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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4일 수요일

슈투카에 대한 오해

바로 아랫글에서 코럼 이야기를 다룬 김에 독일공군에 대한 오해 하나에 대해 더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이 세상의 많은 일들이 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 진실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는 사실들이 입에서 입을 거쳐 전해지면서 마지막으로는 더 이상한 형태로 진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모든 분야에 걸쳐 골고루 나타나는데 군사사도 예외는 아닐 것 입니다. 여기서는 그 중에서 독일공군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아마 독일공군과 관련해서 국내에 가장 널리 퍼진 오해 중의 하나는 슈투카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슈투카에 대해서 국내에 가장 널리 퍼진 오해는 바로 괴링의 측근이었던 우데트(Ernst Udet)가 미국에서 구입해온 커티스 헬다이버가 독일의 급강하 폭격기 개발의 시초가 되었다는 것 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아니올시다 입니다.

먼저 우데트가 미국을 방문해서 커티스 헬다이버를 구입한 것은 1934년의 일인데 Ju-87의 개발은 1933년부터 시작됐습니다. 게다가 Ju-87은 독일군이 개발한 첫 번째 급강하 폭격기도 아니었고 급강하 폭격에 대한 개념이나 교리는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우데트가 미국을 방문했을 무렵에는 He-50이 급강하폭격기로 잘~ 사용되고 있었지요. Ju-87은 독일공군의 첫번째 급강하폭격기가 아니라 공군의 교리에 맞는 첫번째 ‘중’급강하폭격기 였습니다.
그리고 교리나 군사사상에서 보면 육군복무규정 300에는 따로 급강하 폭격기에 대한 내용이 있지요. 일반적으로 무기의 개발은 먼저 작전개념과 교리가 확립되면 그에 맞춰 이뤄지는 것이니 독일의 급강하폭격기 개발에 미국이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 처럼 인식하는 것은 크게 무리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정적으로 우데트가 기종선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독일공군 기술국장에 임명된 것은 1936년입니다!

그럼 슈투카의 개발에 있어서 우데트의 역할은 무엇이냐?

좀 심하게 말하면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데트는 그냥 급강하 폭격기 빠돌이 정도 되겠습니다.;;;;;

오히려 우데트가 활약(???)한 것은 1936년 이후 여러 항공기의 개발에 관여하면서 많은 계획들을 파탄(???)에 가깝게 몰아넣은 것이 되겠습니다. 우데트가 급강하 폭격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Ju-88, He-177, Me-210 등 독일공군의 차기 주력기종에 모조리 급강하 폭격 능력을 넣으려 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죠. Ju-88은 다행히 성공적이었으나 He-177은 급강하 폭격을 가능하게 하려다가 개발에 엄청난 지장을 초래하게 됩니다.

다시 한번 결론을 말하면 우데트는 Ju-87 슈투카의 개발에 대해 그다지 큰 영향을 행사하지 못 했습니다. 물론 우데트가 미국에서 구입해온 커티스 호크는 Ju-87의 개발에 간접적인 영향을 주긴 했지만 독일의 급강하폭격기 개발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코럼이 1997년에 출간한 The Luftwaffe : Creating the Operational Air War 1918-1940에 간략히 소개한 바 있고 예전에 제가 날림으로 번역했던 코럼의 글 독일공군의 육군 지원 교리 1918-1941에도 역시 관련 내용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2007년 3월 15일 목요일

독일의 점령지역 산업시설 활용 1939-1945 - 항공산업의 사례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전시 동원과 관련해 자주 논의되는 이야기 중 하나는 1940년 독일이 장악한 서유럽의 공업기반이 독일의 전쟁 수행능력에 어느 정도의 도움을 줬는가 하는 점 입니다.

가장 먼저…

전후 연합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차 대전 기간 중 독일에 점령된 국가들이 독일 공군에 공급하기 위해 생산한 항공기는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국 가1941194219431944총 계
프랑스626681,2855022,517
체코슬로바키아8195688051,9554,147
네덜란드1675414442947
헝가리0073344417
이탈리아003279111
Richard Overy, The Luftwaffe and the European Economy 1939-1945, Militärgeschichtliche Mitteilungen, 1979/2


통계에도 나타나 있듯 독일이 가장 재미를 본 국가는 체코였습니다. 일단 오스트리아를 제외하면 가장 먼저 독일의 수중에 들어온 산업화된 국가였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제국항공성(RLM) 내에는 체코의 기업들에게는 항공기 완제품 생산대신 부품과 반조립 정도만 맡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우데트(Ernst Udet)가 체코의 공업시설 활용을 적극적으로 밀어 붙였기 때문에 이미 1939년 말에 체코의 항공기 제조업체들은 독일공군으로부터 총 1,797대의 항공기 생산을 수주 받습니다. AVIA가 이때의 경험으로 전후에도 Bf 109의 짝퉁(?)을 생산한 것은 유명하지요.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체코의 군수 산업체들은 독일 점령지역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고 기여도가 컸다는 점 입니다. 체코의 기술 좋은 노동자들은 비교적 말도 잘 듣고 사보타지에 취미가 없었다지요. 군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도 경호를 위해 무장 병력을 붙여줘야 했던 유고슬라비아에 비하면 체코는 독일 기업들이 털어먹기 좋은 낙원이었다고 합니다.

슬로바키아는 명색은 독립국이었지만 실제 사정은 옆 동네인 체코와 같아서 거의 일방적으로 독일에 털립니다. 독일의 공군사절단(Luftwaffenmission)은 슬로바키아 정부로부터 국영 항공기 공장의 설립과 운영에 대한 권리를 얻어내는데 사실 이건 반 강제적인 것이었지요. 독일은 슬로바키아 정부에게 슬로바키아의 국영 공장이 생산한 항공기의 75%는 독일 공군이 인수하고 25%만 슬로바키아 공군에 공급한다는 조항을 강요해서 아주 재미를 봅니다.

프랑스의 경우는 꽤 흥미로운 경우입니다.
먼저 독일 점령지역의 공장과 비시 정부 관할 지역의 공장을 다루는 주체가 달랐습니다. 비시 정부 관할 지역은 1943년 점령 이전까지는 스위스, 스웨덴과 함께 중립국으로 분류돼 독일항공산업위원회(DELIKO, Deutsche Luftfahrtindustriekommision)의 담당이었습니다. 반면 독일 점령지역은 제국항공성의 관할하에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특히 항공기 완성품 뿐 아니라 중간 부품의 공급에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유럽 대륙에서는 독일 다음으로 항공 산업이 발달한 나라였기 때문에 많은 독일 기업들이 침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제국항공성이 나서기 전에 기업들이 먼저 작업을 시작했다고 하지요. 많은 수의 항공 기업(특히 융커스)들은 아직 프랑스와의 휴전이 체결되지 않은 상태(즉 이론적인 교전상태)에서 프랑스 기업들과 사업계약을 체결하러 인력을 파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프랑스는 전체적인 항공기 생산에서는 슬로바키아에 뒤지긴 하지만 독일 공군의 중요한 해외 파트너(?) 였습니다. 1942년 까지 독일 공군과 납품 계약을 체결한 프랑스 기업은 192개사였다고 합니다.(같은 기간 독일 육군은 60개사, 해군은 9개사)
프랑스는 휴전 이후에도 자국 정부를 위해서 항공기 생산을 계속했는데 가끔은 독일이 제 3국에 공여할 목적으로 프랑스제 항공기를 주문하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1943년에 불가리아 정부는 독일측에게 Dewoitine D.520(도데체 왜 이걸 독일에?) 96대를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타전했는데 무슨 이유인지 이건 취소되고 Bf 109 16대가 공여 됩니다.

폴란드의 경우는 말 그대로 안습 입니다. 국가사회주의 강도단의 두목인 괴링 부터가 폴란드는 산업적으로 가치가 없으며 약탈할 건덕지가 없다고 공언할 정도였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인켈은 크라쿠프에, 융커스는 포즈난에 부품 생산 공장을 확보합니다. 물론 폴란드의 경우 서유럽과 달리 항공기 완성품을 조립할 수 있는 공장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폴란드와 유사한 국가로는 유고슬라비아도 있습니다. 유고슬라비아의 항공 기업들은 독일 점령과 동시에 독일 항공기업들의 자회사로 강제 흡수됩니다. 전쟁 이전 유고슬라비아의 대표적인 항공기업이었던 Aeroput은 루프트한자의 정비공장으로 바뀌고 Rakovica는 융커스의 엔진 부품 공장으로 전환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독일이 가장 재미를 보지 못한 곳은 이탈리아였습니다.
독일은 이탈리아를 점령한 뒤 이탈리아의 항공기업들을 독일의 항공기 생산에 활용하려 했으나 성과가 매우 시원치 않았다고 하지요. 항공기 생산이 1943년에 32대, 1944년에 79대로 독일의 한달 치 생산도 안 되는 규모였습니다.

독일이 해외의 산업 기반을 활용한 것은 이렇게 외형적으로나마 합법의 탈을 쓴 것도 많았지만 아예 노골적인 약탈로 나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많았습니다.
먼저 체코슬로바키아가 점령된 다음 접수된 장비와 시설은 불가리아로 매각됐고 폴란드 점령 후 압수된 항공기와 기자재는 루마니아, 불가리아, 스웨덴 등지로 매각, 또는 공여 됐습니다.
독일 공군은 점령지로부터 산업 시설을 인수하는데 필사적이었기 때문에 소련 침공을 앞두고는 제국항공성 내에 산업시설 노획을 위한 조직(Beute-Sonderkommando)를 만들었습니다. 이 조직은 1941년 한 해 동안 소련의 점령 지역내에서 8,400여대의 대형 공작기계를 약탈해서 독일로 보냈다고 합니다.
뭐, 어쨌건 소련도 전쟁이 끝난 뒤 실레지엔과 동프로이센의 기계들을 잔뜩 뜯어 갔으니 피장 파장이려나요?

전체적으로 봤을 때 항공산업 부문만 놓고 보면 독일인들은 2차 대전기간 동안 충분히 재미를 봤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쟁으로 거덜직전까지 가긴 했지만 그것 조차 미국의 경제원조로 피해가니 말 다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