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23일 금요일

국제여단에 대한 우울한 이야기

(전략) 국제여단 소속의 외국인 지원병들은 스페인 병사들과 유리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공식적인 방문을 제외하면 국제여단 병사들은 스페인 병사들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영국이나 미국인 병사들은 “럭키 스트라이크”를 피우지만 담배가 없어 피우지 못하는 스페인 병사들에게 자신들이 피우는 담배를 나눠줄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국제여단 병사들은 고국에서 보내오는 물품으로 풍족한 생활을 하지만 이것을 스페인 전우들과 나누지 않습니다. 외국인 지원병들에게는 출신 국가의 식품이 제공되지만 국제여단에 소속된 스페인 병사들에게 스페인 전통 음식을 제공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알바세테(Albacete)의 의무부대는 최근까지 외국인 지원병들만 치료했으며 스페인 병사들은 해당 부대에서 알아서 하라고 방관했습니다. 알바세테, 무르시아(Murcia), 알리칸테(Alicante), 베니카심(Benicassim)의 군병원은 매우 좋은 시설을 가지고 있지만 국제여단본부의 의무감 Telge 소령과 그의 부관 Franek 대위는 국제여단에서 외국인 전우들과 함께 싸운 스페인 병사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사단이 처음으로 스페인 전우들에게 외국인 지원병들과 동등한 처우를 한 것이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1여단장 Richard는 브루네테와 사라고사 전투에서 입은 피해를 보고하면서 외국인 지원병의 경우는 매우 자세하게 집계하고 때로는 이름까지 일일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정작 자신이 지휘하는 스페인 병사들의 피해는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모르고 있었습니다.

(후 략)

1938년 1월 14일, 스베르쳅스키 대령의 보고서 중에서

Spain Betrayed : The Soviet Union in the Spanish Civil War, Yale University Press, 2001, pp453-454에서 재인용

부대 재편성 도중에 매우 유감스럽고 극도로 심각한 사고들이 발생했습니다. 본부의 요청에 따라 장교 한명과 정치위원 한명이 Trembleque로 파견됐습니다. 이 두 명이 도시에 도착하자 (Trembleque) 요새사령관과 인민전선위원회에서는 이들이 도착하기 전날에 발생한 (국제여단 병사들이 일으킨) 사고에 대해 강력히 항의했습니다. (국제여단소속의) 많은 병사들이 술에 취해서 밤새도록 도시에서 소요를 일으켰습니다. 술에 취한 (국제여단) 병사들은 경비병을 강제로 무장해제 한 뒤 위협했으며 도시의 건물들을 마구 파손해 주민들이 밤새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부대 이동 과정에서 60명이 탈주했습니다.

(후 략)

1938년 2월 13일, 14혼성여단장 뒤몽 중령이 국제여단 본부에 보낸 보고서.

Spain Betrayed : The Soviet Union in the Spanish Civil War, Yale University Press, 2001, pp462-463에서 재인용

정치적 올바름을 외치는 자들의 이중성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모양입니다. 프랑코에 맞서 싸운 이들의 용기까지 폄하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렇게 깽판을 칠 요량이라면 스페인에는 뭐하러 간 것일까요?

이와 비슷하게 1820년대에 그리스 독립전쟁에 참가한 서유럽 지원병들 상당수가 그리스인들을 극도로 혐오했다고 하지요.

댓글 10개:

  1. 영화나 소설속에 소개된 낭만적인 국제여단의 삶(?)과는 엄청난 차이로군요. 아니 나름대로 깽판과 모험을 즐겼으니 낭만적이라는 수식어는 그대로 붙여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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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상주의자들이 현실과 부닥쳤을 때 그 괴리감을 모멸로 표시하는 경우가 제법 흔한 것 같습니다.

    자원해서 국경을 넘어 입대하기 전까지 그 친구들이 가졌던, 스페인 민중과 군인에 대한 환상이 깨질때까진 얼마나 걸렸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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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왕 도우러 간것, 잘 어울리고 잘 이해해 주면 될텐데 도우러 갔다는 그들에게 그게 너무 어려웠나봅니다.(도우러 간거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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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주 극단적인 쓴소리를 한 마디 한다 치면... "배부르고 등따신 놈들이 배고프고 추워서 혁명 일으킨 애들 도우러 가서 깽판놓은 현상"이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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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하긴, 그런 낭만주의자의 일원이었던 헤밍웨이가 쓴 소설에서도 스페인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친근감을 준 유일한 외국인은 러시아인 카슈킨 뿐이었죠(주인공인 조단 제외). 그 외에 영국인, 프랑스인 등등은 호텔 파티에서 술이나 처먹고 기밀이나 누설하면서 서로 권력다툼이나 하는 인종들로 묘사했으니. 그나마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골츠 같은 사람들도 그저 군사령관일 뿐 스페인 사람들과는 전혀 관계하지 않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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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라피에사쥬님 // 일반적인 통념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게 맞는 듯 싶습니다.

    하얀까마귀님 // 아하. 그렇군요. 이상주의자들의 행동 양식은 시공을 초월하나 봅니다.

    아텐보로님 // 그렇게 되면 좋겠지요.

    윤민혁님 //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

    슈타인호프님 // 아. 그렇군요. 말씀해 주시니까 저도 그 그 부분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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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조지 오웰이 국제 여단으로 가려다가 행정착오로 카탈로니아로 갔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뭐 저런 꼴 안 보고 스페인 인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했으니 오히려 다행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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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하얀까마귀님의 코멘트를 읽고 나니 제가 현재의 노무현 정부에 거의 모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제가 이상주의자라 그런 것 같습니다.. 아아 현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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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낭만바보집단이 뭐 한번두번 있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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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이건 뭐 도와주러 간건지 훼방을 놓으러 간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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