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 15일 목요일

독일군의 화학무기 시험 : 1914~1915

마른 전투 이후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사람 잡는데 타고난 재능을 가진 독일인들은 뭔가 화끈한 한방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후세에 음흉한 이미지를 남긴 전쟁상 팔켄하인은 1914년 10월 초에 화학전을 위한 연구를 지시하고 재주 좋은 독일 엔지니어들은 150mm 유탄포로 발사하는 가스탄 시제품을 2주도 안되는 시간에 완성해 10월 27일 첫번째 실전 시험을 시작했습니다.

1914년 10월 27일, 독일군은 서부전선의 누브-샤펠(Nouve-Chapelle) 전투에서 처음으로 가스탄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날의 결과는 조금 기묘한 것이 연합군은 독일군이 화학무기를 썼는지 전혀 몰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측은 이날의 성능시험에 만족했는지 바로 17,000발의 가스탄을 생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 입니다.

독일군은 1915년 1월 15일에 동부전선의 볼리모프 전투에서 가스탄을 보다 대규모로 사용했습니다. 즉, 본격적인 실전 투입이었습니다. 이날 전투에서 독일군은 공격준비사격 동안 15,000발의 가스탄을 발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포탄의 문제 때문인지 놀랍게도 가스탄은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이날 발사한 가스탄에 의한 사상자는 거의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1914년 말과 1915년 초 화학무기 사용은 독일군 고위지휘관들의 큰 관심사였습니다. 독일의 장성들은 도덕적으로 꺼림칙 한데다 효과도 의심스러운 독가스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찝찝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몇 차례 있었던 실전 시험에서 결과가 신통치 않았기 때문에 그 효능에 대한 의구심이 큰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랬기 때문인지 이프르 전투에서는 전투 초반 상당히 좋은 효과를 거두긴 했는데 전과 확대에 필요한 예비대가 없어 결국 헛수고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프르 전투에 투입된 화학전 부대는 바로 동부전선으로 이동해서 5월 31일 Humin 공격에 투입됐습니다. 독일측은 동부전선의 기후나 지형이 화학전에는 좀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일단 사방이 평야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독일군은 이날 220톤의 독가스를 사용해 1만 명의 러시아군을 죽이거나 부상시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 때문에 가스가 퍼지지 않은 지역에서는 러시아군이 완강하게 저항해 독일군은 크게 고전했다고 합니다.
독일군은 Humin 전투 뒤 동부전선에서 세 번에 걸쳐 독가스를 시험했는데 두 차례는 매우 난감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특히 한번은 독일군이 가스탄 발사를 끝내고 얼마 뒤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가스가 그대로 독일군 방향으로 밀려왔고 이 황당한 상태에 처한 독일군 보병들은 공황상태에 빠져 공격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서부전선에 비하면 러시아군은 가스전에 대한 대비가 부실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효과적인 대응책을 고안했습니다. 러시아군은 독일군이 가스 공격을 시작하면 해당 지역에 큰 불을 질러 독가스가 높이 올라가도록 만들어 독일인들에게 엿을 먹였다고 합니다. 물론 1916년 이후 가스 사용 기술이 점차 세련돼 가면서 이런 임시적인 대응의 효과는 감소했고 러시아는 1차 대전기간 동안 50만 명을 가스 공격에 잃게 됩니다.

독가스는 1914년 겨울부터 1915년 여름에 걸친 몇 차례의 시험을 통해 효과가 있긴 하지만 그냥 믿고 쓰기엔 문제가 많은 물건으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그 효과가 바람에 좌우된다는 점은 분명히 문제였습니다. 독일군은 욕을 먹어가면서 독가스를 사용했지만 효과가, 특히 서부전선에서는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1915-1916년 기간 동안 서부전선에서 가스 공격으로 죽거나 부상당한 연합군 병력은 연합군 전체 사상자의 0.85% 였습니다. 물론 1917년 이후에는 이것 보다는 훨씬 좋은 효과를 거두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관총의 아성에 도전하기에는 문제가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댓글 7개:

  1. 독가스는 초기에는 기관총보다는 비용 대비 효과가 미흡했나 보군요...

    답글삭제
  2. 역시 전장의 진정한 대인배는 포병들.

    답글삭제
  3. 꾸준히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윤리적 문제에 비해 효과과 탁월한가는 의문의 여지가 많지요[..]

    (일단 가스로 물자를 파괴할 순 없으니.)

    스카이호크님// 세계적인 대인배를 배출한 모 국가가 포병 역시 숫자와 화력밀집하난 끝내주지요.

    답글삭제
  4. 행인님 // 1차대전 내내 기관총의 효율을 능가할 무기는 없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카이호크님 // 설마 스카이호크님은 스탈린 대원수의???

    라피에사쥬님 // 네. 맞는 지적이십니다.
    1944년 1월에 영국인들이 독일 본토에 대한 화학무기 공격에 대해 연구했을 때도 화학무기의 효과는 건물을 파괴할 수 없으므로 일시적인 것에 그친다고 결론이 나왔죠.

    답글삭제
  5. 이 당시에 비하면 현재의 화학무기들의 점착력(?) 내지 지속력, 그리고 살상력은 90년 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발전한 것 같습니다.

    '붉은 폭풍'에 그려진 화학무기의 효과가 과연 과대평가된 것일지... 사실 물자를 파괴하지 않더라도 오래 지속되면서 해당시설의 사용을 거부시키던가, 화학무기의 제독에 막대한 비용을 들게 만들다던가하면 목표는 완수니까요. ^^

    물론, 핵을 가진 나라 상대로는 별 의미가 없겠지만... ^^;

    답글삭제
  6. 가스와 대포와 기관총 중...
    그중에 제일을 기관총이라....

    답글삭제
  7. 대원수의 오르간 소리는 언제나 일품이라죠. 변방의 혹부리 왕조에서는 아직도 대원수의 오르간을 기리며 연주법을 익히고 있다 하질 않습니까...(먼산)

    답글삭제