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30일 금요일

1차대전 당시 알자스-로렌의 병역 기피와 탈영문제

요즘 농담거리가 잘 생각나지 않다 보니 자꾸 번역글로 때우고 있습니다.

이번 글은 1차대전 기간 중 엘사스-로트링엔(알자스-로렌) 출신 사람들의 병역 기피 및 탈영에 대한 내용입니다. 한국내 게시판을 보면 친독일적(?) 네티즌 들이 알자스-로렌은 독일 땅이다~ 라면서 열심히 키보드 투쟁을 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그렇다면 정작 당사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 까요?

자. 스크롤을 하십시오!

독일 육군의 엘사스-로트링엔 출신자들

1차대전 발발 당시 해외에 거주하던 엘사스-로트링엔에 거주하는 징집연령자 16,000명 중 징집통지서를 받고 귀국한 사람은 불과 4,000명 밖에 안 된다는 점을 보면 이들의 독일에 대한 충성심이 어떠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전쟁이 발발했을 때 최소한 7,000명 이상이 병역회피 사유로 재판에 회부된 상태였다. 1차대전 기간 동안 17,650명의 엘사스-로트링엔 사람이 프랑스 육군에 복무했다. 전쟁이 시작되자 징집연령대의 남성들은 대규모로 국경을 넘어 도망쳤다. 보통은 20-150명씩 무리를 지어 국경을 넘거나 아예 마을 전체의 남성들이 도망쳤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최소한 전쟁 발발과 동시에 3,000명의 남성이 국경을 넘어 프랑스로 도망쳤다. 스위스와 인접한 국경지대에서는 국경을 넘는 병역기피자의 대열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엘사스-로트링엔이 국경지대라는 점은 부수적인 요인에 불과했다. 상(上)엘사스의 관구 사령관은 이 지역의 주민들이 “애국심이 없으며” “병역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만연해 있기 때문에 이들은 병역을 (영광이 아니라) “처벌”로 받아들여진다고 지적했다. 한 마을의 시장은 병력 소집을 방해하려 했다. 많은 지역에서 병역 회피가 계속됐는데 상엘사스의 마르키르히(Markirch)에서는 전체 인구 11,800명 중 700명의 남성이 병역회피를 위해 잠적했다. 그리고 1917년 6월이 되자 병력 적령기의 남성 427명 중 213명이 스위스로 달아났다. 이 때문에 병역소집통지는 징집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배달했으며 무장병력이 동반했다. 로트링엔과 하(下)엘사스에서도 역시 “엄청나게 많은” 남성들이 병역을 회피했다.

역설적이게도 독일 군부역시 엘사스-로트링엔 지역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징집을 사용했기 때문에 병역에 대한 부정적인 성향은 더욱 강해졌다. 1915년 8월, 육군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엘사스와 로트링엔의 성인 남성 거의 대부분을 소집했다. “병역, 또는 노동에 적합한” 최대한의 기준이 적용됐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이런 가혹한 방식 때문에 징집이 잘 되기 보다는 반발만 늘어났다. 전쟁 초기부터 징집은 엘사스-로트링엔 전 지역에서 인기가 없었다. 전쟁의 종결이 가까워지자 더 많은 민간인들이 징집을 피해 잠적했다.

징집될 경우 엘사스-로트링엔 출신자들은 자신들에 대한 차별에 대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항했다. 이들은 같은 고향 출신자들을 규합해서 위험한 명령을 거부하고 종종 탈영이나 폭동을 일으켰다. 독일 군부는 특히 탈영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대응했다. 탈영은 부대의 사기를 떨어트릴 뿐 아니라 군의 기밀을 적에게 넘겨줄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이었다. 전투중에 발생하는 포로와 실제로 탈영해서 항복한 경우가 굉장히 모호하기 때문에 탈영에 대한 통계는 주의해서 살펴봐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사스-로트링엔 출신 병사들의 탈영율이 높았다는 점은 확실하다. 1917년 7월에 독일육군 부참모장은 최소한 1,000명 이상의 엘사스-로트링엔 출신 병사들이 탈영했으며 달리 말하면 10,000명 중 80명이 탈영했다고 기록했다. 일반적인 독일군의 탈영율은 10,000명 당 1명 이었다. 그리고 1917년 12월에서 1918년 9월까지 530명이 더 탈영했다.

Alan Kramer, "Wackes at War : Alsace-Lorraine and the failure of German national mobilization 1914-1918", State, society and mobilization on Europe during the First World War,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7), pp.110-112

한국의 인터넷 게시판에 알자스-로렌 사람들 보다 더 독일적인 한국어 사용자가 있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 입니다.

댓글 8개:

  1. 잘 읽었습니다. 가끔 보면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은 사기이며 형을 받은 자들은 모두 위대한 사람들이다'라고 외치는 이용자들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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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라피에사주님 // 그런걸 보면 참 신기하지요. 어차피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만 그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심히 덜덜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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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뭘 모를 때는 더 용감해질 수 있는 법인 것 같습니다. (저 포함. ^^;) 유럽에도 "한반도의 동남부는 일본 땅이며 도쿄전범재판은 사기이다!"라고 외치는 찌질이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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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알자스 로렌하니 슈바이처 박사가 생각나는군요. 독일인이라는 의식도 별로 없이 자연스럽게 프랑스 식민지에서 의료활동을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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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bigtrain님 // 뭐, 인류는 60억이 넘으니 그 중 괴상한 인간이 몇 명 있는건 오히려 정상일지 모르겠습니다.

    슈타인호프님 // 아하. 슈바이처 박사도 저 동네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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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역시 남의 땅에 깃발을 꽂는다고 충성심까지 딸려오는건 아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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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30년 전쟁후에 프랑스에 안넘어갔어도 저렇게 되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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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행인님 // 당근입죠.

    아텐보로님 // 그랬다면 이야기가 달라졌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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