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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10일 화요일

Why Panetta's Pentagon Cuts Are Easier Than You Think

지난 1월 4일, 포린 어페어즈 인터넷 판에 재미있는 글이 한편 실렸습니다. 「어째서 파네타의 국방부가 예산을 삭감하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가?(Why Panetta's Pentagon Cuts Are Easier Than You Think)」라는 글인데 미국의 국방예산 삭감이 군사력 약화를 초래하기 보다는 비효율을 정리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하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작년 9월에 블로그에 소개했던 「다가오는 미국의 긴축(America's Coming Retrenchment )」과 같이 미국의 국방예산 감축이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하는 견해가 많다는 점에서 꽤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읽어보고 바로 블로그에 올려볼까 했는데 주말에 친구 결혼식에 참석한다고 경상도에 다녀온데다 MJ님이 출연하시는 원더풀라디오를 보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좀 늦어졌습니다. 좀 날림번역인데 봐주십시오^^;;;;;


어째서 파네타의 국방부가 예산을 삭감하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가?
로렌스 콥(Lawrence J. Korb)

이번주에 레온 파네타Leon Panetta국 방부장관이 국방예산을 수천억 달러 감축하는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민간부문과 군부의 지도자들은 이와같은 예산 감축이 재앙과도 같은 충격을 줄 것이라고 비난하는 등 예언같은 경고를 하고 있다. 이들은 적절한 재원이 없다면 미국이 세계 각처에 가지고 있는 이익을 보호할 수 없을 것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방부는 재원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국방부의 입장을 가장 강력히 지원하는 사람들 조차도 국방부의 문제는 관리에 있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군장교협회Military Officers Association의 회장인 노버트 라이언Norbert Ryan은 최근 워싱턴타임즈에 기고한 논평에서 이 문제를 잘 정리했다.: “거의 매주 많은 비용이 투입된 계획들이 총체적인 관리 부실과 예산 초과에 시달리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있는데 이 중에서 현재 우리 군대가 싸우고 있는 전쟁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라이언은 이렇게 적었다. “관리부실이 매우 심각해서 국방부의 회계장부는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보일 지경이며 국방부의 고위층은 2017년 이전에는 시험을 통과할 수 없을 것 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해군 장교로 장기간 복무한 전쟁영웅 출신의 존 매케인John McCain 상원의원(공화당, 애리조나)은 이보다 더하다. 2011년 12월 15일 상원 의석에서 매케인 의원은 사실상 현재 개발 중인 거의 모든 무기체계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매케인 의원은 F-35 계획이 수습 불능의 상태이며, 해병대의 신형상륙장갑차Expeditionary Fighting Vehicle가 심각한 결함을 가지고 있다고 탄식했고, 육군의 미래 전투 체계는 “요란하고, 부끄러운 실패작” 이상이라고 비판했으며, F-22는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잡아먹은 채로 격납고에서 좀만 슬어가는 여왕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가 항상 이렇게 엉망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행정부가 강력한 부장관을 두어 운영을 총괄해서 담당하게 했을 때는 관리 문제가 미미했다.(국방부장관은 국방부의 운영을 신경쓰기에는 너무나 바쁘다.) 예를 들자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제너럴 모터스에서 찰스 윌슨Charles Wilson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휴렛 패커드에서 데이빗 패커드David Packard를, 지미 카터 대통령은 코카콜라에서 찰스 던칸Charles Duncan을,  그리고 조지H.W. 부시 대통령은 제너럴 모터스의 도날드 앳우드Donald Atwood를 데려다 썼다.

이들 행정부에서 국방 예산은 크게 감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보는 부장관의 관리상의 결정에 힘입어 개선되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공군은 소련의 핵 위협에 맞서기 위해 값비싼 폭격기를 사용하는 대신 훨씬 저렴한 지상 발사 미사일을 사용하게 되었다. 닉슨 행정부에서 국방부는 일부 기능을 예비군으로 이관하면서 현역 병력의 규모를 감축할 수 있었다. 게다가 국방부는 전투기를 조달할 때 고성능기와 저성능기를 함께 사용하도록 하여 값싼 F-16과 F/A-18로 값비싼 소수의 F-14와 F-15를 보조하는 방식으로 예산을 크게 감축할 수 있었다. 카터 행정부에서 국방부는 공군의 B-1 폭격기를 취소하여 그보다 저렴한 B-2 스텔스 폭격기를 도입하도록 했다.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는 (F-22에 대한 해군의 대응인) A-12가 개발사에서 예산 한도를 지키지 못하게 되자 이를 취소시켜버렸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의 국방부 부장관들은 대부분 직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관리 기술이나 명성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도널드 럼즈펠드Donald Rumsfeld의 부장관 폴 월포위츠Paul Wolfowitz, 로버트 게이츠Robert Gates의 부장관 빌 린Bill Lynn, 그리고 파네타의 부장관 애쉬튼 카터Ashton Carter는 큰 조직을 운영해 본 일이 없으며 심지어 군복무 경험조차 없다. 요지는 국방부가 핵심적인 국방 예산을 실질적으로 1998년 회계연도에서 2011년 회계연도까지 13년 연속으로 증액하는 유례없는 일을 했다는데 있다. 레이건 시대의 방대한 군사력 건설조차 1981년에서 1985년까지 불과 4년간 계속되었을 뿐이며 이 다음에는 13년간 실질적인 감축이 이루어졌다. 현 재 파네타 장관이 다음 10년 동안 연간 1천억 달러의 핵심 국방 예산을 감축한다고 발표하더라도 2013년도의 예산은 4,720억 달러에 달할 것이다. 이것은 2007회계연도의 예산과 같은 규모이다. 이 액수는 미국이 냉전 기간 중 사용한 연간 평균 예산을 상회하는 것이며 미국 다음의 하위 17개국의 국방예산을 모두 합한 것 보다도 더 많은 것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이 계속되면서 국방부의 고위층은 지출 기준치를 감추었다. 지난 10년간 국방부의 수뇌부는 추가 전쟁 비용으로 부터 진행중인 전투와는 전혀 관계없는 F-22 랩터와 미사일 방어 체계와 같은 핵심 품목에 필요한 비용을 조달해왔다. 국방부는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 무기 체계의 비용 상승을 감춰왔으며 국방예산에서 투자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지 않은 것 처름 보이도록 해왔다. 강력한 부장관이 있었다면 F-22와 같은 고성능 무기체계를 이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F-35와 교환하도록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국방부의 수뇌부는 방위산업체들이 비용을 초과한 것에 대해 댓가를 치르도록 하는데 거듭해서 실패해왔다. 국방부는 그렇게 할 수단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1980년대에 의회는 행정부가 국가 안보의 기준에서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한 무기 개발계획이 예상 비용을 15~50% 초과하게 될 경우 무효화 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1997년 이래 거의 절반 이상의 무기 체계 개발계획이 이 법안을 위반했지만 거의 대부분이 양산에 돌입하도록 허가받았다.

그 다음에는, 2000년만 하더라도  개발 중이거나 생산에 들어간 계획에 소요된 비용이 4,300억 달러로 증가했다. F-35의 개발을 예로 들어보자. 원래는 2,866대에 2,33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지금은 겨우 2,400대에 최소한 3,85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대당 가격은 이 기종이 대체할 예정인 F-16의 다섯배에 이르고 있다. 강력한 부장관이 있었다면 계획을 취소해 버리거나 회사가 초과비용을 책임지도록 했을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미국의 무기 체계가 노후화 되어 가고 있으며 교체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 국방부가 이렇게 전례 없는 비용 지출을 유지하는 것이 옳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 스팀슨 센터Stimson Center의 러셀 럼바우는 각 군의 조달 비용이 21세기의 첫 10년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2001 회계연도에 630억 달러에서 2010회계연도에는 1,360억 달러로 늘어났음을 입증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낡은 장비를 교체한 것이 아니라 500억 달러를 신형 무기체계 획득에 사용했으며 여기에는 유례없이 신속하고 유연한 전장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된 유인차량과 무인차량으로 편성된 여단으로 편성되는 3,400억 달러짜리 미래전투체계Future Combat Systems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 체계에 200억 달러를 지출하고 난 뒤 정부는 이것을 취소해 버렸다

국방부의 관리 부실은 작전 및 유지 분야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데 이것은 2012년 회계연도에 2,000억 달러 이상에 달할 것이다. 방산업체의 경영진들은 비록 새로운 세대의 전투기들이 전선에 배치된 기존의 것들에 비해 비싸기는 하지만 작전 비용은 감소할 것이라고 거듭해서 주장해 왔다. 그렇지 않다. F-35의 작전비용은 최소한 F-16 C/D형 보다 15퍼센트 이상 높아질 것으로 기획되어 있다. 그리고 해병대의 V-22 오스프리의 작전 및 유지비용은 지난 3년간 460억 달러, 62%나 증가했다. 매케인 의원에 따르면 F-22는 대체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구형기종(F-15와 F-16)과 비교했을 때 운용하기에 너무나도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실제로 국방부는 갈수록 비효율적이 되어가고 있다. 2010년에 게이츠 국방장관은 국방 예산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각 군에 낭비적인 요소를 파악하도록 했다. 몇 주만에 2,000억 달러 규모의 과잉 지출이 확인되었다. 예를 들면 장군과 제독의 숫자는 군대가 오늘날 보다 두배나 더 컸던 1971년 당시 보다 훨씬 많으며 사령부들, 예를 들어 통합전력사령부Joint Forces Command와 같은 곳들은 다른 사령부와 업무가 중복되고 있다. 그러나 게이츠 장관은 획득한 비용으로 초과된 부분을 메우는 대신 국방부가 획득한 비용의 대부분을 신규 무기 계획에 쏟아넣도록 방치했다.

국방부가 현재와 같이 운영된다면 어려운 결정들을 계속해서 회피하려 할 것이 명백하다. 그리고 또한 의회도 각 지역구에 지속적으로 경제적 활력을 넣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국방부는 군부-산업체-의회 복합체를 다루는데 충분한 경험을 가진 강력하고 단호한 성격의 부장관이 필요한 것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첫 번째 임기를 마쳐갈 무렵 국방예산은 오늘날의 액수로 환산했을 때 3,800억 달러에 달했다. 닉슨 대통령은 같은 시기에 3,980억달러였다. 그리고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같은 시기에 4,350억 달러였다. 조지 W. 부시 에 와서는 4,780억 달러가 되었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말에는 기준예산이 최소한 4,750억 달러 이상으로 아마도 5,250억 달러에 근접해 있을 것이다. 만약 오바마의 군부 및 민간 관료들이 소련과 같은 실질적인 위협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만큼의 비용으로도 국가를 지켜낼 수 없다면 오바마는 다른 사람들을 알아봐야 할 것이며 특히 새로운 국방부 부장관이 필요할 것이다. 패커드가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968년 위스콘신의 공화당 하원의원 멜빈 레어드Melvin Laird가 국방부장관에 임명되었을  때 그는 유능한 관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했다. 레어드가 자신의 참모들에게 미국에서 가장 유능한 인물을 추천해 달라고 했을 때 이들은 패커드를 추천했다. 레어드는 즉시 비행기를 타고 캘리포니아로 가서 패커드가 국방부 부장관 직을 맡아달라고 설득했다. 파네타나 그의 뒤를 잇게 될 사람들이라면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예산의 규모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을 책임지는 조직과 제도의 문제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 입니다. 본문에서 레이건 행정부 시기의 방만한 예산 운영과 그 뒤를 이은 조지 부시 시기의 조정을 언급한 점이 필자의 의도를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제가 2007년에 간단하게 소개했던 것 처럼 레이건 행정부 시기는 오늘날 국방예산이 무절제하고 비효율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비판받고 있습니다. 단순히 신무기만 잔뜩 들여놓는다고 국방력이 개선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입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국방 정책은 명확한 목표가 먼저 설정되어야 하며 신무기 도입은 그에 따르는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합니다. 필자가 지적하고 있는 것 처럼 ‘소련과 같은 적’이 없는 상황에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무기를 잔뜩 들여놓고 이 때문에 당장 필요한 분야에 사용할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은 정상적이라고 할 수가 없지요.

이 글은 오바마 행정부의 국방예산 감축을 바라보는 시각 중 긍정적인 편에 속합니다. 비효율을 제거하게 된다면 적은 예산으로 미국의 국방력이 개선될 여지가 있을테니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끌리는 설명이기도 합니다.

2008년 11월 14일 금요일

부시 행정부의 민군관계에 대한 한 공화당 지지자의 비판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점이 많았습니다. 특히 상당수의 공화당 성향 유권자들이 부시 행정부에 대한 실망으로 오바마에 투표했다는 점이 재미있더군요. 오늘 할 이야기는 부시 행정부의 삽질에 환멸을 느낀 한 골수 공화당원에 대한 것입니다.

미국은 군대에 대한 문민통제가 잘 확립된 국가입니다. 하지만 문민통제는 민간인으로 이뤄지는 최고 정책 결정집단과 이를 수행할 군인들 간에 힘의 균형이 이뤄져야 제대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시 대통령 + 럼즈펠드 국방장관 이라는 최강의 조합으로 미국식 문민통제가 막장으로 치닫는 모습을 이미 구경했으니 균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것 입니다.
민군관계와 관련해서 제가 즐겨 읽는 저자 중 한 명인 허스프링(Dale R. Herspring)은 이렇게 민간관료와 군인간의 균형 유지에 많은 관심을 쏟는 인물입니다. 이 양반의 저작들은 이미 제 블로그에서 몇 번 간략히 소개했었지요.

허스프링은 공산권의 군사문제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라면 한 번 정도 그 이름을 들어보셨을 것 입니다. 허스프링은 해군 대령 출신이며 또 해외 주재 무관으로 20년간 활동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의 민군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발전모델(developmental model)이라는 이론을 만든 인물입니다. 이 양반의 논문이나 저서들은 대부분 소련과 동유럽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미국의 민군관계를 대상으로 한 것도 많습니다. 제가 자주 인용하는 저작인 The Pentagon and the Presidency라던가 비교적 최근의 저작인 Rumsfeld’s War 등이 이에 속하지요.

허스프링은 자신의 저작인 Rumsfeld’ War에서 밝히고 있듯 골수 공화당원입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의 삽질은 이 골수 공화당원 마저 환멸을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허스프링은 Rumsfeld’ War의 서두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쓰는 것은 매우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지난 수년간 내가 쓴 모든 책과 논문 중에서 이 책의 내용보다 더 심란한 주제를 다룬 것은 없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왜냐하면 나는 나 자신을 보수주의자로 생각하고 있으며 부시 행정부에 두 번이나 투표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국무부의 해외 주재 무관으로서 20년간 활동했으며 32년간 미해군에 복무하면서 말단 사병에서 대령까지 진급했다. 나는 부시행정부가 이라크는 대량살상무기(WMD)로 미국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으며 사담 후세인과 9/11을 배후에서 조종한 인물인 오사마 빈 라덴이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을 때 이것을 믿었기 때문에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기도 했다. 나는 퇴역 해군 장교로서 나의 최고 사령관을 지지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을 생각하지 않았다.

Dale R. Herspring, Runsfeld’s Wars : The Arrogance of Power, (University Press of Kansas, 2008), p.ix

하지만 이 골수 공화당원은 부시 행정부의 삽질, 특히 국방부 장관에 임명된 럼즈펠드의 삽질에 환멸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2003년 3월의 이라크 침공을 결행하는 과정과 미군의 군사적 전환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계속해서 불편함을 느끼게 됐다. 나는 대통령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발언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들도 사담이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어쨌건 후세인은 이라크인들에게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했으며 또 이란에도 사용한 전례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사담과 빈 라덴의 연관성에 대한 가설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매우 실망했으며 분노했다. 이 가설은 국방부의 민간 관료들이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해 낸 것이 명백해졌으며 만약 국방부장관 도널드 럼즈펠드와 그의 측근들이 자료를 왜곡하고 대통령에게 이라크 침공의 필요성을 설득하지 않았다면 현재 미군은 이라크에 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늑대가 문 앞에 닥쳤다고 요란하게 경고했다. 그리고 우리에 갇혀 있는 늑대가 위협이 된다고 사람들을 믿게 만들려 했다.
그리고 나는 럼즈펠드가 직업 군인들을 대하는 태도에 우려를 금할 수 없었다. 럼즈펠드는 최소한 30년 이상을 군에 헌신한 고위 장성들을 조금도 존중하지 않았으며 군사 혁신과 군사전술, 그리고 작전 절차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장군들에게 강요했다. 물론 (군에 대한) 민간 통제는 원칙이지만 이것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장관과 군대 사이에 상호 존중이 있어야 한다.

Ibid, pp. ix-x

허스프링은 이미 이 책을 쓰기 몇 년 전에도 부시 행정부가 군대에 대해 저지르는 삽질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 바가 있습니다.

부시 행정부의 전쟁 수행 방식은 존슨 행정부와 한가지 결정적인 점에서 다르다. 존슨과 맥나마라는 군대를 비판하고 세세한 부분까지 간섭하려고 했지만 부시 대통령은 럼즈펠드의 군 개혁 시도를 지지하면서 이러한 싸움에서는 한 발자국 떨어져 있으려 한다.
공개된 자료들을 가지고 판단할 때 럼즈펠드는 군인들의 사고 방식이 경직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부시 행정부 초기부터 군대와는 협조할 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럼즈펠드는 신세키(Eric Ken Shinseki)와 같은 장교들이 군을 혁신하려 하는 것을 지원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럼즈펠드는 자신의 급격한 개혁 계획을 직접 수행하려 했으며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 조치를 취했다. 럼즈펠드는 대부분의 군부 인사들에 대한 경멸감을 감추지 않았으며 극 소수의 장교만이 럼즈펠드의 의사 결정 집단에 참여할 수 있었다. 럼즈펠드는 자신과 자신의 민간인으로 이뤄진 측근들이 수년간 군대에 복무한 군인들 보다 미국에 대한 위협 요소들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럼즈펠드는 자신은 미래를 바라보고 있지만 군인들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믿고 있다.
그 결과 부시 행정부에서 럼즈펠드는 군대를 멸시했다. 물론 럼즈펠드는 국방부가 외부에 어떻게 비춰지는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합참의장과 합참부의장을 자신의 방식에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장교로 골랐다. 저자가 보기에 마이어스(Richard B. Myers)페이스(Peter Pace)는 (럼즈펠드에게) 이의를 제기하기는 하지만 중요한 결정이나 공식적인 발표를 할 때에는 최고 결정권자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 개인적인 권한의 측면에서 볼 때 마이어스 대장은 2차대전 이래 가장 약한 미합참의장이다.

Dale R. Herspring, The Pentagon and the Presidency : Civil-Military Relations from FDR to George W. Buch, (University Press of Kansas, 2005), pp.404~405

허스프링은 부시 행정부에서의 민군관계, 특히 럼즈펠드 장관과 군대의 관계에 대해서 극도로 비판적이며 2008년에는 위에서 인용한 Rumsfeld’s War라는 단행본을 출간했습니다. 아예 책 한권을 할애해서 럼즈펠드를 비판하고 있는데 저자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민군관계에서 볼 때 얼마나 럼즈펠드에게 실망을 했는지 알 수 있겠더군요.

이렇게 수년간 계속된 럼즈펠드와 부시의 삽질은 허스프링 같은 골수 공화당 지지자 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들 잘 아시는 것이죠.

요즘 한국에서도 대통령과 한 '장관'의 삽질이 범 국민적인 짜증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부시가 럼즈펠드에게 군사문제에 대한 전권을 위임하고 방관한 것 처럼 이명박도 강만수에게 큰 권한을 안겨주고 멋대로 날뛰도록 내버려 두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삽질을 보면 이명박과 강만수의 관계는 부시와 럼즈펠드의 관계와 유사해 보입니다. 럼즈펠드는 미군을 이라크에 처박아 엉망으로 만들고 극심한 비판에 직면하고 나서야 물러났습니다. 물론 미군은 아직도 럼즈펠드의 삽질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이명박의 신뢰를 받는 강만수가 삽질을 하면서 극심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될 수 있다면 럼즈펠드 처럼 사태를 구제불능으로 만들기 전에 강만수는 물러났으면 싶습니다만 이명박의 완고한 태도를 봐서는 당분간 어려울 듯 싶군요.

2008년 10월 5일 일요일

게이츠 장관은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살아남을 것인가?

며칠 지났지만 재미있는 기사가 하나 있습니다.

Obama Aide Lauds Defense Secretary - Top Adviser Hints Gates Could Keep Job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기사인데 오바마의 국방분야 참모인 Richard Danzig가 게이츠의 여러 정책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오바마도 게이츠의 여러 정책에 공감한다는 발언을 했다는군요. 오바마와 게이츠가 이라크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르지만 아프가니스탄 문제등에서는 유사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잘 아실 것 입니다. 게이츠 장관은 다른 민주당 의원들로 부터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니 오바마가 대통령이 될 경우 당분간 국방부장관에 머무르게 될 가능성도 없진 않을 것 같습니다. 비록 정권교체를 하더라도 안보적으로 어수선한 상황이니 말을 갈아타는 것은 별로 추천할 만한 일은 아니겠지요. 게다가 럼즈펠드가 남긴 좋지 않은 유산들도 정리를 해야 할 터이고.

꽤 재미있는 소식입니다.

그리고, 가디언에 좀 난감한 소식이 하나 실렸습니다.

Zimbabwe on the brink of new crisis as food runs out

정치적 난장판을 겨우 정리한 짐바브웨에 기아의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고 합니다.

아. 정말 지구촌에는 바람잘 날이 없습니다. 뭐;;; 인류가 멸망할 때 까지 그럴 것이 100% 확실합니다만.

2008년 8월 7일 목요일

럼즈펠드의 쪼잔함.

럼즈펠드는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았다. 예를 들면, 럼즈펠드는 자신의 사무실에 있는 유리그릇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 했다. 럼즈펠드는 다른 사람들에게 만약 자신이 누군가를 칭찬한다면 그때마다 사무실의 유리그릇에 동전을 하나 넣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유리그릇을 채우지 않기 위해 골몰했다.

Dale R. Herspring, Rumsfeld’s Wars : The Arrogance of Power, (University Press of Kansas, 2008), p.47

아우. 쪼잔한 변태색휘...

2008년 6월 17일 화요일

天朝의 兵部尙書 두 양반에 대한 책

세상이 우울하게 돌아가는 와중에도 이 어린양 같은 소시민에게는 소소한 즐거움이 계속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오늘은 아마존에 주문 넣은 책이 몇 권 도착했습니다.


발송한 날자는 다른데 도착은 같은 날 했습니다. 그야말로 Time on Target이로군요!

경제사정도 갈수록 악화되어 지르는 책의 양이 줄어들다 보니 그에 맞춰 책을 고를때도 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신간을 바로 지르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고 나온지 최소한 두어달 이상은 된 책들을 서평을 살펴가며 사 보게 되었지요.

이번에 도착한 책 중에는 미국의 국방부 장관 두 명에 대한 책이 있습니다.

첫번째 양반을 다룬 책은 바로 이 책 입니다.


루즈벨트 행정부에서 전쟁부 차관을 지내고 트루먼 행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냉전 초기 미국의 국방정책 형성에 큰 역할을 한 루이스 존슨(Louis Arthur Johnson)을 다룬 책 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양반을 다룬 책은...

표지에 낚였습니다?

민군관계의 권위자인 허스프링(Dale R. Herspring)이 작심하고 럼즈펠드를 까기위해 쓴 책 입니다.

예전에 허스프링이 루즈벨트 이래의 미국 민군관계에 대해 쓴 책을 한 번 소개한 적이 있었지요. 그때도 허스프링은 럼즈펠드를 열심히 까고 있었는데 그때 까지도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현재 진행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전직' 국방부 장관이 되었지요. 까기에 아주 이상적인 환경이 조성된 것이죠. 그래서 허스프링은 단행본 한 권을 할애해서 럼즈펠드를 까고 있습니다. 결론 부분을 먼저 읽어 보니 허스프링은 민군관계에 있어 갈등은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고 국방부장관의 임무는 이 갈등을 조정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해서 협력적으로 끌고 가야하는데 럼즈펠드는 이 점에서 실패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장마철의 무료함을 덜어줄 물건들이 생기니 아주 즐겁습니다.

2006년 11월 21일 화요일

뭔가 궁색한 강대국

닉슨은 브랙퍼스트(Breakfast) 작전 실시 3일전인 3월 13일에 국방장관 레어드(Melvin R. Laird)와 만나 레어드의 남베트남 철군안에 대해 논의했다. 레어드는 휠러(Earl G. Wheeler) 대장과 함께 사이공에서 에이브럼스(Creighton W. Abrams, Jr) 대장 및 MACV 참모진을 만나 철군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막 워싱턴에 도착한 참이었다. 베트남의 미군 지휘관들은 이미 1년 전부터 철군에 대해서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워싱턴으로부터 명확한 지침은 받지 못했고 그에 대한 계획도 세우지 않고 있었다. 베트남에 파견된 장성들은 철군은 북베트남과 상호 철수를 위한 협상의 일환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에이브럼스 대장은 신속한 철군안에 찬성하는 대신 평정작전의 진도, 남베트남군의 강화, 적의 공격 완화 등 세가지 점이 개선돼야 철군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레어드는 이 의견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동의했지만 닉슨 행정부의 집권 초기 내에 철군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요구에 더 중점을 두고 있었다. 레어드는 에이브럼스에게 “새 행정부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하기 전에(재선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 3개월, 6개월, 9개월, 기왕이면 3-4개월 안에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레어드는 온건파가 아니었고 존슨 행정부 보다 더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선호했지만 그는 무엇보다 미국내의 정치적 동향에 민감했고 워싱턴이나 사이공에서 논의되고 있는 강경책은 실제로 실행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레어드는 남베트남에서 군사적 승리를 거두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닉슨의 베트남 정책은 잘해봐야 전쟁의 베트남화를 통해 남베트남군이 미국의 철수에 따른 공백을 메꿀 수 있도록 육성하고 북베트남과 미국의 상호 철군을 이끌어 내는데 그칠 것이었다. 그러나 레어드는 남베트남 군의 전투력을 강화하는 것 보다 지속적으로 작전을 펼치는 MACV의 기본적인 방침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또 북베트남과의 협상이 신속히 진행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레어드는 이 점을 고려해 키신저의 협상 진행이나 에이브럼스의 견해와 상관없이 철군 계획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레어드는 1968년 까지만 해도 워싱턴의 그 누구도 고려하지 않고 있던 점진적인 일방적 철군을 기본 방침으로 결정했다. (후략)

Jeffrey Kimball, Nixson's Vietnam War, p.137~138


천자국의 굴욕.

럼즈펠드가 이라크를 쳐들어 갈 때 자신이 저것과 비슷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생각 했을까?

미국의 베트남화는 결국 돈만 잡아먹은 실패작이 됐다. 오늘 워싱턴포스트에는 이라크군 재건이 뭔가 꼬여가고 있다는 요지의 기사가 하나 떴다. 이라크는 정치상황도 복잡하게 꼬여버렸으나 베트남보다 더 지독한 진창이라고 해야 하나?

사족 하나 더

위의 기사에서 이 부분은 정말 웃겼다.

Some of the American officers even faulted their own lack of understanding of the task.

"If I had to do it again, I know I'd do it completely different,"

reported Maj. Mike Sullivan, who advised an Iraqi army battalion in 2004.

"I went there with the wrong attitude and I thought I understood Iraq and the history because I had seen PowerPoint slides, but I really didn't."

2006년 5월 12일 금요일

[美利堅史] 권43 광종 조지 W 부시 本紀

광종(狂宗) 조지 W 부시 주니어 황제는 41대 황제 조지 H. W. 부시 황제의 장남이다.
본시 미리견은 백성들이 덕있는 사람을 천자로 추대하는데 부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천자를 하니 이로서 조지 부시 주니어의 덕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지 부시 주니어 황제는 트루먼 2년 코네티컷에서 출생했다.

장성하니 가문의 전통을 이어 예일 학당에서 학업을 쌓았다.

존슨 6년, 남만을 토벌하는 싸움이 수년간 계속되고 홍건적의 준동이 심하니 정예로운 군사는 모두 외방에 나가 미리견을 지킬 군사가 부족했다.

부시 황제는 나라를 지킬 군사가 모자람을 염려하여 스스로 민병(National Guard)이 되기로 결심했다.

“모두가 남만으로 나가니 내가 아니면 누가 나라를 지키리오?”

군역을 마치고 다시 하버드 학당에서 학업을 쌓아 MBA를 취득하니 이것은 미리견 황제 중에서 최초이다.

부시 황제는 일찍이 도(道)를 갈구하여 얻지 못하니 크게 실망하여 음주가무에 빠지게 되었다.

레이건 5년, 조지 부시 주니어가 곡주에 취해 비몽사몽간을 헤메다가 마침내 취기에 상제를 영접하니 비로서 깨달음을 얻었다.

“세상 모든 도(道)가 자유(Freedom) 앞에서는 덧없는 것 이로다!”

그리고 다시 말하였다.

“이제 도를 깨우쳤으니 더 이상 술은 필요 없다.”

소인배들이 말하길 부시 황제가 득도한 것이 빌리 그래엄(Billy Graham) 이라는 도인을 만난 때문이라 하는데 모두가 허황된 낭설이라 할 것이다.

클린턴 2년, 텍사스 백성들이 부시 주니어 황제의 덕을 흠모하여 텍사스 공으로 추대했다. 부시 주니어 황제가 4년간 텍사스를 자유로서 다스리니 모든 백성들이 자유의 감화를 받았다.
부시 주니어 황제가 텍사스 공을 그만두려 하매 백성들이 다시금 텍사스 공으로 추대했다.

“공께서 지금 우리를 버리시면 누가 자유로서 텍사스를 교화하겠습니까?”

부시가 다시금 자유로서 텍사스를 교화하니 그의 덕이 미리견 전체에 퍼졌다.

이때 클린턴 황제는 성품이 음탕하고 난잡하여 나라의 기강이 무너졌는데 뜻있는 신료들은 이를 심히 우려했다.

마침내 모든 백성들이 부시 주니어를 황제로 추대하니 자유의 덕화가 천지사방에 퍼지게 되었다.

부시 주니어 황제는 등극한 뒤 백성의 삶을 돌보는데 힘을 쏟았다.

하루는 황제가 시장에 나가니 한 대장장이가 한숨을 쉬고 있었다.

“노인장은 누구신데 이렇게 한숨을 쉬시오?”

“소인은 휴즈(Hughes)라는 대장장이인데 손도끼(Tomahawk) 만드는 일을 합니다. 레이건 황제 때만 해도 장사가 잘 됐는데 클린턴 황제 이후 이렇게 어려워 졌습니다”

부시 주니어 황제가 이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게 다 짐의 부덕함이다. 천하에 어찌 손도끼 쓸 곳이 없으리오?”

부시 주니어 황제가 노인에게서 손도끼(Tomahawk)를 모두 사 들인 뒤 오랑캐들이 난동을 부릴 때 마다 손도끼를 하사했다.
이렇게 해서 손도끼를 하사 받는 모든 오랑캐들이 감화되었다.

다만 김정일과 아마디네자드 등은 손도끼를 하사받기를 원했으나 부시 황제가 노인에게서 사들인 손도끼가 떨어져 아직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부유한 장사치들에게 세금을 내지 말도록 했다.

“장사치들은 돈 버는 것이 낙이거늘 어찌 백성의 어버이가 되어 백성의 낙을 빼앗겠는가?”

이에 빌 게이츠 등 여러 장사치들이 감동하여 외쳤다.

“천자께서 이리도 백성들을 위하시니 어찌 백성된 도리를 게을리 하겠나이까?”

빌 게이츠 등 여러 장사치들이 감격하여 더 많은 세금을 냈다.

부시 주니어 3년, 태위 럼즈펠드가 상소를 올려 후세인 치는 군사를 일으킬 것을 간하였다.

“삼가 신이 아뢰건데 태조 황제께서 나라의 기틀을 쌓으실 때 자유(Freedom)을 모든 도의 근본으로 삼으라 하시니 이후 선황제들께서 자유로서 모든 오랑캐를 교화 시키셨나이다.
지금 의랍극 국왕 후세인이 난폭하여 그 백성을 핍박하니 백성들은 마음껏 포를 쏠 자유조차 없사옵니다.”

부시 황제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의랍극 백성들이 포를 쏘고 싶어도 쏠 자유(Freedom)가 없으니 짐이 천자된 몸으로서 어찌 아니 슬프리오?”

이에 럼스펠드의 상소를 받아들이고 후세인을 치는 군사를 일으켰다.

천병이 한번 싸움에 후세인을 잡아 포박하고 그 백성들에게 포를 쏠 자유를 주니 의랍극 사람 모두가 천자의 은혜를 찬양하며 외쳤다.

“천자께서 우리에게 포를 쏠 자유를 주셨으니 어찌 아까운 탄환을 허공에만 낭비하리오?”

이리하여 의랍극인들은 천병을 보면 반가이 총포를 쏘고 천병들도 이를 받아 쏘니 서로간에 포화를 주고받는 아름다운 풍속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2006년 4월 30일 일요일

[美利堅史] - 도널드 럼즈펠드 世家 (재탕)

럼즈펠드(Donald H. Rumsfeld)는 일리노이주 사람으로 그의 조부는 덕국사람이라 전한다.

장성하여 프린스턴 서원에서 학업을 닦았는데 그 학문이 깊고 문장이 날카로워 모두가 큰 인물이라 칭찬하였다.

럼즈펠드는 학업을 마치고 수군의 군관이 되었는데 그때가 아이젠하워 2년이다.

아이젠하워 5년, 럼즈펠드는 군역을 마치고 조정에 출사하였다. 럼즈펠드의 인물됨이 강직하고 뜻이 고상하니 많은 사람이 흠모하였다.

케네디 2년, 일리노이 백성들이 럼즈펠드의 덕을 흠모하니 천자가 럼즈펠드를 일리노이 후(侯)에 봉했다.

럼즈펠드는 덕망이 높아 백성들이 우러르니 존슨 황제도 작위를 거듭 내려 그 이름이 더욱 높아졌다.

닉슨 원년, 천자가 럼즈펠드의 학식과 덕망을 높이 사 의랑(議郞)으로 삼았다.

닉슨 5년, 천자가 럼즈펠드를 구라파 칙사(U.S Ambassador to the NATO)로 삼았다. 럼즈펠드가 칙사가 되어 덕국에 가니 그가 가는 길 마다 많은 덕국인들이 나와 엎드려 인사하였다.

"우리같은 번방에서 천자의 사신이 났으니 이 어찌 아니 기쁘리오?"

이때 닉슨 황제가 부덕하여 승상 포드가 천자가 되었다.

포드황제는 평소 럼즈펠드의 학식과 인품을 흠모하여 즉위하자 럼즈펠드를 상서령(Whitehouse Chief of Staff)으로 삼았다.

럼즈펠드가 상서령이 되던 때 조정에는 간악한 무리가 넘쳤고 무리중에 그릇된 도를 따른 자가 많았다.

키신저는 닉슨 황제 때 황제의 총애를 받아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키신저가 천자의 성총을 흐려 여러 제후들을 제어하지 못하니 천자의 권위가 실추되었다. 이때에 이르러 노서아 왕이 심히 교만하여 참람되이 천자의 의복과 수레를 사용하였고 그 언행이 심히 방자하였다.
뜻 있는 신하들이 이를 분하게 여겼으나 오히려 키신저는 노서아왕을 두둔하였다.

"이제 천하가 화평하여 한 가족과 같은데 어찌 노서아를 핍박하려 하는가?"

럼즈펠드는 상서령이 되어 천자의 권위를 세우는데 힘을 다하였다. 키신저는 교만하여 마음대로 백악궁을 드나들며 천자를 알현했다.
럼즈펠드는 키신저가 천자 앞에서 망령된 말을 담을때 마다 꾸짖어 물리치니 키신저가 이를 심히 분하게 여겼다.

포드 2년. 황제가 럼즈펠드를 태위에 임명하였다.

이때 천병은 10년간 남만과 싸워 토벌하지 못하니 그 위세가 꺾여 여러 제후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럼즈펠드는 태위가 되어 군사를 조련하고 각종 병장기를 날카롭게 하니 다시 천병의 위엄이 서게 되었다.

레이건 황제도 럼즈펠드를 중용하여 많은 관직을 내렸다.

레이건 4년, 럼즈펠드는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했다.

럼즈펠드가 관직에서 물러나니 많은 선비들이 그 덕을 사모하여 모여들어 가르침을 구하였다.

이때, 레이건 황제는 군사를 조련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니 다시 천병의 위엄이 천하에 떨쳐지고 제후왕들도 천자의 위엄을 두려워 하여 함부로 망동하지 않았다.
드디어 노서아왕 고르바초프도 복속할 뜻을 전하니 천하가 태평하였다.

레이건 8년, 천자가 승상 부시에게 양위했다.

부시 황제도 상황의 뜻을 받아 천자국의 위엄을 세우는 데 힘썼다. 이때 함부로 망동하여 군사를 일으킨 의랍극(依拉克)왕 후세인을 토벌하여 천병의 위엄을 천하에 떨쳤다.

그러나 클린턴이 제위에 오르니 다시금 천하가 어지러워 졌다.

클린턴은 품행이 방자하고 음란함이 극에 달하여 궁에서 궁녀를 희롱하고 음탕한 행위를 그치지 않았다.

이때에 작은 오랑캐들이 다시금 준동하니 천하가 어지러웠고 의랍극왕 후세인도 다시금 교만한 마음을 품었다.

럼즈펠드가 수차례 상소를 올려 후세인을 토벌할 것을 간하였으나 천자는 이를 따르지 아니하였다.

또한 이때 홍건적 수괴 김정일이 군사의 위용을 자랑하며 방자함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나 클린턴 황제는 군사를 일으키는 것을 두려워 하니 다시금 제후들의 비웃음 거리가 되었다.

부시 주니어가 제위에 오른 뒤 럼즈펠드를 다시금 태위에 명하였다.

럼즈펠드는 먼저 천자에 간하여 후세인을 토벌하는 군사를 일으키니 천병뿐 아니라 충순한 영길리 국왕도 군사를 보내었다.

후세인이 군사를 이끌고 나와 대적했으나 마침내 천병에 사로잡혀 결박당하는 몸이 되었다.

이리하여 홍건적 수괴 김정일도 럼즈펠드를 두려워 하여 함부로 준동을 하지 못하게 되니 다시금 천하가 태평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