의 요청을 검토하도록 전달받은 미국 공군의 브라운필드(Ralph O. Brownfield) 대령은 7월 18일 국무부에 대략 이런 요지의 답변을 보냅니다.

“F-80은 한국애들이 가지고 놀기엔 좀 복잡한 물건이지 말입니다?”

이외에도 한국 측은 대규모의 공군기 원조를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공군이 창설된지 10일 뒤인 1949년 10월 11일에 공군총참모장 김정렬 대령은 로버츠 준장에게 한국공군은 100대(!!!) 이상의 전투기를 운용•유지할 수 있는 인력과 능력을 갖췄다고 주장했습니다.

어쨌건 한국 자체가 미국의 상호방위원조계획(MDAP)에 의거한 군사원조 대상 국가에서 거의 최하위(15개국 중 13위) 우선순위를 가진 국가이다 보니 많은 예산을 할당할 수 가 없었던 것입니다. 당장 엘베강 너머의 빨갱이들이 강을 넘어올지 모르는 마당에 38선 이북의 작은 도둑떼는 워싱턴의 진지한 고려대상이 되기는 어려웠습니다. 별수 없어서 1949년 9월 중순 미국군사고문단이 이듬해의 군사원조 계획을 작성하기 시작했을 때 항공원조에 대한 초기 계획은 L-4나 L-5를 구입할 26,956달러를 배정하는데 그쳤습니다. 별수 없이 한국정부는 1949년 8월부터 독자적으로 AT-6을 구입하기 위해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AT-6 구입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1950년의 “건국기(建國機)” 도입으로 성과를 거두게 되지요.

하지만 1949년 9월에 접어들면서 미국대사관과 주한미국군사고문단은 전투기를 원조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합니다. 일단 이 시기에 북한이 소련제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정보가 많이 입수되었기 때문에 그대로 방치해 두면 남한은 북한의 공중위협에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북한이 전투기를 보유했다는 정보가 사실로 확인되자 주한미군사고문단은 한국 공군의 훈련을 지원할 교관과 AT-6 이상의 고성능 항공기, 즉 전투기를 지원하는 방안을 무초 대사에게 권고합니다. 무초는 군사고문단의 의견을 받아들여 11월 8일, 국무부에 한국 측에 전투기 급의 고성능 항공기와 이를 교육시킬 고문단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무초는 북한의 위협을 이대로 방치할 경우 남한에 친미정권을 안정적으로 존속시키는 문제가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무초는 다시 11월 10일에 국무부 장관에게 1급기밀 전문을 보내 1950/51회계연도 군사원조계획에 NSC 8/2에서 허용한 65,000명 분의 장비 부족분과 추가 적인 중장비는 물론 제한적인 공군 지원을 촉구합니다. 이때 한국에 대한 1950/51 회계연도 군사원조 비용은 1천만 달러에 불과했기 때문에 무초의 권고사항을 이행하려면 추가 예산을 편성해야 했습니다. 이 문제는 1950년 상반기 대한원조에서 중요한 이슈가 됩니다.

그런데 위에서도 언급했듯 한국은 15개 MDAP 대상국 중 이란, 필리핀과 더불어 최 하위권 이었습니다. 1950/51 회계연도에 이 3개 하위국에 배정된 군사원조 예산은 2764만 달러였는데 이 중 한국에 배정된 예산이 1023만 달러여서 만약 한국에 대한 원조를 늘린다면 이란과 필리핀에게 지원할 것을 줄여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것의 대안으로는 그리스에 대한 지원액 중 남는 자금을 한국에 지원하는 것도 고려되었는데 사실상 불가능 했습니다.

한편, 겨울로 접어들면서 한국정부의 요구 사항은 여름에 비해 보다 현실적이고 적절한 수준으로 변화했습니다. 미국의 퇴역 장성 랜달의 자문을 얻은 이승만은 1949년 12월 1일 무초를 접견한 자리에서 정찰용 B-25 6대와 3대 정도의 C-47이나 C-46, 그리고 F-51 25대, 인천과 서울의 방공을 위한 24문의 대공포를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무초는 이 중 B-25를 제외하면 이승만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본국에 보고합니다.
한편, 1949년 12월 17일 주한미군사고문단이 작성한 1950년도 군사원조 계획의 초안에는 L-4 3대와 L-5 2대만을 추가로 원조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무초대사와의 재협의를 거친 뒤 나온 개정안 에서는 40대의 F-51, 10대의 AT-6, 2대의 C-47로 원조 규모가 대폭 상향조정 됩니다. 무초는 1950년 1월 초 이 개정안을 국무부로 전송하고 검토를 요청했습니다.

무초와 미국군사고문단의 요청을 접수한 국무부는 검토 끝에 1950년 4월 5일, 한국군에 대한 전투기 원조는 NSC 8/2의 범주를 벗어나며 또 충분한 예산도 없기 때문에 어렵다는 답변을 보냅니다. 전투기를 원조할 경우 NSC 8/2의 부분 개정이 필요한데 국방부 쪽에서는 한국과 같이 전략적 가치가 낮고 방어하기 어려운 국가에 그런 원조가 필요한지 회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현지의 미국대사관이나 미군사고문단은 북한군의 위협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무부와 국방부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로버츠 준장은 3월 8일 국방부에 서한을 보내 F-51이나 F-47을 50대 정도 원조할 필요가 있다는 서한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무초 대사는 1950년 5월 귀국해 국무부, 국방부의 군사원조 담당부서와 한국에 대한 원조 증액문제를 논의합니다. 1950년 5월 10일, 무초대사는 국무부의 상호방위원조국 간부와 국방부의 렘니처(Lemnitzer) 소장, 에드워즈(Edwards) 중장을 만나 NSC 8/2의 부분개정을 통해 한국에 중화기와 40대의 F-51을 긴급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국방부 쪽에서는 F-51을 당장 원조하더라도 1951/52 회계연도에 책정된 예산으로는 F-51을 유지할 능력이 없으며 또 도태기종이라 부품 조달도 어려울 것이라며 난색을 표합니다. 그러나 무초는 한국 문제를 군사적 관점에서 보지 말고 미국의 위신이 달린 정치외교적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고 역설하며 전투기 원조를 강력히 요구합니다. 이날 회의가 끝난뒤 국무부 상호방위원조국에서는 만약 한국정부에 40대의 F-51을 포함한 공군장비를 원조할 경우 추가 예산에 대해 검토했는데 총 비용은 3,914,024 달러가 예상되었고 이 중 F-51 40대의 비용은 230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비용은 10대의 AT-6과 2대의 C-47에 할당됐습니다.

그런데 국방부가 다시 국무부의 원조안을 검토하던 와중에 드디어 일이 터졌습니다.

수령님이 남반부 해방을 위해 소련제 땅크와 야크기를 몰고 38선을 넘어오신 것 었습니다.

참고문헌
RG 338, Provisional Military Advisory Group, 1948-49 and Korean Military Advisory Group, Box 8, 1949-53
RG 338, KMAG, Adjutant General, Decimal File, 1948~53; Box 4, Brig General W. L. Roberts(Personnel Correspondence); Brig General W. L. Roberts(Recurring Reports) 1948
RG 338, KMAG, Adjutant General, Decimal File, 1948~53; Box 8, Brig General W. L. Roberts(Personal Correspondence) 1949; Brig General W. L. Roberts(Memorandum), 1949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49/50, U. S. GPO, 1976/1978
양영조, 『남북한 군사정책과 한국전쟁 1945-1950』, 한국학술정보, 2007
안정애, 「駐韓美軍事顧問團에 관한 연구 : 韓國軍 創軍過程(1945-1950)에서의 役割 및 基能을 중심으로」, 인하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96
안정애, 「미국의 대한 군사원조정책」, 『역사와 현실』 27(1998. 3)

빈 - 셋째날 : 빈 시내의 Flakturm 답사기

이제 빈의 마지막 날인 일요일이 밝았습니다. 전날과는 달리 화창한 날씨가 아주 좋더군요. 유감스럽게도 늦게 일어난 덕분에 빈 소년합창단의 합창을 듣지 못해 아쉬웠습니다만...

마지막 날은 빈 시내의 대표적인 2차대전 유적인 대공포탑(Flaktürme)을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빈 시내에는 2차대전 기간 중 건설된 대공포탑이 세 곳에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첫 번째 대공포탑들은 Esterhazypark과 Stiftskaserne에 있는데 후자는 군사시설에 있어 구경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대공포탑들은 Arenberg 공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세번째 대공포탑들은 Augarten 공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대공포탑"들"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대공포탑은 대공포가 설치되는 전투탑(Gefechtturm, 이하 G-Turm)과 사격관제를 담당하는 지휘탑(Leitturm, 이하 L-Turm)으로 나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두 개의 탑이 하나의 방공시스템을 구성하는 구조입니다.

※ 대공포탑에 대한 위키 항목

독일어 항목 / 영어 항목

독일어 사이트이긴 한데 이 사이트의 설명도 꽤 괜찮습니다.

Die Flaktürme in Wien


먼저 시내 중심가에 있는 Esterhazypark의 대공포탑을 갔습니다. 이 대공포탑은 지휘탑인 L-Turm 입니다. 전투탑은 위에서도 이야기 했듯 군사시설이어서 방문하지 못 했습니다.


이 지휘탑은 특이하게도 수족관으로 개조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가족단위 방문객이 많더군요.




수족관 관람을 마치면 대공포탑 꼭대기로 올라갈 수 가 있습니다. 올라가는 계단 중간 중간 2차대전 당시 대공포탑의 건설에 대한 여러가지 설명문이 붙어 있습니다.


빈 시내의 여섯개 대공포탑 중 유일하게 일반인에게 개방되는 곳입니다. 대공포탑의 꼭대기는 빈 시내를 둘러볼 수 있는 전망대의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족관과 꼭대기 구경을 마친 다음에는 대공포탑의 지하실에 설치된 고문기구역사박물관을 구경했습니다.



가족단위 관람객으로 북적대는 수족관과 달리 고문기구박물관은 관람객이 저 혼자 뿐이었습니다.



전시물이라고는 이런 것 뿐이니 가족단위 관람객이 있을 리가 없겠지요.

관람을 마친 뒤 다음 목적지인 Arenberg 공원의 대공포탑으로 갔습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한국처럼 지하철이 매우 한산했습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Arenberg로 가는 길에는 소련군의 빈 해방 기념비가 있습니다. 오랫만에 이 놈을 보니 반갑더군요.




Arenberg 공원은 동네 놀이터 수준(?)이다 보니 찾아 가는 길이 약간 어려웠습니다. 가는 길에 군사서적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헌책방도 하나 찾았는데 일요일이다 보니;;;;

드디어 Arenberg 공원에 도착했습니다. L-Turm이 눈에 들어오는 군요.



그리고 바로 옆에는 G-Turm이 있습니다.



Arenberg의 대공포탑들을 구경한 뒤 간단히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마지막 목적지인 Augarten으로 향했습니다.

Augarten으로 가는 길에 한장. 다들 잘 아시는 프라터 공원의 회전관람차(Riesenrad) 입니다.


그리고 아주 유명한 분의 동상도 하나 있습니다.

바로 리싸(Lissa) 해전의 영웅인 테게토프(Wilhelm von Tegetthoff) 제독의 동상입니다. 예전에 왔을 때는 별 생각없이 지나친 동상인데 뒤에 리싸 해전에 대한 글을 읽은 뒤 이 양반에 대해서 알게 됐습니다. 어떤 인물인지 알고 나서 동상을 보게되니 또 다른 느낌이 드는군요.



테게토프 제독에게 인사를 한 뒤 아우가르텐 공원으로 갔습니다. 아우가르텐은 매우 규모가 큰 공원이어서 조금 전에 갔던 아렌베르크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더군요.



먼저 G-Turm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렌베르크의 것과는 모양이 다르군요.




일반인에게는 공개가 되지 않으니 바깥에서 구경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탑 위에 올라가 공원 전체를 구경했으면 싶은데 그게 안되니 아쉽더군요.

다음으로는 L-Turm을 둘러봤습니다. L-Turm들은 모두 대략 비슷하게 생긴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빈 시내의 대공포탑들을 모두 구경한 뒤에는 편안하게 도나우강가를 거닐며 이런 저런 잡생각을 하다가 다시 저녁 무렵 시내 중심가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빈의 야경을 구경했습니다.

빈을 마지막으로 여행은 끝났고 이제 빈 서부역으로 돌아가 뮌헨행 야간 열차를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여행이 즐겁게 끝나니 역시 남는 것은 아쉬움 이더군요. 밤 기차에서 좀체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Friday, September 5, 2008

The Somme - Robin Prior and Trevor Wilson

지난번에는 솜(Somme) 전투를 다룬 책 중에서 The Battle of the Somme : A Topographical History를 소개했습니다. 오늘 이야기 할 책도 역시 솜 전투에 대한 책인데 의 Gliddon의 책 보다는 평범한 형식입니다.

지난번에도 적었듯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한 소재를 글의 주제로 삼는 것은 위험한 일 입니다. 아주 잘 쓸 자신이 없다면 좀 특이한 방식으로 접근하던가 하는 쪽이 덜 위험하지요. 그런 점에서 오늘 이야기할 프라이어(Robin Prior)와 윌슨(Trevor Wilson)의 The Somme은 아주 과감한 저작입니다. 저자들은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솜 전투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기존의 연구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영국군의 실패 요인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사료적 토대가 탄탄하기 때문에 읽는 재미가 매우 쏠쏠한 좋은 책 입니다. 제가 읽은 솜 전투에 대한 저작 중 가장 최근의 연구성과라는 점도 언급해야 겠군요.

저자들은 매우 용감한 접근방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주된 분석대상으로 삼는 것은 솜 전투의 입안과정과 솜 전투 첫날을 포함한 초기의 전투입니다. 전투 첫날에 대해서는 미들브룩(Martin Middlebrook)의 The First Day on the Somme 같은 유명한 저작이 있다 보니 더 쓸만한 것이 있나 싶은데 저자들은 신통하게도 기존 연구들과는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과연, 탄탄한 자료에 기반한 글의 강점은 이런 것이다 싶더군요.

솜 전투에 대한 많은 저작들이 독일군의 기관총에 학살당하는 밀집대형의 영국군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저자들은 그런 이미지는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전쟁 중과 전쟁 직후에 출간된 부정확한 저작들의 서술이 과장되게 수용된 면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이날 공격에 나선 영국군 보병부대들은 손실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공격대형을 훈련 받았습니다.
저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솜 전투 초기 영국군의 포병 운용의 실패입니다. 먼저 공격 개시 전에 수일간 계속된 공격준비사격이 매우 형편없이 진행되었고 또 공격 당일의 공격준비사격과 이후 보병의 공격과정에서 진행된 탄막사격이 거의 효과가 없었다는 것 입니다. 즉, 영국군의 공격준비사격은 강력한 독일군의 제1방어선에 심각한 타격을 주기에는 부족했고 또 독일 포병에 대한 제압도 거의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또 7월 1일 공격 당일의 포병 운용도 매우 형편없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영국 8군단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8군단의 공격을 지원하는 포병은 독일군의 제1방어선이 제압되지 않았는데도 후방의 독일군 진지로 포격을 돌리는 바람에 제1방어선의 독일군은 방어준비를 갖출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공격준비사격이 독일포병에 거의 피해를 주지 못했기 때문에 독일 포병은 영국군 보병부대가 돌격해 오자 바로 맹렬한 포격을 퍼부어 영국군에 기관총 만큼이나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들은 영국군의 공격준비사격은 독일군의 제1선 방어진지와 철조망, 후방의 독일 포병 어느 하나에도 충분한 타격을 입히지 못했고 그 결과는 공격 첫째 날의 가공할 손실로 나타났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공격 첫날의 형편없는 포병운용과는 반대의 사례로 제시되는 것은 7월 14일의 공격입니다. 저자들은 이날 영국군의 포격이 독일군의 제2방어선과 후방의 독일 포병에 상당한 타격을 가할 수 있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제2방어선이 제1방어선에 비하면 방어력이 취약한 면도 있었지만 포병이 공격에 앞서 2중으로 구축된 철조망선을 뚫은 것은 이날의 공격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 입니다. 저자들은 14일의 전투와 같이 영국군 보병은 충분하고 효과적인 화력지원을 받았을 때 매우 양호한 전과를 거뒀음을 지적합니다. 특히 1915~16년에 편성된 전투경험이 없는 사단들 조차도 훈련 상태에 비하면 양호한 전투능력을 보여줬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기존의 저작들과는 반대되는 평가여서 재미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구성 면에서도 꽤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습니다. 각 장의 분량이 짧아서 가독성이 매우 좋더군요.

Wednesday, September 3, 2008

이놈들이 거짓말이라니 진짜 같다...

北조평통 "여간첩 사건은 날조 모략극"(종합)

넵. 북조선에서 간첩사건에 대해서 한마디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 북조선에서 날조극이라고 하니 오히려 사실 같습니다.

아우. 언제까지 이 거지새끼들을 상대해 줘야 하는건지.

Tuesday, September 2, 2008

The Road

오늘 모처에서 했던 용역일의 한 달이나 밀린 급여가 통장으로 들어왔습니다. 평소였다면 통장을 확인 하는대로 바로 amazon.com이나 기타 유사한 사이트로 이동해 신앙생활을 했겠습니다만… 치솟는 환율을 고려해 일단 보류하기로 했습니다. 어쨌건 또 돈이 들어왔으니 책은 사야겠고 그래서 환율과는 별 상관없는 국내 도서를 사기 위해 반디 앤 루니스를 갔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사야 겠다고 생각하던 책을 두 권 계산한 뒤 귀가하려는 찰나 소설 코너에서 눈에 들어온 책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The Road 번역판이었습니다.

각종 매체에서 요란하게 홍보를 해서 그 이름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평소 문학과는 거리가 있는 편이라 좀처럼 읽을 기회가 없었는데 갑자기 눈에 확 들어온 김에 대충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너무 재미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냥 다 읽어 버렸습니다.

소설의 세계관 자체가 제가 좋아하는 종말적 세계관이고 그 우울한 세계를 묘사하는 방식(물론 번역본이라 원문의 맛을 100% 느끼진 못하지만)도 탁월했습니다. 생존자들의 피폐한 모습이나 폐허가 된 황량한 세계에 대한 묘사는 오싹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가장 가슴에 와 닫는 것은 위기의 순간에 아버지와 아들이 나누는 대화입니다. 바다를 향해 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여정은 황량한 세계만큼이나 단조롭고 막막하지만 때때로 닥치는 위태로운 장면은 긴장이 넘칩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아들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지만 이런 위기 상황에서 그가 의지할 것은 총 알 두발이 들어있는 권총 한 자루 뿐 입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자신의 의무에 비해 미약한 힘 때문에 항상 불안해 합니다. 자신이 짊어진 무거운 의무에 대해 항상 고뇌하는 소년의 아버지는 마치 고행하는 수도승 처럼 느껴집니다. 이 두 사람의 여정은 마치 종교적 순례의 여정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래서 미국의 평론 중에서 이 책을 성경에 비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의 여정은 결국 비극으로 끝나지만 작가는 독자의 마음을 쥐어 짜려는지 마지막에는 약간의 장난(???)을 칩니다. 정말 탁월한 글솜씨더군요.

원작을 읽지 못했으니 100% 확신할 수 없지만 번역하신 분의 솜씨도 일품이었습니다.

Monday, September 1, 2008

장군님 기타를 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